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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포괄적 패키지 관심 많다"…클린턴 "양자 대화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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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정일 "포괄적 패키지 관심 많다"…클린턴 "양자 대화로 시작하자"

[가상대화록] 그날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으로 한반도 정세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번 방북의 의미를 애써 외면하는 입장이나, 지나치게 과대포장하려는 태도와 상관없이 클린턴의 이번 평양행이 '대결과 제재' 국면의 북미관계를 '대화와 협상'으로 전환하는데 기여했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오바마 행정부는 여기자 석방을 위한 개인 방북으로 의미를 제한하려는 모습이고, 북한은 전반적인 북미 현안에 대한 협상의 시작으로 의미를 키우려는 듯하다.

클린턴의 방북이 본격적인 북미 협상의 신호탄이 될 것인지, 아니면 여기자 석방만의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이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힌트는 김정일 위원장과 클린턴 전 대통령 사이의 면담에서 오고간 대화 내용일 것이다. 4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 깊숙한 곳에서는 어떤 말들이 오갔을까. 최근 북미관계 진행 상황을 통해 유추한 상상속의 대화 내용이다. 그러나 기억해 둬도 좋을 것이다.

▲ 지난 4일 평양을 방문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의 국방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일 : 먼 길 오신 클린턴 전 대통령 일행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클린턴 : 공항에서부터 우리를 환대해주시고 이렇게 김 위원장을 직접 뵐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김정일 : 9년 전 대통령께서 평양을 찾아 주셨다면 북미관계는 물론이고 한반도 정세가 지금보다 훨씬 좋아졌을 겁니다. 그런데 당시 정세가 복잡해 조미 정상회담이 불발되어 그 후로 저도 부시 행정부와 힘겨운 샅바싸움을 벌이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뒤늦게나마 뵙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클린턴 : 옳으신 말씀입니다. 2000년에 제가 평양에 왔더라면 부시의 공화당이 집권 8년의 세월을 허송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위원장께서 좀 더 일찍 서두르셨다면 좋은 결과가 있었을 텐데 참 아쉬웠습니다. 우선 우리 여기자를 사면해주시고 무사히 고국과 가정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정일 : 별말씀을요. 뉴욕 채널을 통해 이미 물밑에서 논의가 충분히 있었고 다행히 오바마 행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그들의 불법행위를 시인하고 사과를 했기에 사면 후 무사귀환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용단을 내린 미국 정부에 사의를 표합니다.

클린턴 : 알다시피 저는 오바마 대통령의 공식 특사도 아니고 미국 정부의 현직 관료도 아닙니다. 딱히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나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셈이죠. 그러나 힐러리 국무장관과 매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만큼 지금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과 속마음을 가감 없이 전달할 수는 있습니다.

김정일 : 잘 알고 있습니다. 공식 특사는 아니지만 사실상 특사라고 할 수 있겠네요.

클린턴 : 지금 오바마 행정부는 제재 이행을 촉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과의 협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 커트 켐벨 동아태 차관보와 힐러리 장관이 언급한 '포괄적 패키지' 전략이 바로 그 준비의 일환입니다.

김정일 : 저희도 오바마 행정부의 최근 변화 조짐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북미 양자협상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그에 대한 화답이었습니다.

클린턴 : 미국과 북한이 모두 대화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정작 협상이 시작될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와 관련해서 북측이 대가 없이 협상장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정일 : 잘 알겠습니다. 무슨 조건을 붙여 협상에 복귀하지는 않겠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고 9.19 공동성명에 따라 핵폐기를 할 의사가 있음을 다시 한번 밝혀드립니다.

그리고 장거리미사일 발사나 우라늄 농축 같은 추가적인 상황 악화 조치도 당분간 하지 않을 것임을 밝힙니다. 제가 이 정도 언급했으면 일단 협상 시작의 조건으로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만족할 만하겠지요.

