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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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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사람들

[정욱식의 '핵과 인간'] 원전은 안전한가?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핵 발전소 4호기가 수 차례의 폭발 후 무너져 내렸다. 대재앙을 몰고 온 원전은 출력 100만킬로와트로 소련의 신형 흑연감속로이었다. 1984년 3월부터 가동된 이 원전의 노심에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2,600개에 달하는 '죽음의 재'가 쌓여 있었다. 사고 결과 5천만 Ci(퀴리)의 방사성 핵종이 방출됐고, 이 가운데 70%가 이 원전과 인접한 벨라루스를 덮쳤다. 마을 485개가 '죽음의 땅'으로 변했고, 이 가운데 70개는 땅속으로 영원히 묻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죽음의 재는 지구촌 전체로 퍼져갔다. 체르노빌 사고를 그저 먼 나라의 참사 정도로 간주하기에는 방사능은 넓고 지구는 좁았다. 당초 소련은 이 사고를 감추려했지만, 체르노빌 원전에서 1,250킬로미터 떨어진 스웨덴의 포스막 원전에서 4월 29일 고농도의 방사능이 검출돼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뒤이어 유럽 전역에서 고농도 방사성 물질에 측정되기 시작했고, 5월 2일 일본, 4일 중국, 5일 인도, 그리고 6일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방사능이 차례로 검출됐다. 당시 교토대학 원자로연구소에서 방사능 측정을 담당했던 고이데 히로아키의 증언을 들어보자.

"처음에는 이상한 방사능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8,2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데 설마 일본에까지 날아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5월 3일이 되고, 내가 호흡하고 있는 공기중에서 이상 방사능이 발견되었습니다. 방사능이 8,200킬로미터라는 지리를 날아서 일본에 당도한 것입니다. 그때의 오염 수치는 그 후 날이 가며 서서히 내려갔습니다. 그러다가 5월 하순이 되자 다시 수치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상공까지 날아온 오염이 태평양을 넘어서 아메리카대륙을 통과하여 유럽, 아시아를 넘어서 이렇게 지구를 한바퀴 돌아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사고 수습을 위해 약 50만명의 인력과 180억 루블이 투입됐다. 사고 피해가 가장 컸던 벨라루스는 사고 전 암환자가 10만명당 82명이었으나 2002년에는 6천명으로 급증했다. 해체작업에 두입된 노동자들도 하루 2명꼴로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 인한 사망자 수는 추정기관에 따라 4000천명에서 100만명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그 고통은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고 발생 당시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은 미하엘 고르바초프였다. 그는 이 참사를 목도하고는 핵과 인류의 미래는 양립할 수 없다는 신념을 더욱 굳건히 했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보다 20여년 앞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했다. 이러한 '신사고'는 미-소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할 수 있었던 결정적 힘이었고, 노벨상 위원회는 1990년 고르바초프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상해 그의 업적을 기렸다. 고르바초프는 원전 사고 발생 및 악화의 큰 원인을 소련의 경직되고 불투명한 관료주의에 있었다고 보고 정치 개혁(glasnost)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한때 미국과 세계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뤘던 소련 몰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될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폭발한 원전 4호기의 이름은 '우크리티예'이다. 2000톤의 우라늄과 1톤의 플루토늄을 비롯해 약 200톤의 핵 물질을 품고 있는 이 원전은 사고 직후 거대한 석관으로 봉쇄되었다. 그러나 체르노빌 참사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현재진행형'이다. 석관의 수명은 30년에 불과한 2016년까지이다. 석관 곳곳에 균열이 생겨 지금 이 시간에도 방사능이 새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또한 빗물이 스며들면서 핵분열 연쇄반응이 일어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제 사회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강철관 공사에 들어갔다. 높이 150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구조물에는 무려 2만톤의 금속이 사용되고, 수조원의 예산이 소요될 예정이다.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지어지고 있는 이 강철관의 수명은 100년이다. 국제사회의 미진한 기부로 공기가 계속 늦춰졌으나, 후쿠시마 참사가 일어나면서 세계 각국은 우크라이나에 7억8천5백만 달러의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 체르노빌 피해자들 ⓒ뉴시스

'체르노빌의 목소리'

우크라이나 출신의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역작 <체르노빌의 목소리>에는 '체르노빌레츠(체르노빌 사람들)'의 증언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녀는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체르노빌을 겪어 본 인류는 핵 없는 세상을 향해 갈 것만 같았다. 원자력의 시대를 벗어날 것만 같았다. 다른 길을 찾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체르노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체르노빌의 증인"을 자처한 알렉시예비치는 "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20년이나 흘렀지만, 내가 증언하는 것이 과거인지, 또는 미래인지" 자신에게 묻고 있다며,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더욱 잔인하고 총체적인 과제가 우리를 기다린다"고 역설한다.

