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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에 한번씩 자살…학교는 폭력의 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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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에 한번씩 자살…학교는 폭력의 숙주"

['학교폭력'을 말하다] 다큐멘터리 <학교> 원해수 감독, 활동가 진냥

법원이 대구 고교생 자살 사건의 가해 학생에게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가해 학생은 3년 이상 지속적으로 피해학생을 괴롭힌 것으로 확인됐지만, 혐의 사실 대부분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대구 수성경찰서 이장희 형사과장)
"2009년 4월경부터 2012년 6월 2일 오전까지 A로부터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거나 A군의 가방을 들고 집까지 바래다주는 행위를 강요당했고, 미술용품, 체육복, 축구 골키퍼 장갑을 갈취당하거나 고막이 나가는 상해를 입는 등 28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6월 18일자 방송 보도 요약)


학생 : 선생님, TV 끌까요?
교사 : 뉴스 보고 어떤 생각이 들어요?
학생 : 그냥, 또 한 명이 죽었구나.


10년차 교사인 진냥(가명)의 눈에 학생의 얼굴은 "죽음에 익숙해졌다고 할 만큼 건조해 보였다". 학생들은 누군가 한 명씩 죽을 때마다 "'사람이 죽는 곳에서 내가 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마비된 통각을 일깨울까봐" 스스로를 바싹 옥죄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학생들 사이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죽으면 된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죽음이 선택지가 된 것'이다. 학생들이 '행복하지 않다'며 죽음으로 말하고 있는 현실을 우동기 대구 교육감의 말대로 '전직 대통령 탓'이라고만 비난할 수 있을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12월부터 지금까지 대구·경북 지역에서 자살한 학생만 11명이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례가 뒤늦게 확인되기도 했다. 이런 경우와 투신 후 부상에 그친 경우까지 포함하면 십수 명의 학생들이 스스로를 포기했다. 특히 몇 건의 사건은 대구시내 특정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진냥은 현직 교사인 동시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대구지부 활동가다. 청소년 인권 활동가로서 그는 '진냥'이라는 이름을 쓴다. 활동가 진냥이 보기에, 잇따른 학생 자살은 '쌍용자동차 해고자의 죽음이나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죽음'과 다를 게 없다. 사회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점에서 말이다. 진냥은 지금 원해수 감독과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학교>를 제작 중이다.

원해수 감독은 지난해 2월부터 대구에 머물며 학교폭력 문제를 카메라에 담았다. 원 감독은 우리 사회가 학생 자살 문제의 배경을 삭제한 채 "'가해자가 피해자를 어떻게 괴롭혔는지' 행위 중심으로만 이야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원 감독은 2003년부터 동성애자,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여성, 장애인 활동 문제 등 사회적 쟁점들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지난 10일 두 사람과 함께 한 인터뷰는 활동가 진냥을 위주로 진행됐다. 진냥은 교육 불모지, 대구에 대해 "참담하다"고 전했다. 그는 죽음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수학 공식화'된 사건 처리는 매번 똑같은 결과만을 낳는다고 비판했다. 정작 '사람이 죽는 곳에서 내가 살고 있구나'라고 자각하기 시작한 아이들의 심정을 어른이, 사회가 보듬어 앉지 못하는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소년들이 분노하고, 울 수 있고 폭발해낼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지금 작업하고 있는 다큐멘터리가 그런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편집자주>

ⓒ다큐멘터리 <학교> 예고편 영상 중

"대구는 집단적 패닉 상태"

프레시안 : 먼저, 대구 지역 민심을 알고 싶다. 지난해 12월 20일 대구 중학생 자살 소식이 전해지면서 학교폭력에 따른 학생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다. 당시 대구 분위기는 어땠는가.

