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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는 여전히 일제시대…'동화'와 '차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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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는 여전히 일제시대…'동화'와 '차별'의 역사

[다시, 조선학교]<2>시모무라 장관의 식민주의적 담론 검증

2007년 <우리학교>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히트를 쳤습니다. 일본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학생들이 주인공인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이들이 웃고 울었습니다. 그들이 말과 글, 민족성을 지키기 위해 온갖 어려움 속에 살아가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사는 우리 동포들도 있구나'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부끄러웠다는 감상평이 많았습니다. "아직 일제 시대가 끝나지 않은 동포들이 있구나"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조선학교에 대해 '동화'와 '차별'이라는 식민지배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비슷한 무렵 도쿄의 제2조선초급학교(에다가와 조선학교)가 당시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에 의해 철거 위기에 몰렸다는 소식이 한국에 전해지며 많은 이들이 학교 부지 매입을 위해 기부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6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조선학교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일본에 들어선 우익 정권은 조선학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다시 조선학교 문제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은 지구촌동포연대(www.kin.or.kr)와 함께 조선학교의 역사와 현재 상황, 대안 등을 모색하는 연속기획을 시작합니다. 두 달 동안 매주 화요일 8회에 걸쳐 연재가 진행됩니다.<편집자>


▲ 2013년4월30일, 제네바에서 개최된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에서 일본정부의 불성실한 진술에 항의하며 조선학교 어머니대표단이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사무소 주변에서 연좌 농성을 벌였다. ⓒ후지나가 다케시

국제인권기관의 차별 인정과 일본정부의 반론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는 지난 5월 17일, 일본에서의 규약 실시상황에 관한 제3회 총괄소견을 발표하면서, '고교무상화'제도에서 조선학교를 제외한 것은 명확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은 이 제도가 실시되기 직전인 2010년 3월 9일에 열린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도 "조선학교의 배제를 제안하는 몇몇 정치가의 태도"는 "아이들의 교육에 차별적 효과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국제인권기관이 "고교무상화"제도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한 것에 대해 명확한 차별이라고 인정함으로써, 일본정부의 기본적 인권 무시 정책의 부당함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이 사회권규약위원회의 소견에 대해 일본의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성 장관은 "조선학교에 북한계의 모든 학생들이 다니는 게 아니라, 재일조선인들은 각자의 선택에 따라……대다수의 학생들은 실제 일본의 일조교[학교교육법 제1조에 규정된 '학교'(유치원,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중등교육학교, 특별지원학교, 대학, 고등전문학교)를 가리킨다 ―― 인용자], 즉 보통의 일본 학교, 공립•사립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므로, 이는 전혀 민족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명확하다고 생각됩니다"라고 반론하며, 조선학교가 "일조교가 되면 해결되는 이야기"라고 당당하게 말했다.(☞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성 장관 기자회견록. 2013년 5월 24일)

일본정부는 이미 4월 30일, 사회권규약위원회의 심사과정에서 조선학교의 '무상화' 불지정은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판단한 것이 아니라 심사기준의 관점에서 제도의 대상이 될 학교를 한정한 것"이며, "특정 민족을 차별하는 조치가 아니다", 또한 일조교 등에 재학하는 재일조선인――여기서는 한국 국적자도 포함한 재일동포의 총칭으로서 '재일조선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과 한국계 학교는 제도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고 시모무라 장관과 똑같은 주장을 전개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일본정부는 재일조선인 학생의 대다수가 '고교무상화'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조선고급학교에 대한 '무상화'제도 배제는 '민족차별'이 아니라는 논리로 주장을 통일시킨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레토릭이야말로 애초부터 식민주의적 발상에 근거하는 궤변임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나는 이미 <프레시안>을 통해 조선학교에 대한 '무상화' 배제, 보조금 정지 등의 일련의 조치가 일본사회의 저류에 뿌리 깊게 존재하는 식민주의에서 유래함을 지적한 바 있다( "오사카에 '홍길동'이 나타났다: 오사카부의 보조금 정지 문제의 역사적 배경을 생각한다" <프레시안>2012.8.29). 여기서는 이전에 쓴 글과 일부 겹치는 부분이 있으나, 특히 시모무라 발언에 초점을 맞추어 이 발언으로 대표되는 민족교육 억압의 논리가 일본국가의 식민주의적 발상에 근거한 것임을 재차 확인하고자 한다.

