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기회에 팽창 일변도의 패권 전략을 수정해 미국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카토 연구소의 벤자민 프리드먼 연구원은 "미국 군사력의 축소는 재정 부담을 줄일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군사 개입을 자제하게 만듦으로써 미국에도 이로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11월 2일자 <포린어페어즈> 기고문을 통해 미국이 해외 주둔 미군을 대폭 줄이고 자국 방어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전력을 재조정하면 향후 10년간 1조2000억 달러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맹국 방어는 스스로 책임지게 하고 이제 미국은 자국 방어에 치중하자는 의미이다.
일각에서는 아시아 주둔 미군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대세는 아시아-태평양에 미국의 힘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육군 중장 출신인 데이비드 바르노 등 3명은 <포린어페어즈>에 공동 기고한 글을 통해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미군이 개입할 지역과 관여하지 않을 지역을 구분하는 것"이 군비 감축 시대의 미국의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이 주장한 전략적 개입 지역의 핵심은 아시아-태평양이다. 중국의 군사 현대화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한국과 일본 등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의 개입을 희망하고 있는 만큼" 아시아-태평양은 미국의 21세기 군사 전략의 핵심 지역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향후 미국의 군비 투자는 육·해·공 균형 투자에서 육군 감축 및 해·공군 증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 하와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13일 석양이 지는 시간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10년 묵은 과제, 아시아로의 이동
기실 미국이 전략적 중심축을 대서양에서 아시아-태평양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한 지는 10년이 지났다. <2001년 4개년 국방정책 검토보고서(QDR)>에서는 아시아에서 대규모의 군비 경쟁과 군사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미국의 군사적 우위에 도전할 세력(중국)이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전략적 중심축을 아태 지역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특히 인도양에서 한반도의 동해에 이르는 지역을 '동아시아 해안대'라고 부르면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가장 필요한 지역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군사전략에 따라 해군력의 60%를 이 지역에 집중시키고 한·미 동맹, 미·일 동맹, 미국·호주 동맹 재편 및 동남아 국가들과의 군사 협력 강화, 그리고 인도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추구했다. 노무현-부시 시기에 한미 갈등의 핵심적 요인이었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도 이러한 맥락에서 추진된 것이다.
그러나 전략적 중심축을 아태 지역으로 옮기려던 계획은 중동에서 발목이 잡혔다. 수 개월만에 끝날 것으로 보였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10년째 이어지고, 이라크 저항세력의 반격으로 미국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아시아로의 이동이 차질을 빚은 것이다. 이 사이에 중국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한 끝에 아태 지역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고, 다급해진 미국은 아시아로의 이동에 속도를 높이려고 한다.
부시-오바마 행정부에서 연이어 국방장관을 맡은 로버트 게이츠는 6월 상순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0차 아시아 연례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중국을 겨냥해 "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군의 개입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경제위기와 재정적자, 그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개입 수준을 늘려나가겠다는 의미이다. 그는 특히 "난사군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필리핀·베트남의 영유권 분쟁이 고조되고 있으며, 남중국해에서 선박 운행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된다"며 이 문제로 인해 자칫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게이츠의 후임자인 리언 패네타 역시 11월 6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해외주둔 미군 감축 대상에 아시아와 걸프 지역은 예외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유럽 주둔 미군을 감축해 아시아의 미국 군사력은 강화해나갈 뜻도 밝히고 있다. 그는 특히 북한과 이란을 핵심적인 위협이라고 일컬으면서 "그들을 억제하고 분쇄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입장은 펜타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포린폴리시> 11월호 기고문 '미국의 태평양 세기'(America's Pacific Century)를 통해 아시아-태평양이 향후 미국 정책의 중추가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역시 수차례에 걸쳐 "미국은 태평양 파워(Pacific power)"라고 강조하면서 아시아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 의지를 천명했다.
아시아로의 이동, 뜻대로 될까?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두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군사안보전략으로 아시아 지역에 추가적인 기지와 기항지를 확보해 해군력은 운용을 보다 원활하게 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부챗살처럼 연결된 양자 관계를 다자·지역 동맹으로 전환해 대중국 견제·포위망을 강화해나가겠다는 것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이 미국 동아시아의 핵심 목표 가운데 하나는 인도양에서 태평양을 관통하는 작전 환경과 해양수송로 확보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아시아-태평양에서 더 광범위하고 골고루 군사력을 배치하는 것은 (미국에) 중대한 이점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전자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또한 최근 미국이 한-미-일 3각 동맹이나 여기에 호주와 인도를 더한 동아시아 군사 네트워크 구축 필요성을 공공연히 말하고 있는 것은 후자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또 하나는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대표되는 경제 전략이다. 미국 내수 경제 침체가 장기화되고 유럽 경제마저 취청거리면서 미국은 부상하는 아시아에 적극 진출하는 것이 경제적인 활로 모색이자 강해지는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카드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 한미 FTA가 미 의회를 통과한데 이어 일본과 캐나다가 TPP 협상 의사를 천명하면서 미국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있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의도가 뜻대로 관철될 지는 미지수이다. FTA와 TPP는 단순히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높이는 것일 뿐만 아니라 '문제투성이'인 미국식 제도를 아시아에 이식시키려는 의도를 깔고 있고, 그 만큼 해당 국가들의 정책 자율성이 침해받을 소지가 크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내에서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추진에 대한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아시아'를 외치고 있는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에도 여러 가지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미국의 군사전략은 중국을 핵심 타킷으로 삼고 있는데, '미국이 과연 중국을 상대로 군비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인가'부터 의문이 든다. 오늘날 미국의 군사비는 GDP의 4.5% 수준인 8000억 달러 안팎에 달해 중국보다 8배 가량 많다. 그러나 미국은 향후 10년간 5000억 달러 안팎의 국방예산을 줄여야 할 형편이다. 이에 반해 매년 10% 안팎 증가해온 중국의 군사비는 GDP 대비 2% 미만이다. 미국은 줄여야 할 형편이고 중국은 늘릴 여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간극을 만회하기 위해 미국은 동맹·우방국들에게 '비용 분담' 및 무기 구매를 더욱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위기를 겪고 있기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또한 미국의 압력이 거세질수록 해당국들 내에서는 반미감정이 고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동맹 전략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의 아시아로의 이동 전략에 발목을 잡는 요인은 또 있다. 최근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이란-이스라엘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미국의 개입을 요하는 분쟁은 아시아 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의 쇠퇴를 러시아의 부흥이자 다극체제로의 재편 기회로 인식하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이 내년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미국으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푸틴 복귀시 미국의 유럽 미사일방어체제(MD) 배치 계획을 집중적으로 문제삼으면서 미국과의 대립각을 세울 것이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 다음에 이어질 글: 한국의 선택은?
* <上> "美 군비 삭감 저항 세력, 동맹국의 지갑 노린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 바로가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