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깬 정부에 대한 원성이 높다. 대선후보들도 한마디씩 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정부의 무상보육 폐기 결정에 대해 "지난 총선에서 약속한 대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0~5세 유아에 대한 전면 무상보육을 약속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이래서 정치가 불신을 받고 또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국민들이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육 문제에 가장 민감한 것은 30대 여성들이다. 지난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이들이 유모차를 끌고 거리로 나섰던 것을 기억한다면, 대선 후보들 역시 보육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전직 보육교사 출신으로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 정민아 씨, 19개월 된 딸을 어린이집에 맡긴 채 일터로 나가는 워킹맘 박하연 씨, 8개월 된 딸과 연애 중인 워킹파파 A 기자, 그리고 최근 조카 바보가 된 B 기자가 지난 10일 경기도 용인의 한 카페에서 '육아 수다'를 떨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산모의 날'이었다.
출산 전부터 걱정해야 하는 산후조리원 비용과 출산 후 천차만별 영유아예방접종비, 그리고 늘 조건이 먼저인 보육정책과 어린이집에 대한 불안까지. 밤 10시 넘게 계속된 이들의 이야기를 '육아 수다' 上·下 두 편으로 정리했다. <편집자>
- 응답하라, 30대 엄마 ☞"남편 월급 오르는 게 반갑지 않아요" (上) |
참가자 - 정민아(가명, 33세, 경기도 용인) : 딸 둘(4세, 13개월)을 키우는 육아맘 - 박하연(가명, 33세, 경기도 안산) : 19개월 된 딸을 키우는 워킹맘 - 프레시안 A(39세, 서울시 강서구) : 8개월 된 딸을 키우는 워킹파파 - 프레시안 B(36세, 서울시 서초구) : 15개월 된 조카가 있는 미혼녀 |
"'예방접종비 전액 국비 부담'한다던 공약, 어디로 갔나"
프레시안 A : '영유아 필수예방접종 전액 국비 부담'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상 정권 내내 잠자고 있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 부모들이 부담해야 하는 예방접종비만 해도 수십만 원이다. 이 이야기를 좀 해보자.
정민아 : 둘째 아이가 돌이 막 지났다. 지금 '돌 필수'라고 불리는 예방접종 중 두 개는 맞았는데, 앞으로 더 맞아야 한다. A형 간염, 일본뇌염 등 숫자가 너무 많아 다 기억하지도 못한다.
박하연 : 병원에서 나눠주는 '아기 수첩'에 선택사항인 예방접종까지 반드시 맞아야 하는 일인 것처럼 날짜를 쓰게 되어 있다. 엄마들은 예방접종을 한 번 할 때마다 숙제하듯 수첩에 도장을 받는다.
그러나 뭔지는 잘 모르고 맞는다. 2,3회 맞아야 하는 로타바이러스 예방접종의 경우, 간호사가 한 번에 12만 원짜리와 15만 원짜리 중 선택하라고 했다. 예방접종비만 30~40만 원 이상 드는 거다. 그래서 "두 가지 중 뭐가 좋은가요?" 하고 물었더니 간호사가 "똑같아요. 그런데 이거 많이 하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선택 3종 세트-뇌수막염, 로타바이러스, 폐구균' 중 뇌수막염은 2013년부터 필수예방접종에 포함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편집자)
"필수예방접종 비용, 서울 강남구는 전액 무료 은평구는 24만8000원"
정민아 :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맞는 것으로 하다 보면, 결국은 비싼 것으로 맞게 된다. 부모 입장에서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필수예방접종만 하자니 불안하다. 병원마다 말이 제각각이어서 비싸도 병원에서 권하는 예방접종을 다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든다. 내 아이 아플 수도 있다는데 안 할 순 없지 않나.
프레시안 A : 사실 효과는 똑같다고 한다. 실제 '필수예방접종의 전액 무료화' 목소리가 과거보다는 커졌다. 문제는 지자체에 위임해 놓은 예산인데, 예산 확보를 더 이상 지자체에만 맡길 일은 아닌 것 같다.
