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중국 수립 60주년 기념일을 불과 며칠 앞둔 지난 9월 27일, 중국 국무원은 중요한 문건 하나를 발표했다. <중국문화산업진흥계획(中國文化産業振興規劃)>이라는 제목으로 공포된 문건은, 중국 최초로 문화산업에 관한 전문적인 강령을 담고 있다. <계획>은 올해 7월 22일 이미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주재하는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토론을 거친 뒤 원칙적으로 통과됐다가, 이번에 전문이 발표된 것이다.
<계획>은 문화산업 진흥의 공익성과 시의성을 강조하고 있는 전문(前文) 격의 '선언'과 "문화산업 진흥 가속화의 중요성과 긴급성", "지도사상 및 기본원칙, 계획의 목표", "중점 임무", "정책 시행", "조건의 보호" 등 모두 여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핵심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역시 "중점 임무"에서 다루고 있다. 문화 창의산업, 영상제작업, 출판업, 인쇄업, 광고, 엔터테인먼트, 전시, 디지털콘텐츠, 애니메이션을 중점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주요 산업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다. 관련 산업의 제작을 활성화하고 유통과 소비에 이르는 산업적 환류 시스템을 강화하여 경쟁력을 향상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제 시장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 상품을 생산하자는 의지의 피력도 빼놓지 않았다.
이번에 발표된 <계획>은 무엇보다 중국 최초의 '문화산업'에 관한 전문적 강령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것은 개혁개방 이후에도 공식적으로는 '문화'를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정신문명 건설을 위한 교육의 도구로만 인식해 오던 전제와 그에 따라 문화체제 내부를 개혁 대상으로 간주하거나 산업적 특성을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만 여겨오던 관습에서 탈피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즉 '문화'가 '산업'적 사이클을 통해 유통, 소비되는 현상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보여준 것이다. 이는 '문화산업'이라는 개념이 아도르노나 호르크하이머와 같은 마르크스주의를 계승하는 프랑크푸르트 비판론자들에게서 유래하여 문화를 자본에 예속케 한다는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시작된 지 한 세기도 되지 않아,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흥'시켜야 할 대상으로 규정되었다는 역사적 전환의 사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번 <계획>의 수립에는 최근 불어 닥친 금융위기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계획>의 '전문'은 "오늘날 국제 금융 위기라는 새로운 정세와 문화 영역의 개혁 및 발전이라는 긴급한 필요에 부응하기 위하여 본 계획을 제정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구체적인 정책 시행에 있어서도 문화산업의 활성화를 위하여 정부의 투자와 금융권의 적극적인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문화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순환 주기가 매우 길게 이어지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소비의 특성을 예측하기가 어려운데다 투자가 이윤으로 환수되는 비율 또한 높지 않아 상대적으로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금융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자금 흐름이 경색되면서 더불어 위기에 직면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번 <계획>은 이런 상황을 정부가 직접 나서서 타개하면서 건전한 문화 금융의 구조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번 <계획>에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노선을 실천해야 하는 중국 정부의 고민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지도사상'이나 '기본원칙', '조직의 지도' 등과 같은 의례적인 표현들이 역시 다수 등장했지만, 그 이면에 주목할 만한 내용은 다양한 산업의 균형적 발전을 언급하면서도 이른바 '신흥문화산업', 예를 들면 디지털 콘텐츠 산업이나 모바일 산업, 또는 애니메이션 산업 등을 행간에서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문화산업을 주도해 왔던 출판, 광고, 인쇄업 등의 역할을 존중하면서도 앞으로 중국 문화산업이 발전해야 할 지향을 적시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특히 애니메이션의 경우 1950년대 이래 수묵 애니메이션과 같은 중국만의 고유한 콘텐츠에 우수한 기술이 더해져서 나름대로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가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그 발전의 싹이 고사당했던 것을 회복하기라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듯 여러 차례에 걸쳐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계획>의 구상에 따라 주요 문화기업의 육성과 문화산업지구 건설, 문화소비의 확대, 대외문화교역의 확대, 문화 인력의 양성 등이 세부적으로 실천되어 갈 것으로 생각된다. <계획>이 통과된 이후 '베이징애니메이션게임산업연맹'이 창립되는 등 세부 분야들의 조직이 정비되어 왔다. 또 <계획>이 공식 발표된 이후에는 관련 학술대회나 토론회 등이 열리고 있고 주무 부서인 문화부도 <문화산업투자에 관한 지도 목록> 등과 같은 각종 관련 '의견'들을 쏟아내고 있다.
올해 '건국' 60주년 기념 행사는 지나치게 정치적, 군사적 이벤트로 채워졌지만, 그 전야에 발표된 이 <계획>으로 '문화'가 일종의 자그만 보상을 받은 듯한 인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작년 베이징 올림픽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엠블렘과 구호, 그리고 개·폐막식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듯 이제 중국이 100년에 걸친 정치 노선과 경제 노선의 오랜 논란과 실험에 종지부를 찍고 '문화의 길'을 통해 새로운 '부흥의 노선'을 추구할 것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중국 문화 산업은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적 원천에 따른 콘텐츠의 힘과 값싼 노동력, 무수한 인재 풀 등과 같은 전통적인 요인에 더하여 국가의 '진흥'이라는 새로운 날개를 얻게 됐다. 경제와 국방 등 전방위적으로 세계 최대 강대국인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G2'라는 이름까지 얻어낸 중국으로서는 미국과 상대할 때 가장 취약했던 분야인 문화산업을 말 그대로 '진흥'시킴으로써 명실상부한 '대국 굴기'를 향해 나아가려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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