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것이 우리 정치의 모습이라 하지만 이래서야 인터뷰의 시의성과 현장성을 어떻게 살릴 수 있나 하는 푸념 아닌 푸념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는 것을 양해해 주셨으면 한다. 한국 정치의 역동성인지, 한국 정치의 경박함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보면서.
▲ 민주당 박영선 의원 ⓒ프레시안 |
"MB 발언 오락가락"…"국가 이끄는 사람들 할 얘기 아냐"
"경기가 저점을 찍었다고 하는 게 일반적인 평인데 어떻게 보나?"
"돈이 많이 풀렸는데, 이 돈이 돌아도 경제 위기를 탈출 못하면 완전히 절망적이 될 것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MB 경제팀이 현 상황을 정확히 보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예측치가 항상 틀리고 상황이 지나간 다음에 평가를 한다. 그 정도는 민간경제연구소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왜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가?"
"너무 겁을 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국민에게 기대를 심어주는 것 자체를 정권 차원에서 부담으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윤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의 얘기를 들어보면 오락가락 한다. 어떤 때는 희망 섞인 얘기를 했다가 국민들이 기대감을 가질만하면 톤다운 시킨다. 이것은 국가를 이끄는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니다."
말에 자신감이 묻어난다. <MBC> 보도국 경제부장을 지냈고, 17대 국회 재경위원회 소속으로 '삼성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저돌적이고 터프한 박의원이다. 그런 그녀가 '출구전략' 대목에서는 신중모드로 돌아섰다. '안심하긴 이르다. 출구 전략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 혹은 아직 출구 전략을 얘기할 때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제일 심각한 것은 부동산 문제다. 강남에서 이유 없이 재개발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고, 비수기인데 전세값이 뛰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규제 완화를 했는데 유동성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불이 확 붙으려고 한다.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강북도 연립주택 등에 대해 규제가 풀린다 해서 엄청 오르고 있는데 보도가 안 되고 있다. 보도 될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부동산 투기가 다시 광풍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
"경제 정책 중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하나."
"근본적으로 중소기업, 제조업을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MB 정부는 자꾸 대기업 편향적으로 가고 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기회 균등 부분에서 가슴 아플 수 있다."
"어떤 것이 대기업 편중 정책인가."
"미디어법과 함께 날치기 한 금융지주회사법 같은 것들이다. 세계적 규제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대통령도 미국 경제 위기를 보면서 금융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한 적 있다."
"말뿐이다. 실제로 통제한 것은 하나도 없다. 지금은 오히려 일부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정책만 계속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민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데."
"현재 청와대에 포진한 여러 사람들을 옛날에 취재한 경험도 있고, 아는 사람들도 있다. 추론이지만 그 분들이 진심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인생을 살아본 경험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서민정책을 그냥 악세사리로 생각하는 것 같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복지정책의 문제점이 거기에 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대안을 제대로 낸 적 있나?"
"그동안 대안을 많이 냈다. 언론에 반영이 안 된 것도 있고, 의석수가 너무 적어서 표현을 못한 것도 있는데 아쉽다. 경제부총리 출신 김진표 의원이 작년 금융위기 당시 '통화 스왑'을 건의했다. 추경 편성 때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예산이 필요하다고 주장을 했는데 안 받아들여졌다. 4대강에 투입되는 22조 예산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면 경기 회복이 훨씬 건전한 방향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그 간의 정황을 보면 민주당이 대안을 내면 정부는 결과적으로 그 대안을 쫒아오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제대로 안 알려지고 있다."
야당 된 지 1년 반, 야당의 한계를 절감하는 듯 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 ⓒ프레시안 |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는 "부적합"
최근 민주당이 야당 특유의 전투력을 발휘해 성과를 올렸던 것이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였다. 박 의원은 반박할 수 없는 정보와 자료를 내놓아 여권을 꼼짝 못하게 했던 4명의 법사위원 중 한 명이다.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국민 앞에 당당한 사람을 임명하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걸 느꼈다. 당당한 사람은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거부할 것이기 때문에 적당히 흠 있는, 정권이 겁 안 내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서글프다."
"김 후보자도 정권이 손쉽게 다룰 만큼 흠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가?"
"지금까지 나타난 것만 봐도 그렇다. 위장전입 문제는 사실상 시인했는데 이것은 벌금 1000만 원 이하, 징역 3년 이하로 중죄다. 검찰총장은 법치주의를 세우는 최고 수장인데 범법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미국 같으면 결격 사유다. 그리고 아직 완벽하게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탈세 의혹이 있다. 김 후보자가 '나는 모르겠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범법, 한편으로는 탈세라면 양 날개에 흠집이 생기는 것이다. 검찰총장으로서 과연 국민적 신뢰를 받을 수 있겠나?"
