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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적' 선택이 가져올 가장 비주권적인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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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적' 선택이 가져올 가장 비주권적인 미래

[정욱식의 '오, 평화'] 제주 해군기지와 우리 운명의 '타자화'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2년 만에 공안대책회의까지 소집해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반대 운동을 강제 진압할 태세이다. 이에 맞선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도 가장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저항에 나설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파국의 먹구름을 보면서 거듭 묻게 된다. 평화롭게 아름다운 강정마을의 작은 평화까지 파괴하면서 얻게 되는 국익이 과연 무엇이냐?

<프레시안>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주장한 것처럼,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한중관계가 마지노선을 넘나들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여전히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와 관련해 '한국 해군의 기지를 건설하는 것인데, 왜 자꾸 미국이나 중국과 연계시키냐'는 반문을 많이 듣게 된다.

그렇다. 미국의 압력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해군기지 건설은 한국 정부의 주권적 선택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주권적 판단이 가져올 결과는 우리 운명을 미중관계에 더더욱 종속시키는 '타자화'이고, 그래서 가장 '비주권적인 상황'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위험의 크기와 함께 선택의 자율성 또한 크다. 일례로 노무현 정부 때 '제2의 5.18'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과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은 미국의 강력한 요구와 압력에 따른 것이어서 한국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극히 좁았다. 그러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노무현-이명박 정부가 결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크게 의식할 필요가 없다. 득실관계를 냉정하게 평가해 우리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 27일 오후 제주 해군기지 백지화를 위한 제주시 일도2동 대책위원회가 마련한 '평화버스'를 타고 서귀포시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을 찾은 시민들에게 강정마을 주민대표들이 큰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듭 묻는다. 한-중 해군이 이어도에서 대치하면?

제주 해군기지가 한중관계에 막대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가장 1차적이고도 직접적인 이유는 이어도 문제에 대한 해군의 대응 계획에서 비롯된다. 필자가 이미 '한-중 해군이 이어도에서 대치하면'(☞관련 글 바로가기)이라는 글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해군은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기동 함대를 배치해 이어도에서 초계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생각해보라. 한-중 간에 합의되지 않은 수역에 한국이 군함을 보내 초계 활동을 벌이면 양국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이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만약 중국 해군이 이어도에 출현하면 우리는 외교적 항의에서부터 군사적 맞대응까지 다양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반중감정도 고조될 것이다. 중국이 취할 조치도 이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한국이 먼저 해군 함정을 보내 양국의 함정이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한국은 외교적·경제적·안보적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미합의 수역에 함정을 먼저 보내 긴장 상황을 자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여론은 결코 우리 편이 될 수 없다. 국제신용평가사는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대단히 높은 한국의 국가신인도 강등을 검토할 것이다. 중국 내에서는 반한감정이 일어나고 이는 한국 상품 불매운동과 중국인 여행객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대치 상황이 지속되면 한국의 위험 부담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일본을 굴복시키는데 사용한 희토류 수출 중단이나 한국에 대한 여행 금지 조치 등 경제적 보복에 나설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아마도 미래의 한국 정부는 어떤 정부가 되었든, 해군 함정을 철수시켜 사태를 수습하려 할 것이다. 이는 곧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을 둘러싼 협상력의 저하로도 이어지고 만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어도 해양주권 수호를 이유로 제주 해군기지를 만들어 해군 함정을 파견하면 자초하게 될 '확실한 위험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절실한 문제 제기에 대한 토론도 검증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해군기지 사업이 강행되고 있다.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근거없는 기우에 불과해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기우라고?

