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군부는 작년 국군의 날(3.27)을 맞아 이 속담을 언급하며 군부가 지향하는 "규율민주주의"도 정해진 중간단계가 성숙될 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국민에게 훈시했다. 우물의 '수질'이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정화되었다고 판단했는지 모르겠지만 군정 최고지도자는 금년 독립기념일(1.4)을 기해 금년 내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고 천명했고, 마침내 지난 8일부터 5일에 걸쳐 선거와 관련된 5개의 법령을 국영언론을 통해 공표했다.
연방선거위원회법(Union Election Commission Law), 정당등록법(Political Parties Registration Law), 상원선거법(Amyotha Hluttaw Election Law), 하원선거법(Pyithu Hluttaw Election Law), 지방의회선거법(Region Hluttaw or State Hluttaw Election Law) 등이 그것인데, 이로서 구두로만 서약한 총선 실시는 구체화의 수순을 밟는 첫 단계에 진입했다.
4월부터 군부는 군 수장의 처조카인 뮌스웨(Myint Swe) 제 5특별작전국장을 수장으로 하는 과도정부(caretaker)를 구성하여 본격적인 선거체제에 돌입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기 시작했다.
▲ 아웅산 수찌 여사의 삶을 다룬 책 <Perfect Hostage> |
국내외 정당, 민주화운동집단과 이해관계를 가진 국제사회는 곧 선거법에 대한 평가와 비판이 쏟아냈다. 그 중 가장 이목을 끄는 대목은 아웅산 수찌의 총선 입후보 여부, 선거위원회 구성의 적절성 등 주로 참여와 경쟁에 바탕을 둔 민주성의 원칙으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복역 중인 자는 상하원 선거법 각 제 4장 7조 2항, 제 5장 10조 1항에 따라 총선에 입후보를 할 수 없고, 선거권도 없으며, 정당등록법 제 2장 10조 5항에 따라 정당원으로도 등록될 수 없다.
1989년 공표된 선거법과 달리 금번 선거법에서는 외국인에게만 국한되었던 입후보 및 선거권 제한기준이 직계 자손까지 확대되어 군부의 외국인혐오증(xenophobia)은 더욱 확대되었다. 독소조항은 외국인과 결혼한 버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찌를 겨냥한 것이 틀림없지만 약 2200명에 달하는 정치범도 총선 입후보에서 배제될 전망이어서 반군부세력의 공백이 한 층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총선을 통해 1990년 총선 결과는 유효하지 않을 전망이기 때문에 국민민주주의연합(NLD)이 국제사회에서 누렸던 정통성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전 대법원 부원장이자 군법무관을 지낸 우 떼잉쏘(U Thein Soe)를 위원장으로 하는 17인의 선거위원회는 퇴역 장교, 재판관, 교수, 대사 등 친정부 인사로만 구성되어 선거관리의 중립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NLD는 선거에 참가하기 위해 정당등록을 할 것인지를 논의 중에 있는데, 3월 27일 공식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NLD도 내부적으로 아웅산 수찌 파벌과 띤우(Tin U)를 중심으로 하는 퇴역군인 파벌로 양분되어 있는데, 전자는 총선 참여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오는 5월 7일이 총선을 위한 정당등록 만료일인데, NLD가 정당등록을 하더라도 군부의 정치탄압은 그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NLD의 내부결정은 존중되어야 마땅하지만 과거처럼 강경노선만을 고집할 경우 정치권에서 완전히 배제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의회민주주의시기(1948-1958, 1960-1962) 총리와 부총리를 역임했던 우 누(U Nu)와 우 쪼응에잉(U Kyaw Nyein)의 여식(女息)들이 창당한 민주당(Democratic Party)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태국 내 망명정치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당은 군부가 조직한 정당의 정권창출을 기정사실로 수용하지만 원내에 진입한 후 협상을 통해 연정을 수립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군부도 USDA를 단일정당으로 창당하지 않고, 공무원을 중심으로 한 전문가 집단, 기업인, 변호사, 의사 등 신흥엘리트 집단, 소장파 군 인사로 구성된 군부 집단 등으로 세분화하여 총선 이후 합당이나 연정의 단계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단일정당으로 총선에 참가하여 대패한 1990년 총선의 교훈이자 다당제에 입각하여 공정한 선거가 치러졌다는 평가를 위한 전략적 획책이기도 하다.
정치개혁이라는 우물을 파서 민주주의라는 정수(淨水)를 국민에게 공급하려한다면 양질의 식수를 제공할 입지를 선정하고 토양을 훼손시키지 않는 도구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만약 용수가 넉넉하지 않은 땅이면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 할 것이며, 식수가 나오지 않으면 그 이유를 역으로 조사하여 식수가 솟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군부가 우물을 파기 위해 선정한 터와 도구는 이미 오염되었고, 거기서 샘솟는 우물은 군부의 건강을 책임지지 못할 것이다. 몇 번에 걸친 정화를 하더라도 우물의 질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은 자신의 건강을 해치울 샘물을 강압적으로라도 마셔야하는가? 아니면 우물이 정화될 도구나 기술, 새로운 터를 선정할 수 있도록 제안하여야 할 것인가? 썩은 물을 파는 현실에 수수방관하는 것이 더 서글프지 않은가.
* [아시아 생각]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에서 내는 칼럼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