진냥 : 중학생이었던 권 모 군의 투신자살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절절한 유서(인터넷 게임 아이템을 키우게 하고, 전깃줄을 목에 걸어 끌고 다니며 부스러기를 먹게 했다는 등)가 공개되면서 말 그대로 참담했다. 당장 대책회의가 잡혔는데, 회의 진행이 안 됐다. 진이 빠졌다. 특히 교육이나 인권 문제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활동가들이었기에 감정적 여파도 더 컸다. 한 3주간은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다. 사실상 집단적 패닉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상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대구가 다른 지역보다 학교폭력 문제에 더 예민한 것 같다. 계속 자극이 있으니까 당연한 일 아니겠나. 올해 1월 아수나로 전국 총회를 대구에서 했는데, 다른 지역에서 온 청소년들이 대구 지역 뉴스를 보더니, 당황해 했다. "다른 지역보다 학교폭력과 관련한 뉴스 빈도가 훨씬 높다"는 것이다. 대구는 확실히 버거워하고 있다.

"문제의 배경에는 눈 감는 언론, 가해자에게만 초점 맞춰"

프레시안 : 원해수 감독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해 지난해 2월부터 현재 대구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본 느낌은?

원해수 : 신문이나 방송 등 미디어들이 '가해자가 피해자를 어떻게 괴롭혔는지', '얼마나 때렸는지'와 같이 행위 중심으로만 이야기하고 있다. 또 사람들 대부분이 가해자는 무조건 나쁜 놈이고, 피해자는 '어떻게 하느냐'는 식의 불쌍한 감정만 갖고 있다.

일이 발생한 데에는 분명히 배경이 있기 마련인데, 사람들이 사건의 배경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는 솔직히 화가 났다. 문제의 본질을 보지 않는 것에 대한 화와 학생들이 죽어 간 슬픔이 공존해 있다. 사실 다큐멘터리 제작 초기에는 그런 감정들이 별로 없었다.

다큐멘터리 제작하면서 주로 탈학교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교란 공간 자체가 사람들이 버티면서 살기에는 힘든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는 온갖 규칙과 제도만으로도 반인권적 공간인데, 학생들을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고 억압하고 짓누르기만 하는 것 같다.

진냥 : 원 감독이 '배경을 보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최근 2일 사건이 가장 안 좋게 풀리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12월 20일 중학생이 죽었을 때는 교육청이 이 문제를 학교 차원에서 이야기하며, 학교장 책임을 촉구했다. 나흘 뒤(지난해 12월 24일), 고등학생이 우울증으로 자살했을 때만 해도 경찰이 학교를 직접 조사하면서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이후 사건이 진행될수록 관심 범위가 더 좁아졌다.

특히 이번 사건은 가해자 한명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게다가 가해자, 피해자의 학교가 다르기 때문에 학교도 책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상황이다. 결국 가해 학생 한 명에게만 책임을 추궁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이와 관련한 고민이나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학교폭력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고 넓어지기보다는 더 좁아지고 삭제되어가는 느낌이다. 정말 안타깝고 속상하다.

▲ 다큐멘터리<학교>를 제작 중인 활동가 진냥(왼쪽)과 원해수 감독(오른쪽) ⓒ프레시안(이명선)

2주에 한 명씩, 선택지가 된 죽음

프레시안 : 최근 6개월 간 언론에 알려진 대구 지역 학생 자살 사건만 해도 11건, 자살 시도까지 포함하면 13건이다. 2주에 한 명씩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셈이다. (사건 당시엔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던 일이 뒤늦게 확인된 경우도 있다. 이를 포함하면, 자살 사건 발생 수치는 더 높아진다. <편집자>)

진냥 : 대구 학생 자살 사건 중 세 건이 대구시 수성구 신매동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에서 발생했다. 그 지역은 대학 진학률이 높은 명문 고등학교가 모여 있어 대구에서는 이곳을 일명 '(대구의) 대치동'이라고 부른다. 첫 자살 사건이 일어난 지난해 12월 20일은 일제고사 날이었다. 입증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자살 이유 중 시험 스트레스도 있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인터뷰 한 사람 중 세 명이 그 지역 사람이기도 하다. 또 축구 동우회 활동을 하며 중학교 때부터 괴롭힘을 당하다 최근 자살한 학생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도 인터뷰했다. 자살한 친구들을 직접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친구의 친구같이,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식이다. 이 사람들이 질문을 받을 때 '죽음'이 훨씬 더 피부에 와 닿지 않겠는가.

