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재정적자는 절대 악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재정적자는 절대 악인가?

[새움의 '인도, 우리에게 말을 걸다']<3> 재정적자를 명분으로 공기업 민영화에 나선 정부들

(* 이 연재의 원고는 세미나네트워크 새움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 저항운동 세미나의 결과물입니다. 또한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될 "인도의 사회운동들(가제)"의 원고 일부를 수정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신자유주의는 재정적자를 경제 불안정의 주요 원인으로 여깁니다. 신자유주의 이후로 세계 각국에서 재정적자를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 일종의 강박관념처럼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재정정책은 매우 정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재정 지출이나 세입을 늘리거나 줄이는 일은 모두 누구에게는 이익이 되고 누구에게는 부담되는 문제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재정정책은 대체로 전체 국민의 이익보다는 금융자본을 비롯한 지배적 경제집단의 이해를 반영하고 국민들의 기본적 경제권은 무시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재정지출 감축은 주로 정부투자나 복지지출(welfare spending)의 감축에 주력하고 반면에 부유층에 대한 낮은 과세 및 높은 이자율로 혜택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나라들의 재정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이 바로 지금 이런 재정적자 문제로 휘청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여전히 긴축재정을 고집하면서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를 국가부도 직전으로 몰아넣고 복지와 공적 지출을 격감한 탓에 그리스인들이 연일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항의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납니다. 재정적자 감축을 빌미로 신자유주의를 도입했지만 1990년대에 인도의 재정적자는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주요 원인은 정부의 세입적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인도정부는 세입을 늘려 재정균형을 맞출 생각은 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공기업을 매각해 부족한 세입을 보충하려 합니다. 특히 부실공기업도 아닌 '수익성 있는 공기업의 사영화(privatization of profitable public sector corporation)'는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논란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UPA 정부는 2009년 5월 총선에서 공산당 등 좌파 정당들의 지지 없이도 재집권에 성공합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파텔 대통령은 그 해 6월 국회 연설에서 공기업 민영화의 방향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재무부가 뒤를 이어 연방정부 산하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 정책을 발표합니다. 발표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이미 상장된 수익성 있는 공기업 중 의무적으로 주식의 10%를 공개하지 않은 경우 이를 실행해야만 한다. 둘째, 누적 손실이 없고 지난 3년간 연속 순이익을 낸 모든 공기업은 일반 공개를 해야 한다. 공개 방식은 정부 지분의 일부 매각이나 신규 자본의 발행, 두 방식의 혼합 모두 가능하다. 셋째, 공기업 지분 매각을 통해 회수된 자금은 모두 국가투자펀드(NIF)에 편입될 것이다. 특히 2009년 4월부터 2012년 3월까지 매각된 금액은 기획위원회가 선정한 '사회부문 프로그램' 예산을 충당하는 자금으로 사용될 것이다.

또한 UPA 정부는 공기업의 공개비율을 25%까지 의무적으로 늘리고 기업 또는 기관에 일괄 매각하는 전략적 매각 방식 대신 5~10%의 소수지분을 주식시장을 통해 매각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UPA 2기 정부는 이런 방침에 따라 2009년부터 화력발전공사, 광물개발공사, 오일인디아, 수력발전공사, 농촌전기공사 등 대규모 우량 공기업들의 지분을 매각했습니다. 2010년 들어서도 인도철강공사, 힌두스탄구리, 인도석탄공사, 인도망간광공사, 인도송전공사의 지분 매각을 승인했고 인도석유공사(10%)와 석유천연가스공사(5%)의 일부 지분을 매각했습니다. 결국 인도 정부는 재정을 통해 수행해야 할 의무인 사회서비스를 재정 수입의 중요한 기반인 알짜 공기업을 팔아 버리고 그 돈으로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재정 적자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말입니다.

▲ 지난 9월 인도에서 보조금 삭감, 유통시장 개방 등 정부 개혁정책에 항의하는 철도 파업이 있었다. 파업으로 도로가 텅 빈 콜카타시 모습 ⓒAP=뉴시스

이런 발상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도 경영 합리성이란 잣대로 평가하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발상입니다. 공기업의 적자는 민간기업의 적자와는 다른 기준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익이 나지 않아 민간에서 맡으려 하지 않는 사업을 공적 영역이 담당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공기업의 기본적 임무라면 공기업의 적자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게다가 자신들이 주장하는 재정 건전성을 위해서라도 이익이 나는 공기업을 매각해서는 안됩니다. 상대적으로 영업성과가 좋은 양질의 공공부문 자산을 매각하면 결국 정부의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자명합니다.

