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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핵무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정욱식의 '오, 평화'] 한반도 비핵화, 대타협을 향하여(상)

국내외를 막론하고 상당수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민간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한국과 미국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도 이러한 인식은 팽배하다.

북한이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의 핵실험을 하면서, 그리고 북한이 2010년 11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을 공개하면서 이러한 인식은 더욱 강해졌다. 북한이 공공연히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노리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는 것 역시 '북한 핵포기 불가론'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대북 강경파들은 북미 직접대화(제네바 합의)도 해봤고, 6자회담도 해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며, '협상 무용론'을 설파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결국 북한의 정권교체나 한국 주도의 흡수통일이 유일한 해법이라고까지 말한다. 비록 소수이지만, 한국도 핵무장을 하거나 미국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해 '공포의 균형'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러한 인식의 문제점에 관한 글)

물론 압박과 제재, 무력 사용 위협도 북핵 문제 해결에 기여하지 못했다며, 최소한 북한의 핵 능력이 배가되고 이것이 외부로 이전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을 포용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포용정책으로의 복귀 주장은 '북한의 패턴'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높디높은 불신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핵을 가진 북한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포용의 기조를 되살려, 북한의 핵 능력을 현재 수준에서 동결시키고 핵무기가 사용될 수도 있는 환경 자체를 예방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할까? 아니면 봉쇄의 고삐를 더욱 강하게 당겨, 북한의 항복이나 급변사태를 유도해야 할까? 아마도 올해 내에 문제 해결의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질문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다시 근본적인 질문, 즉 '북한은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는가'로 돌아가 보자. 이 질문을 필자 스스로에게 던져본다면, '있다'라고 답하고 싶다. 또한 이러한 대답이 '친북이니, 진보니' 하는 이념의 문제와는 상관없다고 본다. 만약 북한의 핵포기 가능성에 대한 판단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한다면, '북한의 핵포기시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높여주겠다'는 비핵개방3000을 대북정책으로 삼은 이명박 정부마저도 친북·진보가 되고 만다.

▲ 2008년 6월 북한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 장면 ⓒ프레시안

3가지 미신: 북핵 20년史, 김정일 독재정권=핵무장, 협상무용론

시간이 지나면서 북핵 문제 해결 가능성이 크게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열려 있다고 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때문이다. 이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의 근거를 이루고 있는 요인들에 대한 반론에서 추출할 수 있다.

첫째는 이른바 '북핵 20년사'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교훈의 추출이다.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지난 20년간 일관되고 집요하게 핵무기 개발을 추구해왔다고 간주하고 있지만, 이는 객관적인 사실과 다르다.

1990년대 초반에 불거진 '1차 한반도 핵위기'는 94년 북미간의 제네바 합의를 통해 일단락된 바 있다. 이후 9년간 북한의 핵 능력은 '동결'된 상태로 유지됐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부시 행정부조차도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고 있다며, 2002년 10월까지 중유를 보냈었다.

이랬던 북한이 다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한 시점은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고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했던 2003년부터였다. 이후 북한은 플루토늄 생산, 핵보유국 선언, 핵실험 등의 조치를 취했다가,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수용했던 2007년부터는 영변 핵시설 불능화, 냉각탑 폭파, 핵 신고서 제출 등 몇 가지 의미있는 조치들을 취하기도 했었다.