▲ 질병관리본부의 예방접종도우미(nip.cdc.go.kr)를 이용하면 아이 출생일에 따른 접종 일정을 알 수 있다. |
프레시안 B : 지난해 서울YMCA 조사 결과, 생후 12개월까지 민간 병원에서 8종의 필수예방접종 시 강남구 주민은 전액 무료지만, 은평구 주민의 본인 부담금은 24만 8000원이다. 지자체별 지원 예산이 다르다 보니, 발생하는 일이다.
"아이가 금요일 밤부터 열이 나면…"
박하연 : 아이를 볼 때 제일 어려운 게 아이가 금요일 밤부터 열이 날 때다. 얼마 전에 아이가 수족구병을 앓았는데, 이 병은 겉으로 보이기까지 2~3일이 걸린다. 그래서 월요일이 되어서나 수족구병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말 내 아이는 열이 40도가 넘게 오르며 앓았는데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 집에서 해열제만 먹였다. 수족구병은 목으로 아무것도 넘길 수 없다. 아이가 삼일을 꼬박 못 자고, 못 먹고…. 남편이랑 셋이서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프레시안 A : 아이가 있는 집은 밤중이나 주말에 종합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이 교통사고 당한 위급환자를 보고 놀랄 수도 있고, 또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이기 때문에 감염 위험에 노출되기에 십상이어서 부모 입장에서 꺼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정민아 : 다행히 우리 동네는 병원이 오전, 오후로 나눠서 365일 거의 다 문을 연다. 그리고 동네 엄마들끼리 하는 온라인 카페가 있어서 "일요일 날 어느 병원 문 여나요?"라고 물으면, 바로 답이 올라온다.
박하연 : 같은 경기도인데도 용인이 더 살기 좋은 동네 같다.
"반가운 '소아 전용 응급실'…소아과도 주말에 번갈아 문 열었으면"
프레시안 A : 복지부가 2010년부터 하고 있는 '소아 전용 응급실' 설치 사업도 좋지만, 비교적 큰 예산이 필요한 일이다. 소아과도 약국처럼 심야나 주말에 돌아가면서 문을 연다든지, 이미 지역마다 있는 보건소를 강화하는 것 등이 우선 쓸 수 있는 대책이 아닐까 싶다. 사실 보건소의 중요성을 잘 몰랐는데, 아내가 임신하면서 새삼 눈 뜨게 됐다. 철분제도 공짜로 주고.
▲ 어린이집 아이들. 위의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
정민아 :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주변 엄마들에게 "아이 키우는데 뭐가 제일 문제인 것 같나?"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부분이 "믿고 맡길 만한 어린이집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엄마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어린이집이 적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아무 곳에나 맡길 수도 없지만 맡기면 일단 믿어야 하는데, 괜찮은 시설을 갖춘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MB정부, 임기 내내 새로 만든 국공립어린이집은 70곳뿐"
프레시안 A : 요즘은 어린이집 들어가려고 임신했을 때부터 미리 지원신청서를 써 놓고 한다던데….
박하연 : 결혼하면 먼저 동네 어린이집을 찾아 대기자 명단에 이름부터 올려놔야 한다. 적어도 2년 전에….
정민아 : 그런 경우가 많다. 아이가 생기지도 않았는데 일단 어린이집 대기부터 시키는 것이다. 가정 어린이집에 다니더라도 5세가 되면 아이를 시립 어린이집 같은 큰 곳으로 옮겨야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 큰 아이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놨다. 사실 작년에 떨어졌으니, 재수인 거다.(웃음)
박하연 : (어깨를 툭 치며) 이런, 적어도 2년 전에는 이름을 올려놨어야지.
정민아 : 아, 1년 전에 올려놔서 떨어진 건가?(일동 웃음) 어린이집 대기자 명단 순위에서도 점수가 매겨진다. 맞벌이, 다자녀 등이 우선순위인데, 우리는 맞벌이도 아니고 다자녀도 아니었기 때문에 순위에서 밀린 것이다. 올해부터는 다자녀 기준이 세 명에서 두 명으로 줄어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졌다. 어휴….
박하연 : 그래 봤자 2순위? 주택도 아니고, 참….
