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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 뭉개는 '불도저 길'을 '자전거 길'로 우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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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논밭 뭉개는 '불도저 길'을 '자전거 길'로 우기지 말라!"

[인터뷰] '진짜' 바이커는 4대강 자전거 도로에 반대한다

"우리는 자전거가 자동차를 대체하는 훌륭한 교통 수단이라고 주장했지, 관광용 자전거 길을 만들어 달라고 조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전거에게도 차선 하나를 내어 달라고 했지, 물길, 숲길, 밭길을 없애고 자전거에게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수돗물이 흐르는 청계천이 녹색이 아닌 것처럼, 시멘트로 포장한 강이 녹색이 아닌 것처럼, 자전거 역시 그 자체로 '녹색'은 아닙니다. 풀숲과 습지와 밭과 논을 갈아엎고 만든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그것은 차라리 녹색의 정반대인, 자동차 비슷한 괴상한 물건일 뿐입니다."

자전거 도로, 생태 공원, 야외 공연장…. '녹색'이란 이름의 개발 사업으로 수십 년 동안 일궈온 땅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북한강변에서 길게는 30년 동안 유기 농사를 지어온 팔당 농민이 바로 그들이다.

한 때는 '한국 유기 농업의 메카'로 불리며, 이명박 대통령까지 직접 방문해 유기농을 장려했던 지역이지만,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이곳은 곧 밀려나갈 위기다. 정부는 이곳의 유기 농업 단지를 없앤 후, 자전거 도로·생태 공원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짧았던 '유기농의 신화'가 끝나고 농민의 한탄만 남은 이곳에, 21일 조금은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환경을 망치고 생명을 죽이며 만든 자전거 도로, 그 죽음의 길을 달리며 행복해 할 순 없다"며 '저항의 자전거 순례'에 나선 '발바리' 회원들이 그들이다.

▲ '발바리' 회원들이 21일 4대강 사업 예정지인 팔당 유기농 단지로 '떼잔차질'을 벌이고 있다. ⓒ농지보존친환경농업사수를위한팔당공동대책위원회

"불도저 길을 자전거 길로 우기지 말라"

'두 발과 두 바퀴로 달리는 떼거리'의 준말인 '발바리'는 올해로 결성 10년을 맞은 자전거 애호가의 모임이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마다 서울 주한미국대사관 옆 시민열린광장에 모여 '떼잔차질(떼거리 자전거질)'에 나선다. 2001년 회원 8명으로 시작해 어느덧 100회를 넘긴 이들의 모임은 적게는 30~40명에서 많게는 300여 명이 참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자동차에 점령당한 도로를 되찾자"며 한국판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자전거를 차도의 정당한 이용자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미국의 자전거 타기 운동)'를 벌이는 이들에게 정부의 자전거 정책은 어떤 의미일까.

"자전거를 사랑하고, 자전거와 함께하고, 자전거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해, '녹색 성장'의 일환으로 전국 곳곳에서 추진 중인 자전거 도로 조성에 대해 이들은 "불도저가 만들어낸 시멘트 덩어리에 '자전거'라는 이름이 쓰인다는 것 자체가 불쾌한 명예 훼손"이라고 일축했다.

팔당으로 향하는 '떼잔차질'은 이런 의미에서 마련됐다. '녹색'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4대강 사업에 밀려 쫓겨나는 농민들, 자전거 도로로 사라질 유기 농지를 두 바퀴와 두 다리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생태 파괴의 핑계 거리이자 전시 행정의 주요 아이템이 되어 버린" 자전거 도로에 대해, "철학 없이 난무하는 '녹색'"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21일 오후, 이들 사이에선 이른바 '발바리 공원'이라 불리는 서울 종로구 시민열린광장은 팔당으로 향하는 30명 남짓의 사람들로 분주했다. '불도저는 자전거길을 만들지 못한다', '팔당 농민 몰아내는 자전거 도로 안 돼' 등,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적은 깃발과 팻말이 자전거와 배낭에 나붙었다. 이들의 1박 2일 순례는 떼잔차질 외에도 농촌 일손 돕기, 팔당 농민들과의 간담회 등으로 이뤄졌다.

이 행사를 처음 제안했던 발바리 회원 지음(34) 씨를 출발에 앞서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팔당 농민 몰아내는 자전거 도로는 STOP!" 팔당에 도착한 발바리 회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농지보존친환경농업사수를위한팔당공동대책위원회

"4대강 시멘트 덩어리가 '녹색'이라고? 자전거에 대한 '명예 훼손'"

프레시안 : '팔당 떼잔차질'은 어떻게 기획됐나.

지음 : 사실 좀 짜증이 났다. 자전거 길이 아닌 불도저 길을 만드는 것이 목적인데, 거기다 '자전거', '녹색'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까…. 발바리가 2001년부터 떼잔차질을 시작할 때만 해도, 거리에 자전거 전용 도로는커녕 자전거도 별로 없었다. 법적으로 도로에서 타야하는 거지만, 도로에서 나가라는 운전자들과 무수히 시비가 붙었다.

