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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그리고 2010년,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거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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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그리고 2010년,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거대한 질문

[이슈 인 시네마] <경계도시 2> 지지 릴레이 리뷰 (4)

※ 2003년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무려 37년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벌어진 마녀사냥 광풍을 카메라에 담은 영화 <경계도시 2>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촬영된지 무려 6년만에야 완성돼 오는 3월 18일 극장에서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 영화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고발하면서도 '우리 모두'의 한계를 찬찬히 성찰하고 반성하는 영화다. <경계도시 2>에 사회 각계 인사들이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 프레시안은 이들이 특별기고한 릴레이 리뷰를 연재로 싣는다. 네 번째로 지지의 글을 보내온 김이환 작가는 벌써 다섯 권의 작품을 낸 젊은 판타지 작가로, 지난달 내놓은 신간인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평단과 독자들 사이에서 호평과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오랫동안 독립영화를 사랑하고 지지하며 리뷰를 써온, 독립영화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독립영화 전문 블로거이기도 하다. - 편집자 주

반정부 인사로 분류되어 37년 동안 입국이 금지된 채 독일에 머물렀던 송두율 교수는 2003년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가족과 함께 귀국한다. 처음에는 순조롭게만 보였던 귀국 일정은 이후 9개월간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경계도시2>는 그 9개월 간의 일을 담고 있다.


▲ <경계도시 2>

2003년의 일을 홍형숙 감독이 회고하는 형식인 이 다큐멘터리는 당시 촬영한 화면과, 신문 기사와 텔레비전 뉴스의 인용, 감독의 나레이션으로 상황을 설명한다. 송두율 교수는 스스로를 '경계인'으로 칭하며 남이나 북이라는 국적에 개의치 않고 민주화 운동을 해왔으며, 귀국한 후 그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보수와 진보 혹은 남과 북의 이념이 대립된 한국에 '경계인'인 한 개인이 휘말려든 것으로 영화는 정리하고 있다.

<경계도시2>는 송두율 교수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기는 하나, 영화에서 그의 입장을 말하는 사람은 당사자를 비롯해 주변의 여러 사람이다. 영화를 지켜보면 영화의 주인공은 송두율 교수뿐 아니라 부인 정정희씨, 그를 돕는 김형태 변호사, 그리고 영화를 기록하는 홍형숙 감독 이 네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송두율 교수나 이외 사람의 인터뷰가 많이 담겨 있진 않은데, 영화는 그의 발언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그를 둘러싼 사건을 정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고 영화가 송두율 교수를 정치적 상징으로만 기록하고 있진 않다. 그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묘를 찾아가서 눈물 흘리는 사람이고 고향인 제주도의 바닷가를 맨발로 걸어 다니는 평범한 개인이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한국의 이념 대립이 한 개인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이다.

귀국 이후 국정원에서 여러 차례의 조사를 받던 송두율 교수가 노동당에 입당했던 사실을 시인하면서, 영화의 질문도 시작된다. 스스로를 경계인으로 칭하던 그가 노동당에 가입한 과거를 거짓말과 배반으로 받아들인 한국 여론이 일제히 들끓어 오른 것이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세력이 송두율 교수를 향해 총 공세를 펼치자 진보 세력은 흔들리는데, 상황을 관망하거나, 비판하거나, 윽박지르고 등을 떠미는 식으로 반응이 갈라지면서 '만나는 사람 모두가 훈수를 두려고 하는' 모습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초유의 사태이다. 홍형숙 감독마저도 송두율 교수가 정말 '김철수'이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벌이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며 복잡한 심정을 털어놓는다. 영화 속 카메라마저 송두율 교수에서 멀어지면 관객들도 그가 정말 김철수인지 아닌지 묻기 시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순간 영화는 이것이 함정이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송두율 교수가 죄인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려는 시선은 이미 국가보안법과 레드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화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관객에게 던지는 재 질문이다.

영화는 사건을 치밀하게 서술한다. <경계도시2>는 견고한 구조의 영화이다. 당시 벌어진 일을 홍형숙 감독의 밀도 있는 나레이션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송두율 교수가 탄 차를 둘러싼 기자들의 인터뷰 장면으로 사건의 진행을 보여주는 방법처럼 중요한 쟁점과 정보를 정확히 포착하고 전달하는 화법, 신문 사설을 인용하면서 보여주는 그래픽, 사용된 음악 등 영화를 구성하는 만듦새 자체로도 관객을 압도한다. 영화는 간간이 광화문이나 남산타워를 비롯한 서울의 모습을 비추는데, 이런 서울 풍경의 이미지는 영화의 배경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힘도 가진다. 광화문의 커다란 전광판 위로 떠오르는 송두율 교수 비난 기사와 그것을 생산해내는 '게임 플레이어'인 보수 신문들, 그리고 보수 언론에 의해 정말로 움직이는 한국 사회를 지켜보다보면, 서울 풍경을 응시하는 영화 속 시선이 중첩되면서 마치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는 듯하다.

▲ <경계도시 2>

우리는 한국 사회가 가진 광기를 잘 알고 있다. 언뜻 이런 광기가, 심지어 진보 진영조차도 자유롭지 못했던 레드컴플렉스가 두렵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두려운 것은 광기 후에 찾아온 망각이다. 터져나갈 듯 끓어올랐다가 정작 송두율 교수가 구속이 되자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사그라지는 여론이야말로 진정 두려운 모습이다. 아이러니한건, 정작 망각의 순간이 되자 송두율 교수에게 발언권이 찾아오고 진보 세력이 입장을 정리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는 9개월간의 법정 투쟁 끝에 결국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나지만, 영화의 표현대로 경계인은 그렇게 사라진다. 그리고 2003년 그는 스파이였으나 2009년 이제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정말 그렇다면 그의 죄는 무엇이었고, 누가 그를 죄인으로 만들었으며, 죄인이 아니라고 말했던 자들은 왜 경계인이 사라지도록 한 것일까. 영화를 보는 관객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이든 간에 영화는 이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는 송두율 교수의 전향을 두고 토론하는 기나긴 회의를 찍은 장면이 있다. 송두율 교수를 둘러싼 사람들이 각자의 입장을 주고받고, 토론은 점점 격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동안, 정작 송두율 교수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이 장면은 필자가 지금까지 본 모든 독립영화를 통틀어 단연코 최고의 장면이었다. 왜냐하면 이 장면은 당시의 현재였던 2003년 뿐 아니라 지금 2010년의 한국 사회 또한 관통하는 거대한 질문이 함축된 순간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스스로를 진보라고 믿는다면 같은 진보라고 해도 지향점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경계인을 사라지게 만든 죄목에서 과연 당신은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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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라진 경계도시를 기억하기 : <경계도시 2>를 감상하는 두 가지 시선 - 이희영 대구대학교 교수
<2>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 - 추민주 명랑씨어터 '수박' 대표
<1> 채플린과 007, 그리고 <경계도시2> - 서복경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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