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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수업과 학생 지도만 한다?… 꿈같은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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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수업과 학생 지도만 한다?… 꿈같은 학교!"

[공교육의 새 활로, '혁신학교'·⑧] "혁신학교는 '학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노력"

'혁신학교'는 무너져가는 공교육을 되살리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학교다.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높여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취지다.

혁신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학생 중심'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교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입되던 강의식 교육이 아닌 교사와 학생 간 상호협력을 통해 수업이 진행된다. 토론과 프로젝트 수업, 모둠 수업 등이 그것이다.

혁신학교는 기본적으로 교장과 교사에게 학교 운영 및 교과 과정의 자율권을 부여해 교육 주체의 자발성을 통한 다양화·특성화를 꾀하고 있다. 과거 위로부터 내려오던 교육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혁신학교 시행 1년, 변화의 바람이 곳곳에서 불고 있다. 강남 학부모가 다른 지역 혁신학교 입학을 위해 줄을 서고, 혁신학교 인근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는 등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마을 공동체 역시 되살아나고 있다. 현재 서울에만 60여 개의 혁신학교가 운영 또는 지정을 기다리고 있다.

<프레시안>은 두 차례에 걸쳐 우리 교육 현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직접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혁신학교를 경험한 '학생-학부모-교사'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공교육의 새 활로, '혁신학교']

- 학교 수업시간에 맨유를 수학적으로 분석한다고?

- "1년에 방학이 4번인 학교, 가능합니다"

교사가 아닌 동사무소 공무원 되다

영어 선생이 되고 싶어 들어간 사범대학에서 배운 것은 영어교수법 등 영어를 가르치는 데 필요한 전공과 교사론, 청소년발달론, 교육평가, 교육사회학, 교육행정학, 교육공학 등 학생을 이해하기 위한 교육학이었다. 졸업 후 새내기 교사로 온통 영어수업과 학생지도에 대한 열의로 가득한 나를 기다린 것은, '정확히 말해' 학교가 내게 기대한 것은 영어 교육과 관련된 전문성보다는 학교의 산적한 행정업무를 잘 처리해줄 동사무소 공무원의 역할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1996년 고등학교에 첫발을 디딘 나는 학적계(학생 전출입, 퇴학, 자퇴, 편입학, 휴학 등의 업무를 처리하는 일)를 맡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심지어 수업 중에도 불려 나가 전출 업무를 처리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직속상관인 교무부장으로부터 "김 선생은 전에 학적계에서 일하던 A교사보다 업무를 훨씬 잘하니, 교무부에서 몇 년 더 일하면서 장학사 시험에 응시해 교감·교장으로 승진하는 길에 빨리 들어서라"라는 애정 어린(?) 조언을 듣기도 했다. 그때 난 선배 교사들로부터 "수업은 할 만한지", "애들과는 잘 지내는지", "혹시 잘 모르겠으면 내 수업이라도 들어와서 봐라"라는 등의 조언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채 1년을 보냈다. 내게 학교는 수업이나 학생생활지도가 아닌 교무행정업무를 능력의 척도로 삼고 우선시하는 곳이었다.

'무능 또는 나태한 교사'?

학교 밖 사람들은 교사가 학교에서 뭘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교사는 점심시간을 포함해서 총 8시간을 근무한다. 교사에게 점심시간은 급식을 지도하거나 학생과 상담하는 시간으로 근무시간에 포함된다. 교사는 하루에 3~4시간 정도 수업을 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나머지 3~4시간을 수업 연구나 학생지도에 쓰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교무행정업무를 처리하느라 바쁘다.

결석과 보충강의 처리 및 수업 이동을 담당하는 수업계, 고사 관련 업무를 맡는 고사계, 성적관련 전산업무를 하는 성적처리계, 학교생활기록부를 담당하는 네이스계(NEIS), 학생생활지도 및 징계업무를 담당하는 생활지도계와 이 밖에 연수·장학 관련업무, 과학관련 업무, 홍보 업무, 학생동아리 담당 업무 등 수많은 일들이 있다. 이런 일을 처리하느라 정작 수업을 준비하고 연구하는 일은 남아서 하거나, 퇴근해 집에서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교무행정업무 대부분은 모든 교사가 함께 연관돼 진행된다. 특히 몇몇 교사는 제출 시한이 정해져 있는 공문 처리의 경우, 수업 연구보다 우선적으로 처리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제때 처리하지 못해 '무능 또는 나태한 교사' 라는 딱지가 붙을까 봐 두려워한다.

"교사가 그것 말고 할 일이 뭐?"

혁신학교인 우리 학교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교원업무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여 실천하고 있다. 교원업무 정상화란 교사가 본질적인 업무인 수업과 학생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존 업무분장체계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모든 교사를 담임과 비담임으로 나누고 담임은 수업과 학생상담 및 생활지도를 전담한다. 그리고 비담임 교사는 기존 학교에서 두세 명이 했던 교무행정업무를 도맡아 하는 방안을 채택하였다. 이 외에도 교감과 교무행정 전담팀(교무행정사, 사회복지사, 과학조교, 교무업무 보조 인력 등 4인으로 구성) 이 유기적으로 공문과 학교예산 관련 업무(에듀파인 결재 등)를 담당하고 있다.

