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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계약 CJ, 우리 그냥 죽으란 건가"

CJ대한통운 택배 기사 파업…수수료 삭감과 페널티제에 반발

국내 1위 종합물류기업 CJ대한통운의 수수료 삭감과 페널티(벌칙)제 적용에 반발해 파업을 벌이고 있는 택배 기사 이권직 씨(47). 이 씨는 '파업'이란 것을 난생처음 해본다고 했다. 택배 인생 6년 동안, 매일 오전 7시부터 밤 9시까지 숨 쉴 틈도 없이 일해온 그다.

일이 많은 화요일이면 그가 처리해야 하는 택배 건수는 평균 250개. 식사 시간, 쉬는 시간 없이 3분에 1건씩 운송을 마쳐야 한다. "눈뜨면 일하고, 일 마치면 쓰러져 자고. 그게 내 지난 6년 인생의 전부였다"고 이 씨는 말했다.

19년 차 택배 기사 박성현(가명·45) 씨 사정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적게는 100건에서 200여 건을 처리하며, 박 씨가 한 달에 버는 소득은 200만 원가량. 배송 한 건당 기사에게 떨어지는 수수료가 정해진 만큼, 최대한 많이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일할수록 남는 게 많았다. 먹여 살릴 가족들을 생각하며, 박 씨는 캄캄한 새벽에 집을 나서 녹초가 된 채로 밤늦게 집에 돌아가곤 했다.

파업 4일 만에 전국 1000여 명으로 확산

▲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 600여 명이 8일 경기도 안산 호수공원에서 파업 4일째를 맞아 집회를 열었다. 이날로 파업 4일째를 맞은 가운데, 파업은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하지만 이와 같은 '저임금·고강도' 노동 조건은 CJ대한통운이 수수료 삭감과 페널티제 도입을 들고나오며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택배 기사들의 수수료를 기존 880~930원에서 800원으로 일괄 인하하고, 고객으로부터 불만이 접수되면 정해진 금액을 수수료에서 공제하는 등의 페널티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CJ대한통운 택배 기사들이 예상하는 수익 감소분은 40~70만 원에 달한다.

대학생 자녀 둘을 두고 있는 이용환(가명·54) 씨는 "한 달 130만 원으로는 가족들과 먹고살 수 없다"며 "눈앞이 캄캄하다. 이건 그냥 죽으라는 거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CJ대한통운 택배 기사들은 결국 지난 4일 파업에 돌입했다. 첫날 약 270명이었던 파업 대오는 4일 만에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지역도 당초 인천·부천이 중심이었다가 현재는 광주, 울산, 청주, 부산, 전주 등 전국 규모로 확대됐다.

파업 중인 CJ대한통운 택배 기사 600여 명은 8일 경기도 안산 호수공원에 모여 첫 집회를 열었다. 호수공원 인근 도로에는 '택배 기사 죽이는 CJ'라는 현수막을 내건 택배 차량 수십 대가 끝이 보이지 않도록 길게 늘어서 있었다. 노동조합에 갓 가입한 민정훈(가명·34) 씨는 "뉴스에서나 본 빨간 머리띠가 어색하다"고 말했다.

"CJ에서 택배 기사 시작하면 다 죽는다"

▲ '택배 기사 죽이는 CJ'라는 현수막을 내건 택배 차량들이 안산 호수공원 일대에 길게 늘어서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집회 현장에서 만난 택배 기사들은 CJ대한통운이 도입하려는 페널티제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권직 씨는 "고객으로부터 불친절 항의가 접수되면 건당 1000원을 공제하겠다고 했다"며 "택배 한 건당 3분 안에 처리해야 하는 구조인데, 어떻게 친절한 서비스가 가능하겠나. 친절한 서비스도 적정 환경이 조성돼야 가능한 거 아닌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CJ대한통운이 밝힌 세부 항목별 페널티 내용을 보면, 고객과 사전 협의 없이 물품이 반송되거나 배송될 경우, 건당 1만 원이 공제되기도 한다. 문제는 택배 기사들이 잘못하지 않아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이용환 씨는 "택배를 요청한 고객이 항상 집에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고객 부재 시 경비실이나 인근 마트, 세탁소 등에 물건을 맡기고 고객에게 문자 메시지로 알리는데, 때로는 물건이 다른 곳에 맡겨져 있다는 것을 깜빡한 고객이 임의 반송·배송 항의 접수를 인터넷에서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페널티를 하나도 받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고 이들은 말한다. 8년 경력의 택배 기사 최용훈(가명·54) 씨는 "내부 전산망에 들어가 보니, 페널티가 없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더라"라며 "적게는 300원부터 많게는 1000원까지 대체로 페널티가 있었다"고 했다.

