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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자본주의는 더 이상 형식적으로도 합리적이지 않다"

세계체제론 확립한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 방한 강연

"우리는 500년마다 찾아오는 역사적 체제의 구조적 위기의 한복판에 있다. 현재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구성하는 '근대세계체제'는 끝없는 자본축적의 원리에서는 굉장히 성공적이었지만, 계속 이 원리로 작동하기에는 한계에 다다랐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형식적으로도 합리적이지 않다."

'세계체제론'을 확립한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17일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경희대학교가 주최한 '2012 피스바 페스티벌(Peace BAR Festival)' 행사에 참석해 '문명적 전환의 정치'(The Politics of a Civilizational Transformation)라는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월러스틴 교수는 1959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그는 1974년 16세기 자본주의의 태동과 역사적 전개를 세계 경제적 측면에서 파악한 <근대세계체제>를 출간하며 정치경제학계의 석학으로 명성을 얻었다.

▲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 ⓒ 경희대학교

월러스틴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지난 500년 동안 인건비, 투입요소, 세금으로 대표되는 3가지 생산비용은 모두 꾸준히 증가해 왔다"며 "유효수요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판매가격이 비용의 증가에 상응하는 속도를 유지할 수 없었는데, 생산자 수가 늘어나고 그 때문에 생산자들이 준 독점적 조건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고 언급하며 자본주의가 한계에 다다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그는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산업부문의 자본이 금융부문으로 넘어갔는데 금융에서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원금과 이자를 받으면서 돈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채무자들이 돈을 많이 빌리면 이자만 갚다가 궁극적으로는 파산한다"며 "결국 대출제도라는 것은 새로운 자본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자본의 위치를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결국 자본주의의 새로운 추동 요인이 없어지면서 자본주의가 내용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더 이상 유지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월러스틴 교수는 "현재 우리에게는 크게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다보스포럼(Davos Forum)에서 기인한 다보스 정신, 또 하나는 이와 반대지점에 놓여 있는 세계사회포럼(WSF)을 시작한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 정신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월러스틴 교수는 양 진영 모두 매우 양극화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보스 진영의 한쪽 그룹은 굉장히 억압적인 전략을 쓰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은 민주적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포르투 알레그레 진영 역시 민주주의와 평등주의에 기반을 둔 그룹과 조직의 힘을 중시하는 수직적인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며 "이 네 가지의 그룹은 사람들에게 혼동을 준다. 그래서 우선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논쟁에 대한 지적인 분석"이라고 주장했다.

지적인 분석이 끝나면 선택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월러스틴 교수는 "각자가 도덕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여기에 순수하게 지성으로만 끌어낼 수 있는 답은 없다. 그 선택을 통해 우리가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라며 "역사는 누구의 편에도 있지 않다. 우리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실패할 수 있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50:50으로 우리가 원하는 세계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낙관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연 전문

저희는 평범한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다. 역사적 체제의 구조적 위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는 500년 만에 한 번 정도 오는 위기입니다. 현재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인 어려움들은 주기적인 순환의 결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이것이 주기적인 순환이라면 정책을 조금만 변경시키면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는 것들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사회체제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걸 근대 세계체제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이것은 또 다른 말로 하자면 자본주의 세계체제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체제는 16세기에 등장해 유럽, 아메리카에서부터 그 영역을 점점 더 넓혀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인 체제가 어떻게 해서 지금의 형태로 존재하게 됐는가에 대한 절차적인 문제는 제가 오늘 드릴 말씀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아서 생략하겠습니다.

▲ 강연 중인 월러스틴 교수 ⓒ 경희대학교
이러한 역사적인 체제는 지속적으로 지리적 영역을 확대해 갔습니다. 그래서 19세기쯤이 돼서는 전 지구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단일한 세계체제가 되었죠. 현대의 위기를 논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스템이 지난 500년간 어떻게 운영이 돼 왔는지, 구조적인 방법론적 차원의 메커니즘을 살펴봐야겠습니다.