약 20년에 걸쳐 체르노빌레츠를 인터뷰해 내놓은 이 책에 담긴 증언의 일부를 보자. 마을 주민들은 주변의 겉모습은 너무나도 익숙하기만 한데, 그 익숙한 환경이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 무기가 되어버린 현실에 몸서리쳤다. "낚아 올린 물고기가, 사냥한 들새가, 사과가" 말이다. "해도 떴고, 연기도 안 보이고 가스 냄새도 안 나는데……. 총도 안 쏘는구먼. 이게 전쟁이야? 그런데 피난을 가라니……." 사고 발생 직후 소련 정부는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해 주민들을 대비시키고 "흙을 흙으로 묻었으며",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와 고양이 등 동물들을 죽였다.

체르노빌 사태 직후 소련 정부나 언론은 거의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당연히 주민들은 큰 불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들이 발생했다. "아침에 정원에 나가보니 익숙했던 소리가 들리지 않았소. 왠지 벌이 한 마리도 없었소. (중략) 나중에야 원전에 사고가 났다고 들었는데, 그 원전이 옆에 있던 거였소. 벌들은 알았는데, 우리는 모른 거지." 늙은 양봉가의 말이다. "텔레비전으로 설명을 해주기를 기다렸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얘기해줄 줄 알았어. 그런데 지렁이가, 평범한 지렁이가 땅 깊숙이 들어갔어. 그런데 우리는 모르잖아. 그래서 땅을 파고 또 팠지. 그런데도 지렁이를 한 마리도 못 찾아 고기를 못 잡았지." 어부들의 증언이다.

사랑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임산부의 사연은 "셰익스피어도, 위대한 단테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됩니다! 입 맞추면 안 됩니다! 만지면 안 됩니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선 오염 덩어리입니다." 원전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소방대원의 젊은 아내 류드밀라 이그나텐코는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남편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고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을 지켰다. 몇 개월 후 이 여인은 나타샤라는 딸을 낳았다. 남편이 죽기 전에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4시간만에 숨졌다. 2년 후 다른 남자를 만난 이그나텐코는 사내 아이를 낳았고 안드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주위의 걱정과는 달리 건강해 보이는 아이였다. 그녀가 말한 "행복한 때"였다. 그러나 모자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엄마는 뇌출혈로 쓰러졌고 아들 역시 한 달에 보름은 의사와 함께 집에서 지낼 정도로 아팠다고 한다.

이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지 25년 후, 고르바초프는 '핵과학자협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3/4월호 기고문을 통해 '체르노빌을 잊지 말 것'을 호소하고 나섰다. 그는 "체르노빌 사고 25주년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장엄한 임무를 되새기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이정표"라며, "우리 모두 체르노빌을 기억하자. 체르노빌 사태의 부정적 측면뿐만 아니라, 더 안전하고 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희망의 횃불로써 되새기자"고 호소했다. 고르바초프는 25년 전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제2의 체르노빌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예방, 재생 에너지, 투명성, 테러리즘과 폭력에의 취약성 등 4가지 문제에 인류사회가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바로 '재생 에너지'이다. 그는 "우리가 오늘날 핵 에너지를 쉽게 거부할 수는 없지만, 핵 발전이 에너지 공급과 기후 변화에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마치 핵 발전이 '비용 절감형' 에너지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이는 "과장된 것"이라며, 미국의 예를 들었다. 미국 정부는 1947년부터 1999년까지 원자력 분야에 모두 2천6백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 반면에, 풍력과 태양열 발전에는 불과 55억 달러밖에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원자력만큼이나 재생 에너지에 투자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대안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원, 즉 바람, 태양열, 지열, 수소 등에 투자"해,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면서도 깨지기 쉬운 지구를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원전은 안전한가?

체르노빌 참사 25주년이 다가오면서 고르바초프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탈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바로 그 때, 원전 선진국이라고 자부했던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다. 체르노빌을 과거지사로 묻고 또 다시 원전 르네상스에 심취해 있었던 인류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기술자의 실수로, 체르노빌 참사는 과학자들의 무리한 실험 과정에서,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는 지진과 쓰나미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지진 8.0 규모에도 끄떡없다던 일본의 자존심은 9.0이라는 수치 앞에 비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또 다시 참사를 거치고서야 인류 사회는 다시 묻기 시작했다. '핵과 인간'은 양립가능하냐고.

