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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킹'한 여대생 저출산 대책…'출산 서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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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킹'한 여대생 저출산 대책…'출산 서약서'

성신여대 저출산 관련 특강서 '출산 서약서' 작성

서울의 한 여대에서 열린 저출산 관련 특강에서 참석한 여대생에게 '출산 서약서'를 쓰게 하는 일이 발생해 논란이 예상 된다.

지난 9일 성신여자대학교(총장 심화진)는 '행복한 출산, 부강한 미래'라는 제목의 특강을 열었다. 간호대학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저출산 사회에 새로운 등불을 밝힌다'는 모토로 강연와 공연이 병행된 '특강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제작한 10분 분량의 출산 홍보 동영상 상영으로 시작한 이날 행사에서는 성신여대 부속 성신유치원 원아 20여 명이 '친구가 필요해요'라는 제목의 합창 공연을 벌였으며, 김용수 보건복지가족부 저출산인구정책 과장과 전나미 간호대 교수가 연사로 참석해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경각심을 강조했다.

이날 '이 시대 여성, 출산이 왜 중요한가?'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 전나미 교수는 "학생들의 출산에 대한 부담을 알고 있다. 지원 제도가 마련되고 학생들도 출산이 갖는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며 여대생들에게 출산에 대한 인식을 강조했다.

다출산의 '모범'을 보인 인사에게 공로패를 수여하고, 이들의 출산 경험을 듣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이날 심화진 총장은 아이 6명을 출산한 이 대학 박모 교수에게 공로패를 수여했으며, 세 아이를 출산한 가수 션(본명 노승환)은 '우리 부부의 사랑 나눔과 육아'라는 제목의 특강을 진행했다.

저출산보다 '쇼킹'한 '출산 서약서'

문제는 이날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행복 선언문'이라는 제목의 '출산 서약서'를 쓰는 프로그램이 배치된 것. 저출산 타개에 동참하자는 내용의 이 서약서에는 △적극적 출산 △낙태 방지 △가정의 화목에 여대생들이 앞장서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행사를 주최한 성신여대 측은 "최근 심각한 문제로 부상한 저출산 현상에 대한 경각심과 출산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그 실천 의지를 다지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저출산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낙태 근절과 여성의 '서약'이라는 방식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이 서약서 안에 담겨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사실 이 같은 인식은 최근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낙태 단속을 검토하겠다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 지난달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는 저출산 종합 대책으로 불법 낙태 단속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었다. 이와 함께 최근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도 '낙태 근절 캠페인'을 벌이며 낙태 시술 병원을 처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국가 정책으로 여성의 몸과 재생산권을 통제하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여성계의 비판도 빗발친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지원 없이 낙태만을 막는 것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에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뿐더러,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침해하는 반인권적인 발상이라는 주장이다.

▲ 9일 오전 성신여대에서 열린 '행복한 출산, 부강한 미래' 특강에서 학생들이 '출산 서약' 내용을 담은 '행복 선언서'를 흔들어 보이고 있다. 앞줄 가운데가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 ⓒ성신여자대학교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 출산'과 '낙태 방지'를 약속하는 서약서 작성을 대학 행사로 진행했다는 것은, 서약서 작성의 자발성 여부를 떠나 저출산 문제 해결을 '여성 개인의 문제'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학교 학생인 지희(경영학과·23) 씨는 "행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행사 이후 '여대생이 저출산 문제를 책임지겠다'는 식으로 언론 보도가 나온 것을 보고 불쾌했다"고 말했다.

지희 씨는 "여성 인재 양성을 모토로 내세우는 성신여대가 이런 발상의 행사를 했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라며 "취업과 승진에서 결혼과 육아로 인해 여성이 겪는 불이익이나 사회적 환경에 대한 고민없이, 여대생을 아이 낳는 도구로만 보고 있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김희영 활동가는 "한 때 여고생한테는 '순결 서약'을 시키더니, 이제 여대생한테는 '엄마 서약'을 시키는 것인가"라며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김 활동가는 이어서 "'출산 서약서'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책임을 여성의 문제로 환원하고, 더 나아가 저출산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개인 여성에게 떠넘기는 왜곡된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저출산 대책으로 '제도 개선' 꼽았는데도…

성신여대는 이번 행사에 앞서 저출산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7일간 '나의 다출산 동참의 최우선 조건은?'이라는 주제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1464명의 학생들이 참여한 이 설문 조사 결과에는 출산 장려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여대생들의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행사 당일 발표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에 응답한 1464명의 학생 가운데 747명이 '다출산의 최우선 조건'으로 육아비·의료비·교육비 부담 완화를 꼽았다. 이어 380명의 학생들이 육아 휴직 제도의 완비와 출산 및 양육으로 인한 직장 내에서의 차별 철폐 등, 직업 관련 사항을 출산의 조건으로 꼽았다.

출산 장려를 위해 필요한 것은 개인 여성의 '결의'나 낙태 방지 운동이 아니라, 여성이 걱정없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제도적 지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성민우회 김희영 활동가는 "설문 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실제 여대생들이 가진 출산에 대한 인식과 '출산 서약서'라는 행사는 전혀 인과 관계가 맞지 않는다"며 "출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간과한 채, 개인 여성의 문제로 저출산을 환원하려는 사고방식이 여대에서조차 나타났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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