자본주의체제는 다른 체제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임금노동이라든지 시장의 운영이라든지 그리고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라든지. 이런 것은 다른 체제에서는 쉽게 볼 수 없죠. 하지만 가장 독보적인 특징은 끊임없이 자본을 축적한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함인데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익추구, 자본 축적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시장 활동을 하거나 경제활동을 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뭔가 처벌이 가해진다고 할 수 있겠죠. 예를 들면 그러한 활동들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능력이 약화된다거나 궁극적으로 경제활동에서 제외가 됩니다. 그것을 하나의 처벌로 볼 수 있겠죠. 근대세계체제에서는 모든 기관들이 끊임없이 자본을 축적해야 된다는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계속 자본을 축적해 간다, 이것은 어찌 보면 좀 말이 안 된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실질합리성 측면, 내용적 측면에서는 말이 안 되지만 형식적인 합리성 차원에서 살펴볼 때는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이 자본주의체제는 체제로서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죠. 500년의 기간 동안 체제로서 기능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형식적인 합리성 측면에서는 말이 되는 합리적인 체제라고 할 수 있겠죠. 지난 500년간은 자본 축적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성공적인 체제였습니다만 이제는 더 이상 그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합리적이지 않고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그 종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작용을 할까요? 모든 시스템, 체제라는 것은 움직입니다. 특정한 평형점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평형점으로 돌아가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움직여가고 있는 시스템입니다. 체제가 성공적으로,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려면 평형점으로 돌아가려는 힘이 벗어나려는 힘보다 더 커야 됩니다. 우리 근대세계체제에는 많은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그중에 두 개가 바로 콘트라티에프주기와 헤게모니주기입니다. 이 두 개의 주기는 효과적으로 평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를 해 왔죠. 콘트라티에프주기는 많은 양의 자본축적을 허용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본의 축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유사독점체제가 있어야 됩니다. 유사독점체제가 있어야 생산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경쟁력 있는 상품은 생산비용보다 높거나 낮거나 상관없이 언제라도 판매자를 찾을 수 있는 상품들입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자유 시장에 제약을 가한다는 조건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유사독점이 유지가 되려면 조건이 필요한데요. 첫 번째 조건은 바로 혁신적인 제품이 많은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유사독점을 보증하는 주체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국가입니다. 국가가 다른 경쟁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개입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시장은 유사독점체제 하에선 정부의 개입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유사독점 제품이라는 것은 선도 제품입니다. 세계 경제체제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제품을 선도제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후방연쇄, 전방연쇄 산업을 거의 장악하는 그런 제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사독점은 고용을 많이 창출하고요. 후방연쇄, 전방연쇄 산업뿐만 아니라 유사독점체제 내의 생산자들은 많은 고용이 필요합니다. 물론 유사독점체제 내에서 어떤 기업이 더 잘하고 어떤 기업이 더 못하고 하는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지금 이 시기는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유사독점의 보증인의 역할을 합니다. 법적 조치를 통해서 독점을 보장하죠. 예를 들면 지적재산권이라든지 특허권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법적으로 제정을 함으로써 독점을 보장하는 것이죠. 또는 연구와 개발에 재정지원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른 국가의 생산자들이 자국의 유사독점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지정학적인 힘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콘트라티에프는 '주기'입니다. 유사독점은 영원히 유지될 수 없습니다. 유사독점이 스스로를 망가뜨려가고 있는데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유사독점은 굉장히 수익성이 좋습니다. 그래서 항상 유사독점체제, 시장체제에 들어오려고 하는 경쟁자들이 많습니다. 체제에 진입하기 위해 기술을 훔치거나 복제를 하거나 모방을 합니다. 그리고 또 어떤 국가들은 자국의 유사독점체제를 보증하는 국가들에 압력을 가합니다. 예를 들면 반독점에 대한 센티멘털을 조장함으로써 유사독점을 보호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유사독점을 통제하고 유지하는 데도 문제가 있습니다. 파업이 그것인데요. 파업을 하게 되면 많은 손해가 있기 때문에 단기적인 비용을 막기 위해서 일단 임금인상에 합의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노동의 비용이 높아지고 그렇게 되면 전반적으로 이익이 줄어들죠. 이런 식으로 유사독점은 그 생명을 다해 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또 잠재적인 생산자들, 즉 다른 경쟁자들이 유사독점을 저해하기도 합니다. 보통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서 혜택을 가져가는 데는 25년에서 30년이 걸립니다. 경쟁이 강해질수록, 심화될수록 판매가는 낮아지게 되죠. 그러면 이익은 줄어들게 되잖아요. 그래서 하나의 대안을 생각해낸 것이 좀 더 임금이 싼 지역으로 생산지를 옮겨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산비용이 낮은 곳을 찾아서 떠나다 보니 거래비용을 희생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기존 생산지는 거래비용이 낮았으니까요. 새롭게 생산지가 구성된 곳에서는 공장이 이전해 오는 것을 국가 개발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해당 국가에 그렇게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물론 해당 국가에 플러스는 되겠지만 슈퍼플러스는 될 수 없습니다.