▲ 오사카 시내의 한 조선초급학교의 공개 수업 중 '일본어' 수업 광경. ⓒ후지나가 다케시

동화정책과 민족교육의 억압

식민주의 또는 식민지주의(colonialism)는, 사전적으로 말하면 군사력 등의 강제력을 동원해 타민족을 종속시키고 그 지배지역=식민지를 획득, 확대, 유지하려는 정책•지배의 방법, 또는 그것을 지탱하는 사상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식민주의의 사상 또는 방법에는 대체로 '동화'와 '분리(=차별)'라는 두 가지가 있다. 이 두가지는 근본적으로는 모순되는 존재지만, 실제 식민통치에서 동화정책과 차별정책은 종종 혼재되어 실시되었다. 설령 피지배민족이 동화정책으로 인해 민족문화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도 지배민족과의 차별이 완전히 해소된 일은 없었고, 한편 동화를 거절하면 차별적 조치를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이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통치정책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에 관한 역사를 돌이켜보면, 일본국가는 일관되게 조선인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교육기관을 억압하고 조선인 아이들을 일본 학교에 다니도록 하는 동화정책을 주된 방침으로 삼아 왔다고 할 수 있다. 일제식민지시대, 재일조선인은 오사카(大阪), 아이치(愛知), 효고(兵庫), 교토(京都) 등지에서 1920년대 중반쯤부터 조선어교육을 주목적으로 하는 교육기관을 설립했었는데, 1930년대 중반까지 강제 폐교되었고, 아이들은 일본 학교로 취학할 것을 강요받았다.

해방 후 재일조선인들이 곳곳에 많은 민족학교를 설립하자 이를 경계한 일본정부는 1948년 1월 24일, 문부성 학교교육국장 명의로 통달을 내렸다. "조선인의 자제라도 학령에 해당하는 자는 일본인과 같이 시정촌(市町村)립 또는 사립 소학교나 중학교에 취학시켜야 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조선인학교에는 폐쇄 명령을 내렸다. 이 탄압에 항의해 일어난 것이 유명한 '한신(阪神)교육투쟁'(1948년 4월)이다.

그 후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에 걸쳐 일본의 지방자치체에서는 세제상의 우대조치 등을 받을 수 있는 '각종학교'로 조선학교를 인가하는 움직임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한일 국교정상화(1965년 6월)를 계기로 일본정부는 이러한 움직임에 제동을 걸어, 1965년 12월 28일 문부사무차관 명의로 '조선인학교'를 각종학교로 인가하지 말 것을 지방자치체에 통달했다. 재일조선인 학생은 일본 학교로 취학시키는 것이 원칙이므로 조선학교에 다니기 쉬운 조건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즈음 자민당의 한 조사위원회의 보고서(1965년 5월)에는 재일조선인 학생을 "적극적으로 일본의 학교교육 안에 넣어" "가능한 한 일본인과 같이 취급하도록 고려하고, 작은 차별로 편협한 배일적 민족교육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적고 있다(자민당 정책조사문교조사회, <외국인교육 소위원회중간보고(안)>). 재일조선인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일본의 학교교육 안에 넣어 동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오사카부의 보조금 문제와 관련해 하시모토 도오루(橋下徹) 전 오사카부지사(현 오사카시장)가 2010년 3월, 조선학교가 북한과 관계가 있다면 "나는 아이들을 되찾아 와 반듯한 정상적인 학교에서 배우도록 하겠다"(<아사히신문> 2010.3.10 석간), "조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생각은 없다. 부립고교에서도 사립고교에서도 [재일조선인을] 확실히 받아들일 것이다"( <47NEWS> 2010.3.10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의 학교교육이 조선학교보다 "정상"이므로 조선학교의 "아이들을 되찾아 와" 일본 학교에서 배우도록 하겠다는 오만한 망언이 아닐 수 없다.

조선학교와 일본 학교의 교육내용이 크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재일조선인의 아이들을 일본 학교에 다니게 한다는 것은, 아이들의 민족교육을 받을 권리를 빼앗는 행위, 바꿔 말하면 하시모토가 말하는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와 하등 다를 바 없다. 한국어 습득과 민족의 문화와 역사에 관한 소양을 몸에 익힐 기회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인이 되면 민족적 정체성의 형성이 어렵게 될 수밖에 없고, 이는 일본인화=동화를 유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일본국가가 재일조선인을 일본 학교에 다니도록 해온 것은 바로 이러한 결과를 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동화를 막는 제도로서의 조선학교를 적대시하며 차별과 배제, 억압하는 정책을 되풀이해 온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식민주의의 발상이 아닐 수 없다.

