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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그 대학원생은 어쩌다 '노예'가 됐을까?

[대학교수는 어쩌다 봉건영주가 됐나·①] "학문 사라진 학계, 인맥관리만 남았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원 관련 뉴스가 종종 눈에 띈다.

유명인의 학위 논문 표절 시비가 잇따른다. 또 최근 서울대 인권센터가 발표한 대학원생 인권 문제도 있다. 한마디로 '노예 대학원생'이다.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면, 한국 대학은 왜 노벨상 탈만한 연구를 하지 못하느냐는 언론의 질타가 이어진다. 박사 학위 소지자가 일자리를 얻지 못해서 예전에는 고졸이 하던 일을 하려하는데, 그마저도 경쟁률이 너무 높다는 이야기도 흔한 기삿거리다.

맥락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대학원 교육'이 핵심이다. 학위 논문을 표절해도 걸러내지 못하는 교수들. 학문이 아니라 간판을 얻기 위해, 또는 도피처를 찾아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이들. 봉건적인 교수-대학원생 관계. 창의적인 문제제기가 불가능한 문화. 대학원생들의 불투명한 미래. 이런 문제들이 쌓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실 모두 익숙한 문제들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보도된 내용들이다. 그러나 바뀌는 건 없다. 이유가 뭘까. <프레시안>이 주목한 건 이 가운데 봉건적인 교수-대학원생 관계다. 이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다른 문제 역시 풀 수 없다고 봤다. 봉건적인 문화에선 문제가 생겨도 그저 곪아갈 뿐이다. 창의적인 연구가 어려운 것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학문이 아닌 다른 목적이 대학원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그렇다면, 대학원의 봉건적인 문화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 문제를 차근차근 짚어보는 짧은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학부생 강의계획서, 학부 갓 졸업한 대학원생이 만든다"

한 사립대 영문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최다정(가명·여) 씨는 지난 학기 학부생들에게 가르칠 교재를 선정하느라 애를 먹었다. 교수가 "교재를 선정하고 강의계획서를 짜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해당 수업 수강생들은 학부 과정을 갓 마친 최 씨가 짠 강의계획서대로 수업을 받았다. 그 학기 학부생들의 등록금은 약 400만 원이었다.

최 씨는 "연휴에도 교수가 부르면 나가고 교수가 이사 가면 무조건 이삿짐을 옮겨야 한다. 이런 일은 대학원생에게 일상이라 딱히 큰일이랍시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며 "그렇지만 교수들이 이렇게 수업하는 걸 보면 정말 한심하다"고 털어놨다.

교수가 지정한 책을 자비로 복사하고 제본해 수업교재로 만들어주고 자신의 원서까지 요구하는 대로 빌려줬지만 돌려받지 못했다. 이런 최 씨를 보며 최 씨의 어머니는 "대학원 선배가 직접 뜨개질을 해서 교수에게 카디건을 짜줬더니 '카라에 밍크 털 붙여와'라고 하는 걸 봤었다. 그게 1980년대 일인데 어떻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으냐"고 말했다.

최 씨는 "1990년대부터 이런 기사가 나왔다던데 대체 바뀌긴 하는 거냐"며 "대학원생에겐 신(神)이나 다름없는 교수들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권력관계를 깨자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잊을만하면 기사로 뜨는 '노예 대학원생'

'서울대 대학원생 인권침해 심각', '교수 집 개밥 주는 서울대 대학원생', '교수 애완견 밥 챙기고, 수백만 원 상납까지…'. 지난 10일 서울대 인권센터가 대학원생들이 교수의 강요나 과다한 업무 요구로 학습권과 노동권을 침해받고 있다고 발표한 이후 이어진 기사들이다.

이틀 후인 지난 12일 서울대 변창구 교육부총장이 교수들에게 메일을 보내 "어려운 여건에서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는 교수들에게 심려를 끼치게 됐다"며 인권센터의 발표에 대해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물론 대학원생에 대한 사과나 개선책은 없었다.

한편 이런 기사도 있다. '이공계 대학원생 81%…연구비 회계비리 있다', '고대 대학원생 10명 중 6명 연구비 한 번도 구경 못해', '대리기사 노릇까지… 온종일 교수님 몸종'. 서울대 대학원 사태 이후 이어진 후속보도가 아니다. 각각 2002년, 2004년, 2010년의 기사다.

'나, 대학원에서 이런 일까지 해봤다' 식의 기사가 나온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자극적인 기사로 소비될 뿐 변한 건 없다. 교수는 권한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고 을인 대학원생은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서울대 교수씩이나 돼서 설마 저럴까 싶은 이야기 쏟아질 것"

서울대 인권센터 발표 이후 서울대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어떤 반향이 일어났는지 서울대 대학원생 박진형(가명·남) 씨에게 물었다. 대답은 무덤덤했다. "그걸 못 견디는 사람은 벌써 나갔고 운이 좋아 좋은 교수를 만난 사람들은 남 일이라고 무심하다. 종처럼 사는 사람들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 씨는 "교수가 인권센터에 전화를 걸어 자기 제자가 설문에 응했느냐고 묻는 판에 무슨 반향이 있겠느냐"고 되물으며 "완전히 익명성을 보장하고 대학원생 전원을 상대로 조사해보라. 서울대 교수씩이나 돼서 설마 저럴까 싶은 이야기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실 (위 사진은 본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한국 대학원의 상명하복식 문화…"외국인은 적응 못 해"

한 국립대 공대 대학원생인 김나현(가명·여) 씨의 사례를 보면 대학원 내에서 교수와 학생 간 의사소통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엿볼 수 있다. 김 씨의 지도교수는 학생들이 "우리 교수님 정도면 좋은 교수님"이라고 말하는 교수다.