공기업 지분매각(disinvestment)을 통해 재정적자의 감축을 시도한다는 계획은 국고수입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감소시킨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매각되는 공기업이 지나치게 싼 가격에 팔리기 때문입니다. 매각 국유 자산에 대한 '저평가(undervaluation)'는 신자유주의적 민영화에서 항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패 고리를 통해 공적인 부를 부패한 정치인, 관료, 자본가들이 나눠 먹는 일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일어나는 일입니다.

공기업 매각대금을 복지 정책의 재원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더욱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좋은 일자리가 지극히 부족한 인도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장은 그나마 공기업들입니다. 공기업 민영화는 반드시 구조조정을 수반하고 이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게 되는 노동자들이 쏟아집니다. 이들은 공적 영역의 보조가 없다면 곧 바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없애면서 번 돈으로 다시 이들에게 더 낮은 수준의 생활 대책을 제공한다는 주장은 인도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위해 얼마나 안달인지를 잘 드러내 줍니다.

외환위기 이후에 우리나라의 은행들이 외국의 투기 자본에 헐값으로 매각된 사례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부실도 아니었던 외환은행을 부정한 방법으로 매각하고 투기자본이 엄청난 차익을 챙겨 빠져나가는데도 과세는 물론 사법적 처벌도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 외국자본에 팔린 은행들이 국민 경제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보다 단기 수익에 치중하면서 부동산 담보대출이 급증한 것만 봐도 왜 공적 역할을 하는 기업을 섣불리 민영화해서는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도 국정감사를 동해 우리나라 공기업들의 부채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공기업의 재무상황이 위험 수준으로 국가의 재정 건전성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분석도 쏟아집니다. 예를 들자면 공기업 중에서도 부동산 공기업인 LH와 지자체 산하의 부동산 공기업들, 대표적으로는 서울시의 SH공사의 부채가 과다하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결책은 예외 없이 부채축소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불필요한 사업은 정리하고 당장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보유자산(그 대부분은 토지 형태입니다.)을 매각해서 한 푼이라도 빚을 갚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야당인 민주당 쪽이나 진보를 자처하는 경제학자들에게서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토지나 주택처럼 국민의 삶에 필수적인 재화를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팔아 버리고 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임대 주택이나 값싼 분양 주택을 건설할 수단이 없어집니다. 부동산 시장을 조절할 힘이 약화되는 것도 자명한 일입니다. 한국의 일부 진보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인도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논리와 마찬가지입니다. 공기업이 공적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핵심적인 수단을 팔아버리라는 논리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입니다.

이제는 재정적자라는 개념 자체를 다르게 보아야 할 때입니다. 정부나 공기업의 부채는 맥락에 따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이유로 발생한 것인지에 따라 다르게 평가해야 합니다. 정부나 공기업이 국민을 위해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의무를 위해 지출된 비용은 정당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어야 재정적자라는 획일적 잣대로 공적 영역을 시장에 헐값으로 팔아넘기려는 시도가 발붙이지 못할 것입니다.

*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은 대중들이 정치권력, 학교와 같은 지식 생산 유통의 제도들, 자본, 미디어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힘과 실천으로 지식의 주체가 되어 앎을 획득하고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더 깊은 지식은 사회적 특권의 보장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과 지식을 나누어야 할 의무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새움'은 맑스주의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식들을 좌파적 관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다른 이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주제들을 공부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부 과정에서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맑스주의 전통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배타적으로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 첫째, 새움은 지식, 학력 등의 어떠한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새움의 모든 활동에는 참가비가 없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지식에의 접근을 막는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새움은 특정 정치적 입장을 가지지 않습니다. 어떠한 정치적 입장을 지니는 지에 상관없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만 가지신다면 누구나 새움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새움은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모든 실무가 결정되고 집행됩니다.

새움에서 열리는 세미나, 특강 및 새움의 운영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www.seumnet.com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