자본의 손실을 막아보고자 생각해낸 또 다른 대안은 핵심 생산기능은 기존 지역에 남겨두고 나머지 주변기능들을 싼 지역으로 옮겨가는 겁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낮은 임금을 받아들여라, 아니면 우리가 산업을 다른 나라로 옮겨갈 거다'라고 협박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겠죠. 지속적으로 자본의 축적을 추구해 가다 보니까 생산에서 금융부문으로 자본이 옮겨가게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금융화'라고 하는데요. 이것이 굉장히 새로운 개념 같지만 실제로 콘트라티에프 B주기에서 항상 있어왔던 경제활동입니다. 페르낭 브로델이라는 사람이 주장하기를 성공적인 자본가들은 특정 산업이나 상업, 금융의 전문가가 아니라 여러 분야를 넘나들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기회를 찾아서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것이죠.

금융부문에서 부를 축적하는 방법은 돈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원금과 이자를 받게 되면서 돈을 벌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채무자들이 돈을 많이 빌리게 되면 이자만 계속 갚다가 궁극적으로는 파산을 하게 되죠. 그래서 대출제도라는 것은 새로운 자본을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자본의 위치를 옮기는 것에 불과합니다. 또 이런 대출자들이 파산을 빨리 하게 되거든요. 금융부문에서 지속적으로 자본을 축적하려면 새로운 대출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신규 대출자들이 계속 대출을 내면 금융권은) 수익이 좋겠지만 세계 자본주의체제 전체적으로 보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물건을, 제품을 살 수 있는 실질수요, 유효수요가 줄어들게 되거든요. 사람들이 대출을 갚느라 소득의 많은 부분을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로 물건을 살 수 있는 여력은 줄어드는 겁니다. 그래서 점점 더 평형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로 금융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셉 슘페터는 어떻게 평형점으로 돌아가느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뭔가 발명을 하면 이게 혁신적인 상품이 되고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새로운 선도적인 제품이 되기에 이르는데요. 이런 과정이 있어야 평형점이 유지가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유사독점을 유지하고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워킹클래스(working class), 서민층의 힘을 더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계층은 서민계층, 일하는 계층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워킹클래스의 힘을 더해 준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단기이익을 포기한다는 의미가 되겠죠. 장기이익을 위해서요. 이러한 방식으로 자본주의 생산주기, 즉 잉여가치를 생산해 내는 자본주의의 주기는 확대와 수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확대와 수축을 반복하는) 자본주의체제가 계속 유지돼 왔던 이유는 단일국가만이 자본주의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많은 국가들이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경제 활동을 합니다. 만약 자본주의체제 내에 한 국가만 있다면 잉여가치를 국가가 흡수해서 이 가치가 기업으로 흘러갈 것이고,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는 데 쓰이는 것을 막게 되겠죠. 하지만 여러 국가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이러한 잉여가치가 새로운 제품 생산에 흘러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전에 보증인으로서 국가의 역할을 말씀드렸는데요. 보증인으로서의 국가 역할을 우리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기업들이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는 것이죠. 기업과 국가, 이 둘의 관계는 헤게모니 사이클의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국가 간 관계에서 헤게모니라는 것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체제와 관련된 원칙을 시행한다는 것이죠. 이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겁니다. 무질서라고 하는 것은 전쟁이라든지 부패와 같은 나쁜 상황들을 얘기하는 것이죠. 무질서한 상황에서는 특정 그룹, 특정 개인에게 이익이 몰립니다. 체제 전반적으로 봤을 때 결코 긍정적인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헤게모니 차원에서 원칙을 강요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죠.

헤게모니는 그 헤게모니 힘 자체에도 부작용을 초래하게 됩니다. 헤게모니를 가진 국가의 기업, 시민들, 정부 자체에 부작용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죠. 어떤 부작용일까요? 전체적인 이익이 헤게모니를 가진 국가들의 기업, 시민, 정부에 집중됩니다. 다른 국가 입장에서 보면 공평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지정학적인 힘이 있는 국가가 헤게모니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어 한다는 것이죠. 그것을 또 납득시키기도 어렵고요. 그런데 여기서 제가 헤게모니의 주기적 패턴을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런 유사독점체제는 '스스로 무너져가고 있다, 자멸해 가고 있다'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또 헤게모니 사이클은 콘트라티에프 사이클보다 훨씬 더 긴 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헤게모니 사이클은 너무나 복잡합니다.

