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나는 '서울대 자퇴생'이 아니라 '고졸'일 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나는 '서울대 자퇴생'이 아니라 '고졸'일 뿐"

[인터뷰] "'대학 서열화'가 인생 전체를 '학교'로 만들어"

지난 14일.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던 공현(필명, 24) 씨가 자퇴를 선언했다.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등을 위해 계속 경쟁하며 도는 쳇바퀴를 던져버리기 위해서다. 그는 이 쳇바퀴의 중심에 '대학 서열화 구조'가 있다고 봤다.

공현 씨는 대학 입시를 거부를 하고, 대학을 자퇴한 이들과 함께 '대학 거부 선언'을 준비 중이다. 어느 대학을 나왔든, 대학을 안 갔든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공현 씨는 "아직 청소년 운동가가 별로 없는 탓인지, 무엇을 생각해도 '새로운 이슈'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실력이나 '내공'은 없다. 그래도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자체가 가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물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공현 씨는 환하게 웃으며 "칵테일을 좋아하는 애인을 위해 바텐더 공부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남들이 다 가는 길'에서 벗어난 두려움이나 떨림은 없어보였다. 오히려 그가 걷는 모든 걸음이 '새로운 길'이 되고 있다. <편집자>


"나는 '서울대 자퇴생'이 아니라 '고졸'일 뿐"

프레시안 : 자퇴를 선언한 지 1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결정을 후회한 적이 있나?

공현 : 없다. 자보를 붙이니 바로 다음날 10개가 넘는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그게 힘들긴 했어도 자퇴를 후회한 적은 없다. 학교 다닐 때는 서울대생이라는 의식이 없었는데 오히려 자퇴하고 나니까 '내가 서울대생이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자보를 붙인 것은 대학 거부 운동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주목받으려고 붙인 이유도 있지만 막상 '서울대 자퇴생'에게 쏠리는 주목을 맞닥뜨리니 불쾌하기도 했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서울대 자퇴'가 아니라 '대학 거부'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실제로 주목을 받으려고 자보를 붙였나?

공현 : 물론이다. '대학 거부 선언'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내 학벌이 이런 데 말고 써먹을 데가 어디 있나 생각했다. 만약 서울대생이 아니었더라면 다른 방법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관심은 '서울대 자퇴'에만 쏠리는 현실이 씁쓸했다. 나는 '서울대 자퇴생'이 아니라 '고졸'일 뿐이다.

"'열등감' 때문", "그런데 왜 공부 잘해?"…"대학 거부 운동, 누가 해도 욕 먹어"

프레시안 : 그렇다면 자퇴를 한 뒤 좋은 점은?

공현 : 홀가분하다. 등록금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 가장 좋다. 지난번에 한 학기를 망쳤는데 그 뒤로 학자금 대출을 받으려 해도 성적 기준에 모자라서 안되더라.

프레시안 : 공현 씨 기사에 관한 댓글 중에 '서울대를 자퇴하면서 내는 목소리보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에 내는 목소리가 더 큰 힘을 낸다'라는 글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 많이 들을 것 같다.

공현 : 사람들이 순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업이나 정치권에 들어가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청소년 운동을 하고 싶고 그것에 학벌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대학 거부 운동을 하면 누구나 비난을 듣는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이야기하면 '공부 못해서 생긴 피해의식이나 열등감 때문'이라는 소리를 듣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이야기하면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는 공부를 잘하네'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실제로 청소년 운동에서 필요한 것은 집단화되고 조직화된 힘이지 소수 엘리트가 아니다.

"교육은 '대가'가 아닌 '권리'"

프레시안 : '서울대 강의의 다양성과 질마저도 다른 대학들에 비교해봤을 때 결국 불공평한 자원 분배의 특혜이고 특권'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서울대의 높은 강의 수준을 바라보고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도 있을 텐데?

