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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이 한신의 첫 한국선수"는 명백한 오보!

[최동호의 스포츠당] 일본 프로야구 역사를 쓴 한국인들

12월 4일 오승환의 한신 타이거스 계약 조인식에서 나카무라 가쓰히로 한신 단장은 "한신의 78년 역사에서 한국 선수 영입은 오승환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나카무라 단장의 말을 인용해 오승환이 한신에 입단한 최초의 한국인 선수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보다. 한신 타이거스엔 조선의 혼을 던진 투수 박현명이 있었다.

박현명은 친동생 박현덕, 박현식과 함께 야구家를 일궜던 한국야구의 소중한 역사이자 뿌리다. 큰 형 박현명은 1938년 오사카 타이거스(현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한 한국야구 최초의 해외진출 1호 선수고 작은 형 박현덕은 인천 동산고 야구부를 창설한 인천 야구의 선구자다. '아시아의 철인'이라 불리운 막내 박현식은 63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이었다. 박현식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팀인 삼미 슈퍼스타즈(현 SK 와이번스)의 초대감독을 지냈다. 한국야구의 역사가 잊혀지거나 지워져선 안될 일이다.

일본프로야구 한신의 78년 역사는 1935년 오사카 타이거스로부터 비롯한다. 1935년 12월 10일 한신전철이 창설한 오사카 타이거스는 한신군(1940년~1944년), 오사카 타이거스(1946년~1960년)을 거쳐 1961년 한신 타이거스로 구단명을 개칭했다. 평양고보 졸업 후 평양실업, 경성체신국에서 투수로 활약하던 박현명은 한신의 초창기인 1938년 오사카 타이거스에 입단한다. <동아일보>는 1938년 10월 22일 '조선 야구의 보물인 명투수 박현명군이 오사카 타이거스에 가입케 되어 22일 오후 4시 50분발 차로 동경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동경에 도착하면 곧 경기에 나가게 될 모양이다'라고 보도했다.

▲ 박현명의 일본 진출을 알리는 1938년 10월 22일자 <동아일보> 기사. ⓒ동아일보


<일본프로야구기록대백과>(베이스볼매거진사 발행. 1998년)엔 박현명의 이름이 보쿠 켄메이로 등록돼있다. 보쿠 켄메이는 박현명이란 한자어를 일본어 발음대로 표기한 이름이다. 박현명이 일제강점기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하면서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조선인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박현명은 한국야구 최초의 홈런타자 이영민과 함께 조선을 대표했던 야구스타였다. '이영민 타격상'의 주인공 이영민은 1932년 일본올스타팀에 선발돼 메이저리그 올스타팀과의 친선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고 박현명은 1938년 경성대표팀 투수로 일본 흑사자기 도시대항전에 출전해 일본의 주목을 받았던 조선의 에이스였다.

정사라 할 수 있는 야구자료엔 박현명의 기록이 1939년 2경기 등판, 8이닝 1패 2탈삼진 2자책점 방어율 1.00로 남아있다. 그러나 야사인 구전에 의하면 박현명은 입단 첫 해(1938년) 동계훈련에서 베팅볼 투수로 쓰여지며 무리한 투구를 하다 어깨를 다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듬해인 1939년 박현명은 쓸쓸히 귀국했다.

▲박현명의 동생 박현식 전 삼미슈퍼스타즈 감독. ⓒ연합뉴스
조선의 피엔 야구가 흘렀나 보다. YMCA 총무 필립 질레트(Phillip Gillette)가 조선에 야구를 소개한 시기는 1905년. 1873년에 야구를 도입한 일본보다 30여년이나 늦었다. 그러나 일본 프로야구엔 조선인에 의해 써진 역사가 도도히 흐르고 있다.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퍼펙트게임 주인공인 이팔룡은 1942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 14년간 활약하며 통산 방어율 1위(1.90), 통산 승률 1위(200승 87패), 시즌 방어율 1위(0.73)을 남기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통산 최다승(400승)의 주인공 역시 재일교포 김정일(일본명 가네다 마사이치)이고 통산 최다안타(3085개)의 장본인 역시 재일교포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다.

<경향신문> 1950년 2월 12일자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외국에 가서 특수한 기량을 발휘하여 주목을 끌고 있는 이가 한둘이 아닌데 이번 재일대한체육회에서 11일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투수로 혹은 외야수로 전일본 야구계를 압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팔룡은 거인군(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소속돼 있는데 전일본야구인기투표에서 십만표를 얻어 2위가 돼었으며 기회있는대로 귀국할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외야선수는 오사카군(한신 타이거스)에 있는 가네다(金田. 김전)라는 선수라 한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한신엔 한국 야구 최초의 해외진출선수인 박현명 외에도 1950년엔 김전이라는 재일교포가 외야수로 뛰고 있었다.

오승환의 한신 입단은 한국인 최초가 아니다. 나카무라 가쓰히로 단장의 착오일 수도 있고 무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야구는 한신 단장의 실수를 아는 양 모르는 양 무심코 넘겨서는 안 된다. 역사를 잃으면 자부심도 미래도 함께 잃기 때문이다. 1938년 한신엔 조선의 야구 스타 박현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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