어쨌든 헤게모니든, 콘트라티에프주기든 이것들은 결국 주기에 불과합니다. 불완전한 주기입니다. 그래서 원래의 출발했던 지점으로, 그 평형지점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면 생명이 끝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콘트라티에프의 A주기에서 이익을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 혜택을 많이 분배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시스템 자체는 정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발전해 오지 않았습니다.

콘트라티에프 주기를 보면 두 걸음 나갔다가 한 걸음 돌아온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자본주의체제는 두 걸음 나왔다가 한 걸음을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원래 평형점에 돌아오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평형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어쨌든 한 걸음은 나간 것이니까요. 그래서 평형점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겁니다. 시스템의 주기가 평형지점에서 80% 이상을 벗어나게 되면 곧 혼란에 빠집니다. 그래서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커브가 '바이풀 케이트(bifurcate)한다'라는 전문용어를 쓰는데요. 과학에서는 두 가지 데이터로 바이풀 케이트를 설명합니다.

이는 시스템의 구조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는 한 가지만 확실한 상황이 됩니다. 그 확실한 점은 결코 평형지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확신이죠. 그것만 확실한 겁니다. 그 외에는 모두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대안이 등장하게 됩니다.

근대세계체제는 지금 평형점에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붕괴지점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자본을 계속 축적하려는 행위 때문입니다. 기업가들이 생산가와 판매가의 마진을 가지게 됩니다. 판매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유사독점상황을 창출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는 그러한 인력과 투입비용, 그리고 세금 같은 걸 생각해 봐야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생산비용이죠. 인력의 비용은 미숙련, 반숙련, 그리고 간부층 이렇게 세 개 그룹에 따라 다릅니다. 우선 반숙련, 비숙련 노동자들은 공장이 임금이 싼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서 비용이, 임금이 높아져도 그 비용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소득보다 더 낮은 소득을 얻게 됩니다.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에 적응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파업과 같은 조치를 취하는데, 이것은 나중에는 생산비용이 더 높아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톱니효과가 나타납니다. 감소하는 것이 절대 증가하는 정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핵심문제가 되는 것은 '런어웨이(runaway)'테크닉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가능성을 소진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할 새로운 영역이 고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탈농업화와 비교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도 굉장히 극적인 변화였죠, 최근 50년 동안은요.

간부층에 들어가는 비용이 점점 증가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산단위가 너무나 커졌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중간층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비숙련층 결사조직에 대응하기 위함이었죠. 간부층은 고위관리의 직장 동료일 뿐만 아니라 승진 가능성의 모델이 될 수 있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비숙련층의 정치적 운동을 둔화시키기도 했습니다. 또 전반적인 고위관리 급여의 인상이라는 것 역시 괄목할 만했습니다. 기업가들의 구조가 복잡화되면서 급여 인상이 정당화되기도 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소유와 관리의 분리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고위 관리자들은 기업에서 얻은 수익을 렌트에 활용함으로써 소유 주주들에게 수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했습니다. 투입비용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비용의 외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본인들이 사용하는 투입물에 대해서 비용을 부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비용부담을 최대한 외부로 돌리려고 했던 겁니다. 이것은 세 가지 절차를 통해서 가능했는데요. 독성폐기물의 폐기, 원자재의 재활용과 자신들의 작업에서 필요한 하부 구조의 재구성을 통해서였습니다.

최근까지 외부화라는 것은 사실 정상적인 관례로 간주되었습니다. 정치적인 권위자들에게 있어서는 이슈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환경은 최근에 들어서 극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최근 기후변화에 대한 논쟁, 녹색 및 유기농 제품 및 그 수요에 대한 논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관례로 취급되는 외부화에 대한 생각들이 이제는 잊힌 지 오래입니다. 아울러 전 세계 인구가 늘어나면서 천연자원의 부족이나 고갈에 대한 근심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천연자원에는 에너지원이라든지 물, 산림, 그리고 육류, 어류 자원인데요.

