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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통합,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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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진보통합,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

[인터뷰] 손호철 "노회찬ㆍ심상정ㆍ조승수의 '귀순', 상식에 어긋나"

진보통합 논의가 마무리 국면이다. 19일 이정희(민주노동당), 유시민(국민참여당), 노회찬(통합연대)이 손을 맞잡고 통합정당 건설을 선언했다. 한때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17대 국회에서 진보정치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진보신당은 결국 빠졌다. 당의 대중적 얼굴이던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마저 잃은 채로.

어지러운 곡절을 지나온 만큼, 앞으로도 상당기간 통합정당과 진보신당이 진보진영의 완벽한 통합을 이루기는 난망하다. 통합정당이 진보의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 대중적 기반을 확장해낼지, 진보신당이 외골수의 멍에를 벗고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생존해낼지에 따라 진보통합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질 것이다. 큰 선거가 두 번 있는 2012년이 진보정치의 앞길에도 분수령인 이유다.

통합진보정당 논의가 급물살을 타던 즈음 손호철 서강대 교수를 만났다. 자유주의 세력(참여당)을 배제한 선(先)진보통합을 주장해 온 그에겐 현실이 무척 곤혹스러워 보였다. "진보 진영의 다수파는 '대중적 진보정당'이라는 이름하에 자유주의로 수렴될 것이고, 소수파는 대중정당으로 부르기엔 취약한 '등대 정당'으로 남겨질 위험이 있다"는 게 손 교수의 우려다.

손 교수는 '제3의 대안'이라는 진보정당들의 존립 기반을 빠르게 장악한 시민정치에 대해서도 "시민을 '위한' 정치가 될 수는 있어도 시민에 '의한' 정치라는 측면에선 과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했다. "20~40대의 열망에는 민생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치열한 고민이 있는데 과연 안철수, 박원순이 그 해답을 줄 수 있느냐"에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안팎으로 고난의 길이 예상되는 진보정치의 진로는? "그럴수록 밑으로, 현장으로, 지방으로 내려가 탄탄한 기반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진보정당의 위기 뒤에 더 심각한 '노동의 위기'를 바라봐야 한다. 노동정치가 되살아날 때 진보정치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손 교수는 지적했다.

손호철 교수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와 임경구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시민정치에 과연 시민이 있는가?"

프레시안 :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가장 큰 피해자가 결과적으로 진보진영이라는 평이 있다.

손호철 : 진보진영이 최대의 피해자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 의미는 복합적이다. 진보정당이 냉전적 보수세력으로 상징되는 한나라당,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을 상징하는 민주당이란 양대 거대정당 체제에서 제3의 대안으로 대접을 받아 오다가, 이제 그 자리에서도 밀려난 것이다. 지지율로 따지자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지지율을 모두 합쳐 13%까지 올라갔었지만 현재 3.5% 수준으로 급속히 하락했다. 분명히 진보정당의 최대의 위기지만, 이를 뒤집어서 본다면 진보정당이 제3의 대안으로서 자기 역할을 못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보면 한국의 진보정당의 지지기반 자체가 취약한 면도 있었다. 시민운동에 기초한 정당의 공백을 진보정당이 채우며 제3의 대안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한 때 13%까지 지지를 받았던 건 일종의 프리미엄, 가수요였던 면이 있었던 것이다. 진보정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양대 정당을 싫어했던 표를 가져왔던 건데, 이제 그 가수요가 빠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 손호철 서강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소위 시민정치 세력이 이제까지 야권의 외곽부대 정도로 여겨졌는데, 이 진영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정치 진입을 할 것이란 분석도 많다. 시민정치의 파괴력을 어느 정도로 보나?

