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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이 변했어요…비밀은 바로!"

[현장] 관악구 저소득층 주택 '에너지 효율화 개선 사업'

2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중앙동의 한 주택가.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서민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낡은 연립 주택이 이어진다. 기나긴 한파 끝에 영상 3~4도의 따뜻한 날씨였던 이날 오후, 언덕배기에 위치한 한 주택에서 때 아닌 망치 소리가 들렸다. 이 집 반지하에 세 들어 사는 김진숙(가명) 씨의 집에서 외풍을 막기 위한 단열 공사가 한창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냉기가 올라오는 반지하의 집에서 생활하는 김 씨에게 이번 겨울은 유달리 '혹독'했다. 틈만 나면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도 날씨였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나온 난방비 때문이다.

▲ 관악구 중앙동 김진숙(가명) 씨의 집. 얼핏 보기에도 부실하게 공사된 현관문과 창문 때문에 겨울이면 외풍이 심하다. ⓒ프레시안
김 씨를 포함해 세 식구가 사는 10평 남짓의 작은 집이지만, 지난달 가스비는 10만 원이 넘게 청구됐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매달 구청으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긴 하지만, 이것 외에는 별다른 수입이 없는 이들 가족에게 이 금액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행히 김 씨 가족은 관악구의 일자리나눔자활센터의 소개를 통해 무료로 단열 공사를 할 수 있었다. 에너지 효율화 사업을 꾸준히 제안해 온 에너지정치센터와 진보신당 녹색위원회가 공사에 힘을 보탰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도 집수리 현장을 방문해 팔을 걷어붙이고 도배 일을 도왔다. 이날 공사로 창문, 현관문에 이중창이 설치되고, 외벽 단열 공사와 도배가 진행됐다. 김진숙 씨는 "집 자체가 허술해 외풍이 심했는데, 이제 난방비가 좀 줄어들 것 같아 다행이다"고 반가움을 내비쳤다.

해마다 '땜질' 사업 거듭하는 정부 에너지 복지 정책

올 겨울 유례없이 심한 한파에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이들은 저소득층이다. 난방 기구가 부실한 주거 시설 자체도 문제지만, 정부의 겨울철 전기 요금 인상 발표에 벌써부터 내년 겨울이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정부 대책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에너지 가격 현실화 정책이 서민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에너지 복지 정책을 철저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와 맞물려 지식경제부 역시 지난 20일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에너지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저소득층 에너지 지원 방안은 △도시가스 요금 할인제 확대 △연탄 쿠폰 지급 대상자 확대 △지역 난방 기본 요금 감면제 △LPG 유통 구조 개선을 통한 가격 안정화를 주요 골자로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에너지 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것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정작 빈곤 현장에서 제기된다. 에너지 보조금과 같은 현금 지원 제도가 당장 저소득층을 '따뜻하게' 하는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매해 보조금 규모가 달라지는 한시적인 정책만으로는 에너지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현행 에너지기본법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에너지 공급자는 빈곤층 등 모든 국민에 대한 에너지의 보편적 공급에 기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는 그때그때 여론이나 국제 유가 상황에 따라서 에너지 지원책을 발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장의 효과를 거두기 쉬운 현금 지원 중심으로 정책이 짜이기 마련이다.

현재 정부가 추산하는 '에너지 빈곤층'은 총 120만여 명에 이른다. 소득의 10퍼센트 이상을 광열비에 지출하는 가구로, 영국의 산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지원 가구 선정 등의 계획 수립도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17대 국회 때부터 '에너지기본권' 법제화를 요구해온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현재 정부는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임의적으로 지원 대상이 선정되고, 실질적 지원이 필요함에도 소외되는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 전기료 못 내 촛불에 죽은 여중생, '에너지 기본권' 논란 점화)

"소비 중심의 지원보다는 에너지 효율화 지원으로"

