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쪼개기' 헌재 판결, 오는 8일
헌법소원을 낸 측이 노리는 것은 '건강보험 쪼개기'다. 건강보험이 직장의료보험조합과 지역의료보험조합으로 나뉘어 있던 2000년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게다. 이 경우, 건강보험의 약화는 필연적이다. 그 틈을 타서, 민간의료보험 시장은 더 늘어나게 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영리병원 도입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건강보험 보장성 축소로 인한 의료비 증가는 필연이다. 지금 수준의 의료비가 별로 부담스럽지 않은 이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도 의료비가 부담스럽다는 이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이런 두 세력이 최근 서울시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앞에서 정면으로 부딪혔다. 지난 5일에는 이 자리에서 경만호 의사협회 회장이 "(현행 건강보험 체계의) 새 판을 짜야 한다"라며 1인 시위를 했다. 같은 시각, 같은 곳에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반대 주장을 내세우며 시위를 했다. "의협 회장이 이명박 정권의 의료민영화 도입, 건강보험 분리에 김종대 건강보험 이사장과 함께 앞장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다음 날, 역시 같은 곳에서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골수' 건보 해체론자의 '도둑 취임', MB 정부의 '의료 민영화' 밑그림?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날 회견에서 김종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유가 있다. 김종대 이사장은 '골수' 건강보험 해체론자다. 동시에 이번 헌법 소원을 낸 경만호 의사협회 회장과 매우 가까운 사이다. 김 이사장은 지난달 15일 기습적으로 취임식을 치렀다. 취임 일성이 현행 통합건강보험 비판이었다. 당시 건강보험공단 노조는 '도둑 취임'이라며 비판했지만, 김 이사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런 정황을 한데 모아 보면, 현 정부가 곧 있을 헌재 판결 이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위헌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제법 있다고 보고, 이를 계기로 건강보험 쪼개기를 시도하리라는 게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을 비롯해서 의료 민영화에 반대하는 측이 긴장하는 게 당연하다.
굳이 지난달 발표한 취임사가 아니더라도, 김 이사장이 현행 건강보험에 적대적이라는 사실은 기정 사실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국회가 만장일치로 의결한 건강보험 통합안에 대해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게끔 유도한 게 김 이사장이었다. 그가 한동안 공직을 떠나야 했던 이유 역시 현행 통합건강보험에 적대적인 '소신' 때문이었다. 건보 통합작업이 한창이던 1999년, 공개적으로 이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직권 면직을 당했다. 이후, 그는 '건강보험 쪼개기'를 밀어붙이는 경만호 의사협회 회장의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이번 헌법 소원은 김 이사장과 경 회장의 합작품이다.
김종대 "건강보험 쪼개야 의료산업 발전"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날 회견에서 의사협회 부설 정책연구소가 지난 4월 발표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효율적 관리운영체계 개발(분산경쟁형)"이라는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는 '결론 및 고찰' 부분에서 "다보험자 체계의 구축은 '규제된 경쟁적 보험체계'를 만들기 위한 가장 필수적이고 선행적인 요소 중 하나"라며 "대체적인 다보험자로서의 구축안으로는 첫째, 현행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지역본부와 지사를 활용하는 방안과 둘째, 대체형 민간보험자를 활용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대한의사협회 정책연구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효율적 관리운영체계 개발 (분산경쟁형)" 2011.4. 발행인 경만호. |
의사협회 등이 원하는 대안이 국민건강보험과 민영의료보험이 경쟁하는 체제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자료다. 의료에 대해서는 비용 걱정을 하지 않는 수준의 부유층과 보험회사가 수혜자가 되는 모델이다.
이어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김 이사장이 지난 2009년 경 회장의 출판기념회에서 진행한 강연 자료를 공개했다. "건강보험 재정통합에 대한 헌법소원 의의 및 전망과 의료개혁의 방향"이라는 제목이다. "헌법재판소가 정신이상자 기관이 아닌 한, 100% 위헌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내용이 눈에 띈다. 또 "건강보험이 분리되어야 의료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라는 주장이 두드러진다. 의료를 '산업'으로 보는 소신이 드러난 대목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이 김종대 이사장 퇴진을 강력히 요구하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와 일부 재벌, 의료계 일부 세력 등이 원하는 '의료 민영화' 계획을 실현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게 김 이사장이라는 것.
"밖으로는 한·미 FTA, 안으로는 건보 해체…MB정부의 '의료 민영화' 꼼수"
이들은 이날 회견에서 "헌재 판결을 앞둔 시점에, 건보통합 반대로 공직에서 물러났던 김 이사장을 임명한 것은 헌재의 위헌 판결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들은 "바깥으로는 한·미 FTA, 안으로는 건강보험공단 해체를 통해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려는 이명박 정부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영리병원 도입 논의가 탄력을 받으리라는 점을 고려한 발언이다.
이들은 "2000년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비율이 '50:50'에서 현재는 '70:30'으로 변화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이 분리되면 빈곤층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대폭 올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통합 건보를 조합으로 분리하자는 것은 60% 초반까지 끌어올린 보장률을 통합이전 40%로 끌어내리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아직도 OECD평균에 비해 보장률이 20% 가량 떨어지는 상황에서 오히려 이를 후퇴시키는 것은 건강보험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밝혔다.
이들은 "당장 한·미 FTA로 약값과 의료비 폭등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건강보험공단해체로 민영보험의 공보험 개입이 가능해져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이 완전히 민영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변혜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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