"세간에는 '고위직에 임명될만한 사람 중 그 정도 흠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한다."
"평검사들의 신망을 받는 인물도 분명 있고, 그 중 한명이 검찰총장 고려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정권의 말을 잘 들을까'하는 부담을 느낀 게 결격사유였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람이 아주 없는 게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국민 앞에 당당하고 정권의 입맛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검찰 총장이 못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결론은? 김준규 후보자는 부적합한가?
"우리나라의 모든 잣대를 미국에 갖다댈 수는 없지만 김준규 후보자가 내건 '검찰선진화'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비추어 볼 때 부적합하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를 낙마시킨 인사청문회의 스타는 박지원의원과 박영선의원이었다. 이들의 콤비 플레이가 이번에도 이루어질까?
"인사청문회를 하면 역할 분담을 하나?"
"그렇지 않다. 다만 16명 법사위원 가운데 민주당이 4명뿐이라 자연스럽게 단결하고 협력하게 된다."
"호흡이 잘 맞나?"
"네 사람(박지원, 이춘석, 우윤근, 박영선) 이 회의도 자주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려고 애를 쓴다."
"원내대표 경선때 박지원 의원을 지원했는데 법사위원으로 호흡을 맞추다 그리 된 건가?"
"같이 일해 본 것은 법사위 들어와서 처음이다. 그동안 박지원 의원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실제로 일해 보니 나라를 운영해본 분이라 달랐다. 순간적인 판단력이 뛰어나고, 공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도 있고, 유머감각도 있고, 그래서 내가 추구하는 정치의 세계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연세가 많은 게 조금 아쉽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시는 것을 보면 '아들이라도 저렇게 모실 수 있을까'하는 그런 감동 같은 것을 준다."
민주, 인물 '영입'이 아니라 '매니지먼트'가 필요
▲민주당 박영선 의원 ⓒ프레시안 |
"한나라당 하면 몇 몇 대표하는 인물이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렇지 못하다. 또 있는 사람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한 인물이 국민 마음속에 자리 잡는데 필요한 비용이 광고비로 치면 100억 정도, 년수로 치면 10년 이상 필요하다. 대통령 후보가 되는 데 필수적 조건이고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그렇게 따지면 이명박 대통령은 짧은 시간에 급부상한 케이스에 해당되나?"
"그렇지 않다. 이명박은 박정희 때부터 현대건설이라는 신화가 있었다. 7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됐다. 경제부 기자 시절 MB (당시 현대건설 사장) 인터뷰를 참 많이 했다. 매일 반복되지는 않았지만 시대의 굴곡이 있을 때마다 큰 선을 타고 넘으면서 이명박도 국민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부분이 있다."
"박근혜는 어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애로서) 프리미엄이 상당하다."
"민주당이 어떻게 해야 하나?"
"매니지먼트가 필요하다. 지금부터 시작이라 생각하고 하나둘씩 다져나가야 한다. 뮤지컬이나 연극에 '쇼닥터'라는 기능이 있다. 연출의 마지막 감칠맛을 터치해주는 직업이다. 정치에도 그런 쇼닥터가 필요하다. 2007년 정동영 대선후보 비서실장을 하면서 그런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민주당은 국민적 아이콘이 될 사람을 발굴하고, 어떻게 노출시킬지 연구해야 한다. 그것을 아주 잘한 사람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그 캠프다."
"손학규 전 대표도 그런 관점에서 관리 중인가?"
"그렇지 않다. 민주당에는 그런 관점에서 관리하는 조직상의 기구도 없고, 그런 역할을 자임하는 사람도 없다. 각자 알아서 뛰고 있을 뿐이다. 그게 한국 정치 현실이다."
"정동영, 손학규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의미도 되지 않나?"
"그 보다는 두 사람에 대한 당 차원의 관리가 소홀해서 밧데리가 소진돼 버린 것이다."
정동영, 손학규 얘기를 들으면서 문득 4.29 재보선 때 울산을 책임졌다 참패한 한나라당 정몽준의원이 생각났다. 한나라당 사람에게 '정몽준의원도 대권후본데 당 차원에서 관리는 하고 있나'했더니 '각자 알아서 하는 거지, 관리는 무슨 관리' 하는 답이 돌아왔었다.
"박근혜의원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나?"
"현재로서는 높아 보이는데 대통령 후보는 가능성만 갖고 얘기할 것이 아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이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 점점 퇴조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그런가?"
"노무현의 죽음이 던진 사회적 의미 중 하나는 민주 진영의 분열을 통합으로 이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옛날 인물로의 퇴보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구시대 인물인가?"