▲ 나카오사카(中大阪)조선초급학교에는 민족교육 역사자료실이 개설되어 있다. 아버지들이 나서서 손수 제작했다고 한다. ⓒ후지나가 다케시

시모무라 발언의 본질

한편, 시모무라 문부과학성 장관은 재일조선인의 대다수가 "각자의 선택에 따라", "보통의 일본 학교" 즉 일조교에 다니고 있으므로 민족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과연 재일조선인의 대다수가 정말로 "각자의 선택에 따라" 일조교에 다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원래 일조교란 어떤 학교일까.

일조교, 특히 초중등교육을 담당하는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는 법률상 그 교육과정을 문부과학성 장관이 정하고, 사용하는 교과서도 문부과학성 장관의 검정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대다수의 소•중•고등학교의 교육은 거의 모두가 일본어로 행해지고, '일본국민'의 육성을 최우선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다고 하겠다.

현재 일본에 한국계 민족학교로서 일조교로 지정된 사립학교는 3교가 있다. 그밖에 오사카 등 재일조선인이 많은 지역의 공립 소•중학교에서는 과외활동으로 주 1회 정도 '민족학급'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 귀중한 민족교육의 장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이러한 학교는 일본 전체로 보면 아주 적고, 또 일조교로서의 교육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 아래서는 민족교육의 실시는 그만큼 큰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조선학교는 일조교가 되는 것을 거부한 채, 민족교육의 실천을 주안으로 하는 독자적인 교육과정 아래 독자적인 교과서를 편찬해 사용하며 '일본어' 이외의 교과는 모두 한국어를 사용하는 등의 교육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학교의 민족교육은 일조교에서 행하는 민족교육과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일조교라는 제약 속에서도 민족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는 아이들은 일본의 현재 상황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고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일조교에 다니는 재일조선인 학생의 압도적 다수에게는 민족교육의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의 학부모들이 아이를 일본 학교에 보내는 주된 이유는, 공립 소•중•고등학교라면 학비를 낼 필요가 없고,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통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전국의 조선초•중•고급학교는 모두 합쳐도 70교에도 미치지 못하며, 조선학교가 하나도 없는 현(縣)도 도호쿠(東北)•규슈(九州)•시코쿠(四國)지방 등을 중심으로 많이 존재한다. 이를 일본 전국에2만1166교 있는 공립 소학교(2012년도)와 비교하면, 조선학교의 학생들이 통학 면에서 큰 부담이 있는 것은 자명하다. 또 경제적 부담을 보면, 가령 '무상화'제도가 시작되는 전년인 2009년도에 오사카시의 공립 소학교 학생 일인당 공적 보조금(공재정지출 교육비)은 90만5251엔임에 비해, 조선초급학교 학생에 대한 공적 보조금(오사카부•시 보조금의 합계액수)은 일인당 약 9만3300엔이었다. 즉, 조선초급학교 학생에 대한 공적 보조는 공립 소학교에 다녔을 경우와 비교하면 10분의 1정도에 지나지 않는데, 이렇게 적은 액수의 보조금마저도 2011년도에는 완전히 정지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일본사회에 정착해 나가는 상황에서 민족교육에 관심이 없거나 혹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일본 학교를 선택하는 재일조선인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일본인인 내가 뭐라고 말할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민족교육을 받기를 바라는 재일조선인에 대해서는 그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일본에서 민족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보통의 일본 학교"에 다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 뒤따른다. 시모무라 장관이 말했듯이 재일조선인이 "각자의 선택에 따라" 일조교에 다닌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아니,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국가는 일관되게 동화정책 아래서 재일조선인 아이들을 일조교에 다니도록 획책해 온 것이다.

이번에 '고교무상화' 정책에서 일본정부는 다른 민족교육기관은 전부 적용 대상으로 하면서 유독 조선학교만을 그 대상에서 제외해 노골적으로 분단을 꾀해 왔다. "분할해 통치하라"는 교활한 식민주의자의 상투적인 수단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해 놓고 시모무라 장관은 조선학교에 대한 '무상화' 적용의 조건으로 "일조교가 되면 해결되는 이야기"라고 동화교육정책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표적은 조선학교뿐만이 아니다. 가령, 최근 오사카에서는 일조교로 지정된 한국계 민족학교에 대해 일장기를 게양하라는 압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한다. 시모무라 장관의 발언은 일본정부가 재일조선인 전체에 대해 민족교육의 권리를 보장할 의지가 없음을 다시 한번 표명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민족교육을 통해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을 다른 외국인은 인정하면서 재일조선인에 대해서만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만계의 민족학교는 일본과 국교가 없는데도 '고교무상화'제도가 적용되어 있다.) 이것이 민족차별이 아니면 무엇인가.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식민주의에 근거하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의식의 산물인 것이다.

▲ 조선초급학교 교실 벽에 걸려 있는 학생들의 작품 등. ⓒ후지나가 다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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