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부터 '행복한 학교 올레'를 시작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달 2일 트위터(@nohyunkwak)에 남긴 글이다. 곽 교육감은 "비교와 경쟁에 기반한 공교육"을 앙시앵 레짐(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의 '구체제')으로 표현하며, 혁신교육을 강조했다.
곽 교육감이 말하는 혁신교육의 바탕은 '혁신학교'다. 서울 혁신학교는 지난해 29곳에서 2012년 현재 59곳으로 늘어났다. 학교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근거로 새로운 교육 모델을 만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빠른 확장세다. 곽 교육감이 3월, 학기 시작과 함께 '행복한 학교 올레' 첫 순례지로 혁신학교를 탐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지난달 22일 혁신학교인 '북서울중학교'(서울시 도봉구 도봉동 소재) 수업을 참관했다. ⓒ뉴시스 |
'행복한 학교 올레' 첫 순례지인 서울 강동구 강명초등학교는 혁신학교 전환 3개월 만에 한 학생의 '틱(tic)장애'가 없어져 화제가 된 곳이다. 강명초는 지난해 혁신학교로 전환하면서 애국조회 대신 '감각을 열고 몸을 움직이는 교육'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수업은 80분으로 묶어 '블록'으로 운영하고, 쉬는 시간은 30분으로 늘려 학습과 놀이를 병행했다. 그 결과, 아이들의 집중력은 향상됐고 표정 또한 밝아졌다. 우연일 수 있지만, 틱 장애가 없어진 것도(호르몬 이상이나 스트레스 같은 심리적 요인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기존 방식을 과감히 버린 강명초만의 교육법 때문이라는 평가다. '혁신학교'는 이처럼 학교의 자율성에 우선한다. 교사들이 '무엇을 혁신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토론해 수업에 반영하는 것이다.
출범 초기, 일선 교육 현장에서 하나의 실험으로 여겨졌던 서울형 혁신학교.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조차 "일부 학교가 초기 단계에서 무엇을 혁신할지 합의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렇게 1년여, 곽 교육감은 "서울 교육의 봄 길, 함께 떠나자"고 말한다. 과연 '혁신학교'라는 이름으로 우리 교육에도 봄이 온 걸까.
Ⅰ. 혁신학교, 깃발을 꽂다 : 경기도 혁신학교
기존 학교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2006년 2월 교육인적자원부는 낙후지역, 저소득층, 소외계층의 교육 격차(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공영형 혁신학교(개방형 자율학교)'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기존 틀을 유지하면서도 학교 운영 주체를 대학, 민간단체, 공모 교장 등에 개방하고 학교 교육력 극대화를 위해 지역사회와의 유기적 연계를 도모하겠다는 것이었다.
'개방성'을 강조한 공영형 혁신학교는 2009년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당선으로 현실화됐다. '기피' 학교를 '선호' 학교로 만들고 학급당 인원수를 25명 이내로 낮춰 교육의 질을 높이자며, 공약으로 '혁신학교'를 내세운 것. 당선 직후인 4월 김 교육감은 혁신학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9월 남한산초등학교와 덕양중학교 등 13곳을 혁신학교로 지정했다.
▲ 올 3월 남한산초등학교 입학식 모습. 현재 총 167명의 학생들이 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한때 폐교 직전까지 갔었으나, 지금은 입학 때마다 정원 초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남한산초등학교 홈페이지(www.namhansan.es.kr)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 안에 위치한 남한산초등학교는 1999년 전교생이 27명으로 폐교 위기에 놓였던 학교다. 하지만 2000년 남한산초 살리기 추진위가 마련돼 지금은 '대안적 공립학교'의 상징이 됐다.
