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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기회인가 재앙인가?

[김윤태 칼럼]<1> 한국정치 양날의 칼

왜 안철수인가?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교수의 <안철수의 생각>이 정치권을 강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일으키는 정치적 논란은 가히 '안철수 현상'이라고 부를 만하다. 한 번도 정치를 해본 적도 없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적도 없는 안철수 교수의 행보에 모든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2012년 대선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안철수 현상은 대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한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누가 안철수에 열광하는가?

안철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누가 안철수 교수를 지지하는지 보아야 할 것이다. 안철수 지지자들은 수도권과 호남에 많지만, 전국적으로 골고루 퍼져있다. 부산, 울산, 경남에서도 지지율이 상당히 높다. 이는 지역주의 정치구도를 뛰어넘는다. 안철수 지지자들의 소득 수준도 다양하다. 이념 성향을 보아도 진보, 보수, 중도에 걸쳐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정치의 전통적 코드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한 가지 주목해야할 사실. 안철수 바람의 진원지가 바로 20~40세대라는 점이다. 안철수교수는 벤처 기업인으로 성공하여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청춘 콘서트 등으로 대학생과 소통을 중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만으로 안철수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하다. 선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의 조건, 인물, 메시지를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비당파적 정치,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힘, 진영 논리의 한계 등 세 가지 개념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 안철수 교수 ⓒ뉴시스

사회구조와 정치적 가치의 관계

1940년대 정치사회학은 사회구조적 변수가 정치적 태도와 가치를 결정한다고 믿었다. 미국 사회학자 폴 라자스펠트 교수가 이끄는 컬럼비아 학파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구조적 변수가 정치적 가치를 결정하는 유일한 변수라고 볼 수는 없다. 20세기 후반 서유럽의 노동자계급이 감소하면서 반드시 사회민주당이 쇠퇴하지는 않았다, 육체노동자의 지지가 감소했지만 화이트칼라의 지지를 받아 사회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을 보충했다. 가치의 변화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정당의 지지율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 물질주의 가치와 삶의 질과 정체성을 강조하는 탈물질주의 가치가 일방적으로 특정 정당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유럽 국가들의 경향을 보면 대부분의 사회민주당 지지자들은 탈물질주의 성향이 강한 편이다.

한국 사회를 보자.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의 정치구도 대신 3김이 이끄는 지역주의 정치구도가 지배했다. 노동계급의 정당이 출현하는 이전인 1998년부터 육체노동자의 숫자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 등장한 민주노동당은 대기업 노조 이외에 화이트칼라의 지지에 의존해야 했다. 사실상 다당제로 구성된 정치구조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당은 물질주의 가치도 탈물질주의 가치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 소선거구제와 지역주의 정치구조가 결합하면서 특정 정당의 지역별 독식 현상이 유지되었다. 당연히 정당과 후보들은 중간 성향을 가진 중위 투표자의 지지를 획득하기보다 전통적 지지층의 결속을 강화했다. 소선거구제에서 중간 성향 유권자를 지향하여 정책이 중도로 수렴된다는 '중위 투표자' 이론은 한국 정치에서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했다. 당파주의에 입각한 충성심과 파벌에 대한 복종만이 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연히 국회는 토론의 장이 아니라 격투기의 장이 되었다.

비당파적 정치의 등장

이렇게 당파적 정치(partisan politics)가 계속되는 동안 당파적 정치를 혐오하는 무당파 유권자가 점점 증가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응답자가 거의 절반 수준이다. 한때 60퍼센트를 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지역주의 정치구도와 파당적 정치는 정치혐오감을 더욱 키웠으며, 대선 때마다 기성 정치권과 차별성을 가진 '제3후보'가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사회정치적 구조의 변화가 바로 안철수 현상을 만든 역사적 유산이다.

