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동안 동춘서커스단을 이끌어 온 박세환(66) 단장은 16일 "서커스단을 살리려다 이미 큰 빚을 졌고 더 이상 돈을 빌릴 곳도 없어 문을 닫기로 했다"고 밝혔다. 단원들을 모두 내보낸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해체다.
이에 앞서 서커스단 내부에선 9월 15일에 문을 닫기로 결정했었다. 그러나 외국인 곡예사들과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어 공연을 11월 15일까지로 연장했다.
현재 동춘서커스단이 지고 있는 빚은 3억8000만 원. 게다가 매달 지급해야 하는 임금만 4000만 원이 넘는다. 3개월치 밀린 월급은 11월 15일 전까지 우선 반을 지급하고 나머지는 내년에 주기로 단원들에게 약속했다.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면서 정부에 지원금을 요청했지만 개인 사업을 지원하기 어렵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 수산시장 옆 공터에 자리한 동춘 서커스의 파란 줄무늬 천막. 청량리 공연을 끝으로 동춘서커스는 문을 닫는다. ⓒ프레시안 |
동춘서커스는 1925년 일본 서커스단에서 활동하던 조선인 박동수(호 동춘)가 30명의 조선 사람들을 모아 창단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커스단이다. 전성기였던 1960~70년대에는 250명이 넘는 단원을 보유하기도 했다. 영화배우 허장강, 장항선, 코미디언 서영춘, 이주일, 배삼룡, 남철, 남성남 씨 등 많은 스타가 '동춘'을 거쳐갔다.
몇 개 남지 않은 다른 서커스단이 천막 공연을 포기하고 축제와 이벤트만 찾아다니며 생계를 꾸려가는 점을 감안하면 동춘서커스는 우리나라 유일의 서커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서커스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관객은 줄고 사정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공연할 땅을 빌리기도 점점 까다로워졌다. 무대에 설 사람이 부족해 중국 곡예사로 공연의 대부분을 대체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50여 명도 안 되는 전체 단원 중 중국인 곡예사만 29명에 달한다. 지금 무대에 올라가는 한국인 단원은 불과 5명이다.
관객에게 외면 받던 동춘서커스에게 불운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2003년에는 태풍 '매미'에 천막을 잃었다. 지난 해 발생한 미국발 경제 위기는 올 초 공연을 무산시켰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5개월간은 개점 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대목인 설연휴 공연이 무산된 것은 유래없던 일이다. 올해에는 신종플루의 여파로 관객이 더 줄어 입장료 수입은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서커스를 하겠다는 사람은 없고 떠나려는 사람은 많다. 공중곡예와 외발자전거가 특기인 양종근(27) 씨도 작년 8월 서커스단을 그만두고 새 일을 찾아나섰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다 장래가 밝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의 설득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만두고 나서 잠깐 배달 일을 했지만 적응은 쉽지 않았고 한국 고유의 서커스를 부활시키겠다는 막연한 의지만 가지고 2주만에 돌아왔다. 결국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그는 "여자친구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곡예사의 현실이다.
▲ ⓒ프레시안 |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부 단원들은 각자 갈 길을 찾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많은 단원들은 서커스단이 문 닫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다. '동춘'에서 35년 동안 공중곡예사로 활동한 김영희(44) 씨는 "어려운 건 알지만 일단 끝까지 가보고 다시 얘기를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러워했다.
동춘서커스는 이대로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언젠가는 새로운 공연기획사를 만들어 살려내겠다는 게 박 단장의 약속이다. 45년 노하우를 살려 세계적인 서커스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그는 동춘의 이야기를 담은 <태풍>이라는 작품의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는 뚜렷하지 않다. 상황만 좋아진다면 당장 내년부터라도 새 단원을 모집하겠다는 바람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 클릭하면 슬라이드 쇼를 볼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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