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가 시작되자, 200여개의 눈이 반짝였다.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소란스러웠던 강의실 역시 조용해졌다. 마련된 의자는 강의 시작 전에 이미 가득 찼고,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학생들은 통로 바닥에 앉거나 서서 강의를 지켜봤다.11일 오후,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에서 열린 진중권 전 교수의 '고별 강의' 풍경이었다.
▲11일 오후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에서 진중권 전 중앙대 겸임 교수의 '고별 강의'가 열렸다. ⓒ프레시안 |
최근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재임용을 거부당한 진 씨는 이날 '화가의 자화상'이란 제목으로 2시간 동안 강의를 진행했다. 진 씨의 재임용 거부 문제가 이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징계 문제로까지 비화되자, 이미 많은 논란을 겪을 터였다. 학생들의 징계 방침이 발표된 이후 한 포털사이트의 인터뷰 프로그램에 출연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그였지만, 이날 강의는 담담한 분위기에서 특유의 달변으로 진행됐다. (☞관련 기사: 진중권의 눈물…"이런 사회에 살게 해 미안합니다")
중앙대 학생들에게 이번 '마지막 강의'의 의미는 각별했다. '진중권교수재임용과징계시도철회를위한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소속 학생들이 직접 준비한 강의였다. 진 씨의 재임용 거부 소식에 "진보적 교수에 대한 학교의 정치 탄압"이라고 성토했던 학생들은 징계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고서도 스승과 마지막 '석별의 정'을 나누고자 모여들었다.
징계 대상자로 지목됐던 독어독문과 허완 씨는 "진중권 선생님은 2003년부터 6년간 학교에서 수업을 했지만, 갑작스럽게 2학기 강의 2개가 취소됐다"며 "아쉽지만 이 특강으로나마 선생님과 학생들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독어문과 대학원생 김동민 씨 역시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 엄혹한 세상에서 어떤 자화상으로 살아가야할지 앞으로 고민해봐야 겠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 '굿바이, 진중권!' 학생들에게 꽃다발을 선사받고 강의실을 나서고 있는 진중권 씨의 모습. ⓒ연합뉴스 |
그는 "우리는 '진보'를 말하지만, 실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은 정의가 승리하는 대신 불의가 승리하는 세상이다"라며 "(지식인이자 논객으로서) 발언을 했을 때, 반론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공격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진 씨는 독일 작가 페터 한트케(Peter Handke)의 시 '유년기의 노래' 낭송으로 이날 강의를 마무리했다. 그는 "이 시를 고른 이유는, 어른이 되면 'childlike(어린이다운)'은 사라지고 'childish(유치한)만 남기 때문"이라며 "그 현실을 학생들이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강연회를 마치고 비대위 학생들은 중앙대 자이언트 농구장에서 '뒤풀이'를 마련, 진중권 전 교수에게 보내는 '고별 영상'을 상영하는 등의 행사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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