물론 '북한이 오래 전부터 비밀리에 UEP를 이용해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았냐'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정확히 언제, 어느 수준으로 UEP를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 목적이 군사용인지, 원전용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에 있다. UEP 문제가 심각한 사안이고 또 마땅히 해결되어야 할 사안이지만, 이 문제를 근거로 '북한은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둘째로 '불편한 진실'일 수 있지만, 독재정권과 핵무장 사이에는 강한 친화성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김정일 정권이 독재·세습을 위해 핵무장을 했고, 체제 유지를 위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는 경험적으로 뒷받침되는 주장은 아니다. 북한을 포함하면 지구상에는 9개의 핵보유국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 미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인도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독재정권이 핵무기를 개발했지만, 그 핵무기를 포기한 정권도 백인정권이었다. 한국의 독재자 박정희도 한 때 핵개발에 관심을 가졌지만 미국의 강력한 견제에 따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고(1975년), 전두환 독재정권은 미국으로부터 정권을 인정받는 대신에 핵개발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늘날 서방 국가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정권 역시 2003년에는 핵개발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 포기 선언을 함으로써, 비확산의 모범 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독재자이기 때문에 핵무기 개발에 더 집착하고, 또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또 하나의 선입견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김정일 정권의 궤적을 보더라도 달리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94년 제네바 합의는 김일성 주석 사망 3개월 후에 나왔는데, 이는 후계자 김정일의 선택이었다. 김정일의 선군정치가 태동한 1990년대 중후반에도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준수하고 있었다. 이는 '김정일은 애초부터 핵무장을 원했다'는 일반적인 통념이 선입견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그가 핵무장에 나선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김정일 체제가 애초부터 핵무장을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외부, 특히 미국과의 상호작용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보다 객관적인 이해라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로 협상다운 협상이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협상무용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의 필요성으로 연결된다. 제네바 합의에 따라 경수로 사업 완료시 폐기 절차에 돌입하기로 한 영변 핵시설은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면서 '폐기'가 아니라 '재가동'의 수순을 밟았다. '제네바 합의가 이행되어, 영변 핵시설 폐기와 경수로 완공 등 상응조치 제공 문제를 협상했다면 어땠을까'라는 반문이 가능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는 6자회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것처럼, 북핵 폐기는 대북 안전보장,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북미·북일관계 정상화, 경수로 사업 논의 등 대규모의 경제·에너지 제공 등과 '동시 행동' 차원에서 논의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문제는 제대로 논의된 적이 아직 없다. 특히 평화협정 체결 논의하기로 한 '한반도 평화포럼'은 아직 첫 회의조차도 못하고 있다.

북한은 왜 핵무장을 했을까?

북한의 핵포기 가능성을 판단할 때, 선행되어야 할 것은 북한이 핵무장에 나선 이유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북핵 문제의 해결은 북한이 핵무장에 나선 이유들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장에 나선 이유로는 크게 5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국가안보이다. 북한이 미국의 위협을 과장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이 반드시 핵무장일 필요는 없었겠지만, 북한 핵무장의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미국의 위협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언급은 미국 <AP> 통신이 비밀 해제된 미국 정부 문서들을 분석해 2010년 10월 10일자 보도에서 내린 결론으로 대신하기로 한다. "1950년대부터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반복적으로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해왔고, 계획해왔으며, 위협해왔다."

둘째는 국가의 위상이다.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도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북한에게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북한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관심 밖에 계속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의 핵과 미사일 카드는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발언권을 높이고 경제제재 해제, 관계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등 자신의 요구 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는 유력한 카드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셋째는 국내 정치적 요인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 가운데 하나인 북한은 핵무장과 장거리 로켓 능력 보유를 통해 체제의 자부심을 높이려고 한다. 또한 내부적으로 핵무장에 반대하는 여론이 있을 수 없고, 반면 군부를 비롯한 강경파들은 외부의 위협을 들어 핵무장의 불가피성을 강변해왔을 공산이 크다.

넷째는 기술적 요인이다. 1980년대부터 핵무장에 필요한 핵분열 물질 생산 능력과 기술 능력을 꾸준히 축적했고 핵무기의 운반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북한은 핵무장을 결심했을 때 비교적 단시간 내에 이를 달성할 수 있었다.

끝으로 경제적 문제이다. 북한의 핵심적인 핵무장 동기 가운데 하나는 재래식 군비경쟁에서 한미동맹에 크게 뒤지고 재래식 군비를 늘릴 경제력이 안 되는 현실을 핵무장을 통해 상쇄하려고 한 데에서 비롯됐다. 즉, 북한은 핵무장이 저렴한 방식으로 안보를 튼튼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다른 핵보유국들과 비슷한 동기이면서, 미국 정보기관의 일관된 평가이기도 하다.

* (하)편에서는 북한의 핵포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대타협'의 내용을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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