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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 파괴되던 날, 나는 비례대표제를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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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 파괴되던 날, 나는 비례대표제를 고민했다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나는 왜 지금 구럼비 바위 앞이 아닌 책상 앞에 앉아 비례대표제 자료를 읽고 있을까. 내게 비례대표제 확대 운동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구럼비에 발파가 시작되었던 7일 하루 종일 나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구럼비 바위를 지키는 것과 비례대표제 확대가 무슨 관계가 있기에 평화활동가였던 내가 구럼비 바위가 파괴되던 내내 구럼비 바위 앞이 아닌 책상 앞에 앉아 비례대표제 공부모임을 준비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구럼비 바위를 살리기 위한 전략이 아닌 비례대표제 확대를 위한 운동전략을 친구와 머리를 맞대며 짜고 있었을까. 그것은 구럼비가 상징하는 평화와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에 비례대표제 확대, 더 나아가 독일식 정당명부제와 같은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로의 개혁이 절심함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날 하루 트위터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강정을 죽이지 마라,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는 "DKKK, Don't kill Kangjung Kurumbi"메시지와 인증샷으로 가득 찼다. 야당의 정치인들과 시민들은 새벽 비행기를 타고 강정마을으로 뛰어가 연좌 시위를 하고, 제주지사와 제주도의회 의장이 공사 일시 중단을 요구하는 등 강정을 살리기 위해 세상은 매우 분주히 움직였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오전 11시 23분, 오후 4시, 오후 4시 20분, 오후 4시 47분, 오후 5시 3분, 5시 17분 총 6번의 발파가 있었고, DKKK를 간절히 소원하던 사람들의 마음도 따라 무너졌다. 그렇게 국가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소중한 유산인 구럼비가 오히려 국가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국가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라는 저항 섞인 물음들을 다시 트위터에 토해내기 시작했다.

▲7일 저녁 7시 누리꾼들은 시민단체 회원들과 함께 정부의 구럼비 해안 발파 공사 강행을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너무 똑같다.' 구럼비 발파 현장으로 달려가는 수많은 시민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이들의 애절한 외침.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공권력의 일방통행. 그리고 시민들의 절망과 분노, 어제의 이 분주했던 풍경이 한미FTA 반대 집회, 4대강 사업 반대 집회,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복직 촛불집회, 삼성반도체 사망노동자 추모제, 용산참사 현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평택 대추리 등 장소와 시기와 현장과 참여자의 내용만 다를 뿐, 마치 한 사건처럼 내 머릿속에 동일하게 각인돼 오기 시작했다. 그때에 일었던 마음의 분노와 절망의 순서까지도 너무나 동일하게 말이다.

그러면서 만약 제주도가 군사적 요충지가 아닌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국회 안에 들어가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한미FTA로 인해 생계의 문제가 위협받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 있었다면, 환경을 파괴하는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 있었다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삼성반도체 사망노동자 가족들이 국회에 들어가 있었다면, 용산참사 현장에서 가족들을 잃은 유가족들과 강제퇴거의 위협의 시달리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 있었다면, 자기 아이들에게 위험한 미국산 쇠고기 대신 안전한 쇠고기를 먹이고 싶은 어머니들이 국회에 들어가 있었다면, 그래서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해당 정책들이 입안되는 과정에 반영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았다. 필연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지금과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실제 정책에 반영되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던 것일까?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 단 한 가지를 꼽으라면 이 문제를 자기 것으로 끌어안고 매달리는 정치세력이 국회 내 들어가 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소수였기 때문일까. 비단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당장 구럼비만 해도 그렇다.

제주 해군기지 주요 일지를 보면 2007년 8월에 제주 유권자 1050명 중 725명이 참여한 찬반 비밀투표에서 94%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를 했고, 2011년에는 112개 시민, 인권, 평화, 종교 단체들이 연대체를 구성하여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막기 위한 국내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제주 해군기지 반대 여론은 오히려 다수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해군기지 건설은 강행되어 온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핵심은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다수의 목소리' 대신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소수의 목소리'만이 국회에 가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치 다른 사안들과 동일하게 말이다.

특정 그룹의 목소리가 과소대표되고, 특정 그룹의 목소리가 과대대표되는 현상을 방치한 결과가 구럼비 바위의 파괴라는 결과로 돌아올 줄은, 한미FTA 비준 통과로 돌아올 줄은, 4대강 사업 강행으로 인한 환경 파괴로 돌아올 줄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끝 모를 죽음의 행렬로 이어질 줄은, 용산참사의 비극으로 이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그리고 그 핵심 기저에 현재의 '소선거구 1위 대표제'가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인 줄도 미처 몰랐다.

그래서 구럼비 해안에 발파가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올수록, 1차, 2차, 3차, 4차, 5차, 그리고 6차 발파가 진행된다는 소식이 들려올수록 특정 그룹의 의견이 과소대표되고 과대대표 되는 현상을 막아줄 방안이, '소선거구 1위 대표제'를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비례대표제'를 확대하고 싶다는 마음이, 나아가 민의를 가장 잘 담보할 수 있는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인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정말 갖고 싶다는 마음이, 그리고 무엇보다 이것을 함께 고민할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취지문]

PR청년포럼은 PR포럼의 청년그룹으로서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라는데 동의하는 개인, 청년단체, 시민사회단체, 언론사, 정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PR포럼에서는 다양성이 인정되는 속에 합의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해 청년들이 비례성, 다양성, 공정함이 보장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이를 위해 비례대표제 확대를 얼마나 고대하는지, 조금은 거칠지만 생생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청년들의 이 작은 몸짓들이 정치의 해인 2012년에 비례대표제 확대가 우리 사회 주요한 사회적 아젠다로 자리매김하는데 작은 마중물이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하며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연재를 시작해봅니다.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슈퍼스타K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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