다른 학교 교사 대부분은 우리 학교 담임 교사들이 교무행정업무를 전혀 맡지 않고 수업과 학생상담만 한다고 하면, '그래도 학교가 굴러가느냐'라는 의구심을 강하게 표현한다. 반면, 학부모나 외부 사람들은 올해 우리 학교가 실행하고 있는 교원업무 정상화 방안에 대해, 기존 학교의 관점에서 보면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럼, 교사가 수업과 학생 생활지도를 전담하지. 교사가 그것 말고 할 일이 뭐가 있느냐"며 당연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올해 우리 학교가 수업과 학생지도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담임 교사에게 수업과 학생생활지도라는 본질적인 소임을 돌려주었으나, 여전히 절반에 달하는 비담임 교사들이 과중한 교무행정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절반의 교원업무 정상화에 그친 셈이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실현 가능한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학교 차원에서 보면, 이는 온전한 교원업무 정상화로 가는 과도기적 선택이다. 최선 안은 아니지만, 차선 안 정도는 된다고 자부한다.

교직원 회의 변화가 '학교자치규정' 이끌어…

또한 우리 학교는 혁신학교로서 교직원 회의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기존 대부분 학교의 교직원 회의는 부장들이 각 부 일정을 전달한 후, 교장·교감으로부터 일방적인 훈화를 듣는 상명하복의 분위기였다. 이름만 '회의'지 사실상 상호 의견 교환이 거의 없어, '회의'라고 부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우리학교는 전달사항은 유인물로 대체하고, 실질적인 회의가 필요한 사항을 의제로 상정하고,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명실상부한 교직원 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일례로 우리 학교는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학교문화를 바꾸기 위해 3월부터 4개월에 거쳐 '학교자치규정'을 만들고 있다. 3주체협의회(교사, 학부모, 학생 동수(同數)로 구성되는 학교자치규정제정위원회)에 제출할 교사 안(案)을 만들기 위해 거의 매주 교직원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사들의 서로 다른 교육 철학이 드러났지만, 수차례 토론을 거치면서 이견(異見)을 좁혀 마침내 최종 교사 안이 마련됐다. 앞으로 3주체 연석회의를 통해 단일한 자치규정을 만드는 일만 남았다.

나에게 '혁신학교'란?

인헌고등학교는 지난해 여름, 교사 83%의 찬성으로 혁신학교를 시작했다. 하지만 올해 새로 부임한 약 20%의 신임 교사뿐 아니라, 기존 교사들 간에도 혁신학교에 대한 상(象)과 추진 속도, 세부적인 절차 등에 대한 입장차가 존재한다.

그동안 토론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혁신학교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회의 분위기와 수차례 논의를 거쳐 단일 안을 마련하는, 지난한 과정을 결과만큼이나 중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교사들도 이런 토론 시간을 구성원 모두가 혁신학교의 의미를 깊이 공유하고, 실천해가자는 의지를 다지고 결의하는 시간으로 여기며 소중하게 생각한다.

내게 혁신학교는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교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다. 자신의 학창시절과 비교해 혁신학교를 보고 '놀랍다'라고 여기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 학교는 이런 곳이어야 했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교육활동들을 인제 와서 몇몇 학교가 '혁신'이란 이름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혁신학교 교사들은 수업과 학교 문화 혁신에 대한 시대의 요구가 절대 적지 않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수업과 학생지도를 잘 하기 위해 익숙해진 일상을 깨는 노력부터 시작하고 있다. 칠판과 분필로 수업하던 교사들이 PPT를 만들고, 전지와 색상지, 역할분담 활동에 쓸 명찰을 들고 수업에 들어간다. 대여섯 명으로 구성된 교사 학습 동아리는 서로의 수업에 들어가 교수 학습 활동을 관찰하고, 녹화한 자료를 다시 보며, 수업에 대한 여러 교사의 제언을 듣는 수업 컨설팅을 하고 있다.

비록 '혁신학교'가 시작에 불과하지만, 더 깊은 신뢰와 존경, 동지 의식을 바탕으로 서로의 마음속 열정을 깨워 많은 교사들이 함께 배우고 실천하는데 동참하길 바란다. 지금보다 더 많은 교사가 자신의 교실 문을 열어 동료 교사를 받아들이고, 수업뿐 아니라 학급의 고민을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그때가 오길 간절히 소망한다.

▲ 인헌고등학교 교사들이 학생에게 보내는 응원 메시지가 '희망나무'에 달려 있다. ⓒ김헌

덧붙이는 말 : 지난 5월, 우리 학교는 학생 전체가 모여 집단토론을 하는 '오픈 스페이스'라는 행사를 진행했다. 그때 동료 교사들이 희망 나무에 '학생 응원 메시지를 달자'고 제안했으나, 진행 실무자로 참여가 저조할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학교의 거의 모든 교사가 동참했고, 개성이 담긴 다양한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미술을 전공할 고 3학생 두 명이 직접 나무를 그리고, 학생회 임원들이 교사들의 응원 메시지를 희망나무에 붙였다.

난 희망나무 앞에서 느낀 그 감동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희망나무 응원 메시지는 결코 학생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교사, 학부모 모두를 격려하고 응원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 나무 앞에 서면 마음이 행복해진다. 내게 이 희망나무는 우리 학교가 혁신학교로 잘 거듭나고 자리 잡길 기원하는 '서낭당 앞 당산나무'이며, 지금 우리 학교 교사들이 눈물로 혁신의 씨앗을 뿌리는 일이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희망과 위로를 주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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