최 씨는 "오랜 기간 CJ에서 일했던 기사들은 'CJ에서 일을 시작하면 다 죽는다'고 하더라"라며 "800원 수수료와 페널티 제도를 이겨낼 자가 없다. 기름값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정도가 아니라 마이너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파업에 참가 중인 택배 기사들은 CJ대한통운 마크가 그려진 조끼를 택배 기사 각자가 2만 원가량의 자비를 들여 구매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리점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2000만 원 상당의 보증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이 돈이 없을 경우 또는 신용이 낮은 경우는 2억 원 상당의 가족 연대 보증을 사측이 요구한다는 호소도 이어졌다. 박성현 씨는 "아내를 연대 보증 서게 한 기사들도 있다"며 "가족 연대 보증은 전근대적인 노예 계약"이라고 지적했다.

박 씨는 "남양유업에서와 같은 을에 대한 갑의 횡포는 이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며 "대기업 CJ는 그 많은 돈을 대체 어디에 쓰려고 하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삭발에 단식까지…"박종태 열사가 보고 있다"

▲ CJ대한통운 비상대책위원회 윤정학 위원장. ⓒ프레시안(최하얀)

이날 집회에서 CJ대한통운 비상대책위원회 윤정학 위원장과 인천 지역 대표 장동진 씨, 그리고 양윤상 씨는 600여 명 동료가 지켜보는 앞에서 삭발을 했다. 또 이날 오후 4시께, 11년 차 택배 기사 김성수(가명·42) 씨가 서울 서소문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홀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김 씨의 아내 박지민(가명·42) 씨는 "남편이 눈에 밟혀서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한 명이라도 더 파업에 동참해 문제가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며 쉬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김윤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서울경기지부장은 "택배 역사 20년에 이런 전국적인 파업은 없었다"라며 "다시는 택배 노동자를 무시할 수 없도록 물류를 멈추자. 세상을 바꾸자"라고 소리 높였다.

김 지부장은 "박종태 열사가 이 파업을 보면 이제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지난 2009년 5월 대한통운의 일방적인 계약 해지에 맞서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지회장을 떠올렸다.(☞관련 기사 보기 :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는 왜 죽어야 했나)

파업 중인 택배 노동자들은 사측이 수수료를 950원으로 인상하고, 페널티 제도를 폐지할 때까지 운전대를 잡지 않을 작정이다. 택배 기사를 시작한 지 5월로 석 달째라는 박진환(33) 씨는 "파업에 참가해 불이익이 생길까봐 두렵지만, 이러나저러나 죽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CJ대한통운 "수입이 낮을 경우 차액 보전할 것"

한편, CJ대한통운은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 "오해를 한 것"이라며 수수료 제도 변경과 페널티제 도입으로 금전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CJ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8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페널티 규정이 없는 (물류)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며 "다만 문제가 되는 금전적 페널티를 규정에는 남기되, 실제로 적용하지는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CJ대한통운의 수수료는 업계 최고 수준"이라며 "4월부터 6월까지 평균 수입이 3월보다 낮을 경우 차액을 전액 보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족 연대 보증에 대해서는 "2억 연대 보증을 들 것인지 2000만 원 보증 보험을 들 것인지는 선택 사항"이라며 "회사로서는 배달 물건을 기사들에게 맡겨놓은 이상 마련돼 있어야 하는 최소한의 자구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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