손호철 : 우선 '시민정치'란 개념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단순히 시민운동 출신이 정치권에 진입했다고 해서 시민정치라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로 대표되는 시민들의 주체화를 의미하는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과거 서경석 씨 등 많은 시민운동 출신이 이미 정치권 진출을 했다는 점에서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정당을 통하지 않은 무소속 시민정치인이 과연 성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경우 창당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민주당에 입당하지도 않은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지만, 과연 무소속 시민정치인이 박원순 시장처럼 당선돼 얼만큼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시민운동가인 랠프 네이더와 그의 녹색당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후자의 경우라면 '시민의 자기조직화 방식'으로서의 시민정치라고 할 수 있겠는데, 굉장히 의미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SNS 등을 통한 정치참여는 일종의 '한국판 자스민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있지만, 문제는 이 자체가 불완전한 모델이라는 것이다. 일단 촛불시위에서 드러난 것처럼 주체화가 얼마만큼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한편으로 박원순 시장은 '시민후보'를 내걸고 나왔지만, 이번 선거 과정이나 선거 공약 등에서 시민들의 참여가 충분히 이뤄진 것 같지는 않다. 출마 과정만 봐도, 진정한 의미의 '시민정치'라면 홀로 백두대간 다녀와 선언하는 것 보다는 출마선언부터 시민들이 의견을 모으고 참여하는 게 맞았을 것이다. 물론 선거공약 등에서 시민들의 의견이 많은 부분 수렴됐지만, '시민정치'에 걸 맞는 시민참여가 이뤄지지 않는 한, 시민을 '위한' 정치가 될 수는 있어도 시민에 '의한' 정치란 측면에선 과거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민생 해결 못하면 2007년의 역사 되풀이"

프레시안 :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20~40대가 박원순 시장에게 표를 몰아주면서 세대론에 대한 분석도 한창이다. 20대는 일자리가 없어 고통 받고, 40대는 고용문제로 불안한 상황, 이런 현실에 기반해 세대문제와 계급문제가 수렴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나?

ⓒ프레시안(최형락)
손호철 :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본다. 사실 지역문제도 마찬가지다. 당장 서울만 봐도 강북엔 호남 출신이 많고 강남에 영남 출신이 많다. 지역문제와 계급문제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역문제가 꼭 계급문제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세대문제와 계급문제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치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게 2002년 대통령 선거다. 2002년 대선도 이번 선거처럼 2030세대와 5060세대의 표의 양분이 일어났다. 그 때도 세대 간 진보·보수 성향이 확연히 갈라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흐름이 깨졌다. 이후 2030세대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40~50% 가까이 높아졌고, 결국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다. 20~30대가 50~60대보다 과연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 조사를 해봐도 20~30대 사이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조사하면 박정희와 이건희가 항상 높았다.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결코 진보성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진보성을 띤 부분은 북한 문제와 미국 문제였다. 한마디로 '탈냉전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20~30대의 정치성향이 문화적 진보주의지, 경제적 진보주의는 아니었던 셈이다.

결국 노무현을 뽑았던 이들이 이후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이명박을 선택한 이유는 그만큼 노무현 정부에서 청년실업이나 아파트값 등 젊은층의 민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탈냉전이라는 '피의 문제'보단 결국 '빵의 문제'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에 이어 이명박 정부 4년 동안에도 민생문제나 실업문제를 해결하는데 철저히 실패했다는 것이다. 현재 야당 지지도가 다시 높게 나타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데, 그렇다면 다음 대선에서 야권이 집권해도 그 다음 대선에서 그들이 다시 표를 얻을 수 있을까? 그들이 민생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 2007년의 역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집권이 다시 패배의 초석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가 '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이명박 정부가 탄생했고, 그렇게 당선된 이명박 정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유권자들이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는 것인데, 사실 빵의 문제에 가장 민감했어야 할 진보정치 진영은 이 시기 내내 무기력했다. 자유주의-보수 정부 체제 속에 이 영역을 선도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그 기회를 파고들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손호철 : 사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이 진보진영이 성장하기 가장 좋은 시기였고 실제 성장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원내 진입을 했고, 10%대의 지지율도 받았다. 결국 자유주의로는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던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값이 뛰고 부동산이 난리가 났을 때 민주노동당은 침묵하고 정작 엉뚱한 북한 문제에만 매달려 있었다. 민생문제에 아젠다의 우선순위를 놓고 파고들지 못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선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을 국민에게 보여주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데 실패했다.