공현 : 서울대의 높은 강의 수준은 정당한 대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정하게 주어진 시험 방식, 즉 수능이 있고 거기에 적합한 사람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교육은 노력이나 여타 재능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권리다. 솔직히 말해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적은 시간을 들여 공부해도 그들보다 좋은 성적을 얻었다. 이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공현 씨는 지능이 높은 편인 것 같다. 그러나 그처럼 '타고난 재능'을 무시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예를 들어 국가대표가 된 운동선수들의 경우, 그들이 노력해서 얻은 성취라는 면도 있지만 '타고난 재능'이라는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불공정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공현 : 그런 차이가 불공정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사회적으로 대하는 방식이 불공정하단 뜻이다. 운동이랑 비교했는데, 내가 볼 때는 운동에 재능이 있을 때 얻게 되는 사회적 이익과 입시에 재능이 있을 때 얻게 되는 사회적 이익의 격차가 너무 크다. 시험을 잘 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 비해 가치 있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런데 마치 그렇게 취급받는 것이 문제다.

'스펙' 부담이 덜 한 서울대와 그렇지 않은 지방대의 불균형

프레시안 : '대학 서열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맞물려 있는 발언으로 들린다.

공현 : 그렇다. 대학 서열은 낙인이다. 사회적 낙인이기도 하고 심리적 낙인이기도 하다. 사회적 낙인이라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낮게 취급되는 대학을 다닐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 없다는 식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심리적 낙인은 그러한 시선 때문에 스스로 패배자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서울대에서 수업이 잘되는 이유는 이와 관련 있다.

서울대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스펙'을 쌓을 필요가 덜하기 때문에 수업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소위 지방대학생들은 '스펙'을 쌓아야 한다. 토익, 고시, 각종 자격증 등에 집중하느라 학교 수업에는 학점 관리를 할 정도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수업 분위기가 차이 날수록 대학 서열화도 고착된다. 악순환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개개인이 변한다고 될 것이 아니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다.

▲'대학 거부'를 선언한 공현 씨. ⓒ프레시안(이진경)

"'대학 서열화'가 인생 전체를 '학교'로 만든다"

프레시안 :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80%에 이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렇게 많은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공현 : 초·중·고 학교 수업 자체가 대학 가는 준비니까. 학생들이 대학은 당연히 가는 걸로 인식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결국 '불안'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불안…. 사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생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님에도 다들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이기 위해 대학을 가고, 더 나아가 명문대를 졸업하려고 한다.

좋아하는 소설에 '인생을 학교로 만들려고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점수를 받고 평가를 받는 것처럼 인생 전체를 학교로 만드는 삶이 지금 우리의 삶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탐색할 기회가 없다 보니 그런 기회를 찾지는 않고 계속 유예시키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결국 대다수 삶이 시험을 보고 점수를 따는 것의 연속일 뿐이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초·중·고 수업이 바뀐다면 너도나도 대학에 가는 사회가 바뀔까?

공현 : 그렇지는 않다. 청소년 운동을 하며 초·중·고 수업을 변화시키기 위한 많은 시도를 했고 실제로 바뀌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바뀐 교육, 예를 들면 신문 읽기, 토론, 논술, 열린 교실, 창의적 교육 등이 결국에는 대학 입시로 종속될 뿐이었다. 문제는 '대학 서열화'다.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고 명문대를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존재하는 한 '일단 대학부터'의 문화는 바뀔 수 없다.

대학이 점수만으로 학생을 뽑는 이유

프레시안 : '대학 서열화'가 대학 구조의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인가?

공현 : 그렇다. 제일 먼저 건드려야 할 부분이다. 부실한 대학들을 국가가 나서서 인수, 국립대화해서 점점 국립대통합 네트워크를 확대해야 한다. 입시제도에도 문제가 많다. 상대평가인 입시를 절대평가로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부작용은 어디에나 있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다. 자주 언급되는 핀란드, 프랑스, 독일 같은 경우 우리나라처럼 획일화된 대학 서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학교의 교수, 연구진, 전문화, 자료의 정도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이다.

프레시안 : 지금 입시제도인 수능은 꽤 공정한 제도 아닌가. 기부 입학이 활성화된 외국에 비하면 말이다.

