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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미국 vs 2010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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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미국 vs 2010년 한국

[화제의 책] 조너선 코졸의 <야만적 불평등>

한 장의 유명한 사진이 있다. 1957년, 총을 든 군인들이 고등학생의 등굣길을 '호위'하는 모습. 1954년 미국 대법원이 흑백 분리 교육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자, 아칸소주의 리틀록센트럴고등학교는 1957년 '흑백 공학'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입학 원서를 낸 흑인 학생은 고작 17명.

그나마 백인들의 온갖 협박에 못 이겨 8명은 등록을 포기했고, 나머지 9명에 대해서도 백인들은 등교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심지어 주지사가 주방위군과 경찰을 동원해 이들의 등교를 막았다. 결국 아이젠하워 당시 대통령은 연방 공수사단 병력까지 투입해 이들의 등교를 보호했다. 그 유명한 '리틀록 나인(Littlerock nine)' 사건이다.

▲ 1957년 미 연방 공수사단이 흑인 학생 9명의 등굣길을 보호하는 모습.

게토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동네는 화려한 주상복합건물과 무허가 판자촌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유명하다. 서울에 이보다 더 '극적인' 곳도 없기에, 이미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이 지역은 1988년 올림픽 전후 철거민들이 이주해 현재까지 무허가 집단촌을 형성하고 있다.

한 쪽의 아이들이 방과 후에도 학원과 과외를 전전하며 쉴 틈이 없는 동안, 다른 한 쪽의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을 하며 시간을 죽인다. 판자촌 안에는 학교가 없어, 큰 길 건너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들은 머리가 크면 자신의 거주지를 숨긴다. 두 마을 사이를 갈라놓는 양재천만이 '넘을 수 없는 곳'의 선을 그어주듯 무심하게 흘러간다.

50년 전 미국의 흑백 분리 학교와 다를 것 없는, 21세기 형 '게토'. 1950년대 미국에서 엄격한 분리가 이뤄진 기준이 피부색이었다면, 2010년 대한민국의 기준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경제력일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얘기가 옛말이 돼가는 오늘,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책 한 권이 국내에 소개됐다. <젊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로 유명한 교육학자 조너선 코졸의 책, <야만적 불평등>(김명신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이 그것이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분리'되고 '배제'되는가

'미국의 공교육은 왜 실패했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저자가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미국의 도심 빈민가 30여 곳을 돌아다니며 취재한 미국 교육 현장의 생생한 보고서다. 그는 미국의 공교육 시스템에서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어떻게 '분리'되고 '배제'되는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 <야만적 불평등> (조너선 코졸 지음, 김명신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문예출판사
숱한 도시를 돌며 저자가 목격한 것은 바로 '공교육 제도의 야만성'이다. 그는 빈부 격차·인종 갈등과 맞물린 교육 불평등의 참혹상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폭로한다. 그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미국 독립선언서의 문구가 유독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교육"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지목하는 미국 학교의 모순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재산세의 불균형으로 인한 공교육의 불평등이다. 미국의 공립학교는 대부분 기초 재정을 그 지역의 재산세에 의존한다.

이에 따라 부유층이 거주하는 교외 지역은 가난한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보다 학생 수 대비 더 많은 세금을 걷을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빈민 지역의 학교와 교외의 학교는 시설도, 학생들의 생활도, 교육의 질도, 심지어는 교과서조차도 '천지 차이'다.

봉인된 마틴 루터 킹의 '꿈'

리틀록 나인 사건 이후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인종 문제 역시 거의 모든 곳에서 "경악스러울 정도로 많이" 남아있다. 공립학교에서의 인종 분리는 이미 1954년 위헌으로 결론 났지만, 저자가 방문한 도심 지역 학교의 대부분은 학생 95~99퍼센트가 유색 인종이었다. 마틴 루터 킹에 관한 언급은 조심스러웠고, 킹 목사의 '꿈'은 단단히 봉인된 채 흑인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팸플릿에서나 확인 가능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한 현실은 당장 통계 수치에서도 드러났다. 1987년 뉴욕시의 학생 1인당 평균 교육비 지출액이 약 5500 달러인 반면,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뉴욕 교외 지구의 교육비 지출액은 1만5000 달러였다.

