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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하면 '빈곤층'…자영업자 패자부활전은 없다

[늪에 빠진 중소상인·<8>] 자영업 이탈자 위한 퇴로 마련해야

걷다 보니 막다른 골목이다. 되돌아 가보려고 했지만, 걸어온 길은 이미 사라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캄캄한 골목에 갇힌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시작한 자영업이 실패했을 때가 딱 이렇다. 경력은 단절됐고, 나이는 더 들었으며, 심한 경우엔 빚더미에 올라있기도 하다. 하지만 옛 직장에선 다시 받아주지 않는다. 이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자영업 실패는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지름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5월 현재 자영업자 수는 720만 명을 기록했다. 그리고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연평균 58만 개의 사업체가 퇴출됐다. 비슷한 기간 절반 이상의 신규 사업체가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폐업했다. 하지만 패자부활전은 없다. 자영업 이탈자들을 위한 충분한 재취업 기회는 물론, 변변한 사회안전망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재취업? 소득 '반 토막' 각오해야

▲ 연평균 58만 개의 사업체가 퇴출되지만, 이들을 위한 일자리와 사회안전망은 충분하지 않다. 사진은 한 여성이 취업게시판을 보고 있는 장면. ⓒ연합뉴스
박수현(가명·39)씨는 얼마 전 운영하던 순댓집을 지인에게 넘겼다. 자영업을 정리하고 새 직장에 들어간 박 씨는 "반 토막이 났다"고 말한다. 퇴사→창업→자영업 포기→재취업 과정을 거치며 소득이 절반가량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박 씨는 첫 직장에서 14년간 근무하며 차장까지 진급했었다. 하지만 반복적 업무로 인한 매너리즘과 고학벌·남성 직원들과의 승진경쟁은 박 씨를 녹초로 만들었다. 퇴사하기까지 1년 동안 박 씨는 매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냈다.

숨 막히던 회사를 빠져나와 박 씨는 작년 프랜차이즈 순댓집을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며 저축해둔 돈과 퇴직금을 모두 모아 한 창업이었지만,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박 씨는 "자영업은 좀 더 역동적이고, 수입도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인 시절 월급만큼 벌기 위해서는 휴일도 반납해야 했다"고 말했다. 박 씨가 여덟 달 만에 음식점을 정리하고 재취업을 결심한 이유다.

하지만 재취업 역시 순탄치 않았다. 박 씨는 "2년 이상 경력공백이 있는 30대 후반 여성에게 일자리를 주는 회사는 찾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이전 직장에서 차장까지 승진했던 경력이 재취업엔 오히려 장애물이었다. 14년 근무경력의 박 씨였지만 신입사원 채용에까지 지원서를 냈다.

그래도 박 씨는 상황이 조금 나은 예다. 투자비용을 날리는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창업컨설팅사(社) 스타트비즈니스의 김상훈 소장은 "3·40대 자영업 이탈자 가운데 재취업에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대체로 한 번 자영업을 시작하면 투자비용을 회수할 때까지 떠나지 못하고 남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 소장은 "애초에 충분한 소득을 보장하는 안정된 일자리가 있었다면 왜 자영업을 선택하겠는가"라고 말했다.

폐업도 실업, "자영업자 위한 사회안전망 절실"

"연평균 퇴출업체 58만 개"란 통계는 바꾸어 말해 자영업 부문에서만 최소 58만 명 이상의 실업자가 매년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인 사업체가 아닌 다인 사업체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매년 자영업 부문에서만 100만 명에 가까운 실업자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들 중 여력이 있는 일부는 새로운 업체를 꾸리겠지만, 상당수는 '실업' 상태에 빠진다.

하지만 실업 상태의 자영업 이탈자들이 실업급여 등 사회보장 혜택을 누리기는 쉽지 않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오건호 실장은 "고용보험은 직장가입자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자영업 이탈자들이 고용보험 혜택을 누리기는 쉽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씨 역시 "재취업때까지 수익이 없었지만, 실업자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록 올해 초부터 자영업자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가입자는 약 1만 명에 불과하다.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살아가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여력이 없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오 실장은 "영세 자영업자에 한해서라도 휴·폐업 이후 실업에 놓였을 때, 국고 지원 형식의 실업부조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오 실장은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소득수준, 실업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이들을 위한 제도설계에 어려운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 소장 역시 체계적인 자영업부문 통계 구축을 주문했다. 그는 "가장 시급한 일은 정부가 가능한 빨리 세밀한 정보를 수집하고 공개하는 것"이라며 "현재는 정부 부처별로 통계를 따로 갖고 있고, 그 수치도 각기 다르다. 이래선 자영업 이탈자들을 위한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2009년 5월 서울 여의도에서 중소상인살리기 전국네트워크가 폐업 중소상인 실업안전망 구축 등 3대 중소상인살리기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3년이 지났지만 자영업자를 위한 실업안전망은 여전히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 ⓒ 연합뉴스

일자리 창출하고 재취업 유도해야

자영업 과다경쟁에 대한 지적은 주로 '자영업 구조조정'이란 대안으로 연결된다. 재취업 유도를 통해 비자발적 창업을 감축함으로써 자영업 부문의 과다경쟁 상태를 해소해야 한단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정책적 노력은 미흡한 수준이고, 고용시장에 충분한 일자리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재작년부터 '취업성공패키지'라는 이름의 제도로 취약계층을 상대로 재취업을 위한 상담, 교육, 일정한 취업비용 등을 지원해오고 있다. 그런데 지원 대상자 중 자영업 이탈자의 비중은 매우 적다. 2011년 전체 신청자 6만 3000명 가운데 자영업 이탈자는 550명에 불과했다. 연 매출액 8000만원 미만 업체로 지원 대상을 제한하고 있기 대문에 신청자가 많지 않은 것이다. 정책 홍보가 충분히 되지 않았단 지적도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9일 "내년부터 지원대상조건을 완화해 매출액 1억 5000만원 미만 사업체까지 지원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 실장은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 전체적으로 복지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 수요에 맞춰 공공서비스 부문이 커지면 자연히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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