"안철수, 정치감각 뛰어나다. 그러나..."

프레시안 : 안철수 교수가 화제가 되기 시작할 즈음 <프레시안>에 '안철수 현상을 보며 한숨만 나온다'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었는데, 이제 안철수 바람은 더 커진 것 같다. 어떻게 보나?

손호철 :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한다. 기존정당이 그런 기대와 열망을 주지 못했고, 특히 공익이나 공공선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가 안철수 원장과 같은 상징적인 인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안 원장이 CEO 출신이지만, 그것도 공익적인 CEO 아닌가.

ⓒ프레시안(최형락)

그러나 안철수 원장이 공익적 이미지를 갖고 대중이 그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낸다고 해서, 지금 산적한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20~40대의 열망 속엔 민생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치열한 고민이 있는데 과연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시장이 그 해답을 줄 수 있나? 거기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오히려 이런 현상이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한국정치의 패턴, 즉 열망과 좌절의 진폭으로 다시 흘러갈 것 같은 우려도 있다.

두 번째는 안철수 자신의 문제인데, 정치를 한다면 그가 내용적으로 더 채우고 드러내야 한다. 정치를 기술관료적인 방식으로 풀고, 탈정치적으로 넘어서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건 철저하게 정치적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마치 한국정치가 병들어 있으니 백신만 있으면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선 안 된다. 정치란 결국 개인이 아닌 가치선택과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공공선, 공익의 인격적 모델이 정치권에 이제까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안 원장에게 환호하는 것 같다. 그 가장 상징적인 사래가 최근 발표한 1500억 주식 기부다. 최근 이런 안 원장의 행보를 보면, 아직 내용이 없어서 판단하기 이르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제 확실히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로 읽히기도 하는데?

손호철 : 저 역시 그렇게 본다. 한편으론 어수룩하고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행보나 움직임을 보면 굉장히 정치9단 같은 세련된 모습이다. 50%나 되는 지지율을 5%의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해 국민들을 감동시킨 것부터 시작해, 마지막 순간 박 후보에 대해 절묘한 방식으로 지지선언을 한 것, 이런 시끄러운 국면에서 재산 환원을 한 것들은 국민이 무엇을 바라지는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본인이 이런 점을 의식하지 않은 것이라면 더 뛰어나다. 국민의 감각과 자신의 무의식적이 감각이 한 시대의 코드로 정확히 동기화된 것 아니겠나.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런 부분과 정책적 내용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안 원장이 청년실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또 한미FTA 같은 쟁점적인 사안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지, 이런 부분에서도 더 내용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제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 "이회창 별명이 왜 '대쪽'인지 아는가?"이다. 답은 간단하다. 대쪽으로 이름을 날리던 판사 시절 정치를 안했기 때문이다. 박원순 시장이나 안철수 원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향후 그들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지금의 공익성과 순수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그들이 그런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정치를 안 했기 때문 아닌가.

프레시안 : 안철수 원장이 신당을 창당할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여론조사 등의 지표로만 보면 이른바 '제3의 지대'에 대한 가능성은 굉장히 높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은 어떻게 보나?

ⓒ프레시안(최형락)
손호철 : 안철수 원장이 시민운동세력과 결합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인다. 현재 '혁신과 통합' 등 범야권의 통합 움직임이 있지만 당장 '반한나라 단일정당'을 만들긴 어려운 상태고, 다양한 정당들이 선거연합으로 갈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프레시안 : 사실 기존의 정당이든 제3의 정당이든, 양극화나 빈곤 등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적체된 문제들이 풀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우리 정치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냐는 비관적인 생각도 든다.

