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근민 제주지사는 모르고 오키나와 현지사는 아는 것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근민 제주지사는 모르고 오키나와 현지사는 아는 것

[정욱식의 '오, 평화'] 비극과 희망의 땅 오키나와를 가다(하)

오키나와를 바라보는 현지 주민의 염원과 미국의 야심이 극적으로 엇갈리는 표현이 있다. 오키나와 최남단에 있는 평화공원에는 태평양을 향해 "평화의 초석"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오키나와 전쟁에서 약 20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미군 기지가 들어선 이후에는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전 및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르기까지 오키나와가 미군의 발진기지로 전락한 것을 한탄하면서, 앞으로는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증진하는 초석이 되어야 한다는 염원을 담고 있다.

▲ 오키나와 평화공원에 있는 '평화의 초석' 조형물 ⓒ정욱식

반면 미국의 전략가들은 오키나와를 "아시아-태평양의 군사적 중추"라고 부른다. 서울, 타이베이, 상하이, 홍콩, 마닐라, 도교 등 아시아의 핵심적인 도시들이 이 섬의 반경 1500km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와 대만해협 등에서 유사 상황이 발생하면 오키나와는 미국의 신속한 군사 대응 및 개입을 가능하게 하는 섬이다. 일례로 오키나와에서 출격한 공군기가 한반도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불과 2시간이 걸리는 반면, 괌에서는 5시간, 하와이에선 11시간, 미국 본토에서는 16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적 의도를 잘 보여주듯, 미국은 오키나와 점령 이후 곳곳에 군사 기지를 만들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공군기지인 가데나 기지부터 최근 오키나와-미국-일본 본토 3자 관계의 핵심으로 부상한 후텐마 기지에 이르기까지 오키나와 전역에는 미군 기지들이 깔려 있다. 이로 인해 일본 영토 총면적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는 미군기지 74%가 몰려 있고, 주일미군 4만명 가운데 2만 5000명 가량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미군기지의 섬"이라고 부르고, "미군기지 안에 오키나와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지의 소유 형태도 유별나다. 오키나와 현에 있는 미군기지의 소유 형태를 보면, 사유지가 32.7%, 시(市) 소유지가 30.4%, 현 소유지가 3.5%로 전체의 66.6%가 민·공유지이며, 국유지는 33.4%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일본 본토의 미군기지 면적의 87%가 국유지이고 민 공유지는 13%인 것과는 매우 차이가 난다. 본토의 미군기지 대부분이 태평양 전쟁 전의 일본군 기지를 그대로 사용해온 것에 비해,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의 대부분은 민·공유지를 강제로 점유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강정마을, 헤노코

오키나와 나하시 동쪽 해안에는 헤노코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10월 5일 이곳을 찾았을 때, 8년(2639일)간 기지 건설 반대 집회를 해오고 있다는 팻말이 서 있었다. 헤노코는 여러 모로 강정마을과 흡사하다. 마을 주민들이 천혜의 자연환경과 평화로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오키나와가 더 이상 군사 기지의 섬이 아니라 "평화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는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오랜 기간 비폭력적인 저항 운동을 전개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 8년간 미군기지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헤노코 주민들 ⓒ정욱식

그러나 강정마을과 헤노코는 중대한 차이점도 갖고 있다. 제주도의 우근민 지사가 정부와 해군 눈치보기로 일관하고 있는 반면, 오키나와 현지사는 주민들의 입장을 존중해 미국과 일본 정부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작년 11월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나카이마 히로카즈 오키나와 현지사는 선거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군 해병대 기지인 후텐마를 헤노코로 이전하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선 직후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해야 한다며 주민의 편으로 돌아섰다.