어떻게 하면 이것들을 재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세계의 시장에 이러한 것을 판매하기 위해서 교통과 커뮤니케이션 확충이 요구됐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것들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비용을 내느냐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생산자가 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이 부담해야 하나. 결국 세계 곳곳의 정부들은 자원재활용과 더불어 하부조직을 재건하고 확장하는 데 더 큰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를 위해 세금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비용을 미래에 억제하기 위해서 정부들은 비용의 내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 즉 세금을 올리거나 비용을 내부화한다는 것은 기업의 수익마진을 줄어들게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금의 급격한 증가가 있었습니다. 정부의 규모와 기능을 확대하는 것은 모두가 원하는 것이었지만 비용에 대한 지불을 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민간세금이라는 것이 확대되기 시작했는데요. 즉, 관료의 부패나 조직화된 마피아가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뇌물을 주는 사람, 마피아에게 보호비 명목으로 금품을 주는 사람이 더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세금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세계정치의 민주화였습니다. 대중적인 사회운동을 통해 이들은 정부가 더 교육을 제공하고 보건서비스를 보장하고 평생수익 흐름을 보장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소위 이것을 복지 국가라고 부르는데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가지 방향으로 이러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는 요구되는 서비스 수준이 늘어난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러한 수요가 있는 지역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생산에 대한 3대 기본비용이 있는데요. 인적 비용, 투입물 비용 그리고 세금비용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그로 인해서 평형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500년 동안 사용돼 왔던 메커니즘은 더 이상 사용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문화의 변화로 인해서 발생한 것입니다. 문화적으로도 중도자유주의 지배의 종말이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1968년 세계혁명이었는데요. 이러한 혁명의 중심에는 소위 구좌파라고 불리는 것에 반대했던 참가자들의 반란이었습니다. 이것은 세계사회운동의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는데요.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였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세기 마지막 30년, 그리고 20세기 첫 50년 동안 서서히 등장했는데요. 1945년부터 1968년 사이에 구좌파 운동은 소위 2단계 전략을 지지했었습니다. 처음에 1단계로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2단계로 세계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세계체제에 지배적이었고요. 그리고 이 운동은 점점 강화되었습니다. 콘트라티에프 A국면이 괄목할 만하게 확대되었고요, 이 기간 동안에는 이와 더불어 미국의 헤게모니가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콘트라티에프 A국면에서는 자본주의자들이 파업을 막기 위해서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해야 했었습니다. 헤게모니 권력은 이러한 양보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탈식민주의와 범유럽 세계의 확대된 복지국가 조합은 온건한 세계정치 구조를 이루는 데 일익을 하였습니다.

1960년대 중반에 이르자 구좌파운동이 어디서나 국가권력의 역사적 목표를 달성한 듯 보였습니다. 즉, 그 2단계 중에서 1단계는 이룬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 첫 단계라는 것은 공산당원들이 전 세계의 3분의 1을 통치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회민주당이 1/3지역에서 권력을 대체하게 된 것입니다. 이 운동들이 얼마나 온건했든지 간에 세계체제에는 당시 모든 운동에 영향을 미친 승리주의가 전 세계에 만연했었습니다. 근대세계체제에서는 그들의 선언이 정확히 맞아 들어갈까 두려워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바로 1968년 세계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좌파가 실제로는 승리하지 못한 거죠. 68혁명 반란자들은 구좌파들이 권력을 쥐었을지는 모르지만 세계를 바꾸지는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1968년 세계혁명에 참여했던 참여자들의 수사학을 듣고 또 지역적으로 나왔던 주장들을 무시한다면 세계의 테마를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권 범유럽세계, 그리고 제3세계에서 여러 반란들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분석해 보면 세 가지 테마를 우리가 상정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테마는 미국의 헤게모니였습니다. 그런데 이 미국이라는 것은 세계 질서를 보장한다기보다 제국주의로 비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은 그 정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전쟁을 통해서 군사주의로 헤게모니를 쥐려고 했던 미국의 전략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혁명가들은 구소련이 미국 헤게모니에 공조한 국가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냉전이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사실적인 현상유지로서의 얄타 협정은 지정학적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1956년 수에즈와 헝가리 문제에서 양국 모두 냉전수사학이 지배했던 방식으로 주장했던 것과는 다른 주장들을 내놓았습니다. 또한 흐루시초프의 비밀 연설이 1956년 구소련 공산당의 제20차 당대회에서 등장을 했습니다. 흐루시초프의 연설에서는 소련이라는 로맨 클라쵸의 필요성을 반영하기는 했지만 이들의 신봉자들 사이에서 회의론을 등장시키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테마는 구좌파운동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이들도 많은 공격을 당했는데요. 세상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점 때문이었습니다. 군사주의자들은 다시 한 번 실패한 전략들을 반성해 보고 새로운 운동으로 대체해야 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중국의 문화혁명이 그 모델로서 거론이 되었는데요. 자본주의자들을 숙청해야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당과 정부의 최고위층을 숙청해야 된다는 것이었죠. 세 번째 테마는 잊힌 대중들과 관련된 것이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대중'들은 인종이나 성별이나 민족이나 성편향성 때문에 억압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구좌파는 세계의 최강국만큼이나 그 죄질에 대해 자유롭지 못했는데요. 구좌파운동은 위계적인 운동이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리고 어떤 국가에서든 한 운동만이 유일한 혁명운동이라고 주장했었습니다.