또 흑인 밀집 지역인 도심 학교의 경우, 학생들이 학업을 중도에 탈락하는 비율은 약 50퍼센트에 육박했다. 고학년이 될수록 남학생들은 범죄와 마약에 빠졌고, 여학생의 3분의1은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 그렇듯, 교육을 통해 바랄 수 있는 희망은 "한 줌도 되지 못했다".

한국과 미국의 '선발제 학교'

코졸은 이렇듯 계층과 인종 문제가 얽혀있는 사례로 미국의 선발제 학교인 '마그넷 스쿨'을 지적한다. 마그넷 스쿨은 인종 분리와 사회 계층 간 불균형 해소를 위해 만들어진 공립학교로, 보다 수준 높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우수한 교사와 학생을 마치 '마그넷(자석)'처럼 끌어당긴다는 의미에서 '마그넷 스쿨'이라 불린다.

공립학교에 불만이 있는 돈 많은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거나 공립 중에서도 마그넷 스쿨 같은 선발제 고등학교에 보내려고 애쓴다. 반면, 빈민층 부모들은 입학지원서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입학 시험을 위해 어떤 공부를 시켜야 하는지, 추천서는 무엇을 받아야 하는지 정보가 거의 없다. 자연스럽게 '인종 분리'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그넷 스쿨에 가난한 흑인 입학생은 거의 없다.

문제는 더 있다. 마그넷 스쿨에 좋은 교사와 우수한 학생이 몰리면서, 그 인근의 학교들은 운동장이나 미술 교사도 없이 15년 전 교과서를 갖고 수업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도 한 차례 문제가 된 적 있는 외국어고와 자사고 등, 선발제 학교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2010년의 게토

전국에서 판사를 가장 많이 배출해 '제 2의 경기고'라 불리는 서울의 한 외고는 법조인·의료인 부모를 둔 학생이 전교생의 2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기본으로 받아야하는' 사교육비는 한 달에 수백만 원에 이른다. 입학 후에도, 유독 이 외고 학생들은 일반고 학생들이 모이는 학원에 가지 않고 자신들끼리 그룹을 지어 과외를 받는다. 이 외고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북구의 한 중학교는 '한 학교 두 교복'으로 논란이 됐다. 지난해 이 학교에 '국제 특성화 과정', 즉 국제중이 생겨나면서 순식간에 '일반 과정'이 된 재학생들은 학교에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 하나 늘었다. 일반 과정 학생들은 깔끔하게 새로 지어진 국제중 건물로 출입이 금지됐고, 남학생들은 운동장 구석에 세워 놓은 국제중 학부모들의 외제차에 농구할 공간을 잃었다. 한 학기 등록금도, 받는 교육의 수준도, 심지어 교복조차도 현저하게 다른 '한 학교 두 공간'의 모습이다. 2010년 판 '게토'의 모습이다.

책은 꼬박 20년 전, 먼 나라 미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책이 전달하는 울림은 지금 이곳에서도 여전하다. '흑인과 백인 아이들이 함께 뛰어노는" 마틴 루터 킹의 '봉인된 꿈'은 일반중 학생과 국제중 학생이 함께 어울릴 수 없는 냉혹한 현실로 이곳에도 이어졌다.

코졸은 130년 전 영국의 역사가 액턴 경이 미국에 대해 쓴 글을 읽을 때마다 "아이러니와 슬픔을 느낀다"고 썼다.

"계층 간 차별이 없는 나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날 때 부모의 지위를 물려받기보다 사상과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상찬에 대한 무한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는 모든 젊은이에게 가능한 평등한 삶의 조건을 부여하는 평등 이론에 부합되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어느 누구도 어린 시절에 경쟁의 수단을 박탈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코졸이 말하는 '아이러니'는 바로 마지막 문장에 있다. 경쟁 수단이 거부되는 상황, 그것은 "유독 가난한 아이들에게만 제공되는 교육의 가장 일관되고도 유일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어느 누구도 어린 시절에 경쟁의 수단을 박탈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금, 한국 사회는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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