안철수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 가운데 거대 양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거대 양대 정당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스스로 이름을 바꿀 정도로 명확한 정체성이 없다. 민주당은 선거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당원의 권리를 스스로 부정했고, 진보당은 당원의 권리를 파괴했다. 어쩌면 거대 정당의 무능은 터무니없는 선거 공약보다 대표 체계의 부재가 더 문제이다. 정말 정당은 스스로 누구를 대표하고 있는지 아무런 고민이 없이 행동한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비상대책위원회에 등장하고 외부 인사가 정당 공천을 심사한다. 심지어 '슈스케' 방식의 이벤트로 공당의 후보를 정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당은 아직 현대화되지 못했다.

스토리텔링의 힘

오랫동안 한국 정치는 소선거구제와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유권자들은 정당보다 인물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특히 대선은 정당의 이념과 정책보다 인물에 대한 선호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특히 개인이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는 경우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군사정부에 저항한 투사, 지역주의에 맞선 정치인, 이장 출신 장관은 흥미로운 인생 스토리이다. 대통령제를 가진 미국 정치에서도 스토리텔링은 강력한 힘을 만든다. 오바마 대통령이 그 사례이다. 덴마크 미래학자 롤프 엔센이 말한 대로 미국과 한국은 이미 '드림 소사이어티'로 이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유권자들이 안철수 교수를 지지하는 이유를 보면 현대적 정당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보일 수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정치는 지역주의라는 전통적 변수와 함께 진보와 보수의 이념 구분에 따른 현대적 요소가 뒤섞여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도덕적이지만 무능한 인물과 유능하지만 사악한 인물 사이의 선택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정치인이 등장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안철수 교수처럼 유능하면서도 도덕적인 인물은 새로운 메시아처럼 보일 수 있다. 강자를 능가하는 막강한 성공신화와 약자를 토닥이는 따뜻한 마음을 동시에 보여준다. 유권자들은 자신을 대변하지 않는 기성 정당 대신 자신의 가치를 대변하는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다.

진영 논리의 한계

안철수 교수 현상이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적 문법과 관련이 크다. 역설적으로 안철수 교수 교수는 가장 '비정치적'이기 때문에 정치적 인기를 얻고 있다. 정치인들은 억울하겠지만, 안철수 교수는 정치 경력이 없기 때문에 신뢰가 더 높다. 놀랍지 않게도 안철수 교수는 당파적 정치의 진영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 정치권이 사용하는 문법을 거부하고 알기 쉬운 대중적 어휘를 사용한다. 상식과 소통을 말한다. 너무나 뻔한 말이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안철수 교수는 정주영, 정몽준, 문국현의 지지율을 훨씬 뛰어넘는다.

나아가 과거를 둘러싼 논쟁에 매달리지 않고 미래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 유권자들은 대선에서 과거를 심판하기보다 미래를 이끌 지도자를 선택하기를 원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과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대결하는 선거에서 미래를 발견할 수 있을까?

안철수 교수 현상은 양날의 칼

안철수 현상은 한국 정치에 양날의 칼이다. 이는 한국 정치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재앙의 경고일 수 있다. 안철수 교수의 높은 지지율은 기성 정치권이 변화를 촉구하는 유권자의 의사 표현이다. 하지만 기성 정치권이 '안철수 현상'을 외면하면 정당 체제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 지금 유권자들은 민생과 동떨어진 정쟁에 빠진 여의도 정치를 거부한다. 또한 과거의 틀에 따른 진영 논리를 벗어나기를 원한다. SNS 세대가 등장하면서 소통과 참여의 욕구가 더욱 커졌다. 안철수 교수는 아직 출마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에서 차기 대선에 출마한 지도자들은 과거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낡은 지역주의 정치를 뛰어넘어 사람들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정책 의제를 제시해야한다. 파벌, 진영, 정당의 경계를 뛰어넘어 국민을 통합하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고용을 확대하고, 보편적 복지복가를 건설하겠다는 사회통합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복지국가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가장 좌파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국민을 설득하는 울림을 느끼게 한다. 왜냐하면 세금 증액 없는 복지 확대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교수는 당연한 상식을 말했다. 한국 사회에 상식이 있다면 '안철수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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