손호철 : 그렇다. 그런 맥락에서 제3정당이 과연 해답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다. 최근 등장한 이른바 제3지대론 자체가 정치권이 민생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지 못하고 정파적이고 사익추구 식의 정치행태를 계속하다보니, 이에 대한 실망이 새로운 형태의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난 것 아닌가. 어떻게 보면 2000년 낙선운동의 데자뷰 같은데, 기본적으로 정치에 대한 염증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렇다고 '게임의 룰'을 바꾸는 것은 아니고 단지 새로운 인물에 대한 열광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 원장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제3지대가 신당을 창당한다면, 관건은 그 정당이 기존의 정당과 조직과 행태 면에서 얼마나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다. 기본적으로 정당은 유럽의 녹색당 같은 진보정당까지도 제도화 및 관료화 될 수밖에 없고, 일정 정도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억압적 국가기구 역할을 하게 된다. 새로 창당되는 정당이 이와 차별화된, 자율을 추구하면서 조직화되는, 즉 '제도화 되지 않는 조직화'의 전범을 만들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프레시안 :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또 한 번의 정계 개편이 있을 것 같은데. 안철수 원장 등 제3지대의 부상으로 '거대한 보수-자유주의-왜소한 진보'라는 삼정립 구도가 해체될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호철 : 한국정치를 이념적으로 단순히 재단할 수 없는 이유는 지역정당 체제와 이념정당이 이중적으로 혼재하기 때문이다. 흔히 거대한 보수정당과 자유주의정당, 그리고 왜소한 진보정당으로 나눴지만 그 사이 다른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제3당의 가능성은 1987년 양김의 분열과 삼당합당 이후 늘 관심거리였다. 비호남 야성 유권자를 묶어낼 정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기본적으로 호남정당으로 인식되다보니, 야권 성향의 비호남 유권자가 찍을 정당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안철수 원장이나 박원순 시장이 주목받고 있는 것인데, 일단 이들은 PK(부산경남) 출신인데다 지역주의적이지 않고, 민주당이 아닌 민주화세력으로 여겨진다.

최장집 선생님도 늘 강조하지만, 한국에서 최대 정파는 무당파와 기권자다. 그 사람들을 묶어낼 잠재적 기반이 이제 보이기 시작했고, 지금까지의 정당체제에 변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과거엔 그 때 그 때 움직이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지만, 이제 이들이 조직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07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결국 이합집산했듯이, 최종적으론 힘이 강한 쪽에 흡수되거나 통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동영 외에 자기반성한 사람 못봤다"

프레시안 :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엔 샛강이 흐르고 민주당과 진보정당 사이엔 한강이 흐른다"는 표현이 매우 상징적인 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요새 보면 민주당이 한미FTA 추진을 강하게 반대하는 등 자유주의 세력과 진보진영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좁혀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손호철 : 그 부분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사람이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라고 생각하는데, 언젠가 정 의원이 '현재 한국의 정당 구도가 잘못돼 있다,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기 전인 IMF 이전의 구도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민주당 쪽으로 옮겨가야 하고 민주당은 민주노동당 쪽으로 옮겨가는 전반적인 좌클릭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사실 한나라당도 많이 옮겨오지 않았나. 오세훈 전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만 봐도,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하겠단 말이었지 아예 안하겠다는 것은 아니었고, 최근엔 당 일각에서 버핏세 얘기까지 나온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런 면들을 볼 때 저는 진보정당이 세력으로는 패배했을지 몰라도 진보의 아젠다는 거의 관철시켰다고 본다. 뱀에게 잡아먹힌 두꺼비가 속에서 알을 낳듯이, 세력 면에선 실패했지만 정책 면에선 진보가 승리하지 않았나.

