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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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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2>

[특집] 일종의 리얼리즘적 상업영화를 만들어온 감독, 강우석

국내 영화계가 부침을 계속할 수록 강우석 감독의 '화려한 부활'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강우석의 귀환이 꼭, 충무로 황금기의 또 다른 도래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거기엔 국내 영화계가 산업화 고도화 전문화의 규격에 묶이기 이전, 인간 네트워크로 진행되던 그 무엇의 시절에 대한 향수같은 것이 담겨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우석은 여전히 현재진행적 인물이다. 그는 최근 <백야행>을 제작배급하고 있고 <이끼>는 직접 연출중이다. 하지만 강우석에 대한 평가는 늘 조금씩 왜곡돼 왔거나 저평가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강우석의 '화려한 부활'을 원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비교적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이 글은 바로 그러한 작업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행하는 영문판 감독론 책자 <강우석>의 국문 원고를 일부 수정, 분재해서 싣는 것임을 밝힌다 – 편집자)

▲ 강우석 감독 ⓒ프레시안무비
16편의 필모그래피만으로 볼 때 강우석의 작품 행보는 다소 중구난방인 것처럼 보인다. 하이틴 영화에서 로맨틱 코미디, 정치영화, 사회풍자 드라마 등 상업영화 감독들이 흔히 그러듯, 그때그때마다 시의성에 맞는 얘기를 찾아 손쉽게 만들어 극장에 내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강우석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거의 매번 한국 극장가 기준으로 메가 히트를 터뜨린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의 영화는 늘 한국 대중관객의 욕구를 정확히 포착해 내고 반영해 내는 작품이었다. 그게 바로 강우석이 만드는 작품마다 거의 성공하게 됐던 요소이며 또 그것이야말로 그의 영화가 갖고 있는 일관된 '무엇'이다. 그 '무엇'이란 바로 강우석 감독이 갖고 있는 직설적인 사회의식, 사회적 주제의식이다.

특이한 것은 사회 이슈에 대한 강우석의 직설화법은 영화 속에서 별로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상업영화로서 리얼리즘 영화의 계보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강우석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했든 그는 지금껏 일종의 리얼리즘적 상업영화들을 만들어 왔던 셈이다.

강우석의 영화들은 줄곧 상업주의에 굳건히 발을 딛고 그 안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만든다. 강우석은 철저하게 상업영화를 지향하는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도 정치적 올바름의 행위를 일관되게 실천한다. 그의 영화는 그래서, 종종 지나치게 직선적이고 단순하며 교과서적이고 윤리적이다. 강우석의 영화가 일부 젊은 세대들에게 올드 패션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그때문이다.

끝내 선한 쪽이 악한 쪽을 이긴다는 권선징악적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대개 악이 선을 지배하는 실제 현실에 대해 사회적 분노를 느끼는 감정이야말로 강우석의 영화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상업영화적 전술은 때론 자신의 영화에 '좋은 놈'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악질적이고 고약한 캐릭터들을 구축해 놓는 것이다. 그렇게 좌충우돌, 마구잡이식 패싸움을 밀어 붙이지만 결국 맨 뒤에 남는 것은 선한 쪽이다. 권선징악의 가치.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모토가 '영웅은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것이라면 강우석 영화는 '선한 자는 결코 죽지 않는다'이다.

▲ 강철중 : 공공의 적1-1

그의 최신작인 <강철중 : 공공의 적 1-1>이야말로 그런 강우석의 특질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강철중>의 주인공 강철중은 애초부터 좋은 형사의 이미지를 완전히 거둬낸 캐릭터다. 강철중은 자신의 카운터 파트인 악한보다 반 발자국만큼만 선한 인물로 그려진다. 강우석은 오랫동안 공을 들여 이 캐릭터에게 좋은 이미지보다 독하고 더러운 이미지를 강화시켜 놓았다. 하지만 지긋지긋하게 끈질긴 성격이 누구를 향한 것인가는 곧 자명해진다. 관객들은 이 캐릭터의 성질이 '독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를 이미 인지하고 있다.

강우석은 자신의 영화가 자칫 선악의 단순 구조에 빠지는 것을 우려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속 선한 인물은 겉으론 아주 지랄스럽고 악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포장일 뿐이다. 강우석에게 선과 악의 개념은 분명하다. 강우석의 영화가 명확하고 간결한 것은 그 때문이다. 상업영화 관객이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 대목이다. 세상의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해 주고 간결하게 결론내 주는 것. 그의 영화가 한국에서 늘 대중적 성공을 거두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진다.

강우석이 그려 내는 캐릭터와 그에 따른 드라마는 종종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만큼 위선과 위악의 경계에서 오고 가지만 그가 얘기하는 주제는 단순하고 투명하다. 진심과 진실이 승리한다는 것이다. 그럴 듯한 이야기, 재미있는 볼 거리, 웃음, 유머, 그리고 공동의 선에 대한 투박한 태도가 거기에 덧붙여진다. 강우석의 영화는 작은 망원경을 통해 큰 우주를 볼 수 있는, 소우주를 통해 대우주를 상상할 수 있는, 적어도 그것을 희망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대중적 선호도를 크게 높인다.

강우석의 영화들은 곰곰히 살펴 보면 매우 저널리스틱한 측면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얘기하는 주제들은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됐던 얘기인 경우가 많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영화 속 사회적 이슈는 실제 사회문제와 거의 동일한 시기에 그려지거나 아예 앞서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동물적이고 본능적으로 앞으로 무엇이 사회이슈화할지를 정확히 파악해 낸다는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강우석은 영화감독 외에도 저널리스트로서도 충분한 자질을 엿보인다.

▲ 강철중 : 공공의 적1-1

앞서 언급한 영화의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강철중 : 공공의 적1-1>이 좋은 예다. 주인공 강철중은 조직 폭력배들이 운영하는 한우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계속 불판을 바꿔 달라고 소리를 꽥꽥 지른다. 그를 제지하러 온 폭력배 중간 보스에게 강철중은 이것저것 시비를 걸다가 급기야는 자신이 먹는 고기가 진짜 한우가 맞느냐며 따지기 시작한다. 폭력배 중간보스는 자신들의 음식점에서는 원산지 표기를 철저히 준수한다고 말하지만 강철중은 콧방귀를 뀔 뿐이다. 한국사회에서 쇠고기 원산지 표기를 믿을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느냐며 툴툴댄다.

강우석 감독이 영화 <강철중>에 쇠고기 얘기를 시나리오에 삽입해서 중간 에피소드로 끼워 넣은 것은 작품 기획단계부터였지 이 문제가 사회이슈화된 이후가 아니었다. 하지만 <강철중>이 극장에 나왔을 때 한국사회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놓고 연일 촛불시위가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한국의 대중들이 강우석의 영화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바로 이렇게 앞을 내다보는 시류에 대한 그의 감각때문이다. 한국의 시위대들이 피케팅 문구로 경찰과 정부를 가리켜 '공공의 적'이라 표현을 이용한 것은 강우석의 영화가 대중들에게 이미 브랜드화 돼있는 무엇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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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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