클린턴 :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분명히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문제는 협상의 방식입니다. 귀측은 양자협상을, 미국은 6자회담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 회담 복귀에 우리가 아무 조건을 달지 않고 추가적인 상황 악화 방지와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며 양보한만큼 협상 방식에서는 귀측이 양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협상이 재개되면 먼저 북미 양자협상을 하고 일정한 의견 조율을 거친 다음 공식 6자회담을 재개하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미국도 체면이 살 것입니다.

클린턴 : 협상만 재개된다면 양자냐 6자냐는 본질적 문제가 아닙니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북미 협상이 극적으로 이뤄지면서 이듬해 1월 베를린에서 양자회동을 갖고 이어 2월 6자회담에서 2.13 합의가 나왔던 전례를 활용하면 될 것입니다.

김정일 : 이른바 포괄적 패키지 전략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요. 혹여 그것이 우리의 선(先)핵포기를 의미하는 거라면 부시 행정부의 입장과 다르지 않은 것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오히려 포괄적 패키지는 우리가 일관되게 주장했던 것처럼 핵문제가 단순히 핵폐기 만의 문제가 아니라 북미관계 정상화,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 한반도 평화체제, 미사일 문제 등 북미 간 전반적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하자는 것이어야 합니다.

클린턴 : 맞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로 포괄적 패키지는 위원장께서 말씀하신 북미 현안 전체를 한꺼번에 협장 테이블에서 다루는 것이라는 게 분명합니다. 다만 덧붙인다면 9.19 공동성명처럼 애매모호한 합의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핵폐기와 북미관계 정상화까지 이행 완료가 가능하도록 촘촘하게 짜인 그물 같은 실천 로드맵 꾸러미를 만들자는 의미도 있습니다.

김정일 : 북미 상호 간 합의 이행을 강제하는 구체적인 패키지를 만드는 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양자 간의 불신이 하도 깊은 게 문제입니다. 2.13 합의와 10.3 합의 등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단계적 실천 이행을 합의해 온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어렵긴 하지만 좋은 것이라면 포괄적 패키지 협상을 한번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합니다.

클린턴 : 이제 서로의 불필요한 오해를 풀고 북미 협상이 시작될 좋은 분위기가 마련된 것 같습니다. 문제는 경색된 남북관계가 지속될 경우 한반도 정세에 발목을 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위원장께서 대범하게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생각을 바꾸실 용의는 없습니까? 이명박 정부가 먼저 변하기를 요구하기 전에 위원장께서 개성공단 유 씨도 돌려보내고 '800 연안호' 선원도 돌려보낸다면 남북관계 정상화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김정일 : 사실 저도 남북관계가 경색으로만 치닫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북미 협상이 시작된 것에 맞춰 남북관계도 정상화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대북 입장이 워낙 강경하고 완강해서 저로서도 움직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정권교체가 되었다 하더라도 정부와 정부가 공식 합의한 10.4 선언을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처럼 내팽개치는 상황에서는 대화하기 어렵습니다. 당장 개성공단 유 씨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미국 정부가 여기자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과 이명박 정부가 유 씨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과 관련해 우리와 대결국면을 유지하더라도 여기자 문제는 별도의 인도적 문제로 분리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국경 침입에 대해 분명히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석방의 조건을 만들어줬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유 씨 문제를 오히려 대북 압박의 명분으로 활용했습니다. 당국 간 회담에서도 남측은 유 씨 석방을 전제조건으로 걸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유 씨 사건의 실체를 전혀 인정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지금 대통령께서 여기자를 데리고 귀국하는 결과와 달리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국민의 신변도 안전도 확인 못하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클린턴 : 이해할 만합니다. 그래도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상호보완적인 것인 만큼 위원장께서 최대한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오바마 행정부가 북과 협상 국면으로 전환하려 해도 이명박 정부가 끝까지 제재 고수와 협상 불가를 고집하면 일을 진행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긴 시간 내줘서 감사합니다. 오늘 위원장의 입장과 말씀은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김정일 : 안전하고 편안한 귀국길 되시기 바랍니다. 이른 시일 내에 부인인 힐러리 국무장관과도 만나고 싶고, 언젠가는 오바마 대통령과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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