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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선생의 '더 나쁜 놈, 덜 나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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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선생의 '더 나쁜 놈, 덜 나쁜 놈'

[김성훈 칼럼] 2012년에 뽑지 말아야 할 '놈, 놈, 놈'

우리 세대의 가장 큰 스승이셨던 함석헌 선생을 지근거리에서 사흘간 모신 적이 있다. 미국 동서문화센터(EWC)의 장학생으로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은사이신 류달영 선생의 부탁에 따라 하와이 호놀룰루에 오신 함 선생을 시중들었었다. 때마침 서울서는 이른바 'YWCA 위장결혼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잡혀가고 그 주모자로 함석헌 선생이 지목되어 박정희 정권의 추적을 받던 시점이었다.

무심결에 "선생님, 정치하시렵니까? 군사독재에 항거하고 민주화운동 집회를 주도하시니 말입니다"라고 우문을 올렸었다. 선생은 정색하시며 "김군, 정치란 선악을 판단하는 종교행사가 아닐세. 덜 나쁜 놈을 골라 뽑는 과정이라네. 그래야 '더 나쁜 놈들'이 점차 도태돼, 종국엔 '덜 나쁜 놈'이 좋은 사람으로 바뀌어 갈 것이 아닌가. 정치하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민나 도로보 데스(모두 다 도둑놈들이다)'라고 말해 버리면 기분이야 시원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더 나쁜 놈, 더 도둑놈들을 두둔하는 꼴이 된다는 말일세."

ⓒ연합뉴스=AP

청년 시절에 선생으로부터 받은 이 가르침은 지금까지 나에게 있어 선거기간 중 인물 판단의 지침으로 한몫을 해왔다. 마침 2012년 양대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이합집산의 소용돌이에 옥석이 뒤섞여 있어 함 선생의 지침은 그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아니할 것 같아 풀이해본다.

첫 번째, 경위야 어떠하든 용산참사 등 노동 및 민생현장에서 무구한 인명을 살상한 집단과 그를 방조한 세력은 그 누구보다도 지탄받아야 할 아주 '나쁜 놈들'이다. 용산참사 때의 우두머리가 땅 짚고 헤엄을 쳐도 당선이 보장된다는 특정지역 자기 고향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한다는 소식이다. 또 북쪽의 최고지도자가 사망한 사실을 사흘간이나 까맣게 모르고 우리 대통령을 바보 꼭두각시로 만들어 외유나 하게 했고, 북쪽의 사망사실 발표 당일에도 대통령의 생일·결혼기념일 축하파티나 준비하게 한 소위 대한민국의 안보, 국방, 정보 담당세력들이 만약 내년 봄 옷을 벗고 정치판에 뛰어든다면 그들이야말로 아주 '더 나쁜 놈들'이다.

두 번째, 747이라는 헛된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 고소영, 강부자 영포라인 등 4대 위법(땅투기, 탈세, 병역기피, 위장전입) 행위를 저지른 범법자들로 정권을 지탱해온 세력도 주목의 대상이다. 민주주의의 역행, 남북관계의 악화, 부자 감세와 사회 양극화 심화, 사법주권과 식량주권 포기 등 일방적인 한미FTA 광신행위를 자행해온 뼛속 깊이 친미·친일하는 세력들이야말로 그 반대편의 세력에 비해 더 나쁜 '아주 못된 놈들'에 해당한다. 최루탄 가스에 눈물을 흘리며 문을 닫아걸고 비준안을 단독 통과시킨 151명의 결사대 국회의원들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더 나쁜 놈들'이다.

셋째, 대통령이 되자마자 자기를 대통령으로 옹위해준 전전(前前) 정권의 특정지역 인사들을 감옥에 줄줄이 엮어 보내 그동안 어렵게 이룩한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한 자칭 민주진보세력과 자기들을 당선 배출한 정당을 깨고 새로운 당을 따로 차려 호의호식하던 지난 정권의 홍위병을 닮은 친위그룹 역시 주목할 대상이다. 그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분열과 재결집만 반복된다. 내심 남북 정상회담의 승인이라도 받으려는 듯, FTA에 굶주려 있던 부시 미국대통령에게 한국경제를 송두리째, 그것도 스크린 쿼터 등 네 가지 선행조건까지 끼워 넘겨주었던 한미FTA의 원조세력들 역시 99%에 속한 국민들에게는 '아주 나쁜 놈'들이다. 그것을 재재협상을 통해 더 많이 양보해주면서 덤으로 14조 원의 무기까지 사주겠다는 세력들보다야 덜 나쁠지는 몰라도, 뼛속 깊이 국민들을 태연히 배은·배신행위를 자행하고도 이제 와 새삼 새 정권을 창출하겠다는 포장과 이름표만 바꿔 단 정치꾼들을 지각 있는 국민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런 류의 잔류세력 원조들이 요즘 대권대열의 상위권에 떠올라 있는 것 역시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넷째, 지난 정권하에서 깜박이는 왼쪽으로, 핸들은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국민생존권의 침해와 노동자 권익, 중소상공업과 농어업 말살의 불의를 저질렀거나 방관해오던 무리들이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기는커녕 짐짓 한미FTA 국회 비준 과정에서 협상파를 자처하며 소위 '사꾸라(사기꾼)' 노릇을 자청한 전직 고위관료 출신 또는 도회지 출신 야당의원들이야말로 국민의 신임을 철저히 우롱한 아주 '나쁜 놈들'이다. 자세히 보면 그런 부류들보다도 '덜 나쁜 놈'들이 지역마다 아직 수두룩이 많이 있다.

끝으로, 자기 친인척, 동창, 고향 사람, 당원 중에도 객관적으로 판별해 보면 더 나쁜 놈, 덜 나쁜 놈들이 구분해 보인다. 정이 많은 우리나라 백성들이 흔히 이 같은 판별능력을 상실하고 끼리끼리 패거리 짓는 경우가 허다하나, 정작 선거 투표에 임하여 옥석을 구분하지 못하겠거든 함석헌식 '더 나쁜 놈', '덜 나쁜 놈'의 잣대를 들이밀 줄 아는 국민이 되어야 우리나라에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다.

이런 식으로 정치계절에 함선생의 가르침을 자기 위치에서는 물론, 애향 애국 애족의 관점에서 공정하게 평가 대비해 보는 인물선별의식이 민주시민에의 자격을 쌓는 길이다.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계속해 나가야 이 땅의 정치판에 '나쁜 놈들'이 점차 줄어들고 덜 나쁜 세력이 우리를 대변할 날이 올 것이 아닌가.

YWCA 위장결혼사건과 함석헌

1979년 11월 24일 민주인사들이 결혼식을 가장해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 선출 저지 국민대회'를 개최한 사건. 유신 철폐와 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었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은 10.26 총성과 함께 유신 독재가 끝났음에도 민주화 일정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다가 11월 10일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한 이후 민의를 수렴해 개헌하겠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유신 반대운동으로 감옥에 다녀온 각 대학 제적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민주청년협의회(민청)'는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출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계엄 하이기 때문에 모든 대중 집회가 불가능했으므로 문제는 집회를 어떻게 여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궁리 끝에 집회를 결혼식 형식으로 진행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함석헌 선생(1901~1989)은 1980년 1월 25일 재판에 회부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복권되었다. 이후 들어선 전두환 정권 하에서도 그는 '폭력에 대한 거부', '권위에 대한 저항' 등 평생 일관된 사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항일·반독재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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