사실 그런 면에서 민주당이 좀 더 명확하게 하고 넘어가야 한다. 한미FTA 문제만 봐도, 노무현 정부에 비해 이익 균형이 무너져 반대한다는 주장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투자자-국가제소제(ISD)의 경우 전혀 바뀐 게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 하려던 내용 그대로다. 민주당이 근본적으로 자기반성을 해야 할 대목인데, 제가 알고 한 이런 명확한 자기반성을 한 사람은 정동영 의원 외엔 없다.

정책의 과오에 대해선 좀 더 공개적으로 자기비판하고 새로운 단초를 만들 때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이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21세기 한국사회 모델이 무엇인가에 대해 각 세력이 치열하게 논쟁하고 국민적 심판을 받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프레시안 : 진보진영이 향후 가지고 가야 할 정치적 아젠다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손호철 : 복지 아젠다는 진보정당만의 아젠다에서 사회 전체의 아젠다로 떠올랐고, 이제 두 가지가 남았다. 하나가 세금 문제이고 두 번째가 경제체제 문제인데, 이 둘 모두를 민주당이 피해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복지 자체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는 그대로 놔둔 채 거기서 비롯된 사회적 약자 문제를 해결하는 사후적 설거지 아닌가. 복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경제체제, 즉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 경제체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한 자유주의 정당의 대답은 굉장히 취약한 상황이다.

프레시안 : 그런 경제체제는 많은 각론적 장치를 필요로 할 것 같은데?

손호철 : 사회주의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도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박원순 시장은 기대 이상으로 진보적 입장에서 잘하고 있다고 본다. 박 시장과 나는 같이 일도 하고 대립도 해 봤는데, 나에게 박원순을 평가하라고 한다면, 자유권에 대해서는 굉장히 진보적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 등에 열심히 나섰던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노동 사회권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두 가지만 에피소드를 얘기해보자.

첫째, 참여연대가 중심이 돼 재벌개혁을 들고 나왔는데, 주 내용이 소액주주 운동이었다. 결국 재산권을 재산권으로 견제하는 방안이다. 반면 우리는 대안으로 노동자 경영참여를 제시했다. 대주주 견제를 위해 소액자산가의 권한을 늘리자는, 박원순 식의 대안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윤을 만들어 내는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은 전혀 다른 대안이다. 진보의 대안은 그런 식으로 찾아져야 하는 것 아닐까. 두 번째, 박 시장은 낙선운동을 할 때 부정부패자에 포커스를 맞췄지만 나는 신자유주의 반민중 인사를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쌍용차 사태의 원인, 론스타 사태의 원인, 다 노무현 정부에서 생겨났는데, 그 부분에 대해 분명히 다른 대안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박원순 시장에게 그런 면이 있는데, 지금은 상대적으로 훨씬 진보적 입장에서 (시정과 정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재벌개혁을 하는데 소액주주운동으로 할 것이냐, 노동자 경영 참여로 할 것이냐, 앞으로 이런 부분이 논쟁이 돼야 한다. 시스템 자체, 경제체제 자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참여당이 민주당보다 진보적인가?"

프레시안 :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돌아왔고, 선거 전술 논의도 한창 뜨겁다. 전반적으로 한나라당부터 자유주의 세력까지 왼쪽으로 조금씩 이동했다면, 진보진영이 자기 정체성만 고집할 게 아니라 자유주의 세력과의 접점을 넓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

손호철 : 선거연합이나 정책연대에 대해선 전적으로 찬성하고,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민노, 진보신당 같은 진보정당이 먼저 선(先)진보연대를 해 통합된 힘으로 바게닝 파워를 갖고 범야권 연대를 해야 한다고 본다. 한쪽에서 얘기되는 단일통합정당은 정당 간 힘의 관계나 여러 가지 여건상 어렵다고 보이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프레시안 : '혁신과 통합' 같은 단일통합정당을 주장하는 쪽에선 정파등록제 등을 통해 진보정당도 얼마든지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느냐는 식인데, 같은 울타리 안에서 진보블록으로 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나?

