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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이면 괜찮나? 히틀러도 다수결로 정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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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이면 괜찮나? 히틀러도 다수결로 정권 잡았다

다수결의 함정에 빠진 한국 정치

지난 해 미디어법에 이어 이번에 새해 예산안도 한나라당은 소위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의 이름으로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그러나 민주사회에서는 다수결 원칙에 앞서 먼저 소수자 권리가 법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히틀러의 나치당도 다수결로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그 후 나치당의 행적이 보여주었듯이 그들은 600만의 유태인, 집시, 장애인, 동성애자 등을 가스실에서 학살 했다. 역사가 보여 주었듯이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다수결의 횡포는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모습의 독재일 뿐이다. 오늘 우리 한국정치는 다수결의 함정에 빠져 있다.

전 세계 인구 중 왼손잡이의 비율은 약 10% 정도다. 그런데 어느 날 90%의 오른손잡이가 모여서 다수결로 "왼손잡이를 다 없애자"고 결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다수결에 의한 결정사항이니 이 원칙과 결정이 존중되어야 하는가? 약자와 소수에 대한 배려가 없는 다수결의 결정은 횡포일 뿐이고 민주주의의 이름을 가장한 독재일 뿐이다. 이번 예산안에서도 사회적 약자인 영유아 필수예방 접종비와 결식아동급식비 등을 한나라당은 전액 삭감했다. 오른손잡이가 모여서 왼손잡이를 다수결의 이름으로 죽이는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약자와 소수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이것은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한나라당이 줄기차게 내세우는 이 다수결의 함정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은 뭘까? 단기적으로는 대국민서명운동 등에 대한 적극적 참여 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사회적 약자가 자기의 이익과 권리를 대변 해 주는 사람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으로 뽑는 길 뿐이다.

오늘 우리현실의 문제는 서민 근로자가 자기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보다는 재벌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을 압도적으로 밀어주는 이상한 현상에 있다. 교육열이 세계최고라는 우리 국민인데 이렇게 정치의식이 없고 자기 밥을 못 챙겨 먹을까?

나는 지금 1945년 7월에 벌어진 영국총선이 떠오른다. '악의 천재' 히틀러를 물리친 전쟁 영웅 처칠과 보수당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압승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선거 유세기간 중 국민영웅 처칠은 가는 곳마다 영국 국민들로부터 열광적 환호와 찬사를 받았다. 반면 동네 주민센터 직원처럼 곱상하게 생긴 노동당 당수 애틀리는 개인적 카리스마, 리더십, 심지어 외모에서 듬직한 처칠에 감히 비할 바가 못 되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정반대였다. 영국 노동자들은 자본가, 기업인과 가까운 보수당 보다는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 해 주는 노동당에게 압도적으로 표를 던졌다. 그래서 이때 유행하던 구호가 "처칠을 응원해요 그러나 투표는 노동당에게!(Cheer for Churchill but Vote for Labour!)이었다.

보수당이 참패한 뜻밖의 선거결과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국민영웅 처칠 자신이었다. 그 후 처칠은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다.

노동자를 위한 당 노동당의 압승으로 노동당 정부는 서민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유감없이 펼쳤다. 그것은 영국경제의 주요 부문들을 국유화하고, 병원무료, 교육무료, 서민을 위한 저렴한 주택공급 등 복지국가를 향한 각종 정책들을 과감하게 실시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선거참패 후 국회의원 화장실에서 만난 신임 수상 애틀리를 처칠이 피하기까지 했다. 애틀리 수상이 국민영웅 처칠에게 "경(Sir), 왜 저를 피하시나요?"라고 공손히 묻자 처칠이 "수상께서 나의 사적부분(private part, 성기를 말함)을 국유화(nationalization) 할까봐 두려워서입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영국 유권자 중 근로자(노동자, 서민)들은 선거 때 철저히 대부분 노동당에게 표를 던진다. 반면 중상층이나 기업인, 자본가 들은 대부분 자기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보수당을 지원한다.

의사의 딸인 영국중상층 가정에서 자란 나의 영국인 아내도 그래서 영국에서 살 때는 보수당에 표를 던졌다. 당시 노동당을 지지하던 나는 그 일로 아내와 종종 부부싸움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8년간 열악한 사회복지 실태의 쓴맛을 몸으로 겪은 아내가 어느 순간부터 영국에서 열렬한 노동당 지지자로 변했다. 더구나 나는 한 때 아내의 바가지에 못 이겨 민노당 당원까지도 해야 했다. 아내가 한 말이 아직도 안 잊혀 지는데 그것은 "한국의 민노당도 영국의 보수당보다 사회복지를 못해요! 영국 노동자는 노동당만 지지하는데 왜 한국 노동자(근로자) 들은 한나라당을 지지해요?" 참 신비한 일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다수결이라는 독재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가 살 수 있고 존중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기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는 길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수와 약자를 무시한 다수결의 횡포는 계속 될 것이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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