지난 2일 자살한 김 모 군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이렇게 얘기했다. "그전까지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 죽음이 뭔가 선택지가 된 거 같다." 이 말을 되돌려보면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다. 사건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 대구·경북 지역 2011년 12월~2012년 6월 중·고생 자살 사례 ⓒ프레시안

'사람이 죽는 곳에서 내가 살고 있구나'

프레시안 : 학생들 사이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죽으면 된다'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인가. 말처럼 큰 충격을 받은 아이들도 있겠지만,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학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진냥 : 한 학생은 "'그냥, 또 한 명이 죽었구나' 정도로만 생각된다"고 말했다. 얼굴에 드러난 표정도 죽음에 익숙해졌다고 할 만큼 건조해 보였다. 반면, 낙엽 같은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학생은 지금 상황이 "되게 어색하다"고 했다. 시험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한 반에서 반 이상의 학생이 '죽고 싶다, 죽어야겠다'라고 하는데, 그때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다가 이제 와서 학생들에게 '죽지 마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는 학생들이 '시험 성적 때문에 죽고 싶다' 같은 압박을 받을수록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을 버티기 위해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오히려 문제를 더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마치 군대에 간 사람들이 군대 인권 침해에 대해서 더 둔감하게 반응하는 것과 같다. 관련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스스로 살아가기가 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명씩 죽어가는 것이 청소년들에게 '사람이 죽는 곳에서 내가 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마비된 통각을 일깨운다고 본다. 물론 이런 이유로 청소년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살을 더 고민하는 사람도 생긴다.

너무 힘들다. 언론도 힘들고, 보는 사람도 힘들고, 청소년도 힘들고, 활동하는 사람도 힘들다. 열심히 활동을 해도 또 사람이 죽는다. 적어도 사람이 죽지는 말아야 하는데, 사람이 죽을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놓친 것에 대한 자괴감이 든다. 이런 마음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22번째 죽음이나,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죽음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누군가를 살리지 못하고 죽게만 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다큐멘터리 <학교> 예고편 영상 중

우동기 교육감 '베르테르 효과'? 사건 회피 꼼수

프레시안 : 지난 5월 2일 우동기 대구 교육감이 YTN 인터뷰에서 "전직 대통령부터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삶의 한 방법으로, 어려움을 피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택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됐다. 우 교육감의 말처럼 대구 지역의 잇따른 학생 자살이 일종의 '베르테르 효과'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진냥 : 우동기 교육감의 그 말에 굉장히 분노하는데, 당시 YTN 기획의도가 '베르테르 효과'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대구 학생들의 계속된 죽음을 '베르테르 효과'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유는 베르테르 효과와 자신의 참상을 깨닫는 것은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심지어 죽음을 걸고 하는, 죽음으로써 (우리 사회 교육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는데 ('베르테르 효과'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죽음을 모독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소년들은 미성숙하고, 독립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사결정을 하기에는 너무 연약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죽는 것까지도 따라 죽는 것으로 이야기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로 학교폭력의 원인, 배경 등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려는 것이다. 배경을 모두 삭제시키고 절단해 내는 일이다. 일련의 사태가 설혹 따라 죽은 것이라면, 따라 죽는 이유도 고민해야 한다. 우동기 교육감이 '청소년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따라서 죽는 것'이라는 말로 문제의 배경을 절단한 채 사건에서 빠져나가려고만 하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만일 학생들이 그저 '따라 죽는 것'이라면 시민들이 이렇게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죽은 사람을 오히려 비웃을 것이다. 누가 봐도 지금의 학교가 청소년들이 못 버틸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분하는 것이다.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는 유명인이나 자신이 모델로 삼고 있던 사람 등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이다. 동조자살(copycat suicide) 또는 모방자살이라고도 한다. <편집자>)

