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나 재계는 속으로 미소를 짓고 있을지 모르겠다. 새 정권이 등장하면 으레 치러야 했던 총자본과 총노동의 한판승부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노조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본때를 보였다'고 생각할 것이고, 이런 행태는 앞으로 노사문제에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밀어붙이기는 언제나 통하는 게 아니다. 합리적 설득 없이 힘만 쓰다간 폭발적 저항에 직면할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건 선진화가 아니라 개발독재로의 후퇴다. 시대착오적인 나라운영 방식이 지속가능할 리 없다.
강압적 구조조정 계속되면 폭발적 저항 부를지도
노동계는 참담한 심정이리라. 수년 전 대우차사태 때에 비해 무급휴직 등 여러가지 양보제안을 했지만 결국 경영진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직장동료 사이도 찢겨졌다. 힘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든 재계든 노동계든 그냥 좋아하거나 낙담만 할 게 아니라 근원적인 문제해결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기륭전자처럼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몇년씩 갈등이 지속되거나, 쌍용차처럼 구조조정하려다가 대규모 충돌을 겪기 마련이라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원래 자본주의에서는 노사갈등이 불가피하다. 노와 사는 둘 다 기업의 필수 구성요소란 점에서 상호의존 관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업이 생산한 부가가치의 분배를 둘러싸고 상호대립 관계에 서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갈등을 어떤 식으로 처리하는가인데, 여기서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가 나타난다. 얼마 전 중국의 철강회사에선 구조조정하려다가 사장이 노동자들에게 맞아죽는 사건이 있었다. 이런 극단적 대립은 바로 그 사회의 낙후성을 드러낸다.
반면 선진국에선 대체로 노사가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한다. 이번 세계금융위기에 따른 기업구조조정도 구미에서는 큰 분란 없이 처리하고 있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성숙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선진국이라도 나라에 따라 노사관계가 조금씩 다르긴 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나라가 덴마크다. 덴마크에선 경기악화로 30%의 노동력을 줄여야 하면, 인원을 30% 줄일지 60%의 직원이 일을 절반만 할지 노사가 의논해 타협점을 찾는다. 한국처럼 극한 상황까지 자기 주장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덴마크 기업은 경영상 필요하면 사전통고를 거쳐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기업이 함부로 노동자를 쫓아내진 않는다. 노동자의 축적된 숙련을 휴지 취급해서는 결국 해당 기업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 뒷받침된 노동유연성, 덴마크식 '유연안정성'
즉 기업이 합리적 효율성에 기초해 고용조정을 선택하는 노동의 유연성이 확보돼 있는 것이다. 대신에 해고된 노동자에 대해선 나라가 소득의 안정성을 보장한다. 사회안전망이 충실한 셈이다. 또 실직자 재취업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이것이 바로 유연안정성(flexicurity: flexibility+security)이며 다른 유럽 나라도 이를 도입하려 애쓰고 있다. 덴마크의 경제성과를 보면 분배 면에선 미국보다 훨씬 낫고, 성장과 고용 면에서도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 당연히 국민의 행복도가 높다.
한국의 노동계나 진보파는 노동의 유연성이라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몹쓸 신자유주의라는 것이다. 대중과의 호흡을 무시한데다 우리 현실과 괴리된 신자유주의 타령도 문제지만 노동의 유연성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도 곤란하다.
흔히 독일의 폴크스바겐 자동차회사에서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나눈 사례를 들고 나온다. 호황기에 노동시간을 저축했다 불황기에 찾아쓰는 방식도 거론된다.
이런 것들은 좋은 일이지만 일시적 해법인 경우가 많다. 폴크스바겐 역시 나중엔 대규모 인원삭감이 불가피했다. 해고 대신에 교육을 늘린 유한킴벌리 방식도 어느 경우에나 통하진 않는다.
시장경제는 노동과 자본이 유연하게 움직일 때 효율성을 발휘한다. 시장상황의 변화에 따라 노동과 자본이 적재적소로 옮겨가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비효율적 기업은 도태되어야 한다.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란 바로 이러한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뜻한다. 진보파가 이걸 거부하면 옛 소련·동구체제로 가자는 말이 된다. 시장만능주의를 반대한다고 시장마저 몰아내선 곤란하다.