이에 환경·에너지 분야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저소득층 주택에 대한 '에너지 효율화 지원 사업'을 정책 대안으로 제시한다. 연탄 지급·에너지 보조금 등 소비 중심의 지원보다는 주거 시설을 고쳐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더 장기적이고 친환경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 이날 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집 수리 결과, 외풍이 심했던 창문(위)이 사진 아래와 같이 이중창으로 바뀌었다. ⓒ프레시안
이날 중앙동 주택가에서 진행된 주택 수리도 에너지 효율화 지원 사업의 일환이다. 저소득층이 밀집해 있는 주거 시설의 상당수가 노후화된 주택인데, 이들 주택의 창호와 문을 교체하고, 벽체·바닥·천장 보강 등의 조치를 통해 난방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체 에너지 사용량 가운데 약 25퍼센트는 냉·난방, 조명 등 건물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소비된다. 그러나 이렇게 냉·난방에 사용되는 에너지 가운데 약 60퍼센트가 단열 성능이 약한 벽체와 창으로 유실되는 실정이다.

실제 지난해 10월 한국에너지복지센터가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저소득층 가구 6곳을 선정해 창호 교체와 단열 공사를 진행한 결과, 주택 기밀성(공기를 차단하는 정도)이 44퍼센트 높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녹색 성장? 4대강 토목 공사가 아니라 확실한 '녹색 일자리' 마련을"

이산화탄소 감축을 통한 기후 변화 완화 역시 에너지 효율화 사업의 장점으로 꼽힌다. 외국의 사례만 봐도, 독일의 '저에너지 건물 개·보수 프로그램'의 이산화탄소 감축 규모는 2006년 100만3800톤, 2007년 56만8000톤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적극적으로 추진된 미국의 주택 단열 보조 프로그램 (WAP·Weatherization Assistance Program) 역시, 연간 57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한국에너지복지센터 이기순 간사는 "에너지 효율을 고려해 신축 건물의 설계 기준을 독일 수준으로 강화할 경우, 5년 동안 에너지 수입 비용 1조7000억 원, 이산화탄소 2570만 톤이 감축될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에너지 효율화 사업을 통한 고용 창출 효과도 주목된다. 미국 에너지부 통계를 보면, 1978년부터 2005년까지 WAP를 통해 창출된 신규 일자리는 5만여 개이며, 매년 2만여 개 이상의 고용 유지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간사는 "WAP 사업을 우리나라에 도입할 경우 연 500여 개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소위 '녹색 성장' 시대에 걸 맞는 녹색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에너지 효율화 사업, '난방 기구 교체'에만 집중돼

▲ 관악구 저소득층 주택가에서 이뤄진 에너지 효율화 공사에서 직접 도배에 나선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프레시안
물론 정부도 2007년부터 저소득층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을 시작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가구를 대상으로 100만 원 한도 내에서 창호·단열 공사, 보일러 교체 등의 사업을 진행한 것. 지식경제부는 2010년에도 292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5만7000여 가구를 지원할 예정이다.

그러나 가구당 지원되는 금액이 평균 51만 원에 불과해 실제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사업의 내용 역시 주택 개선이 아닌 난방 기구 교체에 치우쳐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이기순 간사는 "지식경제부의 에너지 효율화 사업은 대부분 주택 개선이 아닌 난방 기구 교체에 집중돼 있다"며 "지금의 방향대로라면 저소득층 가정에 온수 매트 숫자만 늘어날 뿐, 에너지 효율성은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 간사는 이어서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지식경제부의 사업이라면, 국가 에너지를 수요 관리하는 것에 근본적으로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승수 의원은 이날 공사를 마치고 관악 일자리나눔자활센터 관계자와 함께 한 간담회에서 "에너지 복지 강화를 위해 저소득층의 에너지 구입비를 경감시킬 수 있는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의 확대 및 체계적인 진단과 사후 모니터링 과정이 시급하다"며 "이는 복지와 환경을 생각하고, 나아가 집수리 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향후 서울 관악, 구로, 노원, 은평, 울산 북구 지역에서 저소득층 에너지 빈곤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에너지 복지 제도 개선을 위한 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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