황영동 남한산초등학교 교무주임은 이 학교의 성공 비결로 먼저 "교장, 교사, 학부모, 학생 등을 모두 포함하는 학교 교육공동체 형성"을 꼽았다. "교육의 주체들이 만나 교육에 참여함으로써 소통이 가능해지고 진정성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또 황 교육주임은 기존의 획일적인 교과과정 대신 지역 특성에 맞는 새로운 교육과정과 커리큘럼을 편성한 것이 주요했다고 자평했다. 획일적인 기존 교육의 문제점을 보완하면서도 그 동네 지역 아이들이 다니는 공립학교인 만큼 지역사회와 연계한 수업을 진행한 것이다.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뛰노는 것이 금지되고, 체벌이 공공연하게 이뤄지며, 교사들조차 전근 내신을 써서 떠나려고 했던 덕양중학교는 2008년 내부형 공모제를 통해 평교사가 교장으로 선출되고, 2009년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 달라졌다.
덕양중은 2009년 2학기부터 자발적인 교사 학습공동체를 구성해 운영했다. 교사들이 관리자의 지시나 제안 없이도 자발적으로 학교 발전을 위한 기획안을 내고 실행에 옮겼다. 이는 다시 2011년 1학기 '배움의 공동체'로 확대됐고, 주제-탐구-표현을 통해 대화하는 교육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매주 정기적인 공개수업과 연구회의를 통해 동료 교사들뿐 아니라, 지역사회와도 교육혁신을 위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수업도 기존 교과서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도덕 시간에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하고, 수학 시간에는 FC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기사를 싣는 신문을 만드는 식이다.
현재 경기도에는 전체 학교의 5.7%에 해당하는 123개의 혁신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경기도 교육청은 '혁신학교 확대를 통한 공교육 혁신', '무상급식에서 무상교육까지 보편적 교육복지' 등을 경기교육시책으로 선정, 올해는 교사 잡무 제로화가 목표다. 2016년까지 '대한민국 희망, 창의지성교육'을 중심으로 한 경기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한 상태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지난 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혁신학교는 일반학교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을 교육주체들이 스스로 찾아서 해결하고 새로운 미래 가치를 교육에 담아보자는 것"이라며 "혁신의 핵심은 교육방식을 경쟁 중심에서 협동과 협력 중심으로 바꿔 학생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제대로 키워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Ⅱ. 혁신학교, 바람을 타다 : 서울 혁신학교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MB 특권교육 · 공정택 비리교육 아웃(out)'을 내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당선됐다. '친환경 무상급식'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곽 교육감은 당시 연임에 성공한 오세훈 서울시장과도 부딪히는 상황이었다. 당선 직후, 곽 교육감은 "불행한 교육을 바꿔야 한다"며 "극한까지 몰고 온 낡은 교육체제를 이제 박물관 보낼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혁신학교 바람은 경기도에 이어 서울에 상륙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최근 인터뷰에서 "(혁신학교는) 공교육의 새 표준을 정립하려는 것이지 대안적인 학교 몇 개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며 "보편적 모델로 일반학교가 이 수준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의 혁신학교다"라고 강조했다.(교육전문 격월간지 <민들레> 80호 "대화_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게 듣는다" 중) 처치곤란 문제투성이가 된 교육 현장을 혁신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혁신학교'라는 말이다.
서울 혁신학교는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학교 △온전한 성장을 꿈꾸는 학교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신나는 학교 △ 성장과 발달의 과정을 평가하는 학교 △ 인권이 존중되는 평화로운 학교 △ 지역사회와 교류하는 돌봄과 배려의 학교를 추구한다. 이를 통해 학교 운영, 교육과정, 수업, 학생평가, 생활지도, 교육복지의 혁신을 이끈다는 계획이다.