'수학 공식'이 된 학교폭력, '그 후'

프레시안 : 누군가의 자살로 학교폭력 실체가 드러나면 경찰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수사하지만, 학교 내에서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진냥 : 학교에서는 학교폭력 전후라는 개념이 벌과 징계밖에 없다. 학교 게시판에 보면 학교폭력에 대한 게시물이 굉장히 많은데, 내용이 두 가지밖에 없다. '신고하라'는 것과 '신고 당한 사람이 처벌받는다'는 것. 요즘 학교 홈페이지에도 팝업으로 다 뜬다. 학교폭력이 '수학 공식화'되고 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에서 피해자 걱정도 크지만 가해자에 대한 것도 굉장히 안절부절 해한다. 가해자도 굉장히 예민해진다. 물론 가해자에게 필요 이상의 징계, 책임전가 조치는 피해야 하지만, 학교에서는 문제 제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공식적인 프로토콜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이 '학교폭력 매뉴얼'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청에서 생산되고 있다. 말 그대로 도식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 도식화대로 따라가면 더 이상 문제가 커지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의 처리는 그렇게 하더라도 이후에 여러 가지 것들이 만들어지고 살이 붙어나가는데 '이후'라는 것이 전혀 없다.

대구지역은 작년 초에 일반상담교사를 다 없애고, 상담실도 다 '입시상담, 진로상담'으로 바꿨다. 대구교육청이 '상담'의 콘셉트 자체를 다 바꾼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20일 사건이 일어난 이후, 상담교사를 대부분 새로 배치했다. 교육청이 '상담 인력을 배치하겠다'고 했을 때 중·고등학교만 700개에 달하는데, 전문 상담인력이 36명에 불과했다. 문제 제기가 되니까 교육청에서 대학생 등 자원활동가를 배치해 인력을 보충하겠다고 했다. 대학생 자원활동가로 지금 사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발상 자체가 학교폭력 문제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드러내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학교> 예고편 영상 중

'학교에서 사라지는 학생들'

프레시안 : 학생 간 폭력의 경우 '일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집단화·조직화 되어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고들 말한다.

진냥 : 학생 간 폭력의 특수성은 학교를 졸업하면 끝난다는 것이다. 어떤 학교에서 일진이었던 사람이나, 빵 셔틀을 돌던 사람이나 졸업하면 더 이상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 물론 반년에 한번쯤 만날 수는 있지만, 학교 때처럼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즉, 학교를 그만두면 되는데 학생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하고, 못 하고 있다.

알려진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이 굉장히 모범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직장에서 직장 상사가 괴롭히면 '죽어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직장을 옮긴다. 그런데, 학생들은 학교를 그만둘 생각을 못하고 버티다, 버티다 죽는다. 지금의 학교가 얼마나 강고한 곳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학교 때 학교 내 몇몇 친구들이 무서워서 전학 가고 싶었던 적이 있는데, '전학 가고 싶다'고 말했더니 어머니가 '전교 1등 하면 (전학)시켜주겠다'고 했다. 지금 청소년들의 절망감이 그때의 나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학교에서 피하고 싶은 존재가 있는데 학교 밖으로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학교란 '링' 아래로 내려올 수 없다. 학교에서의 삶이 그 학생 삶의 전부이고, 학교를 놓는다는 것은 삶 자체를 놓는 것이니까 학교 안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삶을 놓는 것이다.

