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다. 정말 평화로운 학교다.
그런데 살짝 의심이 든다. 혹시 '가짜 평화'는 아닐까.
중학교에서 7년, 고등학교에서 4년을 생활한 조영선 교사가 생각하는 학교는 '평화로운 공간'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과 교사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지만, 어느새 '살아남아야 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누가 진짜 일진인가 - 학교폭력과 학생인권"을 주제로 '교육공동체 벗'과 '알라딘'이 주최한 두 번째 강연에서 그는 "왜 이런 느낌을 받았는지 이야기하려 한다"며 현직 교사 바라본 학교와 그 안에서 신음하고 있는 학생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 현재 그는 서울시교육청 인권교육센터에서 파견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바로 가기:'교육공동체 벗' 온라인 커뮤니티)
▲ 조영선 교사 ⓒ교육공동체 벗 |
'멀쩡한 가정'에서도 폭력 가해자 나올 수 있다
학교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가해자와 피해자부터 구분하고, 교사는 가해학생을 불러 "그 애(피해자) 고통에 대해 생각해봐라", "너는 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배려할 줄 모르니?"라고 훈계한다. 하지만 조 교사는 "'가해자-피해자'라는 이분법은 오히려 학교폭력 문제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고 지적했다. 학교폭력은 때리고 협박하고 맞고 헌납하는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서 새어나온 폭력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자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공감, 배려' 같은 단어는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것)'일 수 있다는 게 조영선 교사의 말이다.
조 교사는 "이제는 단순히 학부모들에게 자식 단속 잘하고, 교육 잘하라고 한다고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되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가 가해학생의 엄마가 인터넷에 익명으로 쓴 글을 재구성한 EBS <지식채널e> "이 글을 읽는 모든 분께"의 마지막 부분에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가 가해학생이라는 사실은) 공감능력이 떨어지지 않아도 가정에 특별한 문제가 없어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학교의 하루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학교에서 내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학교에 들어가는 게 힘들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중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손에 땀이 차오르고 머리는 움츠러드는 느낌이다. 안 걸리도록 귀는 보이게, 마이(교복 겉옷)는 들고…. 상기된 시선들이 날 쳐다본다.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게 고개를 숙이고 내 눈은 멈춰 있다. 두 주먹을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며, 눈은 땅을 계속 주시하며, 마치 경보를 하듯 빨리 지나간다. 19명의 사람들의 눈을 피해 들어오는 순간의 쾌락, 심장은 요동을 치고 피가 너무 빠르게 요동친다. 주먹은 꽉 쥐고 팔자 주름을 새기며 환하게 웃으면서 들어온다. 그때는 아무것도 머리에 없다. 세상을 다 얻은 거 같은 기분이다. 다시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한마디 한다. "야, 내가 걸릴 머리냐? 안 걸려." 긴장을 안 한 척한다. |
평범한 학생이 쓴 '학교에서 긴장되는 순간'이다. 조영선 교사는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매일 겪는다"라고 말했다. 모범생이든 아니든, 노는 아이든 아니든 학교에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학생들은 감시의 대상이 된다.
복장 단속 역시 마찬가지다. 학교는 복장단속을 한다고 잠바 '노스페이스(노스)'를 압수하지만, 노스를 입어야 비로소 당당해지는 학생들의 마음을 잡지는 못한다. 명품 가방을 들어야 집 밖에 나오는 화성인처럼 노스를 입어야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을 만큼 학생들의 마음은 황폐해졌다. 조 교사의 말대로 "이들의 마음은 누가 헤아릴 것인가".
감옥 닮은 학교, 아이 내면에 폭력 심는다
감시와 억압을 받는 상황은 1971년 진행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에서 잘 나타난다. 이 실험은 독일(2001년)과 미국(2010년)에서 <엑스페리먼트>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21명의 참가자들은 동전을 던져 가짜 교도관과 가짜 죄수로 역할을 나눴다. 그 결과 교도관을 맡은 사람들은 갈수록 폭력적이 됐고, 감시받는 죄수들은 긴장을 넘어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다.
