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11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65만 명 광우병 사망' 외치던 그가…'올해 햄버거 먹으며 美 여행'"을 보고 기가 막혔다.
이 기사는 김성훈 전 장관과의 인터뷰 기사로 2008년 촛불 집회 당시 미국산 쇠고기의 인간광우병(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 위험성을 경고한 김 전 장관이 말을 바꿨을 뿐 아니라 미국 현지에서 햄버거를 사먹는 등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 11일자 <조선일보> 5면 기사. "'65만 명 광우병 사망' 외치던 그가…'올해 햄버거 먹으며 美 여행'" ⓒ프레시안 |
"기자의 전화, 반가운 마음으로 받았는데"
김 전 장관은 지금 캐나다 밴쿠버에 있다. 그는 지난 3월 29일부터 4월 18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UCSD) 국제관계대학에 초청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문제점과 전망'을 놓고 공개 강연회를 가졌다. 지난 4월 28일부터는 캐나다 밴쿠버 대학의 초청교수로 가있다.
지난 4일 이 기사를 쓴 <조선일보> 김정훈 기자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막 밴쿠버로 이사해 짐 정리를 하던 중이었다. 그는 김 기자의 전화가 "반가웠다"고 말했다. 그는 "김 기자가 이름도 비슷하고 해서 막연한 호감을 갖고 있던 터라 친밀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 기자가 전화했을 때 집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반가웠죠. 근황을 먼저 묻길래 UCSD에서의 강연 내용을 이야기 했습니다. 한미 FTA와 관련해 미국은 재협상이나 추가 협상을 하지 않고 자동차 등 민감 항목을 별도로 처리할 계획이라는 정보부터 알려 주었죠. 물론 이 중요한 정보는 묵살당했습니다.
그리고 강연에서 한국이 미국과의 FTA 협상 과정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아주 비대칭적으로 불리한 협상을 했다, 특히 불리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은 한국 소비자를 자극해 벌떼처럼 촛불 집회를 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해줬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런 강연에 대한 미국 청중의 반응도 자세히 설명했고요."
▲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프레시안 |
그는 <조선일보> 기자에게 이러한 강연 내용을 설명하면서 "근 두달간 촛불 집회를 한 요인이 바로 미국인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30개월령 이상 쇠고기의 수입 개방 때문이라고 말하자 미국의 일부 청중은, 특히 민주주의에 민감한 어린 학생까지도 박수하고 환호했다"며 청중의 반응도 전했다.
"미국인도 안전한 쇠고기 찾는다는 설명이 '햄버거 여행'으로"
이어서 김 전 장관은 <조선일보>가 기사에서 꼬투리를 잡은 '햄버거'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의 해명은 <조선일보>의 기사와는 전혀 맥락이 달랐다.
"김 기자에게 강연 내용을 설명하면서 예로 삼아 USCD 주변에서 풀을 먹고 자란 쇠고기를 쓰는 것으로 유명한 '버팔로' 햄버거 집에 가서 시식했다고 말했습니다. 발디딜 틈도 없이 붐비는 백인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고 하니 김 기자는 박장대소를 하더군요.
내친 김에 미국 서부 지역을 여행하다 보니 맥도날드 매장은 한산한데 비해 '인앤아웃(In N Out)'이라는 햄버거 매장은 문전성시를 이룬다는게 특이하더라, 그래서 오가는 길에 들러 그곳 고객에게 물었더니 젊은 소, 직영 또는 협력 농장 쇠고기라 안심되어 자주 찾는다더라는 반응이더라고 전해줬죠."
그러나 미국 사람도 '광우병 위험에서 비교적 안전한 풀을 먹이며 방목한 (20개월 이하의) 어린 쇠고기'를 즐겨 찾는다는 이 발언은 김 전 장관이 미국 여행을 다니며 햄버거를 즐겨 먹은 것처럼 바뀌어 보도됐다. 그리고 김 전 장관은 한순간에 '이중인격자'가 되었다.