이러한 운동은 특히 산업국가에서의 계급투쟁의 우선순위를 내어주었는데요. 1968년에 이르기까지 구좌파의 입장은 어떤 그룹이든 자치적인 전략을 따르는 것은 우선권 투쟁을 저해하는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반혁명적이라고 치부되었습니다. 우선권 투쟁에, 우선주의 투쟁에 속한 자만이 합법적이었다고 이야기되었습니다. 그러나 1968년 군사주의자들은 소위 다른 그룹들의 주장 혹은 그 요구사항은 더 이상 무시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들 그룹이 싸우는, 그러한 그룹들이 대항하는 억압은 그만큼 긴급하다고 인식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룹들은 잊힌 대중들에 의해서 조직화된 것으로서 여성이 여기에 포함되었고 소수주의자들이 여기에 포함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생태적 및 평화적 투쟁에 헌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잊힌 대중의 목록은 끊임없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만 어쨌든 이러한 운동들이 더욱더 군사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굉장히 유명했던 것이 미국의 블랙팬서였습니다. 제 생각엔 1968년 세계혁명은 실질적으로 1966년과 1970년에도 계속되었는데요. 이것은 세계체제의 정치적 전환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이들 대부분 국가에서 운동이 오히려 성공적으로 억압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참여자들은 젊은 열정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끊이지 않는 지문화적 전통을 남겼습니다. 중도자유주의자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접근방법만이 합법적이라고 했던 것이 무너진 것입니다. 진정으로 보수주의적이고 혁명주의적인 이데올로기는 당시 목소리를 찾지 못했었는데 이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지문화적 변화에, 즉, 근대세계체제의 지정책을 위한 지문화적인 변화의 결과는 거대했습니다. 그리고 근대세계체제의 정치적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축적이 이루어진 그 시점에 근대세계체제의 정치적 안정은 중도자유주의자가 모두를 위한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것을 수용한다고 해도 더 이상 강요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전문가들의 현명한 행동을 통해서 이를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중도자유주의자는 그리하여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써 통치권을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셋 중에 하나의 대안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구좌파의 운동은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운동으로서 자격을 상실했습니다.