손호철 : 기술적인 문제일 수 있는데, 대선이면 몰라도 총선의 경우 선거구 조정 문제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단일정당으로 갔을 때 지역구 조정이 더 쉽다는 얘기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결국 조정이 안 이뤄지면, 그 때 가서 박차고 나올 건가? 진보정당으로선 바깥에 있는 게 파워를 가질 수 있고, 각 정당이 자신의 조직적 기반을 넓히면서 유연하게 연대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본다. 당의 정체성을 지켜야만 당원 역시 끌고 갈 수 있다. 예컨대 한미FTA나 노동문제 등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의견이 다를 경우, 각 그룹의 지지자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결국 진보진영의 선(先)통합은 노회찬·심상정·조승수 등 진보신당 통합파가 탈당해 '새진보통합연대'를 구성하면서 진보신당을 배제한 채로 진행되고 있다.

손호철 : 물론 현재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 통합이 되든 안 되든, 국민을 감동시켜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야 하는데 결국 '그들만의 리그'로 끝났다. 불행하게도 진보신당에서 통합안이 부결됐지만 다음 기회를 생각하며 버텼어야 했다. 다음 총선 이후 다시 통합논의를 하자고 기다렸어야 했는데, 노회찬·심상정·조승수 같은 대중정치인들이 이 판을 깨고 나온 것은 상당히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다. 자신들의 통합안이 부결됐으면 승복을 해야 하는데 당을 깨고 나갔다.

예전에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칼럼 주제로 생각한 게 '이인제-손학규-김건모', 즉 '대한민국 불복종의 계보'다. 게임의 룰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결국 칼럼을 써놓고 보내진 않았지만, 이제 손학규-이인제-김건모 뒤에 노회찬-심상정-조승수가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진보신당엔 네 가지 층위가 있다. 먼저 노회찬·심상정·조승수로 대표되는 대중정치인이 있다. 대중정치인은 선거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들은 통합을 주장한다. 두 번째는 액티비스트, 즉 활동가다. 이 층에서 반(反)통합 정서가 너무 강하다. 물론 그들의 심경은 이해한다. 과거 민노당 당권파의 패권주의에 워낙 당한 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당원과 대중의 바람이다. 액티비스트 수준에 머물러 있는다면 그야말로 등대정당이나 새로운 전위정당 밖에 되지 않는다. 대중정당으로 가면 우선 대중의 정서에 초점을 맞춰야하는데, 액티비스트들이 통합을 비토하니 대중정치인들은 정치적 생명을 위해 당을 나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소탐대실한 게 아닌가 싶다.

프레시안 : 손 교수는 처음부터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부정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진보 소통합 논의가 재추진됐다. 최근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손호철 : 솔직히 얘기하면, 그렇게 할 바에는 차라리 민주당과의 대통합이 낫다고 본다. 참여당과 통합은 할 수 있는데 민주당과는 안 된다고 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정략적으로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몸 불리기라고 한다면 얘기가 된다. 그러나 이념이나 철학으로 따졌을 때 어떻게 참여당이 민주당보다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나? 민주당이 무상의료 등 이른바 무상시리즈를 제기했을 때 유시민 대표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참여당은 복지·사회정책에 있어선 민주당보다 더 오른 쪽에 있고 통상정책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참여당 역시 정치적 측면에선 개혁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시대 핵심 화두인 신자유주의나 경제, 복지정책에 있어선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런 정당과는 통합을 하면서 왜 민주당과는 왜 안 되는 것인가? 소통합을 할 바엔 차라리 민주당을 포함한 대통합으로 가야 한다. 민주당이 참여당보다 오히려 더 진보적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18일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의 3자 통합이 결국 성사됐다. 어떻게 평가하나?