"그렇다. 그분이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면 (구시대의) 껍질을 많이 벗어야 한다."
"삼년 반 후에 정권을 되찾아 올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희망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로써는 그렇게 높게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 ⓒ프레시안 |
미디어법 장외투쟁 "화이트칼라 호응도 높아 고무적"
"민주당이 장외투쟁 중인데, 현장에는 많이 나가나?"
"많이는 못 갔다. 화이트칼라 계층이 많은 여의도 금융가에 갔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화이트칼라의 호응도가 상당히 높더라. 전단지를 나눠주는데 와서 가져가는 분들이 많고 힘내라고 하는 분들도 많았다. 이 분들이 진심인지 형식적인지 느낌으로 안다.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호응도가) 높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여론 전파 효과가 높을 것이라는 의미인가?"
"그렇다."
"헌재 결정을 기다려봐야겠지만 만약 미디어법이 시행되면 미디어 시장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대기업, 신문사가 독점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YTN> 사태 이후 가장 인기 있던 '돌발영상'이 없어지고 약 1년간 공백이 있었는데 <mbn>의 시청률이 상대적으로 상당히 올라갔다. 케이블은 사람들이 스치며 보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먹혀들어가는 것이다. 굉장한 파괴력이다."
"대기업이나 신문사 오너들의 정치적 입장이 투사될 거라고 보나?
"그렇다. 이 법이 시행된다면 보수 신문이나 대기업 오너들이 좀 더 객관적으로 경영해 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드는 대화술 탓인지 어느덧 약속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양해를 구하고 계속 했다.
"미디어법 직권상정 할 때 어디 있었나?"
"본회의장에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많이 아팠다"
"참여정부 때도 그렇게 민주당-한나라당 사이에 대화가 없었나?"
"없었다. 17대를 돌이켜 보면 포용력을 갖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한나라당 의원들을 보면 옛날 생각이 나서 더 안타깝다. 포용도 때가 있는데 그 때를 놓치면 집권 여당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지금 '그 때'가 거의 지나가고 있나?"
"그렇다."
"의원들의 자질 문제일까?"
"자질보다는, 뭐든 너무 쉽게 되면 덜 심사숙고 하게 되는 것 같다. 열린우리당 시절 초선 의원 108명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으로) 쉽게 당선된 측면이 있었다. 18대도 뉴타운 광풍으로 (한나라당의) 당선이 쉬웠다. 그래서 온 현상이 아닐까. 17대 때는 노 전 대통령이 너무 손을 놔서 의원 각자의 개성이 지나치게 두드러졌던 게 문제였다면 지금은 청와대가 너무 쥐고 흔들어서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이 아니라 거수기로 전락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를 잘 모른다면서 '탈여의도 정치'를 말했는데."
"'탈 여의도'라는 게 무시전략이다. 여의도를 존중해서 '탈여의도'를 한다는 게 아니고 완전히 무시하는 거다."
"기자는 재미있고 정치는 보람있고"
몸싸움이 벌어지는 본회의장에서 '가슴이 아팠다'는 박영선이 그리는 정치는 어떤 것일까?
▲민주당 박영선 의원 ⓒ프레시안 |
"기자 생활을 얼마나 했나."
"22년 했다."
"정치인은 6년차고, 어느 게 더 재밌나?"
"재미로 치면 기자가 훨씬 재밌고, 보람으로 치면 정치가 보람 있다. 그러나 정치가 행복하지는 않다. 다시 기자 생활을 한다면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정치가 행복하지 않나."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면 그만큼 유권자들이 바라는 일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그런 함수관계가 있더라."
"정치인은 자기 생활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희생이 큰 만큼 보람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희생과 정치인으로서의 보람, 그 사이에서 균형추를 어디에 갖다 놓느냐가 정치인의 지향점을 결정한다."
"균형을 잘 잡고 있나?"
"때때로 흔들린다"
"어느 쪽으로 흔들리나?"
"지금은 가족이라는 부분에서 희생을 많이 하는 편이다. 가슴이 아릿하게 저릴 때가 있다. 그런데 발을 가족 쪽으로 조금 옮겨 놓으면 바로 정치 쪽에서 핀잔이 온다. (웃음)"
"가족이 이해를 많이 해주나."
"아직까지는..."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언제까지 가능할 것 같나?"
"영원한 숙제다.(웃음)"
오랜 기자 생활과 앵커, 6년간의 '터프한' 의정활동에도 박 의원은 인터뷰를 어려워했다. '균형을 잘 맞추길 바란다'는 덕담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자 박 의원이 필자에게 책을 내밀었다. 책 제목은 '박영선의 인터뷰, 사람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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