지난 1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기도 용인시의 CU 편의점주 김 모(53) 씨가 죽기 직전 본사 직원에게 한 마지막 요청이다. "적자 상태의 점포를 하루라도 빨리 폐점하게 해달라", "건강이 좋지 않으니 하루만 영업을 쉬게 해달라"는 김 씨의 요청에 CU는 거액의 폐업 위약금을 요구했다. 궁지에 몰린 김 씨는 세 자녀와 아내를 뒤로하고 수면유도제 40알을 본사 직원 앞에서 삼켰다.
장례는 끝났지만, 아내는 아직 검은색 옷을 벗지 않았다. 27일 막 남편을 잃은 세 자녀의 엄마가 난생처음 기자들 앞에 섰다. "애기 아빠를 죽인 것은 CU의 노예 계약"이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녀가 마이크를 입 쪽으로 가까이 끌어당기자, 카메라 플래시가 연달아 터졌다. 아내는 잠시 눈을 꼭 감았다 떴다.
"글쎄요. 제가 경황은 없지만 여기까지 온 건…. 장례를 치르며 가만히 생각을 해봤습니다. 왜 애기 아빠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편의점을 운영하던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애기 아빠가 겪었던 많은 힘든 일들을 제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이런 일이 두 번, 세 번, 네 번,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왔습니다"
잠시 숨을 몰아쉰 아내는 다시 입을 열었다.
"고인이 되신 애 아빠가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나도 내 돈을 투자한 사업주인데. 하지만 이 점주라는 직책은 CU 본사 직원도 아니고 내 개인 사업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내가 내 점포를 가지고 내 의사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네들이 시키는 대로 다 해야 한다'고요. 이런 노예 계약.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7일 계속되는 편의점주 자살과 관련해, 가장 최근 자살한 용인 편의점주 유가족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홍석조 BGF(상호 CU)회장의 진심 어린 사과와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유족 얼굴은 요청에 따라 모자이크 처리했다. ⓒ연합뉴스 |
2개월 사이 4명 편의점주 벼랑 끝으로 내몬 '노예 계약'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 해도, 최근 두 달 사이 편의점주 네 명이 자살했다. 지난 3월 13일에는 부산 수영구 CU 편의점주 윤호준(가명·43) 씨가 광안대교에서 투신했다. 사흘 후인 3월 16일에는 경남 거제시 CU 편의점주 임영민(가명·32) 씨가 자신의 편의점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했다.
3월 18일엔 용인시 기흥구에서 세븐일레븐 편의점주 김 모(43) 씨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16일, 용인시 기흥구에서 또 한 명의 CU 편의점주 김 씨가 세상을 등졌다. 지난해 7월 점포를 열고 10개월 만이다. 사망한 넷 중 세 명이 CU 편의점주였다.
전국편의점가맹점 사업자단체협의회(이하 전편협), 참여연대, 경제민주화국민본부 등은 이 같은 연쇄적인 자살을 만든 것은 편의점 업계에 만연한 '노예 계약'이라고 주장한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 설명에 따르면, 피해 편의점주들은 '최저수익 몇백만 원 보장'이란 광고를 믿고 편의점을 창업한다. 그러나 본사의 무분별한 신규출자와 가맹점 간 경쟁으로 이내 매출은 하락한다. 그렇다고 본사에 매일 또는 매월 송금하는 로얄티(수수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365일 24시간 영업과 적자 경영을 견디지 못해 폐점하겠다고 하면 본사는 거액의 위약금을 제시한다. 여기서 일정한 위약금 산정 방식은 없다. 김 씨의 경우에는, 본사에서 최초 제시한 금액이 1억 원이었으며 김 씨가 강하게 항의하자 CU는 위약금 액수를 조금씩 낮춰 불렀다고 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CU 점주 8000명 가운데 30퍼센트는 잠재적 파산 상태"라고 CU경영주 모임 양진규 회장은 주장했다.
프랜차이즈 전문가인 정종열 가맹거래사는 "강자와 약자가 거래할 때 '계약 해지권'은 약자에게 유리하게 구성돼야 한다"며 "그러나 편의점 가맹점과 본사 간의 계약을 보면, 정반대로 본사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인신 구속적 성격까지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CU, 사망진단서 위조해 언론에 배포
이런 가운데, 김 씨의 사건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것은 CU가 김 씨의 사망 진단서를 위조해 일부 언론에 배포하면서다. 이에 앞서 CU는 김 씨의 유가족에게 사건을 '외부에 누설하지 않겠다'는 확인서 작성을 요구했단 주장도 나온 상태였다.
CU 본사인 BGF리테일은 지난 21일 일부 언론사에 고인이 '지병인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보도자료를 위조된 사망 진단서와 함께 배포했다. 진단서 원본에는 급성 심근경색과 함께 '항히스타민제(중추신경을 억제해 수면을 유도하는 물질) 중독'이 사망원인의 하나로 적혀 있었으나, BGF리테일이 배포한 진단서에는 '항히스타민제 중독' 글귀가 삭제돼 있었다.
이에 대해 BGF 리테일은 "해당 직원 개인의 잘못"이라고 해명했으나, 참여연대 등은 "꼬리 자르기"라고 반박했다. 참여연대와 전국'을'살리기 비상대책협의회 등은 BGF리테일 홍석조 회장과 홍보 책임자들을 사문서위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형법 제231조는 병원에서 발급하는 진단서를 비롯해 사실 증명에 관한 타인의 문서를 위·변조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 진단서 원본과 CU가 위조 후 언론사에 배포한 진단서. 사망 원인에 '항히스타민제 중독'이 삭제돼 있다. ⓒ참여연대 제공 |
홍석조 회장의 진심 어린 사과와 '구체적인' 재발 방치 대책 요구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 씨의 아내와 전편협, CU 경영주모임 등은 △홍석조 회장의 진심 어린 사과 △사망진단서 위조 및 무단 배포 경위에 대한 진상 공개 △위약금 제도 폐지 등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재발방치 대책 마련 △CU편의점주협의와의 단체 교섭 시행을 촉구했다.
앞서 23일 BGF리테일이 발표한 '상생 방안'에 대해서는 "꼼수"라고 이들은 비판했다. BGF리테일은 140억 원대 규모로 상생 협력펀드를 조성하고, 자율 분쟁해결센터를 설치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상생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회견 참가자들은 "상생 방안이 막연하고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빠져 있다"며 "이는 6월 국회에서 논의될 가맹사업법을 개정 저지하기 위해 물타기를 하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BGF 관계자는 이날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진단서 위조 경위를 파악 중이며, 조만간 공식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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