프레시안 B : 이명박 정부 들어 늘어난 국공립 어린이집은 70개뿐이라고 한다. 정부가 애초 내세웠던 약속만 지켰어도 상황이 지금보다는 나을 텐데…. 늘 나오는 이야기지만, 공약 자체 못지 않게 공약을 지키겠다는 의지 역시 중요한 것 같다. (2009년 39개, 2010년 10개, 2011년 21개가 늘었다. 2119개소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짓겠다며 '아이사랑플랜'을 발표했지만, 목표치 대비 3.3%를 달성하는데 그쳤다. 국가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아 국공립 어린이집 수준의 안정적인 운영과 품질 관리하는 '공공형 어린이집'도 2012년 4월 현재 전체의 2.4%인 600여 곳에 불과하다.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자 문제 역시 답보상태이다. 현재 서울시 국공립 어린이집 정원은 5만 6253명이지만 대기자수는 10만 18명으로 정원대비 181%이며, 경기도는 정원대비 대기자수 비율이 168%에 달해 심각한 수준이다.-편집자)
"어린이집 때문에 이사 못 가"
박하연 : 요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지 않는 아이들 없다. 어린이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의무교육 수준인데, 초등학교에 비해 수도 적고 시설도 열악하다.
지금 우리 아이가 다니는 곳은 영유아부터 7세까지 다닐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어린이집을 구하기 정말 힘들다. 남편도 그렇고 둘 다 서울로 출근하기 때문에 집을 좁혀서라도 이사를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어린이집 때문에 못 가겠더라.
서울에 사는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후 6시 30분이면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간만 되면 교실 불을 모두 끈 채 아이와 교사 한 명만 덩그러니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너무 안타깝다. 서울에서 오후 6시에 퇴근해도 차가 막히면 6시 30분까지 어떻게 아이를 데리러 가나. 매일 다른 아이들이 떠나간 텅 빈 어린이집에 아이가 혼자 있을 생각을 하면 정말 이사를 못 가겠다.
▲ 소득수준에 따라 가,나,다,라형으로 나뉜다. ⓒ아이돌봄지원사업 홈페이지 |
정민아 : 엄마들이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하는 이유는 추가비용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또 아이를 12시간까지 맡아주는 종일반도 있어 워킹맘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민간 어린이집은 부모 상황에 맞춰 시간을 연장하는 곳이 드물다.
박하연 : 그래서 대부분의 워킹맘들이 여성가족부에서 하는 '아이돌보미서비스'를 이용한다. 자기가 돈을 지급하고, 불러서 아이를 돌보게 하는…. 그런데 이마저도 여유가 있는 엄마들이나 가능하지, 내가 받는 월급으로는 이 서비스마저 부담스럽다.
정민아 : 그렇죠. 그래서 지금 제가 이렇게(주부가) 된 거예요. 그런 서비스를 이용할 거면 차라리 내가 내 아이 키운다, 그 비용이 그 비용인데 라는 생각으로….
"우리집 가난하다는 이야기를 왜 아기 때부터 해야 하나"
프레시안 B : 정부의 무상보육 지원이 2013년부터는 소득 하위 70% 이하에게만 돌아간다. 따라서 소득 상위 30% 이상인 사람은 무조건 본인 부담금이 발생하게 됐다. (0~2세까지의 아이 137만 명의 30%인 41만 명이 정부 지원에서 제외된다. 0~2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경우 소득 상위 30%에 해당하는 맞벌이 부부는 종일제 보육 기준으로 10만~20만 원, 전업주부는 반일제 보육 기준으로 10만~20만 원의 자기 부담금이 발생한다. -편집자)
박하연 : 내년 재산 소득 신고할 때가 되면 온갖 서류를 제출하며 '소득 하위 70%이니 무상보육 해 달라'라고 빌게 될 것 같다. 얼마나 구차한가. 이런 것 안 했으면 좋겠다. 엄마들이 우리 집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왜 영유아 때부터 해야 하나. 무상급식과 같은 경우다. 부잣집도 무상보육 해주고, 대신 다른 곳에서 세금을 더 걷으면 되는 일 아닌가.
