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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세상이 다 알게…노예가 돼 가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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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세상이 다 알게…노예가 돼 가는 우리"

[RevoluSong] 흐른의 <아무도 모르게(세상이 다 알게)>

버스를 타고 가거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문득 서글퍼질 때가 있다. 분명 가진 것 없는 사람들,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은데 세상은 왜 자꾸 더 안 좋아지는 것일까 싶기 때문이다. 이 가난한 사람들이 다 같이 가진 자들의 정치를 반대하고 가진 자들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한다면 세상은 금세 좋아질 텐데 왜 가난한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읽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가 싶기 때문이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말씀처럼 1000만 노동자가 광화문에 다 같이 모여 3일만 버텨도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 다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왜 우리는 함께 싸우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물론 알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지배 체제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갈수록 돈이 주인이 되고 인간은 소외되는 세상,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지역과 수도권의 격차가 더욱 극심해지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다함께 이 잘못된 세상을 바꾸려 애쓰기보다는 어떻게든 나 혼자 살아남아보겠다고 자기계발서를 읽고, 외국어를 공부하고, 수도권의 아파트를 사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 더욱 외로워지고 더욱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가난하고 정 없는 세상을 자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싱어송라이터 흐른의 노래는 그렇게 돈의 노예로 개별화되고 죽어가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냉정하게 응시하는 곡이다. 근사하고 그럴듯해 보이고 간편하게 보이며 돈을 벌지는 몰라도, 정작 소중한 것들은 하나씩 잃어가며 아무도 모르게 울고 있는 우리의 모습. 세상이 다 알게 죽어가면서도 소리 내지 못하고 각자 아무도 모르게 소리 죽여 울어야만 하는 우리의 모습.

이러한 오늘의 비극적 세태는 결코 이명박 정권을 몰아낸다고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안의 이명박, 우리 안의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모른 척하지만 세상이 다 아는 비극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싱어송라이터 흐른. ⓒ흐른

2006년 데뷔 EP를 내고, 지난해 첫 정규 앨범을 내놓은 싱어송라이터 흐른은 이러한 현실에 어떠한 해석도 덧붙이지 않고 냉정하고 메마른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다. 민중가요의 경우라면 사람들의 각성을 촉구하거나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낙관의 메시지를 이어서 제시했겠지만, 그녀의 노래 안에는 그러한 긍정과 진보의 믿음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녀가 희망을 버리고 절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이 그처럼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첫 정규 앨범에 발표했던 곡 <Global Citizen>처럼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흐른의 차이는 단지 시선의 차이만은 아니다. 그녀는 포크적인 멜로디에 프로그래밍 된 사운드를 섞어 댄서블한 리듬감을 불어넣음으로써 자신의 곡 <아무도 모르게>를 기존의 사회비판적인 곡과는 다른 질감을 가진 곡으로 탄생시켰다.

이것은 그녀가 일렉트로닉한 사운드와 포크 사운드를 두루 소화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증거이며, 또한 세상을 담은 노래의 어법들이 그만큼 다양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계몽과 선동으로 채워지던 민중가요의 시대가 민중가요 진영 안에서 1990년대 말에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면, 10년이 지난 지금은 인디 씬의 음악 안에 세상의 비극과 슬픔이 차곡차곡 담기고 있다.

이런 노래가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과 걱정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노래 안에 담긴 비참과 남루, 모두 우리가 만든 것이니 결국 우리가 넘어설 수밖에 없다. 흐른이 보내온 편지를 덧붙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숫자가 중요해진 세상인 것 같습니다. 신문은 국내 기업이 중동에서 몇조 원 규모의 원전을 수주했다고 떠들썩하고, 토익은 몇 점을 받아야 대기업에 입사하고,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려면 몇억 원이 있어야 되고…. 용산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도 이름 없는 몇 명의 숫자로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 이 곳에서 우리는 시민이나 국민이기보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 기업의 '고객'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통장 잔고의 숫자가 얼마를 넘지 못해 구매력이 없는 사람들은 고객이 아니므로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 이 나라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사람들이 죽어도 나 몰라라 합니다. 어차피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우리는 은연 중에 이 광풍 속에서 나만은 예외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영어 성적을 올리고 자격증을 따면서 스펙을 관리하면, 이 사회에서 '아웃'되지 않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이, 이전에는 망하는 게 예외였다면 이제는 안 망하는 게 예외가 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돈이 없는 사람은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고유한 생명과 권리를 가진 '인간'이 아닌 '숫자'로만 사람을 취급하는 이 상황은, 누구도 대 놓고 까발려서 얘기하지 않지만 결국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도 모르게(세상이 다 알게)>

작사/작곡/연주/프로그래밍: 흐른

근사할진 몰라도 그럴듯해 보여도
돈을 벌진 몰라도 간편하게 보여도
근사할진 몰라도 그럴듯해 보여도
돈을 벌진 몰라도 간편하게 보여도

아무도 모르게 울고있네
아무도 모르게 우린

세상이 다 알게 죽어가네
세상이 다 알게 우린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2009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매주 화, 목요일 <프레시안>을 통해서 발표될 이번 릴레이음악 발표를 통해서 독자들은 당대 뮤지션의 날카로운 비판을 최고의 음악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기사 : "다시 음악으로 희망을 쏘아 올리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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