조 교사는 "이는 특정 공간이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그래서 학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가 폭력이 많이 일어나는 공간, 즉 감옥의 특성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교도관과 죄수로 단순화될 수는 없지만, 학교가 '자유와 선택'보다는 '감시와 억압'에 의해 구성된 공간이라는 점은 주지할 만하다.
심지어 "네 성적에 잠이 오냐?", "삼십 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 직업이 바뀐다", "대학 가서 미팅 할래? 공장 가서 미싱 할래?", "엄마가 보고 있다" 등 교실에 걸린 '교훈'에도 감시의 눈초리가 번뜩이고 있다.
'금품 갈취'하는 학교…'일진' 보다 못하다
조영선 교사는 <오늘의 교육> 3·4월호 "평화로운 학교는 없다"라는 글에서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품 갈취, 폭행, 심부름에 대해 이야기했다.
먼저, 금품 갈취. "국가안보를 이유로 방위성금도 걷고 주기적으로 폐휴지도 걷는다. IMF가 왔을 땐 금을 모으기도 했고, 겨울이 되면 군군 장병을 위한 성금이나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거둔다. 이렇게 돈을 걷을 때 겉으로는 학생의 동의를 받는 척한다. 하지만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암묵적인 강요와 협박이 뒤따른다."
다음으로 폭행.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 하는 곳이 학교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야단치기 위해 볼을 꼬집거나 머리를 툭툭 치는 신체적인 접촉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이렇다 보니 신체를 가학하는 것이 때로는 재밋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바쁜 선생님들을 대신해 학생들은 수시로 '심부름'을 한다. 아이들이 자신이 당한 '학교폭력'이라며 이야기한 내용들인데, 이쯤되면 학교폭력의 진짜 가해자가 누구인지 헷갈린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학교 그 자체가 '일진'가 다름없다. 아니, 경우에 따라선 '일진'보다 더 끔찍한 폭력을 휘두르는 게 학교와 교사다.
▲ 한 학생이 쓴 "내가 당한 학교폭력"을 표로 정리했다. 조영선 교사는 "학생들은 교사가 휴대 전화를 압수하면, '사용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학교가 학생에게 해 왔던 일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이뤄지면 '학교폭력'"
조 교사는 학생이 쓴 것 중 '금품 갈취' 부분이 제일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글을 쓴 학생은 "(교사가) 한 번도 자기에게 불우이웃을 어떻게 도울 건지 물은 적이 없다"며 "그 집에 가서 청소해 줄래? 말벗이 되어 줄래?"가 아니라, 무조건 "1000원 낼래? 2000원 낼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학생에 따르면 "그래도 일진 형들은 '너 용돈 받았어, 안 받았어? 안 받았으면 1000원이고, 받았으면 2000원이야'라고 말한다"고.
"그동안 학교폭력 논의들을 보면 가해자들의 행동만이 '폭력'으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그들이 한 행동들은 사실 그동안 학교가 학생들에게 '교육' 혹은 '훈육'의 이름으로 해 온 일이다. 현재의 학생 간 폭력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가해 온 폭력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위의 책, 17쪽)
학교와 교사가 자신들에게 한 일을, 그대로 옆자리 친구에게 반복하면 학교는 '학교폭력'이라고 호들갑 떤다. 학교폭력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아이들에게 별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힘에 대한 예의'만 가르치는 학교"
이에 조 교사는 "학교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힘에 대한 예의만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누가 약자인지를 본능적으로 안다. 예컨대 교장은 강자이고, 기간제 여교사는 약자다. 지난 7월에는 고등학생이 기간제 여교사에게 "누나, 사귀자"라며 어깨에 팔을 올리고 목 부근을 감싸는 동영상(제목 "선생님 꼬시기")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했다. '힘에 대한 예의'만 배운 아이들이 저지른 폭력이다.
