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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권의 중국 인식, 이대로는 안 된다

[우수근의 '아시아 워치']<64>

중국을 바라보는 한국의 정계와 재계의 '감각적' 괴리

10월 10일, 중국 북경에 나이 지긋한 40여명의 사람들이 새롭게 발 길을 내딛었다. 이들은 중국을 새롭게 느껴보기 위해 바쁜 일정을 쪼개고 쪼개어 중국탐방에 나선,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의 직원을 이끄는 한국 재계의 CEO들이다.

빡빡하게 짜여진 일정을 소화하는 가운데에도 이들은 장소나 시간을 불문하고 서너 명만 모이면 열띤 즉석 토론에 나섰다. 이런 식으로 중국 탐방 길을 꾸며 간 CEO들은 "현장에서 직접 보니 지금 중국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급변하며 세계를 호령하던 옛 모습을 되찾으려고 하는데 아직 우리는 대비가 미흡한 것 같다"는 자성과 더불어 "이번 탐방을 변화의 계기로 삼겠다"며 입을 모았다.

한국은 중국과의 수교가 서방 국가 중에서는 가장 늦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한국의 재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진출, 중국 활용에 적극 나서 현재 중국대륙 최전선에서 가장 진취적이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한 한국의 재계가 중국에 대한 특유의 '감각'을 새롭게 다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제사회에서는 북핵 관련 6자 회담의 재개가 또다시 주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9월 방북한 중국의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과의 면담에 이어 중국의 원자바오 (溫家寶) 총리에게도 6자 회담 등이 조만간 재개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이와 관련, 앞서 밝힌 한국 재계의 CEO들이 중국탐방에 나서기 며칠 전인 10월6일, 한나라당의 정몽준 대표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북핵 개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북한이 재래식 무기로는 군사경쟁이 되지 않아 핵개발을 한 것 아니겠느냐"며 "김일성, 김정일 정권의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자유선진당을 비롯한 정치권으로부터 적지 않은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현실정치(real politik)적 측면에서 냉정하게 고려할 때, 정 대표의 생각이 과연 터무니 없기만 한 것일까? 지난 20여 년간에 걸친 북한의 궤적을 돌이켜 보건데, 북한이 자신이 처한 현 상황에서 핵 개발에 나선다는 것이, 과연 상상조차 하기 힘든 허무맹랑한 일이기만 한 것일까? 북한의 핵 보유 의도에 대한 명확한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섣부른 추측은 금물이지만,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의지할 만한 최후의 보루 가운데 하나가 핵 개발일 수 있다는 것은 북한의 국내외적 정황을 고려할 때 어렵사리 짐작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지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한 '현실 정치'가 절실한 한국의 정치권

북한 핵 개발에 대한 북한의 절박한 '현실'은 국제사회에서 대북 영향력이 가장 나은 것으로 평가되는 중국의 북한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널리 공유되고 있다. 먼저 옌쉐통(閻學通) 청화대학 국제문제연구소장은 "북한 핵을 둘러싼 북한의 의도는 핵의 확보 바로 그 곳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션팅리(沈丁立) 상하이 복단대학 국제문제연구원 부원장은 더 나아가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 양원창(楊文昌) 중국외교학회장 회장은 "북한 핵은 안보능력 결여에 대한 보충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라며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국내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들은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안보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는 한, 그들이 매 순간 상이한 전술적 변화를 보이더라도 결코 핵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중국인 전문가들의 이와 같은 견해에 의하면, 6자 회담은 그 궁극적 목적 성취를 둘러싸고 적지 않은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와 같은 상태로는 아무리 '긴밀한' 대화를 했고 그래서 '진전된' 성과를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6자 회담은 계속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필자는 이미 지난 해에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이명박 정부의 내외정책과 한중관계> 라는 학술토론회에서 제기된 북핵 관련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 바 있다.

"한반도 분야 중국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이 자리에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참가한 필자는 북한 핵 문제를 바라보는 중국의 속내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그들의 시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한반도 전문가의 한 사람이라 일컬어지는 중국공산당 중앙당교의 한 교수는, "북한은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안전보장 차원에서의 핵무기 개발이라는 주장 이면에 가려있는 북한의 대내적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설령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지 않고 중국 또한 북한의 안보를 보장한다고 확약하더라도 대내적으로 군사대국, 강성대국을 주장해 온 국내정치적 요소 등에 의해서도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또한 북한 핵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므로 중국 측으로서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했다. 아니, 문제라기보다는, 중국 측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 핵은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 특히 중국의 외교력을 강화시켜주는 효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 핵에 대해 방관자적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뒤를 이어 국제문제연구소의 한 전문가는, 미국 또한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 "다급할 것이 전혀 없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핵 기술은 사실상 원시적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실효적인 대항수단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는 "미국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없는, 단지 정치적 무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미국임을 고려할 때, 미국은 결국 북한 핵을 또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 중국인 전문가들에 의하면 북한 핵은 중국 및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게는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이 계속 궁지에 몰리게 되면 어떠한 '돌발적' 행동을 취할 수 있는데 한국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 문제 해결에 가장 적극적이어야 할 한국이 MB 정권 들어 오히려 북한을 자극하기만 하고 있어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중국의 '동문'에 대한 한국의 '서답'

