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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 놈' 성폭행범, 처벌 강화가 정말 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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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 놈' 성폭행범, 처벌 강화가 정말 답일까?

['성폭력', 제대로 이야기하기·③] 재범 저지르는 고리를 끊어야

서산 아르바이트생 자살 사건을 시작으로 최근의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까지 극악한 성범죄가 이어지며 가해자를 규탄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사람들은 성범죄자의 현장검증 때마다 몰려들어 "저놈을 사형시켜라" 혹은 "영원히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라"고 소리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성범죄자 실형 선고 확률은 1.33%…처벌 수위 높여도 적용 대상은 극소수

모든 성범죄자를 영원히 감옥에 가두고 일반인과 격리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범죄를 저질렀던 자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반복되는 성범죄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한번 성범죄를 저질렀던 자가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벌을 강화하는 것으론 이런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당위나 원칙 이전에 현실이 그렇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성폭력 신고율은 10%를 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대검찰청이 밝힌 지난 5년간의 기소율은 47.5%인데, 이 중에서 징역형의 실형 선고율은 28%다. 신고율이 10%라는 전제하에 전체 성폭력 사건 중 실형 선고 확률은 1.33%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중 전자발찌와 화학적 거세의 중형을 선고받는 비율은 더욱 낮다. 처벌 수위를 높여봤자, 전체 성범죄자 가운데 극히 일부만 해당될 뿐이다.

처벌 강화와 함께 가해자 교육이 필수적

전문가들은 성범죄 재범률을 줄이려면 처벌 강화와 더불어 가해자 교육이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용인성폭력상담소 등 여러 여성단체가 성범죄 가해자 상담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시행한다. 누구보다 많은 성범죄 피해자를 만나봤을 이들이 나서서 가해자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원보호관찰소 수강명령교육 협력기관인 용인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 상담경험이 10년 이상인 사람만 가해자 상담교육전문가 양성교육에 참가할 수 있도록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양해경 용인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피해내용, 성폭력 발생 원인, 피해자에게 닥친 후유증으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교육할 때 가해자가 던지는 온갖 질문에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4년 개봉한 영화 <스피크(SPEAK)>의 한 장면. 성폭행 피해를 겪은 주인공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다 끝내 사람들에게 모든 일을 털어놓게 된다.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기까지 10대 소녀가 겪는 혼란과 무기력함이 잘 드러나 있다. ⓒSpeak Film Inc.

'피해자에게 쾌락 준다' 왜곡된 생각에 빠진 가해자들

<프레시안>과 인터뷰한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가해자들은 대개 억울해한다는 게다. 양 소장 역시 같은 이야기를 했다. 피해자가 고통받는 모습을 즐기는 가해자보다, 자신이 피해자에게 쾌락을 준다는 왜곡된 생각에 빠진 가해자가 더 많기 때문이다.

양 소장은 "회사에서 상사가 성희롱을 하면 그보다 직급이 낮은 여직원은 대개 그냥 피식 웃거나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다. 가해자는 이걸 동의라고 생각한다"며 "나중에 고소하면 '그때 웃어놓고 왜 고소하느냐'고 억울해한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가해자가 가해자·피해자 간 권력관계 때문에 애초에 피해자가 격렬하게 저항하거나 반대의사를 밝힐 수 없었던 상황임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여성단체가 오히려 가해자 교육 강조하는 이유

전문가들은 성범죄자의 이런 왜곡된 인식을 바꾸는 게 급선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여러 교육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에는 ▲자신의 성 역사 쓰기 ▲피해자가 출연하는 다큐멘터리 시청 ▲피해자 처지에서 사건 기술 해보기 등이 포함된다.

전국 각지의 교도소를 다니며 가해자를 교육 중인 오지원 Oh&K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런 교육 과정을 잘 알고 있다. 오 변호사 역시 초등학생 시절 성범죄 피해를 겪었다. 오 변호사는 성인이 된 후에야 자신의 기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오 변호사는 "여성단체가 오히려 더욱 강하게 가해자 교육을 주장하는 이유는 감시와 억압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해자가 피해자 고통 직시하게끔 해야

가해자 중에는 우리 주변에 충분히 있을 법한 평범한 직장인이나 대학생이 많다. 그러나 일반인 인식 속의 성범죄자는 사이코패스나 연쇄살인범과 같은, 도저히 교화할 수 없을 것 같은 악마적 존재다. 가해자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범죄 가해자로 지목되는 순간, 지극히 평범한 자신이 영화 속 사이코패스와는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고 느끼면서 억울해 한다.