"0~2세 무상보육, 꼼수일 줄 알았다"
프레시안 A : 반면 3~4세 아동은 내년부터 5세 아동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누리과정에 포함되므로 시설보육료가 100% 지원된다. 일부에서는 이번에 정부가 0~2세 무상보육을 포기한 것은 누리과정에 필요한 재원 마련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민아 : 또래문화가 형성되는 3~4세에는 어린이집을 다닐 수밖에 없다. 실제 0~2세는 엄마와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결국 정부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인원이 제일 적은 0~2세를 우선 지원해 '생색내기'를 한 것이다. 실제로 엄마들 온라인 카페에서는 '0~2세 무상보육 지원' 얘기가 나오자마자 '꼼수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박하연 : 기본적으로 정부 정책에 신뢰가 안 간다. '이것 하나 만큼은 정부가 책임진다'와 같은 확실한 정책이 단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데, 연봉은 얼마 안 오르고, 엄마들 입장에서는 불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줬다 뺐는 것은 복지가 아니다. <중앙일보>도 오죽하면 바뀐 보육정책에 대해 '무상보육 U턴'이라는 말을 썼겠는가.(9월 26일 자 <중앙일보> "무상보육 U턴 하루 만에…현 정부 vs 차기 정부 충돌" -편집자) 지금까지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면서도 '돈을 번다'는 생각이었는데, 정책이 바뀌는 내년에는 '계속 일을 하는 게 맞는 건지' 갈등하게 될 것 같다.
"보육교사, 앉아서 밥 먹을 틈조차 없다"
프레시안 A : 육아 부담이 여성의 출산과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중요 요인인데, 정부는 여전히 단순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보육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린이집 시설 확충도 중요하지만, 어린이집 보육교사에 대한 처우도 중요하다.
정민아 : 맞다. 영유아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엄마들이 교사를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문직이 아니라, 그냥 애 봐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사 스스로는 전문직이라고 자부심을 갖고 싶지만, 주변에서 대우를 안 해주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못하는 부분이 있다.
일단 일하는 것에 비해 월급이 너무 적다. 보육교사에게는 휴식이라는 게 없다. 보육교사로 일하면서 밥 먹을 때 무릎을 꿇은 채 먹었다. 아이들이 부르면 바로 가야 하기 때문에 밥을 의자에 앉아서 먹어 본 적이 거의 없다. 또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아이가 있으면 가서 먹여줘야 하기 때문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알 수 없다.
"경력 10년 보육교사, 130만 원 받고 일한다"
박하연 : 엄마들도 아이 셋이면 정신을 못 차리는데, 내 아이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많게는 열 명까지도 본다. 동시에 아이들을 적절하게 돌본다는 것도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다.
프레시안 B : 지난 2월 말 민간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보육료 현실화와 추가 근무 수당 등을 요구하며 복지부 앞에서 시위했었다. (2010년을 기준으로 국공립 어린이집 월급은 평균 126만 1000원이다. 가정형 어린이집은 100만 원 선이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9.5시간이지만 실제 일하는 시간은 12시간에 가깝다. -편집자)
정민아 : 대학 4년을 다니고 1급 자격증을 가진 나도 다시 보육교사 하면 100만 원? 잘 받아야 120만 원일 것이다. 같이 일하던 교사가 경력이 10년 이상인 10호봉인데, 최근 130만 원을 받고 가정형 어린이집에 들어갔다. 이 언니의 경우도 전문직으로의 사명감보다는 그냥 집에 있기는 뭐하니까 어린이집에 일자리를 다시 잡은 것이다.
"육아휴직을 쓸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안 뽑겠다는 사장"
박하연 : 전에 다니던 회사는 50여 명 규모였는데,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니 사장이 "지금껏 육아휴직 1년까지 쓰는 사람 없었다"라며 설득을 했다. 그래서 "법적으로 보장된 것 아니냐"라고 했더니, 사장이 너무 당당하게 "난 법은 모른다"라고 하더라.(일동 웃음) 그래도 저는 끝까지 우겨서 '쉬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마지막에는 사장이 "앞으로 육아휴직을 쓸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채용을 거부하겠다. 기업에 혜택도 없고, 사장인 내 입장에서는 너무 불합리하다. 왜 너의 입장만 생각하느냐"라고 말했다. 결국 육아휴직을 다 채우지 못하고 출근했다. 그동안 사장은 대체 인력을 뽑지 않고 버텼고, 다른 직원들은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그러다 보니 출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이게 현실이다. 나라에서는 육아휴직을 보내라고 하지만, 기업에서는 그에 따른 이득이 없다. 윤리적으로 좋은 회사? 착한 사장? 아니, 멍청한 사장인가?(일동 웃음)
"직원 육아휴직 제대로 보장하는 기업에 인센티브 줘야"
정민아 : 큰 아이 출산을 앞두고 육아휴직을 신청할 때 얼마 동안 쓰는지를 놓고 말이 많았다. 보육교사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에 결혼과 임신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육아휴직 1년을 다 쓴 교사는 거의 없다. 육아휴직을 쓰더라도 그 기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2개월을 보낸 후 그만뒀다.