김 씨는 "(우리 교수님은) 진짜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씨의 실험실에 있던 미국인 학생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교수의 말에 무조건 'OK'해야 하는 문화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명령을 전달받아 그대로 실행하기보다는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을 내놓고 이에 대한 교수의 의견을 듣고 싶어했다. 더 나아가 교수와 자신의 의견이 다를 때는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 학생은 한국 대학원의 상명하복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기 도중에 귀국했다.

김 씨는 "공대 대학원에서 뛰쳐나가는 건 종종 있는 일인데 자존심이 세거나 자기 확신이 매우 강한 사람이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며 "한국에서는 교수가 갑이니까 교수가 이야기하면 (학생이) 맞춰가는 게 정상인데…소위 '미국식 문화'를 체득한 사람은 (교수에 맞춰가기를)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교수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묻자 김 씨는 "교수와 틀어지면 다 망한다"고 답했다. 김 씨는 "졸업을 못할 수도 있고 좋은 프로젝트는 일부러 안 시키니까"라고 말했다.

교수가 '저 애는 문제가 있다' 한마디 하면 학계에서 매장

이렇듯 대학원생이 교수와 동등한 관계에서 학문에 대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동애 대학교육정상화투쟁본부 본부장은 교수와 대학원생 간의 갑을 관계가 "강단권력"에서 생겨났다고 말했다.

흔히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를 회사의 상사와 부하 관계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김 본부장은 그보다 더하다고 했다. 그는 "회사의 경우엔 회사를 옮기면 되지만 학회는 일종의 교육시장이자 교수시장"이라며 "학회에 가서 교수가 '저 애는 문제가 있다'고 한마디 하면 거기서 끝난다"고 단언했다.

"인간관계 관리 잘하는 사람만 살아남는 대학원"

이어 김 본부장은 "공부하고 싶은 사람, 가르치고 싶어 하는 사람, 취업이 안 돼서 잠시 머무는 사람 등이 모두 대학원으로 모이게 됐다"며 "이 과정에서 대학이 상업화·기업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교육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에 대한 고민 없이 학위를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김 본부장은 "학생이 많아지는데 정규직 교수를 잘 뽑지 않으니 대학원 수업의 질도 덩달아 낮아진다"며 "이렇듯 기본적인 (학문의) 원칙이 사라지니까 관계만 남아 그 관계관리를 잘하는 사람만 살아남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 대학교수는 어쩌다 봉건영주가 됐나

<1> 그 대학원생은 어쩌다 '노예'가 됐을까?
<2> 등록금 갈취하는 교수님…신고하라고?
<3> 대신 몰매맞은 제자에게 "이 바닥 생리 모르나?"
- 대학의 '교육불가능'

"학부생 인질 잡힌 대학원생 등록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가난할수록 공부할 수 없는
'스펙 괴물'이 된 대학생의 시한부 인생
"접대 자리엔 인문학 전공자 노래 한 곡이 효과적?"

대학이 악마와 거래한 이후, 나는 내몰렸다
누가 대학생과 대학을 욕하는가
- '강매' 당한 학사모, 대학은 죽었다

☞<1>"좋은 대학 간 것도 아닌데…'불효자'는 웁니다"
☞<2>"교수 딸 문제지 정리하는 대학원생, 이유인즉슨…"
☞<3>"때 묻은 토슈즈, 무용학도들은 왜 '108 계단'에 올랐나?"
☞<4>"합격 하고 펑펑 울었다. 500만 원이 없어서…"
☞<5>"스펙 쌓는 동아리가 붐비는 '진짜 이유' 캐보니…"

☞<6>"대학은 '썩은 정글', 마음 붙일 곳은 없다"
☞<7>"서울대 총장실이 별 거야?"


- '죽은 대학'에서 사는 법

☞(上)"2차 나가냐?" 추근거림은 참아냈지만…

☞(下)"1000만 원짜리 사시 과외…우리는 영원한 '고3'"

- '대학 안 가도 당당한 사회'

"대학 졸업장 '강매'하는 나라, 행복하십니까?"
"'기름밥' 잘 사는 꼴 못보는 그들, '룸살롱 여대생'엔…"
"교수 월급이 청소부보다 많아야 할 이유, 과연 있나?"
"최저임금 인상이 산업경쟁력 높인다"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좌파'보다 국익에 무관심한 그들, '진짜 우파' 맞나?"

- '직업과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이 적은 사회'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당신들을 공부시켰다"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 임금보다 더 많은 나라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도 '무상복지'가 필요한 이유

- 경쟁보다 효율적인 것? 바로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 등록금 해결? 사학 개혁 없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반값 등록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안 되려면…"
"썩은 내 풀풀 사립대학, 반값 등록금은 휴지조각 될 것"
"사학법 개정 반대한 박근혜, 등록금 해결 말할 자격 있나"


- '반값 등록금' 바라보는 여러 시각

"대학 졸업장 '강매'하는 나라, 행복하십니까?"
"대학 진학률이 높아서 문제?…'최저임금'부터 올리자"
"너, 대학 안 나와서 뭐 먹고 살래?"
"서울대가 등록금 2000만 원 받는다고 정원 못 채울까"

- '대학주식회사'의 그늘

"'시장의 포로' 대학 캠퍼스…술집 빼고 다들어왔다"
등록금 400만원, 대학교육 '원가'는 도대체 얼마?
"한국의 대학, 이제 시장의 포로가 됐다"
"비참해진 대학, 뭘 가르칠지 목표도 방향도 잃었다"
자살 또 자살, '공짜' 없는 카이스트는 지금…

'카이스트의 히딩크', 서남표는 왜 실패했나?
천재를 범재로 만드는 서남표식 학점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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