공현 : 다른 나라들과는 대학 진학률 자체가 다르니까 비교는 무리다. 대학 자체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수능으로 거의 일원화하다시피한 것 자체가 모든 학생이 입시 경쟁으로 뛰어들어야만 하는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바꿔 생각해서 모든 학생이 입시에 뛰어드는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대학마다 자체의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대학부터 가고서'라는 인식을 깨부술 것"

프레시안 : '대학 거부 선언'이 수능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에 방황하는 입시생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공현 : 함께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고3 학생이 "대학 입시를 고민하다가 이제 마음잡고 공부하기로 했는데 그러냐"며 화낸 적이 있다. 그러나 '대학 거부 선언'은 대학 가는 사람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다. 그것을 자신에 대한 문제 제기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심정은 이해가 간다.

우리나라에서 수능이나 입시는 성역처럼 존재한다. 다들 비판은 하지만 추상적인 경우가 많고 구체적으로 접근하려 하면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에게 거부당한다. '비판을 해도 일단 대학을 가고 나서 해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일단 대학부터'라는 말에 대한 정면 거부가 바로 이번 '대학 거부 선언'의 취지이다. '일단 대학부터'라는 식으로 비판을 유예해온 방어논리에 균열을 내겠다는 것이다. 또한, 학부모를 포함한 성인들이 학생들을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대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학·대학입시 거부 선언', 대학 안 간 사람이 겪는 불이익 바로잡는 운동"

프레시안 : 그러나 '일단 대학부터' 가고 나서 결정하면 안 되는 건가?

공현 : 그러기에는 대학에 다니는 데 필요한 것이 많다. 높은 등록금이며, 시간이며... 사람들은 내 자퇴에 대해 용기 있다고 하지만 사실 대학은 다닐 때 이유가 필요한 것이지 그만둘 때에는 이유가 필요 없다. 오히려 나처럼 우유부단하게 대학에 갔다가 자퇴한 사람보다 처음부터 '대학 입시'를 거부하는 쪽이 더 용기 있다.

물론 '대학 입시 거부'를 하는 학생들이 만약 대학에 갔더라면 좋은 대학 생활을 즐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대학에 갔을 때 굉장히 실망할 수도 있다. 가능성은 어느 쪽이든 열려 있는 것이고 속단할 수 없는 것이다.

'일단 대학부터' 가고 나서 결정하라는 말 자체가 대학이 우리나라 사회에서 가지는 특수한 위치를 보여주는 말이다. 그 특수한 위치를 깨야 한다. '대학·대학입시 거부 선언'이 바로 대학을 안 간 사람들이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과 기회의 상실에 대해 비판하고 바꾸라는 운동이다.

"계획은 '고졸 네트워크'"

프레시안 : 앞으로 대학 거부 선언인들의 계획이 궁금하다.

공현 : 거리 캠페인을 주말마다 열 예정이다. 굳이 대학 거부 선언을 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현재 대학 구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하는 문화제를 계획하고 있다. 대학들이 입시 철마다 '입시 설명회'를 여는 것처럼 우리는 '입시 거부 설명회'를 열 계획도 있다.

프레시안 : 김예슬 씨가 고려대를 자퇴할 때 이슈가 되었지만 곧 사람들에게 잊히게 되었다. 어떻게 '대학 거부 선언'을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흐름으로 만들 것인가.

공현 : 대학 서열화 때문에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것은 청소년이다. 청소년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활동이 필요하다. 또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이 학력 차별에 대해 계속해서 문제 제기를 하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고졸 네트워크'를 꾸리려는 움직임이 있고, 나도 관심이 있다. 큰 단체 수준이 아니더라도 학력 차별과 대학 서열에 대해 지적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우리는 왜 대학을 거부하는가

"한국에서 대학은 '1000만 원짜리 청심환'"…왜?
"학벌 기득권 정점, 서울대를 떠납니다"
"고졸 스무 살, 저는 안녕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