박하연 : 기본적으로 나라에서 기업을 너무 착하게 보는 것 같다. 기업은 이익을 위해 사는 조직이지 사회에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어쨌든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인데,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를 잘 보내는 기업은 정부가 혜택을 주고, 대체인력을 쓰면 인건비 일부라도 지원을 하면 기업들이 하게 되어 있다고 본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 72.4%가 육아휴직, 출산휴가 등 '일·가정 양립제도'에 경영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육아휴직(73.1% 이하 중복 응답) 뿐 아니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58.1%), 산전산후 휴가(53.9%) 등도 부담스러워 했다.-편집자)
남자가 육아휴직 쓰면, '승진에 욕심 없는 사람'?
프레시안 A : 스웨덴은 아버지의 3/4이 육아휴직은 신청한다고 한다. 주변에 육아휴직 중인 남자 동료가 있는가?
박하연 : 회사 동료 중에는 없다. 친오빠가 공무원인데, 육아휴직을 썼다. 그랬더니 주위 사람들이 '승진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며 '집이 굉장히 잘 살 거야. 그래서 굳이 회사에서 성공할 이유가 없다'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공무원 사회도 그 정도인데, 일반 사기업은 더 말할 것도 없다고 본다.
▲ 산모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8일, 예비 아빠들이 임신 상태와 비슷한 10k의 임신체험복을 입고 임산부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아빠들이 육아휴직 안 쓰면 사유서 제출하게 하자"
프레시안 A : 우리가 군대 복무로 공부나 경력이 중간에 끊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 육아로 인한 공백도 그렇게 봐야 한다.
게다가 남성이 육아휴직을 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직장 안에서 여성들의 지위도 높아진다. 사장 입장에선 출산, 육아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는 여성들이 못마땅할 수 있다. 그걸 핑계로 여성 채용에 소극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부담을 남성도 똑같이 짊어진다면, 여성과 남성이 노동시장에서 똑같은 조건에 놓이는 셈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는 것과 남성의 육아휴직은 서로 맞물려 있다.
박하연 : 아이의 정서를 위해서라도 아빠들에게 육아휴직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 복직을 확실히 보장한다는 전제하에 무조건 육아휴직을 쓰게 하고, 쓰지 않겠다는 사람에게는 사유서를 제출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육아휴직 강제와 함께 임금의 40%로 제한되어 있는 육아휴직 비용도 높일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B : 남자 육아휴직자는 최근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올 9월까지 1351명의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남녀 전체 육아휴직자 가운데 남자는 2.8%에 불과하다. 육아휴직하는 남자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다는 증거다.-편집자)
정민아 : 그것보다는 아주 단순히 육아가 힘들기 때문에 남자들이 싫어하는 것 아닐까?(모두 웃음) 남편에게 "내가 만약에 월급이 더 많았다면 내가 일할 테니 당신에게 휴직하라고 했을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왜냐하면 육아가 너무 힘드니까.(웃음)
"정치인들이 애 안 키워봤으니, 보육정책이 이 모양이지"
프레시안 A : 남자들도 육아를 경험해 보면 그게 얼마나 힘들지 알게 된다. 특히 지금의 보육 관련 정책이 힘을 못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의사결정권자들이 육아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위공무원이나 정치인이 아이를 직접 키워보지 않았기 때문에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 역시 마찬가지일 게다.
박하연 : 그러니까 정치인들이 '기저귓값 정도만 주면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프레시안 A : 육아휴직을 통해 육아를 경험한 세대가 고위 공무원이 되고 정치인이 되면 그때는 달라질 것이다. 병역을 기피한 남성이 고위 공직자가 되려하면 비난 받는 것처럼, 육아를 기피한 남성이 선거에 나오면 비난 받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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