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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당'과 분자적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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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당'과 분자적 혁명

[남재희 칼럼]<27> 다시 유토피아를 꿈꿀 때가 아닐까

요즘 세계적 현상으로 일어나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우리는 99%다") 라는 젊은 세대의 항의 운동을 주시하면서 특별히 관심을 두는 두 가지 말이 있다.

영국의 합리적 보수지 <이코노미스트>(2011년 10월 8일)는 그 칼럼에서 항의자들은, Republicrats라는 Republican과 Democrats의 합성어를 사용하면서, 미국의 양당 모두 비슷하게 부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니 젊은 세대의 항의 운동이 그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내가 보기에는 결국 투표장에서는 대부분 민주당에 가리라고 내다보지만 말이다.

그 합성어를 한국에 적용해보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한주당'이 될 것인데, 그 합성어에 양 당은 모두 이의를 제기하겠지만 어떤 면으로는 진실이 없지 않다고도 보인다. 한쪽은 부자당이라는 비아냥을 받고, 또 한쪽은 서민을 위하는 체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지지기반인 지역만이 현저히 다를 뿐, 소외계층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정책 방향이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모두 부처님 손바닥의 손오공처럼 재벌들의 손바닥 위에 있다는 냉소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정당정치의 위기를 맞아 정당들이 참으로 국민을 위하는 그들의 정체성을 보다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다른 하나 관심을 끈 것은, 얼마간 시일이 지난 것이지만,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의 '분자적(molecular) 혁명론'이다. 그 압축된 설명을 보니 "표면상은 한계적(限界的)이고 주변적(周邊的)인 그룹들의 지속적인 작용으로 추동되는 사회변화"라고 되어 있는데 양상에 있어서는 요즘의 항의운동을 설명하는 데 알맞은 것 같다.

▲ 미국 전역에 젊은이를 중심으로 시위가 확산되는 배경에는 미국 대학생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있다. ⓒAP=연합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 보태어 안철수현상이라는 사회적·정치적 쓰나미를 방금 겪었다. 그 쓰나미에 관해서는 해석이 구구한데, 여하튼 여야 정당에 대한 불신이 대단히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의 정당들은 분명히 반파(半破) 상태인 것이다.

최근에 세상을 떠난 발명의 천재 스티브 잡스는 "다르게 생각하라"는 그의 신조로 알려졌다. 그 다르게 생각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유토피아'란 말을 떠올려 본다. 현대는 유토피아가 사망한 시대가 아닌가 한다. 전날에 마르크시즘에서는 '과학적'이라는 말로 '유토피아적'이란 말을 배격하여 유토피아라면 질색이다. 그 반대진영에서도 역시 과학이다, 실증이다 등을 내세우며 유토피아를 공상(空想)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꼭 있어야 할 꿈이라 본다. 인간은 꿈을 꾸는 동물이라고 심리학에서는 말하고 있다. 백일몽(白日夢)일지라도 꿈이 있어야 인간사회는 발전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사회의 진보란 결국 그 유토피아를 실현해 나가는 일이다.

그 꿈이, 유토피아가 우리의 젊은 세대에게는 없다. 아니, 우리 사회의 많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없다. 청년 실업, 비정규직, 계층 간 빈부격차의 심화, 20대 80의 사회에서 1대 99 사회로의 극단화… 특히 신자유주의(시장근본주의)의 종착역이 결국 그런 것인지 금융자본이 독식·황금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그것도 (국내외) 금융투기자본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기에 굳이 여기서 통계를 나열할 필요가 없다. 보수 언론에서도 그런 통계를 생생히 읽을 수 있다. <조선일보>의 송희영 칼럼 '폭풍전야'(2011년 10월 8일)를 보라.

자,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정책의 프레임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제까지 복지문제를 두고 포퓰리즘이다, 아니다 등등 수준이 매우 낮은 논쟁만을 하였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문제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이제 그 논란 단계는 지났다. '복지국가 이상의 차원'으로 진입해야 하는 것이다. 복지국가 목표는 당연하고 진정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이제 논의해야 한다.

우선 복지는 주로 재분배의 문제인데 분배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안철수 교수 표현을 빌리면, '삼성 동물원' 같은 약육강식의 문제가 있다. 정운찬 전 총리가 가냘픈 소리를 내고 있는 문제다. 노사 간에도, 잘 알고 있다시피,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다. 실업, 비정규직, 사내하도급, 마구잡이 해고… 그러한 분배의 문제가 재분배의 문제보다 근본적 차원이다. 그 밖에도 사회정의의 여러 문제가 있다.

정책프레임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바꿀 것인가는 요즘 표현대로 집단지성의 노력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주된 책임은 정당들에 있다. 그들은 정책의 생산과 집행을 본업으로 하는 게 아닌가. 모든 정당이 가히 혁명적이라 할 변화를 할 때라고 본다. 적어도 미국의 공화당·민주당의 수준 정도라도 나가야 한다. 비록 Republicrats라고 조롱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서 배울 게 있다. 더 나아가서는 영국의 보수당·노동당이나 독일의 기민당·사민당도 참고로 삼을 만할 것이다.

요즘 읽은 글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게 있다. 문진영 교수의 '버핏세 논란' 제목의 글<한겨레>(2011.10.12)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부자들과 대기업은 자신의 이익을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사회적 진지를 갖추고 있다. 유능한 로비스트를 고용할 수 있고,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으며, 경험과 능력을 갖춘 변호사를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유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진지를 구축할 능력도 조직도 없는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서두에 '분자적 혁명' 이야기를 인용했지만, 밑으로부터의 혁명보다 위로부터의 혁명이 더욱 안정적이고 효과적임은 확실하다. 정당들의 혁명적 변화와 함께 앞으로 곧 닥칠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그런 혁명적 의미를 갖고 치러지기를 희망한다. 아무리 항의운동을 전개한다 해도 결국은 투표함에서 승패가 가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 민주주의다.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혁명적까지는 몰라도 준혁명적 열기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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