▲ 조영선 교사가 직접 만든 "학교 안 힘의 피라미드". 여기서 '관리자'는 교장과 교감 등을 말한다. |
"'관계'에 의한 폭력, 신고하기 어렵다"
학교폭력은 사건이 터지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눈앞에 드러났을 때 비로소 문제가 된다.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학교에 지금 어떤 폭력이 있는지 전혀 모른다. 학생들의 '신고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실제로 요즘 학교폭력을 둘러싸고 나오는 대책 가운데 상당수는 이런 '신고정신'을 키우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폭력이 터졌다고 해서 아이들이 '이거 신고해야지'라고 생각할까?" 조영선 교사의 물음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닌 친구가 날 때렸다고 갑자기 신고할 수 있을까? 그는 "남편이, 부모가 날 때렸다고 갑자기 신고할 수 없"는 것 같은 경우라고 했다. 학교폭력은 대부분은 '관계'에 의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논다'는 아이들이 소외된 아이와 놀아주면 실제로 그 아이는 약간의 안정감을 느낀다. 서로 뭘 사주기도 하면서 둘 사이에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다 '나 오늘 돈이 없다. 네가 사줘'라는 말에 아이는 '우리는 친구라는데 같이 놀기도 하는데 안 사주면 쪼잔해지나?' 고민하게 되고, 그러다 '안 사줘?'라고 협박하면 무섭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거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지만 일이 진행되는 방식은 굉장히 고요하다. 셔틀(집단 폭력)을 하는 아이들이 소리칠 일이 없다. '야, 사줘. 나 돈 없다'라는 몇 마디에 이미 '관계'가 규정됐기 때문이다."
"폭력을 '참으라'고 가르쳤던 학교, 학교폭력이 감춰지는 이유"
조 교사는 "권력관계가 공고하면 공고할수록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화로운 학교'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폭력이 일어난 초기에 '내가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저항해야 한다'는 감각이 있어야 하지만, 학교의 가르침은 "네 잘못이야. 네가 감당해"라고 한다. 결국 "센 폭력이 다가와도 참아야 하는 건지, 이야기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 분간하기 어려운, 폭력에 아주 둔감해진 상태가 된다".
▲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교실 자리 배치도". 교탁을 중심으로 앞에는 '스터디 그룹'이, 양 옆에는 '중상위권 평범파'가 자리한다. 그리고 벌점을 받은 '일진'들은 제일 뒷자리에 포진해 있다. 조영선 교사는 "우리는 교실을 균등하고 일반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많은 힘들이 왔다갔다 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학교를 치료하자는 말은 왜 안 할까?"
"개인에 대한 치료도 중요하지만, 그런 문제를 만들고 있는 가정과 학교도 치료가 필요하다. 학교폭력 가해자나 피해자를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왜 학교를 치료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는 걸까."
학교폭력 문제가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인식 없이 해결은 불가능하다. 폭력을 일으킨 가해학생을 학교에서 솎아내도 학교는 이미 평화로운 곳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조영선 교사가 '학교'라는 공간의 해결을 주장하는 이유이다.
실제 학생들은 공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조 교사는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버스'를 통해 공간의 변화에 따른 아이들의 변화를 직접 체험했다. 이곳에서는 주로 '새탈(새벽 탈출)'한 아이들을 돌본다.
번화가에 있는 나와 버스에 있는 나는 다른 것 같아요. 번화가에서는 사람들한테 무시당하지 않고 시비 붙지 않으려면 센 척해야 해요. 가오도 좀 잡고, 담배도 피우고, 침도 뱉고, 욕도 좀 해야 하거든요. 근데 버스에서는 많이 자제하죠. 그냥,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근데 전요, 버스에서의 제 모습이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버스가 더 기다려지는 것 같아요. - 새탈 청소년이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버스' 방명록에 남긴 글 |
공간에 따라 행동 달라지는 아이들, 학교는 어떤 공간일까?