프레시안 : 하지만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학교를 그만두면,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는 조금 해결될 수 있어도 사회적인 차원의 문제 해결이나 대안으로 보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진냥 : 일단 스스로 목숨을 버릴 확률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 아닌가. 학교폭력에 시달리거나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이 종종 전학을 택한다. 그런데 전학은 꼬리표처럼 서류에 늘 따라붙는다. 심지어 올해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학교폭력 대책 일환으로 학생 징계 사항을 학생생활지도 기록관리카드에 기록하라고 했다. 학교폭력 문제로 전학을 가면 사실상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학생들이 이미 자퇴를 하거나 대안학교를 가는 식으로 탈학교를 하고 있다.

자살 말고도 학교에서 사라지는 학생들이 많다. 한해에 2~3만 명이 공교육에서 이탈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학교까지 의무 교육이기 때문에 2~3만 명이라는 수치가 공식적 통계로 추산된 것은 아니다.(비합법적인 방법으로 빠지는 경우도 많다.) 그 중에는 자아실현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도 있지만, 소위 '학교'를 부정하는 학교가 더 많이 설치되고 있는 것을 보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학교를 나오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학교가 사람이 버티지 못하는 공간이 되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은 2011년 한 해 동안 학업을 그만둔 초·중·고교생이 7만6489명이라고 밝혔다. 고등학생의 경우는 2008년부터 학업 중단자 수가 꾸준히 늘어 2011년에만 3만8787명이 학교를 떠났다. 하루 평균 106명꼴이다. <편집자>)

'학생'으로 획일화된 정체성, 개성과 다양성은 실종

프레시안 : 학교폭력 문제의 원인에 대해 많은 분이 '관계'를 지적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폭력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 당국의 대책이나 대안에는 '관계'가 배제된 채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진냥 : 학교에서의 삶이 그 사람 삶의 전체인 것이 문제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직장에서의 삶, 여성으로서의 삶 등 삶의 여러 다양한 면이 있지만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청소년한테는 학생의 정체성밖에 없다. 심지어 요즘에는 가정 내 가족관계도 부족해지다 보니, 누구의 아들, 누구의 동생이라는 정체성도 없다. 관계라는 게 있어야 그 관계에 비롯해서 자신의 정체성이 생기는데, 청소년들은 학교 말고는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다. 그래서 학교에서 자기가 파워 있는 사람이 되거나, 짓밟히는 사람이 됐을 때 자신의 삶 전체가 그렇게 느껴진다. 딱히 다른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 부분이 학생 간 폭력에서 또는 학교폭력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담시간을 늘리든 예체능 수업이 늘어나든 모든 것이 학교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한 사람 다양하고 풍부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다양성이 본인에게 존재해야 한다. 이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개성'이다. 그런데 한 사람에서 '학생'이라는 정체성만 계속 부각되어 있는 상황에서 학교폭력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 사람에게 좀 더 다른 삶, 학교 밖의 다른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다면 (문제 해결법이라고)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학교 안에 있는 사람으로 계속 사고하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 부분을 놓치는 것 아닐까.

ⓒ다큐멘터리 <학교> 예고편 영상 중

"우리는 학교에서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프레시안 : 교육 주체, 구성원이라고 하면 교사-학부모-학생을 꼽는다. 그러나 교사와 학부모로 무게중심이 많이 쏠려 있고, 학생들은 늘 배제되어 있다. 학생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 안에서 그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자신의 정체성도 확고해지지 않겠는가.

진냥 : 프랑스 교육을 다룬 <클래스>(로랑 캉테 감독 / 2008)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는데, 학생의 성적을 내는 과정이 우리와 많이 달랐다. 여러 과목의 선생님들이 모여 회의처럼 진행이 되는데, 학생의 시험 성적뿐 아니라 다른 수업에서의 자세와 태도까지 통찰력 있게 평가했다. 이것만으로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평가활동이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학생이 평가위원으로 참석해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시험과 성적에 관해서는 학생이 절대 관여할 수 없다. 교사만의 불가침 영역인 셈이다. 초등학교 교사이기 때문에 학생들과 공간을 같이 쓰다 보니, 학생들이 교탁 위 물건에 절대 손을 못 대게 한다. 성적을 내고 있을 수도 있고, 시험문제를 출제 중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선까지는 오지 말아라'라고 주의를 주곤 한다. 초등학교지만, 학생들에 대한 평가가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업무이다. 그래서 성적과 관련해서는 학생은 늘 멀리해야 하는 대상이었는데, 영화에서는 학생이 성적을 평가하는 데 주요한 구성원이었다. 정말 센세이션했다.