사실 정부가 이런저런 자전거 정책을 만들어낸다고 하니까, 기대도 좀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자전거는 자전거가 아니다. 불도저로 동물들이 지나다는 숲길, 물고기가 헤엄치는 물길, 농민들이 작물을 돌보는 밭길을 밀어버리고 만들어낸 자전거길은 이미 자전거길이 아니다. 환경을 망치고 생명을 죽이며 만든 자전거 도로, 그 죽음의 길을 달리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사실 팔당에 그렇게까지 해서 자전거 도로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전거는 근거리 교통 수단인데, 거기서 살던 농민들을 다 쫓아내고 누구더러 자전거를 타라는 건가?

프레시안 : 이른바 '녹색 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이런저런 자전거 정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지음 : 당장이라도 자전거를 타고 만나러 가고픈 소중한 자연을 파괴하면서 '녹색'이란 이름을 쓸 수 있나. 그 긴 시멘트 덩어리에 자전거라는 이름이 쓰인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불쾌한 명에 훼손이다.

자전거가 '녹색'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게 자동차와 석유를 줄일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자전거를 왜 생태적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항상 걸어 다니던 사람이 자전거를 탄다고 해서 지구가 좀 더 생태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나. 자전거도 생산하려면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할 수밖에 없는 상품일 뿐이다. 자전거가 생태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자동차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개개인이 레저나 건강 관리의 수단으로 자전거를 타는 건 좋은 일이지만, 국가가 오로지 '레저'를 위해 돈을 쓰면서 '녹색 성장'이라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 팔당 유기농 단지를 없애고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자동차에 자전거 싣고 팔당 가서 놀다 오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친환경도 녹색도 아닌, 위락 시설일 뿐이다.

'녹색 성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으려면, 도시에서 자전거가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수단으로 정착돼야 한다.

"자동차를 줄이지 않는 자전거 정책은 '녹색'이 아니다"

프레시안 : 서울 도심 곳곳에서 자전거 전용 도로가 많이 생기고 있다. 차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이 현실적으로 위험한 문제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지음 : 정책의 순서가 잘못됐다. 최근 자전거 전용 도로가 많이 생겼지만, 거기서 실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동차가 줄어들면 된다. 자전거 도로 조성 자체에 반대한다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도시에서 자동차를 줄일 수 있는 정책이 선행되어야 한다. 도심에서 속도 제한을 강하게 하는 방식 등을 통해서 사람들이 점차 자동차를 타는 것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길은 어디에나 끊임없이 이어져 있고,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것인데, 이 모든 길에 자전거 전용 도로를 만드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전거 도로를 달리더라도 언젠가는 도로가 끊기게 되고, 자동차를 만날 수밖에 없다. 차에 적응하지 않고 자전거 전용 도로만 달리는 것이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지금 만들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보면, 차가 많지 않고 교통 체증도 별로 없는 곳에 생기는데, 이건 뒤집어서 말하면 가장 빠르고 좋은 길들을 자동차가 다 점령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결국 자전거를 교통용이 아니라 레저용으로 쓰라는 거다. 그걸 녹색 정책이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 "자전거면 충분하다". '두 발과 두 바퀴로 달리는' 발바리 회원들이 차도를 달리고 있다. ⓒ발바리

프레시안 : '발바리' 활동에 대해 소개해 달라.

지음 : 조직된 동호회라기보다는, 느슨한 네트워크 형식의 모임을 지향한다. 그래서 회장이나 사무국장 같은 운영진도 없다. '자동차가 점령한 도로 중 한 차선은 자전거에게 내줘라'라는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모여 함께 자전거를 탄다. 이번 팔당 떼잔차질 같은 제안도, 누구든지 발바리 게시판(bike.jinbo.net)에 올리면 원하는 사람이 함께하는 형식이다. 한국판 '크리티컬 매스'라고 보면 된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팔당 떼잔차질에 나서며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음 : 자전거 길은 자전거가 만들면 된다. 불도저 길을 만들어 놓고 자전거 길이라 우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되게 기분 나쁘니까. (웃음)

▲ 지난 2월 강제 측량이 시작된 팔당 유기농 단지의 모습. ⓒ프레시안(최형락)

"우리가 없애야 할 것은 시멘트와 석유와 야만으로 점철된 자동차의 길이지, 동물들이 지나다는 숲길, 물고기가 헤엄치는 물길, 농민들이 작물을 돌보는 밭길이 아니다. 우리가 없애야 할 것은 녹색칠을 했을 뿐인 테마 공원과 그걸 보겠다고 몰려든 차들의 주차장이지, 수십년 동안 건강한 유기농 채소를 길러온 농부들의 삶의 터전이 아니다. 불도저가 지나간 자리에 생겨나는 건 자전거 도로가 아니라 '죽음의 길'일 뿐이다."

지음 씨가 '팔당 떼잔차질'에 앞서 발바리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불도저에 빼앗긴 농토'. 그러나 팔당 지역에 대한 수용 계획을 밝힌 정부는 내달 안으로 공권력을 투입해 유기 농지에 대한 강제 수용 절차에 착수할 예정이다. 동물과 사람의 발자국을 뒤따르던 '발바리'들의 자전거는 내달엔 팔당에서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까. 팔당으로 페달을 밟던 '진짜 바이커'들의 자전거 뒤로, '자전거면 충분하다'고 쓰인 깃발이 바람에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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