구좌파운동이 근본적 대안이 되지 못한 상황에서 대규모의 세계 우파 공격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을 우리는 신자유주의 혹은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낮은 계층, 취약 국가들이 얻었던 모든 이득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었습니다. 즉 1945년에서 1970년 사이에 얻었던 그 모든 이득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적 비용이 줄고, 물론 고위층 관리들의 경우에는 예외입니다만 투입비용의 내부화에 대한 압력이 줄고 세금이 극적으로 낮아지고 복지국가에 지출하는 것에 대한 요구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관료주의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기관들은 민영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식으로 IMF나 그와 관련된 기관들은 힘을 잃었습니다. 당시에 지배적인 슬로건은 이제 대안이 없다, 즉 티나(There is no alternative : TINA)였는데 이것은 대처의 슬로건이었습니다. 이는 굉장히 성공적이었고 15년에서 2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힘이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시장이 유일한 원칙이라고 했던 그 주장이 힘을 잃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경제, 사회적 양극화가 이뤄졌는데 이는 곧 정치적인 균형이 신자유주의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정치적인 이동이 있었는데 그것은 세 가지 점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신 사파티스타의 봉기였고 다른 하나는 1999년 시애틀 WTO 회의에서의 데모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포르투 알레그레에서의 월드소셜포럼(WSF) 데모였습니다. 치아파스(신 사파티스타 봉기가 일어난 곳)에 있어서의 중요성은 바로 가장 빈곤했던 지역에서 일어났던 봉기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메시지가 있었는데요. 첫 번째는 신 사파티스타들이 국가권력을 자치주의를 이끌 원주민들의 권리로서 인정했지, 국가의 권리로서 주장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신 사파티스타들이 전 세계적으로 모든 억압된 그룹, 즉 우주적인 결속이라는 것을 불러냈다는 것입니다. 시애틀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은 대규모 데모에 있어서 글로벌 효율성의 잠재력을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노조들이나 환경주의자들, 아나키스트들의 묘한 협업, 이러한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정부 간 회의를 중지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WTO의 회의는 협약을 하기 위해서 이뤄졌던 회의인데요. 예를 들어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그런 법을 막기 위해 있었던 회의였습니다. 이러한 협약은 시애틀에서 채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이러한 제안을 다시 활성화시키려던 어떠한 시도들도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포르투 알레그레에 있어 중요한 사건은 전 세계적인 결속이었습니다. 여러 사회운동들이 같이 모여 수평적인 원칙을 기반으로 국제회의를 성공적으로 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지속적으로 정기회의를 가져왔습니다. 월드소셜포럼(WSF)이라고 명명이 되었는데요. 이것은 워싱턴 컨세서스의 핵심 기관인 다보스포럼에 반대된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양극화의 어느 극이 지배할 것이냐에 대한 활발한 전 세계 정치적 투쟁의 틀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양측에 있어서 물어보아야 할 것은 자본주의체제가 어떻게 개혁이 될 수 있느냐. 어떠한 기능이나 능력을 되찾아야 하느냐,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떠한 것이 이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현 체제가 어쨌든 지속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틀리지 않습니다. 현 상황에서 봤을 때 이렇게 예전의 규칙을 사용하는 것은 구조적 위기들을 강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투쟁의 본질을 분명히 아는 양측에 중요한 질문은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필요 한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했을 때, 양 진영이 양극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연구를 통해서 그러한 결과는 정말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은 광범위하게 정의될 수 있는데요. 한 가지 옵션은 현 체제의 세 가지 두드러진 특성을 비자본주의 형태로 재생산하는 시스템입니다. 위계, 양극화 그리고 개발입니다. 또 하나의 옵션은 상대적으로 민주주의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체제입니다. 물론 이것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재 설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관들이 진화하면서 새로운 체제가 기능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상징적인 이름을 붙이자면 다보스 정신, 또 하나는 포르투 알레그레 정신이라고 붙이고 싶습니다.

다보스 정신의 진영은 굉장히 깊이 양극화되어 있는데요. 한쪽 그룹은 굉장히 엄격한 억압전략을 선호하고 군사력을 통해서 상대방을 억압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그룹은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억압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변화시키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실력주의, 녹색자본주의, 더 많은 평등과 다양성, 그리고 혁명에 대한 열린 마음 같은 언어들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개혁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포르투 알레그레의 정신을 가진 진영 역시 양극화되어 있는데요. 포르탈리즈들은 전환이라는 것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은 세계를 되찾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문명적인 위기라는 주장을 하는데요. 집단적인 목표를 반대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상대적인 민주주의, 상대적인 평등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들과 다른 또 다른 진영은 수직적인 조직인데요. 이 그룹 역시 즉각적인 남반구의 경제적 성장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문명의 변화라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그러한 것이 복지를 개선시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투쟁은 (앞서 언급한) 네 진영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것은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도 굉장히 혼동을 주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결과 역시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지성적인 분석이라는 것, 이러한 전장에 대한 분석이 첫 번째로 필요할 텐데요. 이 분석이 되면 그 다음에는 윤리적인 선택이 필요합니다. 실질적으로 여기에 있어서 순수하게 지성적인 답이라는 것은 없겠죠. 다만 가치를 내재화하고 윤리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것만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양극화에 있어서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선택을 통해서 우리가 선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사라는 것은 누구의 편에도 있지 않다는 것이고 최고의 정치적인 전술을 통해서 우리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가 다 실패할 수 있는 것이고 미래에서 다시 과거를 돌아봤을 때 우리는 모두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50:50으로 우리가 원하는 세계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낙관해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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