① 학교 운영 혁신 사례 "수업 말고는 신경 쓸 게 없어졌어요." 잡무를 없애고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학교 운영 혁신을 이룬 상원초등학교는 교장이 갖고 있던 교육과정과 예산에 대한 권한을 각 학년으로 넘겨 학교운영 분권화를 시작했다. 외국에서는 이미 다양하게 시도된 학교 운영 분권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원초가 처음이다. 특히 상원초는 우리 실정에 맞춰 학년별 작은 학교를 만들고 행정업무 전담팀을 꾸렸다. 평교사 출신 교장 1호인 이용환 교장이 민주적인 리더쉽으로 권한을 나눈 결과다. ② 교육 과정 혁신 사례 "암기식 공부는 이제 그만! 이런 공부법 어때요?" 삼각산고등학교는 한 가지 주제를 여러 가지 관점으로 배우는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존 교육과정이 '실생활과 분리된 교육'이었다면, '프로젝트 수업'은 학생생활과 연계된 '통합' 교육 과정이다. 기후변화라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9개 과목 교사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다. 이런 수업은 동아리 활동으로도 이어져 김강희 학생은 축제 때 '기후변화 보드게임'을 선보이기도 했다. ③ 수업 혁신 사례 "친구 얼굴 보면서 스스로 배우죠." 모두가 '참여'하는 특별한 수업으로 수업 혁신을 이룬 학교도 있다. 삼정중학교는 가르치는 교사가 아닌, 배우는 교사를 지향한다. 교사가 문제 풀이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네가 어떻게 그 문제를 풀었는지 내게 가르쳐줄래?"라며 학생에게 마음을 열고 접근한다. 교사는 문제를 주는 역할에만 그치고, 문제 해결은 마주앉은 학생들에게 달려 있다. 학생 간 의견 교환이 늘면서 다른 친구에 대한 여유도 생겼다. 왕따도 사라졌다. ④ 학생평가 혁신 사례 "배운 대로 나오는데 학원은 왜 가죠?" 모둠별 수업으로 학생평가 혁신을 이룬 은빛초등학교는 숙제가 별로 없는 대신 평가가 많다. 학생들이 혼자 하는 숙제보다는 수업시간에 배운 걸 친구들과 나누다 보니, 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수업과 평가 사이의 원활한 피드백으로 학생 수준에 맞는 맞춤형 수업이 가능해졌다. 지난해 은빛초로 전학 온 김승현 군은 "시험은 더 어려워졌는데 학원은 안 다녀도 된다"고 말했다. ⑤ 생활지도 혁신 사례 "스스로 한 약속이니까 꼭 지키죠." '교칙이 없는 학교'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선사고등학교에는 교칙 대신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스스로 정한 '생활협약'이 있다. 학생회회의, 학부모회, 교사협의회가 중심이 된 3주체 생활협약위원회를 중심으로 규칙을 만들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특히 '학생에게 자유를 주면 비행이 늘어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 크게 작용했다. 강요한 규칙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탈과 반항의 욕구가 줄어들었다. 반면, 흡연·폭력·성폭력·부정행위 등 8개 사안을 어겼을 때에는 강력한 처벌이 뒤따른다. 이 역시 학생들 스스로 만든 약속이다. ⑥ 교육복지 혁신 사례 "학교니까 모두 네 편이야" 서울 외곽 서민층 밀집지역에 위치한 북서울중의 혁신은 저소득층 아이들의 학습의욕과 자아 존중감을 높이는 데 있다. 복지사가 직접 북서울중학교와 연계해 '아침냠냠'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출근하기 바쁜 맞벌이 부부와 한부모 가정 등이 많아 아침을 거르기 일쑤인 아이들을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돌본 것이다. 한숙희 3학년 학년부장이 "교육복지와 수업 혁신은 따로따로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다. |
이처럼 서울 혁신학교는 학교 상황마다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개별 학교의 변화가 서울의 교육을 바꾸고, 우리나라 공교육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에 기인한다. 혁신학교는 무엇보다 교육의 주체인 학생-교사-학부모의 자발적 참여가 활발하다. 끊임없는 토론과 협의를 통해 학교생활에 적용하고, 비판과 평가를 동반한다. 이를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최대 2억 원까지 재정지원을 한다. 또 교사들의 자율권을 대폭 확대한다. 다만 교육청은 지시와 간섭을 거의 하지 않는다. 교육청이 교육 혁신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위해 지원기관으로서의 최소한의 역할만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남에서 최초로 혁신학교로 지정된 서초중학교 김승희 연구기획부장은 "학교에서 지난해 하반기처럼 많이 웃어본 적이 없다"며 "이제 막 혁신학교를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학교 운영경험이 정체된 학교에 활력을 불어넣고, 동료 교사 간 협력과 유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바람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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