▲ 지난 2월 한승수 국무총리가 스위스 다보스에서 안데르센 포그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와 접견하고 있다. ⓒ뉴시스 |
노동자간 소득 격차와 유연성 격차 완화해야
물론 구조조정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어쩌다 직장을 잘못 선택한 개인의 책임을 과도하게 물을 순 없고, 따라서 그 고통은 사회구성원 전체가 분담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안전망이고 민주적 구조조정의 요체다.
사실 한국에서 노동의 유연성은 양극화되어 있다. 중소기업에선 노동이 상당히 유연하다. 반면에 대기업 정규직 경우엔 쌍용차사태에서 보듯이 법과는 달리 실질적으론 경직적인 편이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쌍용차노조는 꽤 오래 버텼다. 그만큼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에 경영위기에 처해 인력조정이 필요한 모든 기업에서 노동자들이 다 힘이 강해 몇개월씩 사업장을 점령한다면 어찌 될까.
기륭전자처럼 쌍용차보다 오래 싸운 사업장도 있지만, 이런 데선 얼마 안 가 노동자들 대부분이 나가떨어지고 소수만 남는다. 상당수가 다른 일자리를 찾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 일자리나 옮긴 일자리나 처우가 그다지 차이나지 않는다.
그런데 쌍용차 같은 대기업의 정규직은 다른 데로 옮기면 이른바 일류 노동자에서 이류, 삼류 노동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은 바로 이러한 모순을 혁파하는 길이다. 넉넉한 세금으로 사회안전망과 복지를 확충해 대·중소기업 노동자 사이의 소득 격차와 유연성 격차를 완화할 수 있다. 교육 등 사회가 제공하는 복지를 늘리면 노동자들 간의 실질소득 격차가 줄어든다.
대기업 정규직의 고용경직성 때문에 비정규직이 늘어난다는 보수파의 주장이 전적으로 틀린 건 아니다. 다만 보수파는 증세(增稅)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고용경직성 문제가 민주적으로 해결된다는 점을 외면할 뿐이다.
덴마크모델 도입하려면 사회적 대타협 필요
덴마크가 유토피아는 아니다. 그들 사회를 그대로 한국에 옮겨놓을 수도 없다. 하지만 사회가 효율적이고 민주적으로 움직이는 기본원리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보수파나 진보파 중에는 덴마크 같은 북유럽모델은 우리에게 적용할 수 없다는 사람이 많다. 나라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역시 나라 크기가 다른 미국모델도 우리에겐 적용 불가능할 것이다.
도대체 나라 크기와 사회원리가 무슨 필연적 관계가 있는가. 다만 노조조직률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지는 문제다. 노조조직률을 높이든가 시민단체가 그 차이를 메울 수 있는가가 관건인 듯싶다.
덴마크식의 유연안정성은 무역의존도가 높아 세계시장 변동에 따라 기업을 유연하게 구조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출현했다. 그리고 미국과 달리 국민의 강한 문화적 동질성이 대화와 타협을 가능케 했다. 높은 교육수준은 분배의 평등을 지향했다. 이 모두 한국의 조건과 다를 게 없다. 한국은 그 조건에 걸맞은 씨스템을 아직 갖추지 못했을 뿐이다.
덴마크모델의 도입에는 기득권층의 반발이 만만찮을 것이다. 하지만 덴마크식이라면 고용조정이 쉬워진다. 기업내 복지부담이 줄어드는 잇점도 있다. 보수언론인 조선일보조차 덴마크에 대해 긍정적 칼럼을 몇번 실었던 터이므로 기득권층과 개혁진보세력의 사회적 대타협이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유연성과 복지의 결합이 선진사회의 관건
압축적이고 불균등한 성장경로를 밟아온 한국에선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구조조정이란 어떤 것인지 노도 사도 잘 모른다. 그래서 일단 힘으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쌍용차사태 같은 죽기살기식 대결을 마냥 지속할 수는 없다.
이를 해결하며 동시에 바람직한 선진사회로 나아가는 길이 덴마크모델이다. 보수파는 노동의 유연성만 주장하고 진보파는 복지의 확대만 내세운다. 양자가 서로 결합돼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간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그같은 선진사회를 구축한다면 쌍용차사태의 희생도 헛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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