조 교사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에 따라 아이들은 달라진다"며 "교사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센 척하고, 거친 폭력을 써야 하는 공간과 그런 식으로 자신을 방어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있는데, 도대체 학교라는 공간은 학생들에게 어떤 공간인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금처럼 교사가 억압적인 얼굴을 유지할 때 지금의 학교에서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교사들은 매년 3월 2일 입법을 한다. 지각 3000원, 청소 안 하고 도망가면 일주일 청소 등과 같은 규칙을 만들어 입법한다. 그리고 꼭 3월 2일 날 "동의했지?"라고 물어야 한다. 3월 둘째 주가 되면 위반자가 하나둘 생긴다. 입법한 사안에 따라 사법을 집행해야 한다. 경찰 출동해서 위반자를 잡아내고, 벌을 준다. 그리고 중간 중간 집안 내력도 조사하고, 성적도 들먹이며 행정을 한다. 삼권분립이 안 된 절대왕정, 절대권력이다."
교사를 괴물로 만드는 학교
학교는 학생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권위'를 세운다. 교사와 학생 모두 센 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 학교. 조 교사가 "나도 '괴물'이 될까 두렵다"고 말한 이유이다.
"반복되는 시험과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무가치함을 확인시키는 교육,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에겐 스스로를 해하거나 남을 해하는 것 외에 인간다움을 유지할 최소한의 안전망이 없는 사회, 그런 학교와 사회를 견디다 못해 일어난 단 한 번의 실수도 삶 전체를 송두리째 나락으로 빠져들게 하는 가혹한 시스템(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 등). 이런 시스템에 순응하기만을 바라는 가정, 학교 속에서 학생들은 이미 가지고 태어났던 인간다움마저 잃어버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괴물을 때려잡는다고 교사인 나도 괴물이 될까 두렵다."
"멍청한 제겐 한국교육에서의 영원한 '자퇴'가 꿈" 조영선 교사는 "학교에서 좀 노는 아이들이나 대학에 가기 어려운 고등학생 대부분이 '졸업하면 군대에 가겠다'고 대답한다"고 말했다. 군대가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못해'라고 했던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공부를 좀 하는 아이들도 자신의 미래를 설계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3학년 학기 초, 1등부터 꼴등까지 아이들은 잠깐 공부를 한다. 3월 모의고사 보고 나면, 2학년 때 조금 공부했던 아이들은 내신에 희망을 걸고 4월까지 공부를 한다. 그렇게 반 일부가 중간고사 대비를 한다. 하지만 이후 아이들의 인생은 확연히 갈린다. 수시입학 공고와 함께 대입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아이들은 이미 같은 인생이 아니다. 아이들끼리도 "잰 공부하는 애잖아, 내버려둬"라고 한다. '대학'이라는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소수 아이들 외에 다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언어 3, 수리 4, 외국어 4, 탐구 5' 정도의 내신 4.25등급인 한 아이도 "이 모든 것이 제 잘못이겠죠?"라며 자신을 탓한다. 그 아이는 "멍청한 제겐 한국교육에서의 영원한 '자퇴'가 꿈"이라고 말한다. '공부 열심히 해봤자 별 볼 일 없다'는 사실 아는 아이들 중학교 1학년만 돼도 아이들은 "나는 우수? 보통? 미달? 전국 2만 등?"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내가 전국 몇 등인지' 끊임없이 상기하는 현실. 그의 말대로 "이런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오면, 공부해서 뭐가 되겠다는 바람이 없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또한 아이들은 이미 "자기 주변에서부터 '학벌 신화'가 깨진 것"을 보고 자란다. '대학 합격이 모든 걸 보상해줄 테니, 지금은 무조건 참으라'라는 논리는 아이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한 학생의 말이다. "우리 누나 공부 잘했잖아요. 그런데 대학 졸업하고 중소기업에서 160만 원 받아요. 저요, 샘. 대형마트에서 하루도 안 쉬고 방학 내내 뛰면 130만 원 받거든요. 8등급인 제가 지금 공부한다고 2등급 되겠어요? 20~30만 원 더 벌자고 지금 공부해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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