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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정권의 참패와 '야당'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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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정권의 참패와 '야당'의 탄생

[창비주간논평] 일본의 양당제 확립 가능성

지난 7월 29일, 일본 참의원선거에서 마침내 '야당'이 탄생했다. 자민당이 권력을 압도적으로 독점한 상황에서 나머지 정당들은 사실상 정치세력으로만 존재했을 뿐, 정치적 책임을 지거나 정권교체를 꿈꾸는 '야당'의 지위를 누리지 못해왔다. 이번 선거의 결과 전후 처음으로 자민당이 참의원선거에서 제1당의 자리를 다른 정당에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3년 동안 연립으로도 여소야대를 뒤집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따라서 향후 3년은 일본정치가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양당제로 나아갈 수 있을지 시험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
  
  2005년 '헨진'(이상한 사람)이라는 별명을 지닌 코이즈미 총리는 우정국 민영화사업에 반대하는 자민당 내부의 도전을 정면으로 받아치면서 중의원을 해산하고 자신의 신임을 묻는 총선을 실시하여, 정원 420석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327석을 여당이 차지한 바 있다. 아베정권은 코이즈미정권이 만들어낸 거대여당 프리미엄을 물려받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참의원에서 제2당으로 물러난 것이다. 코이즈미정권과 아베정권 사이의 불과 2년 동안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민심이 아베정권을 떠난 이유
  
  전 농림수산부 장관을 자살로 몰고 간 불법정치자금 문제, 국민연금 기록의 분실, 각료들의 잇단 실언과 아베 총리의 리더십 결여 등이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민심이 이반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베정권이 코이즈미내각이 추진했던 구조개혁의 결과와, 그 과정에서 변화된 자민당의 지지기반 변화 및 그 실체, 그리고 현재 일본사회가 처한 상황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생활세계의 어려움을 파악하지 못했다. 키시 노부스께 전 총리의 외손자로 걱정없이 곱게 자란 전후세대 첫 총리인 그는 '생활정치'보다 '국가정치'에 주목했다. 취임 초기부터 '아름다운 국가'를 내걸면서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을 만들고 교육기본법을 개정했으며 방위청을 성으로 승격시켰다. 종군위안부를 허구라고 주장하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에 적극적인 공세를 취해온 그의 입장은 '생활' 혹은 '시민들'이 중심에 있는 정치가 아니라 '일본이라는 국가'가 우선시되는 정치였다.
  
  구조개혁을 자신의 정치 아이콘으로 내걸었던 코이즈미 전 총리는 경쟁과 효율성의 논리에 충실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공공사업을 민영화함으로써 민간부문에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을 구사했다. 동시에 자민당 내의 구태를 일소한다는 취지하에 당 내부를 개혁함으로써 이른바 미디어를 활용하는 '코이즈미 극장'을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익유도형 정치로 대표되는 일본정치, 곧 자신들의 지역구를 챙겨줌으로써 각종 이권을 보장해주고 그 댓가로 표를 얻을 수 있었던 자민당 의원들에게 '우정국 민영화'는 여촌야도(與村野都)를 사실상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2005년 선거에서 자민당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을 상실한 대신 우정국 민영화에 덜 민감했던 무당파 혹은 유동적인 도시유권자에게서 지지를 얻었던 셈이다.
  
  그 결과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는 더욱 급속히 벌어졌고 가시화된 지방의 피폐화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다시 말하면 약자의 생활 불안정과 지방의 몰락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내재된 결과였고 아베정권은 여기에 속수무책이었다. 그가 제시한 것은 '아름다운 국가'였지만 일반 시민들이 감지하고 있던 것은 '피폐한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타나까 전 총리의 계승자, 오자와 민주당 대표
  
  처음의 문제제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이번 선거결과로 민주당이 책임있는 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 '야당'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의 여야가 이념과 입장의 차이가 점차 비슷해지듯, 이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일본의 민주당 역시 자민당과 큰 차이가 느껴질 만큼 선명한 정책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다. 역설적이게도 아베 총리가 코이즈미 전 총리의 정책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지 못한 반면, 오자와 이찌로오 민주당 대표는 자민당의 타나까 카꾸에이 전 총리의 전략을 계승하고 있다.
  
  일본열도개조론을 내세우고 지방분권과 관료정치를 극복하고자 한 타나까 총리의 정책 가운데 일부를 민주당의 선거전략으로 십분 활용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민당의 텃밭이었던 농촌과 지방의 1인 선거구 29곳 가운데 21곳에 후보를 내고 '국민생활이 제일'이라는 메니페스토로 호소했다. 그 결과 자민당이 6곳을 건진 반면 민주당은 17곳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자민당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지금은 '생활이 제일'이며 '공정한 국가'를 만들자고 외치고 있지만, 평소에 '강한 일본'을 주장했던 그가 신자유주의 흐름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일본 정치 및 사회를 어떻게 방향전환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민주당의 핵심 메니페스토 가운데 자민당과 뚜렷한 대조를 보이는 것은 복지정책과 평화외교정책이다. '연금통장'을 만들어 국가가 이를 보증하고, 매월 자녀 1인당 '어린이수당' 2만 6천엔을 지급하며 모든 농가에 '호별소득보상제'를 실시해 도농격차를 해소함으로써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라크에 파견된 자위대를 철수하고 대등한 미일관계를 수립하며 중국과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과의 신뢰관계 구축에 힘쓰겠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양당제가 확립될 수 있을까
  
  당장 오자와 대표는 11월 1일로 기한이 만료되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 연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야당'으로서 정책결정에 똑같은 책임을 지게 된 민주당이 바로 그 '책임' 때문에 명분만 가지고 정책을 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요미우리신문 등 이른바 보수언론이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이 연장되지 않으면 미일동맹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여론을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인기가 한창 오르던 코이즈미 총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 언론들은 납치문제를 터뜨려 북일관계를 물거품으로 돌린 전력이 있다. 이 정도로 일본에서는 미디어가 정치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이번 선거는 민주당의 평화외교에 찬성해서가 아니라 자민당의 실정(失政)에 대한 문책의 의미가 컸기 때문에 민주당의 외교정책이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내고 정책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이번 선거결과가 자민당의 독주를 잠시 누그러뜨리는 것으로 끝난다면 허망한 일일 것이다. 민주당이, 강령에서 스스로 주장하듯이, 양당제를 확립할 수 있기를 그리고 일본을 신자유주의와 대미 의존에서 복지사회와 아시아 중시의 방향으로 선회시키기를 아시아 시민으로서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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