손호철 : 그들이 기대하는 것이 몸집을 불린 이후 민주당과 협상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념적으로 보나, 정치공학적으로 보나 왜 세 세력이 합쳐야 하는지 명분이 없다. 정치공학적으로 봐도 유시민 대표의 효용은 이제 거의 사라진 것 아니냐. 문재인 이사장의 등장으로 친노 적자로서의 역할도 사라졌고, 안철수 원장의 등장으로 새로운 정치모델이란 기대감도 사라졌다. 또 참여당의 지지율이 바닥인데다, 참여당과의 통합으로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이 떨어지는데 그러면서까지 꼭 함께해야 할 이유가 있나. 특히 진보정당이 살기 위해선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 진영이 힘을 실어줘야 하는데, 이들이 참여당까지 포함된 이 소통합 정당에 과연 지지를 보낼 수 있을까. 진보진영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지 기반을 넓히는 일인데, 이게 확대될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다. 결국 그 정당을 대표하는 스타 정치인이야 살아남을지도 모르겠지만, 진보정당의 대중적, 조직적 기반은 확대되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 당의 키는 결국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이 쥐게 되고 이른바 노심조(노회찬, 심상정, 조승수)의 통합연대는 사실상 흡수되는 '귀순' 형태가 될 텐데, 민주노동당에도 다양한 정파가 있지만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이들이 힘을 얻게 되면 당의 정체성까지도 그 쪽으로 수렴될 것이다. 결국 대중적 진보정당을 얘기하면서 대중성에만 방점을 찍고 진보성을 탈각하는, 결국 우측으로 차츰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겠나.

프레시안 : 진보통합이 이뤄지더라도 지지부진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른바 통합의 시너지 효과는 이미 거두기 어려워 보인다. 내년 선거에서는 이른바 '단일화' 압박이 유례없이 거세질 텐데, 내년 선거를 앞두고 진보진영의 흐름은 어떻게 내다보나?

손호철 : 결국 민노-참여-통합연대의 통합정당은 셋을 합친 지지율을 웃도는 작은 정당으로 가게 될 것이고 진보신당의 경우 현재로선 1% 정도밖에 기대하지 못할 텐데, 결국 진보정당의 화두는 변혁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추면서 지지층을 확장해 견인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지난 촛불시위가 보여준 것처럼 대중성과 변혁성이 항상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은 어떤 때는 진보정치인보다 더 변혁적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중적 진보정당'이란 이름하에 자유주의로 수렴돼 가는 다수파가 있고, 진보신당의 경우 결국 대중정당으로 부르기엔 너무도 취약한 등대정당으로 남겨질 위험이 있다.

진보정당의 부침은 늘 있었다. 4.19혁명 이후 진보정당이 꽃을 피우다가 5.16에 의해 좌절됐고, 결국 2004년 총선에서 원내에 진입해 짧은 황금기를 거치기까지 43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제 또 2004년에서 10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위기를 맞고 새로 시작해야 할 상황에 놓였는데, 그럴수록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으로, 지방으로 내려가 탄탄한 기반을 쌓아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사실 지금 진보정당의 위기만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 뒤엔 더 심각한 '노동의 위기'가 있다. 귀족노조라고 비판받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과 조직화되지 못한 다수로 양분돼 있는 것이다. 결국 그것을 묶어내 노동정치가 되살아 날 때만이 진보정치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노동 문제만으로 이 모든 것들을 환원할 수 없고, 흔히 말하는 '적·녹·보(노동·생태·여성)'의 가치가 대중운동과 결합하면서 진보운동을 새롭게 시작할 때인 것 같다.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하고, 흔히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고 한다. 가장 밑바닥으로 절망하고 내려갈 때 새로운 출발이 있는 것 아닌가. 진보는 왜 안철수 원장이나 박원순 시장처럼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자기 성찰을 하고, 그간의 모습을 해체하고 다시 태어나 대중의 신뢰를 찾아가야 한다.

프레시안 : 긴 시간 말씀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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