교사들이 "이 학생은 수학 점수를 'B'를 줘야겠다"라고 하자, 학생이 "그 친구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다. 자기가 보기에는 'A제로' 정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수학 점수만 보면 B일수 있지만, 노력의 정도로 봤을 때 A제로를 받을 만큼 노력했다는 것이었다.

두 가지 면에서 인상적이었는데, 하나는 우리 교육에서도 상호 평가라든지 자기 평가를 반영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입시체제가 강고하다 보니 실제 평가에는 반영이 잘 안 된다. 그런데 프랑스에선 서로 잘 아는 사람들끼리 실제 상호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평가'라는 교사의 가장 고유한 업무에도 학생의 참여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생활에도 학생 참여권이 없다. 학교폭력이 발생하고, 학내 갈등이 일어났을 때 사건 해결의 접근법은 철저히 교사 권력 중심이다. 학생의 발언권과 참여권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그런데 누가 그 문제를 가장 많이 알고, 결국 그 문제를 고쳐야 하는 당사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한다면, 학생 참여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사 권력이 문제가 아니라, 학생에게 권력이 주어지는 게 관건이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이런 말을 많이 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발언권이 없다.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학교폭력 문제 해결법은 바로 이 말이라고 생각한다. 발언권을 주고, 귀 기울여 주는 것. 엄기호 씨(<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저자,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가 "학생들은 학교 구성원이긴 하지만 '성원권'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라고 말하는데, 그게 (문제 해결의) 핵심 아닐까.

어른의 분노보다는 아이들의 분노가 먼저

프레시안 : 교사로, 또 활동가로, 이번에는 다큐멘터리 작가로 학생들을 계속 만나고 있다. 부모 중에는 여전히 자식인 학생과의 대화가 가장 어렵다고 호소하는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화가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청소년들과 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진냥 : 지난해 반 학생(당시 초등학교 6학년, 현재는 중학생)을 인터뷰했는데 학교에서 매일 맞는다고 털어놨다. 오히려 인터뷰 중에는 안 울다가 인터뷰가 끝난 뒤, 왈칵 울음을 쏟아냈다. '네가 뭘 잘 못 했다고, 매일 맞느냐'라고 물었더니 계속해서 '내가 잘못해서 맞았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화를 냈다. 오히려 피해자가 담임교사인 나에게 화를 내야 하는데, 내가 맞은 피해자에게 화를 낸 것이다.

우리가 학교폭력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그날의 나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화내며 가해자든, 피해자든 '도대체 너희는 뭐가 문제냐'라고 소리치고, '너희 좀 잘할 수 없느냐'라고 질책한다. 부서지고, 상처받고, 죽어가는 사람은 학생들인데 밖에서 화내고 밖에서 참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그들이 얘기할 수 있는 공간도 없고, 잘 못 한 것도 결국은 그들이다.

활동가로 상담할 때도 보호자에게 당부한다. 보호자가 감정을 내세우면 당사자가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죄책감만 들 것이다. 학생이 울도록 해주고, 학생 앞에서 울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정 울고 싶으면, 저에게 오세요'라고 말한다.

