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역사 이래 계속 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중국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무지, 그리고 조급증과 국제문제를 지나치게 미국 중심으로 보려는 우리의 태도 때문이었다. 따라서 중국에 대한 깊이 있고 진득한 탐구가 부족했다는 점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중요성은 각 분야에서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중국의 존재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외 정책은 지나치게 특정 국가에 경사되면서 균형을 상실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지정학적으로나 정치경제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매우 중요하고 절박하다. 균형과 조화를 통해 국제적 입지를 확보하고 안정적인 남북관계를 지속해 종국적으로 통일을 이루어야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중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우리의 국익과 바로 직결되는 문제이다.
오늘부터 연재를 시작하는 '中國探究(중국탐구)'는 이러한 인식하에 이미 명실상부하게 국제 정치경제적 강자로 성장한 중국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동안 각 분야에서 중국 연구에 매진해 온 국내외 전문가들의 견해를 다양한 시각에서 찾아보고자 마련되었다. 본란은 중국의 어제와 오늘을 역사. 문화. 사상. 정치. 외교, 사회 및 경제. 경영 분야별로 나누어 현대 중국 이해에 필수적인 내용을 심도 있게 고찰할 것이며, 시의적인 주제에 대해서도 통찰력 있는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중국 읽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이 막연한 신비감이나 편견에서 벗어난 새로운 중국이해의 초석이 되길 기대하며 여러 선진제현들의 지도 편달을 바란다. <필자들을 대표하여 한인희>
필진
간사 : 한인희
역사·문화 :한인희(대진대), 강진석(한양대), 임대근(외대)
정치·외교(한반도) : 강준영(외대), 신상진(광운대), 전병곤(통일연구원),
張歷歷(中國外交學院), 공유식(외대)
경제·경영 : 박한진(KOTRA), 양평섭(KIEP), 손상범(영남대), 정환우(한국무역협회)
박장재(상지대), 박상수(충북대)
'국민 통합' 메시지 절박했던 개막식
막대한 물량과 인원을 동원한 개막식을 시작으로, 베이징 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축포는 그 동안 분분했던 올림픽에 대한 우려를 일거에 태워 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웅장했다. 개막 공연은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가 연출을 맡았다는 소식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식전 행사부터 성화 점화에 이르는 전체 공연은 위대했던 중국 역사와 문화의 재현이라는 줄거리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선수단 입장을 제외하고 두 시간 남짓 이어진 공연은, 대외적으로는 찬란했던 어제의 중국이 오늘의 자랑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과시하고 대내적으로는 국민 통합을 기원하려는 메시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개막 공연의 핵심어 : '조화'
개막 공연의 핵심어는 역시 '화(和)'였다. 중국의 4대 발명이라는 제지술과 인쇄술의 역사를 그린 군무는 여러 자형으로 표현된 '화' 자를 보여주었다. 수많은 무용수들이 "사해 안은 모두 형제(四海之內, 皆兄弟也)"라는 논어(論語)의 구절을 합창한 것도 '화'의 구체적 표현이었다. '조화', '평화', '화합' 등을 두루 뜻하는 '화'를 통해 개막 공연의 이념이 두드러졌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무엇보다 눈에 띄었다. 죽간(竹簡)에서 시작해 두루마기로 이어진 인쇄 문화와 그 속에서 발현된 중국 사상의 정수는, 길이 70m에 이른다는 전자 스크린으로 형상화됐다. 과거의 문명이 현대 과학과 어우러지는 장면이었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도 연출됐다. 육로와 해상의 비단길을 통해 다른 세상과 소통하려 했던 중국인들의 의지를 재현했다.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도 보여줬다. 전통 무술인 태극권에 체현된 동정(動靜)과 강약(强弱) 등 다양한 이질적 요소의 조화를 통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순수와 비정치성 강조한 어린이들
그러나 조화와 어울림을 강조한 전체 공연의 이면에는 대내적으로 국민 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절박한 의지가 엿보이기도 했다. 어린이들의 잦은 등장은 그런 의지의 표현으로 읽혔다. 모두 기억하듯이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 공연에도 어린아이를 등장시킨 전례가 있긴 하지만, 이번 베이징 올림픽 개막 공연에는 유독 어린이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뜨였다. 중국 국기 '오성홍기' 게양을 위해 소수민족의 전통 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출연했고, '영광의 순간-별빛'이라는 제목으로 펼쳐진 공연에는 신동 피아니스트라는 리무즈(李木子)가 함께 했다. 또 태극권 공연 중 연출된 수업 시간에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외치던 어린이들은 순수한 자연의 복원을 뜻하는 '천리강산도(千里江山圖)'에 색을 입힌다. 전 세계 다양한 인종의 어린이들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들도 펼쳐졌다.
어린이는 가장 순수하면서도 정치성이 배제된 상징이다. 특히 국기 게양식에는 중국 내 소수민족이 어린이로 형상화됐다. 소수민족 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오성홍기'를 들고 나와 '인민해방군'에게 건네주는 장면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베이징 올림픽의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였던 티벳 시위와 위구르 폭발 사건 등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정치적 행위를 그만두고 순수한 어린이들이 중국의 산하를 복원하듯이, 소수민족 어린이들이 인민해방군에 오성홍기를 넘기듯, '우리' 모두의 운명을 국가에 의탁하자는 이데올로기의 재현이었다.
여전히 영웅이 필요한 시대
어린이 형상은 영웅 형상과도 겹쳤다. 중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 기수 야오밍(姚明) 옆에는 쓰촨 대지진 때 자신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을 구해냈다는 어린 '영웅' 린하오(林浩)가 함께 했다. 역시 베이징 올림픽의 또 다른 큰 장애물이었던 쓰촨 대지진은 이런 방식으로 올림픽과 더불어 통합됐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보듯, 무릇 영웅은 나약하고 가난할수록 더욱 그 가치가 증폭되는 법이다. 마오쩌둥 시대, 군대에서 22살의 나이에 사고로 죽음을 당한 뒤, 국민 통합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던 레이펑(雷峰)의 형상과도 같이 말이다.
비단길 영웅 정화(鄭和), '어린 영웅' 린하오, 오륜기를 운반한 중국 스포츠 영웅들의 모습은 마침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3관왕을 차지한 '체조 영웅' 리닝(李寧)에게로 이어졌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 스포츠 사업가로 변신한 그는 여전히 중국 스포츠의 최고 스타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둥지' 위를 날아오르는 새처럼, 가뿐히 하늘로 솟아, 마치 인류에 처음으로 불을 전해 주었다는 중국 신화 속의 수인씨(燧人氏)처럼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소수민족의 저항과 쓰촨 대지진 등 인재와 천재가 두루 겹쳐 성사 여부마저 우려되던 베이징 올림픽은 항간의 그런 목소리들이 모두 기우에 불과했음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개막 공연을 통해 형상화 된 이들 영웅 형상들은 대내적으로는 국민 통합을, 대외적으로는 '위대한' 중국의 건재를 과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개막식 내내 전체주의로 대변되는 문화대혁명 시절 사인방 중 하나였던 마오쩌둥의 부인, 지앙칭(江靑)이 만들어 배포했던 예술 창작의 강령인 '삼돌출(三突出) 원칙(많은 인민 형상 중 긍정적인 인물을 부각시키고, 긍정적 인물 중 영웅적 인물을 부각시키며, 영웅적 인물 중에서도 가장 긍정적인 영웅을 부각시켜야 한다는 공산당의 교조적 예술창작 지침)'이 마치 어떤 잔영(殘影)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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