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익(自益) 중심의 세계 경제 질서가 무너진 지금, 협동과 공생·무위의 삶을 통해 세상의 모든 이를 보듬어 안고자 했던 무위당 선생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특히 선생이 즐겨쓰던 호, '일속자(一粟子)'는 순 한글로 '좁쌀 한 알'을 뜻한다. 선생은 "좁쌀 한 알에도 우주가 있다"며 작은 데 숨어 있는 '생명'을 간과하지 않았다.
이번 수묵전은 12일 오후 2시 전시회 개막식과 함께 판화가 이철수의 '장일순과 그의 작품을 말하다'라는 제목의 '걷는 설명회'가 진행된다. 또한 전시기간 내내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이현주 목사, 도법 스님 등의 기념 강연과 대화마당 등 다양한 행사가 전시장 인근(세종예술아카데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1928년 10월 16일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으며, 청강(靑江)·무위당(无爲堂)·일속자(一粟子) 등의 호를 즐겨 썼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익힌 그는 차강(此江) 박기정(朴基正)에게 서예를 배웠다. 194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한 뒤 고향인 원주로 내려가 1994년 5월 22일 지병으로 작고할 때까지 줄곧 원주에서 살았다. 귀향 후 교육운동에 힘쓰던 중 1960년 4·19혁명 직후 사회대중당 후보로 민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5·16군사정변 직후 줄곧 주장해 오던 '중립화 평화통일론'으로 인해 구속되어 3년간 수감생활을 하였다. 출옥 후 천주교 지학순 주교, 김지하 시인 등과 함께 농민과 노동자들을 위한 교육과 신용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 운동을 펼쳤고 80년대 이후부터는 농부와 도시의 소비자를 잇는 '한살림' 운동의 싹을 틔었다. 유학·노장사상에도 조예가 깊었고, 특히 최시형(崔時亨)의 사상과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받아 일명 '걷는 동학(東學)'으로 통하였다. 서예에도 뛰어났는데, 1988년 한살림운동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연 개인전을 제외하고는 돈을 받고 작품을 파는 법이 없었다. 서화 가운데서도 특히 난초를 잘 그렸고, 만년에는 난초 그림에 사람의 얼굴을 담아 내는 '얼굴 난초'로 유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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