당사자인 학생이 아닌 우리에게 지금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소위 어른들이라면 감정을 추스르고, 덜 참담해하고, 덜 분노하고, 안에서 당하는 청소년이 분노하고, 울 수 있고 폭발해낼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는 게 필요하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다큐멘터리가 그런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독립다큐멘터리 <학교>는 '부서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학교에 사람이 살고 있지만, 그들이 부서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원해수 감독은 "학교폭력이 과거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형태가 다르다"며 답답해했다. 그래서 <학교>는 학교폭력을 둘러싼 오해와 착각들을 학생들의 인터뷰로 담아낼 예정이다. 시민 공동제작 방식으로 내년 2월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 다큐멘터리 <학교> 포스터 ⓒ신비체험

프레시안 : <학교>는 어떤 문제의식에서 만들게 됐나.

원해수 : 대구 장애인 단체 활동을 기록하다 학교폭력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 지난해 2월부터 학생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학교'라는 공간을 주목하게 됐다.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의 '지금의 학교가 폭력을 더 확장시킨다'라는 말처럼, 지금의 학교가 없으면 학교폭력은 이렇게 확산되지도 않고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과연 학교를 졸업하면 우리 삶은 좀 나아지나'라는 생각이 있다. 대한민국 굉장히 폭력적인 사회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로 강정도 그렇고, 평택 쌍용자동차에서 노동자가 죽어나갈 때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대한민국, 학교라는 거대한 숲은 제대로 안 보고, 나무만 보니까 문제가 해결은 되지 않고 이야기가 쳇바퀴 돌 듯 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10~20분 정도 짧은 영상만 만들었는데, 이번엔 30~40분 중편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용에 따른 무겁고 우울함까지 겹쳐 완성까지 개인적으로 심신이 복잡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20분 미만이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학생들을 만날수록 '학교폭력이 구조적인 문제구나'라는 생각에 '학교라는 숲을 좀 더 잘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프레시안 : <학교>의 부제에 '부서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되어 있다. 어떤 의미인가?

진냥 : 학교가 '폭력의 숙주'라는 말을 내포하고 있다. 학교가 부서지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배출해내는 곳이다. 그래서 이 사회 전체가 부서진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사회가 폭력에 둔감하고, 평상을 유지하며 잘 살 수 있는 구조가 된 것 같다. 다른 말로 하면, 학교가 인큐베이터인 셈이다. 부서지는 사람들을 배출해내는 공장이 될 수도 있고. 지금의 학교는 유하 시인의 시 "학교에서 배운 것"(시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중)에 나오는 말처럼 '침묵하는 법, 비교하는 법, 굴복시키는 법'만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시민 공동제작 방식으로 모금 활동에 나선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시민들 참여는 어떤가.

진냥 : 만들어지지 않은 영상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이 무모한 일인데,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준다. 학교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고민이나 생각을 들을 때마다 '같이 만드는 공동 작업이구나'라는 생각에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지난 2일 사건이 월요일인 4일 날 크게 보도되면서 일반인들의 참여가 늘었다. 한 분은 "할 게 이것밖에 없다"며 "나는 빠지고 (제작자들을) 가혹한 길로 내모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제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말과 돈의 무게, 그리고 죽은 친구의 여파라서 정말 무겁게 다가온다.

<학교>제작에 800만 원의 예산이 필요한데, 500만 원을 웹을 통해 모으고자 한다. 5월 말부터 시작했고, 현재 서른 명 정도가 참여해 약 100만 원이 모였다. 후원해주는 모든 분의 이름을 엔딩크레딧과 DVD에 수록할 예정이다. (<학교> 블로그
http://brokenpeople.tistory.com)

학교에서 배운 것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아마 그랬을 거야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
그 중에서도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런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유하,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중에서)
- '학교폭력'을 말하다

"'일진' 솎아내면 학교폭력 해결?...아무도 안 믿는 거짓말"
"폭력과 섹스 말고 놀 줄 모르는 아이들, 방법은..."
"내 아이 인생설계가 아이를 망친다"
"교육부의 '밥상머리 교육'? 밥 먹다 체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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