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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통장은 마이너스, 아이의 웃음 통장은 플러스"

[공교육의 새 활로, '혁신학교'·⑤] "아이들이 너무나 행복해해요"

'혁신학교'는 무너져가는 공교육을 되살리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학교다. 획일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높여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취지다.

혁신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학생 중심'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교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입되던 강의식 교육이 아닌 교사와 학생 간 상호협력을 통해 수업이 진행된다. 토론과 프로젝트 수업, 모둠 수업 등이 그것이다.

혁신학교는 기본적으로 교장과 교사에게 학교 운영 및 교과 과정의 자율권을 부여해 교육 주체의 자발성을 통한 다양화·특성화를 꾀하고 있다. 과거 위로부터 내려오던 교육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혁신학교 시행 1년, 변화의 바람이 곳곳에서 불고 있다. 강남 학부모가 다른 지역 혁신학교 입학을 위해 줄을 서고, 혁신학교 인근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는 등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한 마을 공동체 역시 되살아나고 있다. 현재 서울에만 60여 개의 혁신학교가 운영 또는 지정을 기다리고 있다.

<프레시안>은 두 차례에 걸쳐 우리 교육 현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직접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혁신학교를 경험한 '학생-학부모-교사'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공교육의 새 활로, '혁신학교']

- 학교 수업시간에 맨유를 수학적으로 분석한다고?
- "1년에 방학이 4번인 학교, 가능합니다"

안녕하세요?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40대 가장입니다. 저희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고 서울형 혁신초등학교인 서울 구로구 천왕동에 위치한 천왕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저도 처음 부모가 되었을 때 아이가 건강하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했습니다. 그렇지만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가면서 길거리 간판만 보고도 한글을 깨우쳤다는 옆집 아이의 영재성이 왜 우리 아이에게는 안 보이는지, '혹시나…'하고 기대하다가도, 여러 경로로 확인되는 아들 녀석의 범재성(?)에 경쟁과 순위로 평가되는 학교란 공간에서 상처 안 받고 잘 자랄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평범한 아빠이지요.

'우리 아이도 저런 학교에 보낼 수 없을까?'

저희 부부는 아이를 키우면서 학습을 강요하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을 지지하는 부모가 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에 어린이집에서 7살 때부터 시작하는 한글 공부 외에는 별다른 학습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도 학습보다는 정서안정 및 다양한 체험과 활동을 통한 건강한 성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라 아이도 즐겁게 생활하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이 다가올 무렵 아내는 어린이집 엄마들과 함께 혁신학교인 남한산초등학교 관련 방송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저런 학교에 보낼 수 없는 우리의 처지(?)를 한탄하더니 주위 대안학교 설명회에 가 보고 싶어 하더군요. 아내의 고민이 저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인 삶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부모가 되어도 여전히 행복의 기준이 성적이라고 말하고 평가하는, 지독하게 일관성 있는 학교를 내 아이에게 겪게 하기는 싫은 부모 마음, 다른 대안들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 첫아이를 학교에 보낸다는 불안함 등 아내의 마음이 읽혀졌습니다. 그러나 그 고민 위로 현실적 이유를 덮어버린 채 아이는 1학년이 되었습니다.

'학교는 왜 다녀야 하냐', '공부를 왜 해야 하냐'라고 자주 묻긴 했지만, 부모가 보기엔 결석할 정도는 아닌 미열을 핑계로 결석 2번 한 걸 제외한다면 아이는 학교생활을 무난히 잘해내는 편이였습니다. 자기 표현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걱정이었지만, 저도 어렸을 때 그랬기 때문에 크게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학교 자체를 즐거워하지는 않는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즈음 우리 가족은 혁신학교인 천왕초등학교 개교 소식을 듣고 개교일에 맞춰 재빨리 이사를 하는 민첩함을 보입니다. 멀리 이사 가지 않아도 되는 구로 지역에 혁신초등학교가 개교한 덕이고, 결국 교육감 선거 때 투표장으로 달려간 선거의 힘! 덕이었죠.

▲ 천왕초등학교 개교식 날, 부모도 한마디 ⓒ오인환

"집 통장은 마이너스, 아이의 웃음 통장은 플러스"

2학기 시작과 더불어 혁신학교에 전학 간 아이는 블록 단위로 이루어지는 수업과 수업 중간에 주어지는 중간놀이 시간 30분을 무척이나 신기하게 여기더군요. 아이는 이전에 살던 동네 친구들이나 친척들을 보면 '우리학교는 쉬는 시간이 30분이고 운동장에서 놀 수 있는 좋은 학교'라며 자랑하곤 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무척이나 부러워하지요.