우리는 원자력이 깨끗하고 안전하며 저렴한 에너지원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방사능에 피폭되더라도 "기준치 이하는 안전하다"라는 말에도 익숙하다. 화석 연료가 주범으로 일컬어지는 지구 온난화 시대에 원전은 유력한 대안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죽음의 재'로 일컬어지는 방사능 물질이 인체에 들어가면 DNA를 포함한 분자결합을 절단‧파괴‧손상되고 피폭 수준에 따라 그 증상은 빠르게 나타날 수도 있고, 아주 서서히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데 바로 원전은 어마어마한 양의 '죽음의 재'를 만들어낸다. 이는 히로시마 원폭과 비교하면 그 심각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히로시마의 8킬로그램의 우라늄 핵폭탄에서 실제로 연소된 우라늄의 양은 800그램 정도였다. 그런데 100만킬로와트의 현대식 원자로가 1년에 태우는 우라늄의 양은 약 1천킬로그램으로 히로시마 핵폭탄보다 1200배 가량 많다. 당연히 죽음의 재도 이에 비례해서 만들어진다. 이를 세슘-137로 비교해보면, 히로시마 원폭이 뿜어낸 양은 약 3,000Ci였고, 체르노빌 원전사고료 방출된 양은 약 250만Ci, 그리고 100만킬로와트 원전이 1년간 만들어내는 양은 약 300만Ci 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 표준이 된 100만킬로와트급 원전은 원자로 내부에서 300만킬로와트의 열을 만들어내는데 이 중에 전기로 전환되는 양은 100만킬로와트에 불과하고 나머지 200만킬로와트는 바다에 버리는 구조로 운전된다. 원전의 효율이 이렇게 떨어지는 이유는 연료 건전성의 제약에 있는데, 터빈으로 보내는 증기의 온도를 280도 이상 올릴 수 없다. 반면 화력발전소는 500도까지 올릴 수 있어 발전 열효율이 50% 이상이다. 원전은 바닷물을 냉각수로 이용하는데, 100만킬로와트 원전 1기는 초당 바닷물 70톤의 온도를 7도 가량 상승시킨다. 이를 두고 도쿄대의 미토 이와오 교수는 "'원자력발전소'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아. 정확히 말하면 '바다 데우기 장치'야"라고 지적했다. 수온의 급격한 상승은 해양 생태계에 여러 부작용을 동반할 뿐만 아니라, 바닷물의 수온이 상승하면 대기 중으로 뿜어져 나오는 이산화탄소도 늘어나게 된다.

'죽음의 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인류 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 숙제이기도 하다. 핵폐기물은 원전 전과정에서 나온다. 우라늄을 채굴‧정련할 때에도, 이를 농축‧가공해 핵 연료봉을 만들 때에도, 원자로를 가동할 때에도 나오고, 무엇보다도 사용후연료봉은 그 자체가 엄청난 방사능 덩어리이다. 죽음의 재 가운데 반감기가 짧은 것으로 알려진 세슘-137은 30년이고, 플루토늄-239는 무려 2만4천년이다. 장갑, 옷, 장비 등 저준위 폐기물의 반감기는 300년이다. 사용후 연료를 일컫는 고준위 폐기물은 무려 1백만년에 달한다.

과학자들은 반감기도 대단히 길고 또 방사능 농도도 대단히 높은 고준위 폐기물, 즉, 사용후연료봉 처리에 골몰해왔다. 우주에 갖다버리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해양 처분은 런던 조약에 의해, 남극 깊이 파묻는 것은 남극조약에 의해 금지돼 있다. 그래서 처분 방법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재처리인데, 그 타당성 여부를 떠나 재처리를 하더라도 고준위 폐기물은 남는다. 심지층 처분이다. 그런데 원전이 가동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핵 폐기물의 처리를 확실히 하고 있는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인류는 원전이 만들어내는 폐기물의 처분방법도 없이 오늘날까지 와버린" 셈이다.

원자력이 지구 온난화를 늦출 유력한 대안이라는 주장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원자력발전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적 에너지로서 지구환경문제를 방지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는 기후변화협약에도 대비할 수 있습니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격이다. 원자력이 발전할 때에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우라늄 채굴, 제련, 농축 및 가공, 원자로 건설 및 운전, 핵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엄청난 자재와 에너지가 소모되고, 소모되는 자재와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때문이다. 더구나 원전의 원리가 되는 핵분열 반응시 이산화탄소는 배출되지 않지만,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위험한 방사성 물질, 즉 죽음의 재를 배출한다.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라는 말도 사람들을 안심시키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여기서 기준치는 IAEA가 정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의한 것이다. 그러나 WHO가 IAEA에 굴복한 결과라는 비판이 많다. 동국의대 미생물학과 교수인 김익중은 이렇게 반박한다. "방사능은 그 피폭량에 비례하여 암을 발생시킨다. 이는 기준치 이하에서도 마찬가지다. 안전한 방사능은 없다."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미국과학아카데미위원회는 2005년 6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소한의 피폭이라도 인간에게 위험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일본의 원자력 전문가인 고이데 히로아키 역시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피폭량에 비례해서 영향이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 '후쿠시마 1년, 핵 없는 세상을 꿈꾼다' 강연회가 열립니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뚜벅뚜벅'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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