그는 재선 직후 "오키나와는 이 섬을 위해서 미군 기지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전체를 위해 수용하고 있다"며 "일본 본토는 후텐마 기지 재배치에 대한 해법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본토가 오키나와를 희생양으로 삼아 더 이상 미일동맹에 무임승차할 것이 아니라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하는데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참고로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 등 오키나와 내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현지사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올해 들어 나카이마 현지사의 행보는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그는 9월 말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미국이 후텐마 기지 이전을 "총검과 불도저"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미국 정부의 태도를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또한 미국의 밀어붙이기식 태도에 "오키나와 지방정부와 주민들은 강력히 저항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미국도 오키나와를 더 이상 희생양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그러자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의 유력 인사 3명도 오키나와의 입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군사위원회 위원장인 칼 레빈,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존 매케인, 동아시아-태평양 소위 위원장인 짐 웹은 오키나와의 고초를 이해한다며, 앞으로 미국과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입장을 충분히 검토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 수 있는 방법으로 기지 재배치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의 이와 같은 입장 표명은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로 옮기는 것과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 병력 8000명을 괌으로 옮기는 것이 막대한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깔려 있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1960년대 후반부터 헤노코에 군사 기지를 만들려고 했다. 헤노코 바로 옆에는 미 해병대 기지인 캠프 슈와브가 있는데, 헤노코 해안을 매립해 지상-해상 복합형 기지를 만들면 시너지 효과를 크게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헤노코 주민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 표류했다. 그러나 '노후한' 후텐마 기지 대신에 '새로운' 기지를 희망해온 미국의 압력에 따라, 양국 정부는 2006년 후텐마 기지를 헤코노로 이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 후텐마 미군기지 ⓒ정욱식

오키나와 중부 기노완 시(市)에 있는 후텐마 기지는 노후했을 뿐만 아니라, 기지 주변을 주택이 둘러싸고 있을 정도로 인구 밀집 지역에 위치해 있다. 오키나와 지방법원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군사 기지"라고 불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주민들은 군용기의 이착륙 때 발생하는 소음으로 수십년간 고통을 받아왔고, 2004년에는 해병대 헬기가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추락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당연히 기지 반환 요구가 비등해졌다. 그러나 미일 양국 정부가 오키나와 주민들의 요구에 답한 방식은 후텐마 기지 '반환'이 아니라 헤노코로의 '이전'이었다.

한편 2009년 무려 55년만에 정권 창출에 성공한 민주당은 대등한 미일관계를 주창하면서 "후텐마 가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기존 합의를 지켜라"며 노골적인 압력을 행사했고, 이에 따라 민주당 정권은 오키나와와 미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후텐마 문제로 파열음이 커진 미일동맹을 봉합한 것은 천안함 침몰이었다. 미국은 북한의 위협이 거듭 확인된 만큼, 미일동맹 강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며 하토야마 정권을 압박했고, 하토야마 총리도 "기존 합의를 존중하겠다"며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오키나와에선 약속을 저버린 민주당 정권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재선에 성공한 나카이마 오키나와 현지사도 주민의 편에 서서 미일 양국의 압력에 맞서고 있다.

미국, 오키나와는 한반도의 '단일 전장'

기실 후텐마 문제를 포함한 오키나와의 미래는 한반도 평화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은 한미합동훈련에 참가하는 미국의 군사력의 핵심 전력이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 오키나와가 미군 증원 전력의 발진기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은 오키나와는 한반도의 단일 전장(戰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도 오키나와 방어에 기여를 해야 한다면서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체제(MD)에 참여할 것을 요구해왔다. 안타깝게도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다"라는 이상득 의원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MB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제주도와 오키나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연결된다. 가데나 공군기지를 비롯한 미국 동아시아 전력의 핵심 거점인 오키나와로 향하는 탄도미사일을 중간에 요격하는데 제주도만큼이나 적합한 전략적 요충지도 없기 때문이다. 하여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면, MD 기능을 탑재한 미국의 이지스함이 들락날락거릴 것이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도 그만큼 위협받게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창을 보유한 미국이 상대방의 창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패까지 갖게 되면 그 창을 휘두르기가 더욱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 비극과 희망의 땅 오키나와를 가다(상)
☞ 필자 정욱식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 바로가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