저는 다른 학교와 같은 쉬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줬을 뿐, 뭐가 다를까 싶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와 친구들은 곤충잡기나 공놀이를 하면서 '뛰어노는 맛'을 공식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학교가 무척이나 신기했던가 봅니다. 선생님들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놀이시간을 줘도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당황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놀이도 가르쳐주고, 함께 놀아주는 것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천왕초등학교 개교식 날, 학생들의 플래시몹 ⓒ오인환

현재 2학년의 경우 '주제통합수업'으로 예전 교과서 목차 순으로 진행되던 방식이 아닌 프로젝트식 으로 진행되는 수업을 합니다. 이번 공개수업을 참관한 저의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막연했던 '주제통합수업'이 이해가 되더군요. 아이는 5월 한 달 동안 '우리 동네'란 주제로 지역을 탐방하면서 우리 지역 장·단점을 파악하고, 학교 뒤에 위치한 천왕산에 현장학습도 다녀와 나이테 세는 법과 천왕산에서 자라는 식물 종류도 알아보고, 이웃인 경비 아저씨를 인터뷰해서 일하시면서 힘든 점도 여쭙고 하더군요.

아이가 이렇게 발품을 팔더니, 발표회 때 연극, 동시, 노래로 그동안 동네를 탐색한 결과물들을 부모들에게 소개했습니다. 교실 뒤 벽면에 우리 동네 지도를 작은 벤치까지 그린 아이들은 그동안 자기도 모르게 동네를 돌면서 공간 지각력를, 경비 아저씨를 통해 우리의 달콤한 휴식이 누군가의 노동의 대가라는 것을, 발표회 준비과정을 통해 친구들과의 협력을 몸으로 배웠던 겁니다.

아내는 학교 프로그램 중 '감성놀이마당'이란 프로그램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합니다. 문화나 예술을 생활 속에서 느끼고 익히게 해서 감수성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으로 3, 4학년의 경우 음악 시간에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고, 창의 음악이나 조소, 목공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학년별로 운영하여, 문화나 예술이란 것은 '커다란 주택 잔디마당에 드레스 입은 부잣집 아이가 켜는 악기인 바이올린을 많은 돈을 내고 배워야 키워진다'고 생각했던 우리 세대에겐 참 신선하고 부러운 활동이기도 합니다.

1학년 첫 학부모 상담에서 3시간 동안 우리 부부를 취조(?)하셨던 아이의 선생님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3시간 취조(학부모 상담)결과 외동이인 아이의 외로움을 줄여주라는 말씀이 힘이 되어 아내는 현재 휴직을 하고, 아이의 유년기 기억을 풍요롭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 집 통장은 마이너스를 그리고 있지만, 아이의 웃음 통장은 플러스로 커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시대의 공부 방식은 달라야

아이는 이제 '학교는 왜 다녀야 하냐', '공부를 왜 해야 하냐' 고 묻지 않습니다. 대신 놀러다니느라 새까매진 얼굴로 '더 놀아도 되는지',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와서 놀아도 되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너무 많이 하는 건 자기랑 안 맞는다며 대학은 가지 않겠다고 스스로 진로선택까지 했습니다. 공부는 고등학교 때 제일 많이 한다고 했더니, 그럼 고등학교도 가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직업 선택의 제약이 많을 것이라고 하니 "고~뤠에?" 하면서 거실 바닥이 뚫어져라 딱지를 칩니다. 그 순간 제 마음속은 제가 딱지가 되고, 거실바닥은 아들 녀석이 됩니다.

확고한 신념이 이렇게 종종 흔들립니다. 공부 때문에 불안한 주변 부모님들은 이런저런 학원에 보내시기도 합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생각하면 '학습하는 태도나 습관이라도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혁신학교가 이제 막 시작을 하는 단계라 이런 수업방식과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향후 이 아이들이 자랐을 때 어떤 결과물로 평가될지 저 또한 궁금합니다. 학교운영에 있어 학부모들의 의견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의사소통도 많이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확실한 건 아이들이 너무나 행복해한다는 겁니다. 성적순으로 줄세우기식 공부에 상처입지 않고 맘껏 놀듯이 공부하니까요. 예전 먹을 게 없어 분식을 장려했던 시절의 공부 방식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생산지 이력추적까지 해서 골라 먹는 시대의 공부 방식은 좀 달라야 하고, 상상 그 이상의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 미래는 일제고사 같은 지필평가 방식은 더 이상 좋은 대안이 되기 어려울 시대가 아닐까, 다시 생각을 다집니다.

얼마 전, 아들 녀석이 미국 친척집에 가서 학교에 나오지 않는 친구 걱정을 하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 학교 다니면 행운아인데…. 빨리 오지."

학습의 기준이 다를 뿐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 논어의 첫 편 '학이'에 나오는 문장으로'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더 많이 쓰인다. 뜻은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이다)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고민하시는 선생님과 그 양식을 먹고 자라는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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