중국의 环球网에 따르면,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이후 100만 명 시대에 진입했다. 하지만 재중 한국인의 증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2010년 이후에는 200만 명 시대로 성큼 다가설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베이징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통계에 따르면, 2008년 3/4분기 베이징을 방문한 외국인 중 한국인은 14만여 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미국인과 일본인이 2~3위로 그 뒤를 이었다. 그런데 재중 한국인 100만 명 시대가 불과 2~3년 만에 200만 명 시대가 될 것이라는 중국 측의 이러한 전망은, 시시각각 근접하고 있는 한중의 오늘날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음과 동시에 아직도 시대의 이와 같은 '현실적 변화'에 둔감하기만 한 우리 사회 일각의 처절한 자각과 변신을 촉구하는 엄중한 경종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0월10일, 중국 북경의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된 제2차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는 북핵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한 공동노력에 3국이 합의했다. 또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은 6자 회담을 반대하지 않는다"며 대북 관계에 임하는 우리 측에 대한 그들의 속 내를 암암리에 내비쳤다. 그런데 이와 같은 중국 측의 제스처를 '접수'하는 우리 측의 모습을 보면, '동문서답'과 '아전인수'라는 한자성어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구상을 둘러싼 중국측의 반응과 그 반응에 대한 우리측의 해석을 가지고 알아보도록 하자.

청와대 대변인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이 대통령의 일괄타결 방안에 개방적 태도로 적극 협의해나가겠다"고 밝히는 등, 중국측은 우리 대통령의 제안에 매우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관심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발표하였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청와대 대변인이나 여의도 일각에서의 이와 같은 낙관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내에서는 우리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이렇다 할 후속 보도 등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실제로 중국 언론들은 자국 총리의 방북 성과 보고 및 6자 회담 등에 관한 소식과 일본 하토야마 총리의 동북아 공동체 구상 제의에 대해서는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심층적으로 분석하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 제안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조차 하질 않았다. 그런데 이는, 중국 측의 외교적 수사와는 달리, 한국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중국 측의 반드시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자세를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애매모호한 언행에 익숙한 중국인들이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갖고 또 실제로 어느 정도라도 그들과 진지하게 접한 바 있는 외국인들에게 중국측의 이와 같은 함의는(entailment) 중국읽기의 입문 격에 불과하다. 이번에 중국 측은 한국 측을 배려하여 비교적 알기 쉬운 자세로 넌지시 들려주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그들의 제스처에 대한 우리 측의 해석을 보며 오히려 더 황망해 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정치권에는 '중국'이 '중국'이 아니다

한중 수교 이후, 한국에는 그야말로 중국 열풍이 불어 닥쳤다. 그러다 보니 전술한 바와 같이, 불과 15년의 세월 만에 100 만 명의 한국인이 중국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15년 간의 '열풍'은 어느덧, 2~3년 만의 200만 명이라는 '광풍'과도 같이 변모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만, 중국을 향한 한국의 러시 현상에 예외적인 존재가 있는 것 같다. G2로 부상한 중국에 대해 각계각층에서는 '노마드' 정신으로 달려들어 파헤치고 있는데 그 대열 속에서는 한국의 정치권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의 중국 열기는 그 출발부터 현재까지 경제 분야를 위주로 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 뒤로 유학이나 사회문화 분야가 뒤를 잇고 있으며, 정치 분야는, 조선시대 점잖은 양반 어르신네들이 그러했듯이, 저 멀리서 뒷짐진 채 느릿느릿 팔자걸음을 걷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정치권에는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중국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러한 사정은 외교 분야 또한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외교계에서는 아직도 "한국외교=대미외교" 라는 도식이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청와대의 외교안보수석부터 외통부의 고위 핵심라인 모두가 온통 북미국 출신의 '미국통' 에게 점령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한국의 대중외교는 아직까지도 대미외교의 연장선 정도로 다뤄지고 있다. "달걀을 모두 한 바구니에 담아서는 안 된다"는 포트폴리오의 기본 원칙에도 불구하고, 아울러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과감하게 '탈미외교'를 선언하고 나선 '미국의 1중대' 일본의 변신을 보면서도, 한국의 외교 분야는 아직도 미국이라는 한 극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치외교 분야의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는 중국에 대한 보다 더 진취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한중 양국의 정치외교적 긴밀도는 한중 양국 다른 부문의 긴밀도와 비교할 때 현저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최근의 실례를 보라. 2~3년 만에 100만 명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 판이다. 그런데도 이미 1년 반 전인 2008년 5월에 '전략적 관계'로 격상된 한중 양국관계는 지금 어떠한가? 격상이라는 것이 서류상으로만 그렇게 되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아직도 '전략적 관계'라는 그 개념조차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지진부진하기만 하지 않은가.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내치의 실패는 다음 번 선거의 패배로 국한되겠지만 외교의 실패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고 했다. 외교의 역할은 그 만큼 중요하다. 한편 그렇다면 외교의 기본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상대방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어야만 제대로 된 대응방안이 서게 되는 것이 아닌가? 자, 그러면 이번에는 상대방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필요한 자세는?

중국을 읽지 못하는 한국의 정치권은 정말이지 매우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중국을 읽어내기 위한 기본 자세조차 제대로 갖추려 하질 않고 있다. 중국에 대한 한국 정치권의 무감각과 무능함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우리의 대중 비즈니스 등에 대한 지원이나 200만 재중 한국인에 대한 권익보호 등은 고사하고 오히려 훨훨 날아야 할 우리들의 발목만 잡아 끌게 될 지도 모른다. 아아, 중국에 대한 한국 정치권의 자각과 변모, 과연 무슨 대가를 어떻게 치른 뒤 비로소 꿈틀 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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