또 한 가지 전략적으로 더욱 큰 부담이 따를 수 있는 문제는 미국이 제주 해군기지를 어떤 형태로든 이용해 한중관계가 크게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도를 둘러싼 대치 상황은 한-중 양자간의 문제라는 점에서 외교적으로 풀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러나 미-중 갈등에 휘말리면 한국의 선택지는 극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라는 '주권적 결정'이 우리의 운명을 '타자화'하는 가장 '비주권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해군측은 미국과 협의 없이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미국 예산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으며 이미 진해와 부산을 기항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제주 해군기지를 이용할 가능성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과 협의 여부 및 미국 예산의 투입 여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둔군지위협정(SOFA),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따라 미군은 한국 해군 기지인 제주 해군기지를 이용할 수 있는 원천적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첨예한 이슈가 되어온 미사일방어체제(MD)와의 연관성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미국 주도의 MD에 참여를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주 해군기지와 MD는 무관하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정부는 미국과 함께 2년 전부터 MD 공동연구를 실시해오고 있다. 작년에는 한미 양국의 이지스함이 합동 MD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밀실에서는 오키나와와 괌을 방어하는데 한국이 기여하는 방안도 논의중이다. 미국이 한국을 대표적인 MD 협력 국가로 분류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이 패트리어트 미사일 최신형인 PAC-3를 한국에 배치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3년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PAC-3는 주한미군 기지인 오산 공군기지와 군산공 군기지뿐만 아니라 한국 공군기지인 수원 기지와 광주 기지에도 배치됐었다. 이는 미국이 필요할 경우 동맹국의 기지도 미군 군사력의 전개 지역으로 삼겠다는 전략에 따른 것으로, 제주 해군기지가 한국 해군 기지더라도 미군과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없는 핵심적인 사유라고 할 수 있다.

가까워서 안 온다고?

제주 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 참여정부 때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한 바 있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주장도 이해하기 힘들긴 마찬가지이다. 문 교수는 "강정항이 중국과 지나치게 가깝"고 "천문학적인 국방비 감축을 단행해야 하는 미국이 태평양 해군전력을 증강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들어 "강정이 장차 미 해군의 전략기지화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과 가까워서 미군 함정이 제주도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경험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미 태평양 함대의 주력 부대가 배치된 일본의 요코스카와 사세보 기지 역시 중국의 탄도미사일 사정권에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아울러 미국이 중국과 가까운 지역에 해군력 투입을 꺼려한다면 부산은 물론이고 서해, 그리고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베트남까지 미국 군함이 들락날락거리고 있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미국이 경제난으로 인해 해군력 증강이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 역시 결함이 많다. 우선 미국 국방부의 공식 입장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해군력을 꾸준히 증강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실증하듯 미국은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에도 3년간 이지스탄도미사일방어체제(ABMD)를 18척에서 23척으로 늘렸고, 2018년까지는 43척으로 늘릴 예정이다. 물론 경제난으로 인해 해군력 증강에 약간의 어려움은 있을 수 있지만, 아태 지역 해군력 증강은 21세기 미국의 핵심적인 전략이자 초당적 합의라는 점에서 큰 틀에서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오히려 미국의 경제난은 우리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공산이 크다. 한미동맹을 중국을 겨냥한 지역동맹으로 재편하길 원하는 미국은 경제난을 이유로 한국이 중국 견제 및 봉쇄에 더 큰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최근 한-미-일 3각 동맹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미국 함정이 비동맹국 항구에 정박할 경우에는 사전 협의를 거쳐 입항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한국의 항구를 이용할 때에는 입항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어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더욱 매력적인 기지가 될 수도 있다.

왜 우리의 운명을 '타자화'하는가?

주지하다시피 미국과 중국은 남중국해-대만해협-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동중국해-서해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해양을 둘러싸고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제주 해군기지는 이러한 미-중 간 '갈등의 바다'의 요충지에 건설되고 있다.

가정해보자. 만약 이들 바다 어디에선가 미-중 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거나 무력 충돌이 발생해 미국이 제주 해군기지를 이용하려고 할 경우를. 미-중 간에 핵전쟁까지 비화될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하더라도 세력권을 둘러싼 무력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물론 이는 우리의 의사와 무관한 것이다. 또한 미국이 제주 해군기지 사용을 요구할 것인가의 여부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그건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미국의 선택이다.

미국이 제주 해군기지를 쓰고자 하는데 못 쓰게 하면 한미관계에 어떤 일이 발생할까? 거꾸로 해군기지를 사용하게 하면 한중관계에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왜 있지도 않은 일을 가정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군사력의 존재 이유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다. 왜 만일의 사태에 이러한 시나리오는 제외되어야 하는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가능성의 높고 낮음을 떠나, 그리고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감당하기 힘든 딜레마와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제주 해군기지가 없으면 이러한 걱정은 애초부터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여 묻게 된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를 위한 길이 과연 어떤 길이냐고?

필자 정욱식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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