경찰대학교 박지선 교수의 논문 '사람들이 생각하는 강간범죄자의 표상 : 실제 국내 강간 범죄자와의 비교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강간범 중 무직자가 많다는 통념과 달리 실제로는 '임시직 및 피고용자'가 39.1%로 가장 많았다.

가해자들의 심리를 잘 아는 오 변호사는, 그래서 가해자가 "억울하다"고 하면 일단 모두 들어준다. 그래야만 가해자가 마음을 열고 자신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입을 열기 시작해야 자기 행위가 얼마나 피해자에게 고통을 줬는지 직시할 수 있다고 오 변호사는 강조했다.

"지위나 권력 차이로 할 말 못하는 상황 이해시켜야"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겨우 시작하는 단계인 교육 초기엔 "피해자가 죽을 힘을 다해 저항하지도 않았는데… 그러면 동의한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가해자가 많다고 한다.

이런 가해자에게 오 변호사는 "당신이 법정에서 판검사를 만나도 지위나 권력의 차이 때문에 무서워서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순간이 있지 않으냐. 당신과 여자가 한 공간에 있을 때 당신은 강자"라고 말하며 "약자인 여자는 일단 무서워서 따라가는 외양을 취했을 뿐이다"라고 확실히 알려준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가해자들이 이해하면서 죄책감을 느낀다"고 오 변호사는 설명했다.

오 변호사는 "미국과 독일에는 사건을 겪은 지 오래된 성범죄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고통을 들으면 가해자 대부분이 숙연해진다"라는 게다. 그는 "사람 문제는 꼭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라며 "한국에서도 이런 교육 프로그램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라고 제안했다.

▲ 지난 2010년 6월 조두순, 길수철 사건 등 아동 대상 성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서울 종로구 종각에서 경찰 마스코트 포돌이와 포순이가 아동 안전 보호 및 범죄예방 홍보를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채 교도소 가봤자, 나오면 또 범행

현혜순 서강대 성평등상담실 교수는 "성범죄자 교육을 해서 뭐하냐는 이야기는 굉장히 위험한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몇 년 교도소에만 있다가 나온다면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 교수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교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교수는 "법무부 당국이 교정치료에 대한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현재 여성가족부는 복권기금 사업에서 자금을 확보해 NGO와 함께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부산의 경우, 여성가족부의 예산과 복권위원회의 복권기금으로 연간 3000만 원의 예산을 확보해 단 3명의 상담사가 교정기관 5곳을 순회하며 강의하고 있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판사가 수강명령, 이수명령을 내리도록 정책을 만든 것은 여성가족부인데 이를 시행해야 하는 기관은 법무부"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법무부가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성범죄 처벌 목소리 높지만,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은 엉망

이와 관련, <프레시안>은 법무부의 입장을 듣고자 대변인실 등 여러 부서에 문의했다. 그러나 법무부 측에서는 "보호관찰소 교육 대상자들을 불러 교육할 때도 있고 센터 같은 곳에 위탁해 교육할 때도 있는데,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보호관찰소를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는 '동문서답' 답변만을 뒤늦게 보내왔다.

한국의 가해자 교육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다는 사실은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통계만 봐도 알 수 있다. 전국 교정시설에 수용된 성폭력사범은 2009년 4188명이며 이 중 아동성폭력사범은 878명으로 21%를 기록했다. 이후 조두순 사건 등 일련의 아동 성범죄 사건이 발생하면서,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지난해 10월에야 국내에서 유일한 고위험군 성폭력사범 치료 센터인 서울남부교도소 교정심리치료센터가 최초로 문을 열었다. 고위험군은 아동·장애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지칭한다. 전체 성범죄의 약 80%를 차지하는 성인 대상 성범죄 교화프로그램도 소홀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교화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법무부 산하 교정본부는 '성폭력사범 교정 프로그램 집중 운영계획'을 세우고 2010년부터 전국 교정시설에서 3단계의 프로그램을 시행하는데, 2단계부터는 아동 성폭력사범만 대상으로 한다.

성범죄 재범률 낮추는 데 성공한 외국 사례 참고해야

형기를 마친 후까지 교육이 이어지는 미국 워싱턴주의 트윈스 리버 성범죄자 치료프로그램이 종료까지 2~3년 걸리는 것과 크게 비교되는 수치다. 참여자의 재범률을 3.2%로 낮췄다고 평가받은 뉴질랜드의 뉴질랜드 키아 마라마 성폭력범죄 가해자 치료프로그램은 81회의 교육으로 구성된다.

현 교수는 "법무부처럼 힘센 기관이 예산을 더 확보해서 가해자 교육에 나선다면 훨씬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성범죄 재발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캐나다는 한 번 교도소에 들어가면 나올 때까지 관리하는데, 자존감 형성 프로그램까지 운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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