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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쉽게 될 일, 왜 6년을 끌었나"…기륭 노동자들의 허탈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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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쉽게 될 일, 왜 6년을 끌었나"…기륭 노동자들의 허탈한 눈물

고용 합의 조인식…비정규직 조합원 10명 정규직화

"믿기지가 않네요. 이렇게 쉽게 될 거였으면 왜 6년이나 질질 끌었는지 몰라."(박행란 조합원)

기륭전자 사측이 해고자들을 직접 고용한다는 내용의 노사합의서에 최종 조인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지 1895일째, 햇수로 6년 만이다.

이번 합의는 2년 이하로 고용된 파견 노동자가 정규직화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로써 단식, 고공농성, 철야농성 등 갖가지 수단으로 6년 동안 외롭게 싸웠던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직접 고용이 현실화됐다.

2년 미만 고용된 비정규직 조합원 10명 정규직화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는 1일 국회에서 사측과 고용합의서 조인식을 열었다. 조인식에는 최동렬 기륭전자 회장과 정영춘 부사장, 기륭전자 분회 조합원 10명 등이 참석했다. 사측은 마지막까지 남았던 조합원 10명 전원을 1년 6개월 뒤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단, 회사 경영 사정이 좋지 않으면 고용을 3년 뒤로 미룰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달렸다.

▲ 1일 국회에서 열린 고용합의서 조인식을 마치고 기륭전자 노사가 악수하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김소연 분회장은 "애초에 많은 조합원이 있었는데 그분들과 함께 못 가 죄송하고 미안하다"며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처음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200여 명이었던 조합원 수는 6년이 지나면서 10명으로 줄어 있었다. 그는 "조합원 전체가 복직해야 하는데 마지막 10명만 복직돼 너무나 속상하다"고 거듭 말했다.

김 분회장은 "현장으로 돌아가 열심히 일할 것"이라며 "서로 존중받으며 일하는 일터를 노사가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의 고통이 더는 확산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소망도 덧붙였다.

최동열 기륭전자 회장은 "지난 6년간 서로 많이 할퀴어 상처도 났지만 사회 통합과 노사 상생 및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정영춘 부사장도 "먼 길을 돌아서 여기까지 왔다"며 "누가 잘했고 누가 승리했는지를 떠나 앞으로 힘을 합쳐 합의의 기본 바탕인 상생의 정신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은 "기륭전자 얘기를 들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라며 말문을 열었다. 박 위원장은 이번 합의를 두고 "사회에서 노사갈등,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처럼 됐던 기륭 문제가 6년이라는 기간 동안 끝까지 굽히지 않고 왔던 결과"라고 평했다. 그는 "기륭전자 문제는 불법 파견 문제가 노동자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보여준 사례"라며 "이번 합의로 파견 제도를 법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허탈한 눈물…"순간의 조인식 때문에 세 번이나 단식해야 했나"

▲ 20일간 단식을 풀고 농성장 아래로 내려온 오석순 조합원이 다른 조합원의 아이를 안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조인식이 끝나고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농성장으로 돌아가 보고대회 및 단식자 농성 중단 집회를 열었다. 단식 20일 차에 접어든 오석순 조합원이 말문을 열었다.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네요. 단식하느라 여기 있는 동안에도 계속 조인식이 열렸는지 실감이 안 났어요. 3시 가까이 돼서 조인식이 됐다고 연락받았는데 막상 그 얘기를 들으니 아무 느낌도 안 들고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었어요. 이 순간의 조인식 때문에 우리가 세 번이나 단식을 하고 고공농성도 서너 차례 해야 했나…. 우리 사회가 이렇다는 게 마음 쓰리고 아프게 느껴졌어요. 이렇게 노동자를 극단으로 몰아가는 사회 때문에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오 조합원은 "6년 동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들의 힘 때문만은 아니었다"며 "성원해주고 함께해준 동지들 때문에 힘내서 올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그는 "지금 우리의 승리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2년 이하의 파견 노동자가 승리를 거뒀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김 분회장은 "조인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파견법을 폐기하고 간접고용을 철폐하는 더 넓은 투쟁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노동조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위해 싸우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프레시안(최형락)
▲ 눈물 흘리는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프레시안(최형락)

"'제2의 기륭전자' 나오지 않게 노력하겠다"

김소연 분회장은 "기륭전자 비정규직은 고통받는 노동자의 산 증인"이라며 "국가 고용전략2020을 저지하는 데 주력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앞으로 제2, 제3의 기륭이 나오지 않게 노력하겠다"는 의지도 다졌다. 다음은 김소연 분회장과의 일문일답.

-가장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면?

"2005년 7월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었을 때 150명이 한꺼번에 가입했다. 그때 많은 조합원이 눈물을 흘렸다. 노동조합이 있으니 이제 안 잘리겠구나 싶었다. 그때만 잘 해결됐더라도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008년 사측에서 제시한 안을 수용하지 않고 협상이 결렬됐을 때다. 많은 조합원들이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와중에도 예전처럼 '이길 수 있다. 남아서 싸우자. 자신 있다'는 말은 못 했다. 남은 사람들에게 버틸 수 있을 만큼 싸워보자고 말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투쟁할지 막막했다."

-6년간 투쟁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일해보지 않고서는 고통을 알 수 없다. 똑같은 라인에서 똑같이 일해도 비정규직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밖에 못 받는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해고되기도 한다. 다시는 그런 세월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불법파견을 시정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왜 비정규직의 고통은 계속되는지 모르겠다. 끝까지 싸우지 않았다면 자포자기 심정에 의욕 없이 살았을 것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먼저 모란공원에 묻혀 있는 권명희 조합원의 조문을 가고 싶다. 말없이 도와주시던 분인데 투쟁하던 중에 2008년 암에 걸려 돌아가셨다. 여행도 가고 싶다. 6년 동안 투쟁하면서 심신이 지쳐 있다. 건강부터 챙기고 그동안 못 챙겼던 가족도 챙기고 싶다. 그 이후에는 전국을 순회하면서 그동안 도와주셨던 동지들에게 인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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