김 전 장관은 "현지의 동향 파악 차 햄버거 집을 찾아 간 사실을 어떻게 내가 햄버거 병이나 든 사람 모양, 또 이중인격자인양 제목도 내용도 그렇게 쓸 수 있느냐"면서 "나중에 보니 총알을 잔뜩 장전하고 총구를 들이대고 있었는데 나는 철없이 성공적으로 끝난 강연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해 준 셈"이라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인간광우병, 'O157 대장균' 등으로 쇠고기를 둘러싼 우려가 커지자, 맥도날드와 같은 기존의 패스트푸드를 거부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런 소비자를 겨냥해 지역에서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낮은 풀만 먹여 방목한 쇠고기를 이용해 고객이 주문하면 바로 현장에서 요리해주는 대안 햄버거 매장이 인기를 얻고 있다. 김성훈 전 장관이 방문한 '버팔로', '인앤아웃'은 바로 이런 대안 햄버거 매장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이런 사실은 아주 간단한 인터넷 검색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영어 아닌 한글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또 다른 보수 언론 <동아일보>도 '인앤아웃'을 이렇게 설명한다. "직영 농장에서 키운 최상상등급 소, 신선하고 영양이 풍부한 채소를 매일 공급받아 재료로 쓴다. 재료를 보관하는 냉동고나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보관하는 온장고가 없다는 것도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매일 신선한 재료를 트럭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3개 주에만 점포를 둔다는 영업 철학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다. 미국 서남부를 여행하다 점심 때 줄을 선 햄버거 가게가 보이면 영락없이 인앤아웃이다." (<동아일보>, 2008년 4월 9일자) 미국인이 이렇게 '버팔로', '인앤아웃' 등의 햄버거를 즐겨 찾는 것은 <조선일보> 보도와 달리 "미국인도 미국산 쇠고기를 위험하다고 여긴다"는 직접적인 증거이다. <편집자> |
"기고글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그냥 썼다"
김 전 장관이 분노하는 이유는 이것만이 아니다. <조선일보> 기자는 이날 기사의 반 이상을 차지한 김 전 장관의 기고글 "10년 뒤 인간광우병을 주목하라"를 두고는 일언반구 묻지도 않았다. 전화 인터뷰는 했지만 정작 기사의 주요 내용에 대한 반론권은 전혀 보장해 주지 않은 것.
김 전 장관은 "기자는 <시민사회신문> 2008년 5월 5일자에 인쇄된 내 기고문과 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왜 다른가와 같은 질문은 전혀 하지 않았다"며 "만약 물어봤다면 사실대로 말해줬을 것이다. 기고 후 재교정한 원고를 보냈는데 이미 인쇄가 끝나 교정이 불가능하지만 기록에는 수정해 남기겠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내 홈페이지에 올렸다고 설명해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김 기자는 기고글에 관한 것은 전혀 묻지도 않고 썼다"면서 "대신 '촛불 집회는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기에 '<조선일보>는 왜 노무현 정권 때는 그렇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중시하던 논조가 새 정권 들어서 전혀 다른 논조가 됐느냐'고 묻자 대답이 없더라"고 말했다.
또 김정훈 기자는 "당시 사람의 우려와 주장이 좀 무리한 것이 아니었느냐"고 물었고 김 전 장관은 "그럼 왜 이명박 대통령은 두 번 씩이나 사과를 했느냐"고 반문했다. 김 전 장관이 광우병에 관한 입장을 바꾼 것처럼 쓰인 기사와는 전혀 다른 대화가 오간 셈이다.
게다가 이 기사는 김 전 장관이 미국 예일대 의료팀의 연구 결과를 잘못 인용했다고 비판하면서 "sCJD(산발성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는 쇠고기와 무관하고 전 세계 60대 이상 고령층에 치매 증상과 비슷하게 발병하는 병"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은 "CJD 중 가장 발생 빈도가 높은 sCJD나 vCJD는 모두 변형 프리온에서 기인하고 있고, 이것이 광우병 쇠고기와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단, sCJD는와 vCJD의 증상이 비슷해서 이 둘을 뚜렷이 구분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실제로 vCJD 환자가 sCJD 환자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있다"고 반박했다.
"'2008년 <조선일보> 사설 유감'이랬더니 같은 내용 기사로 되갚아"
<조선일보>가 김성훈 전 장관을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성훈 전 장관은 이날 김 기자와의 통화에서 2년 전 촛불 집회 당시 <조선일보>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전직 장관의 혹세무민"이라는 사설에서 자신의 실명을 거론하며 확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공격한 것을 놓고 유감을 표했다.
지난 2008년 6월 25일자로 나온 이 사설은 11일자에 나온 기사와 꼭같은 내용으로 김 전 장관의 기고글을 문제삼았다. <조선일보> 기자는 김 전 장관이 이 사설을 들어 "어떻게 본인에게 확인도 없이 사설에서 실명과 직책까지 거론하며 비난할 수 있었나. 서운했다"고 지적하자 묵묵부답, 아무런 답을 하지않았다.
대신 김정훈 기자와 <조선일보>는 이 사설과 꼭 같은 내용의 기사를 내어 답했다. 이번에도 '확인'이나 '반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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