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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의 국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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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남북관계의 국면 전환

남북ㆍ북미 관계 잇단 해빙 조짐

1월 23일 북한측이 정부, 정당, 단체 연합회의를 개최하고 당국 및 민간 차원의 남북대화에 적극 나서는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남북 사이의 물밑 접촉의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같은 날 남측은 금강산 사업의 지속을 위한 지원 대책을 발표하였다.

이미 5월 남측의 월드컵 대회에 시기를 맞추어 북측이 4월부터 아리랑 축제 기간을 설정하고 관광객 모집을 시작하면서 예상된 것이지만 북측의 이러한 발표는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월 하순으로 예정된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며 북미관계 타개를 위하여 전 주한 미국대사 4명의 방북이 추진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겨우 재개되었다 다시 중단된 남북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부시 정부 등장 이래 6개월간 남북대화를 중단시켰던 북측은 사실 작년 9월부터 대화 재개로 방침을 바꾸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당시 북측은 제5차 장관급 회담에 응하면서 11개 의제 가운데 9개 의제에 합의하는 등 회담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온 바 있다. 여기에는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육로 관광, 경의선 연결, 개성공단 사업 등 남북 사이에 약속이 되었지만 이행되지 못한 주요 현안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이 때 북측은 북미관계에서 남북관계를 분리시켜 일정 수준까지는 남북대화를 진전시키기로 ‘전략적 전환’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 직후 열린 금강산 육로 관광을 위한 남북 실무협상에서 북측은 미불된 관광 대가 지불을 남측 정부가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였고 이를 남측은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이에 따라 겨우 재개된 남북대화는 초장부터 벽에 부딪친 것이다.

북미관계도 북측은 북중, 북러 정상외교를 통해 안보불안감을 완화시키면서 협상을 재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지난 해 9월경 북측은 중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담에 부시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이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북미 협상을 타개해 보려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9.11 테러참사의 여파로 무산되고 말았다. 테러 전쟁에 몰두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북미협상은 외교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테러 참사는 남북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북측은 남측의 전군비상경계령을 이유로 제6차 장관급 회담 및 이산가족 상봉 장소로서 서울을 거부했다.

이 문제는 남측이 북측을 겨냥한 것이 아니란 설명을 하고 북측이 양해함으로써 일단 극복되었으나 회담은 부차적 이슈였던 제7차 장관급 회담 일자 명기 문제로 결렬되고 말았다. 다만 이 회담을 통해 북측은 남북대화를 거부하려는 것이 아니었음이 확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에서 남북대화와 북미 관계를 분리시키려는 방침은 계속 살아 있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9.11 테러 참사 이후 북측으로서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는 테러 참사가 한반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차단시키는 것이었다. 특히 테러 전쟁이 예상보다 훨씬 조기에 종결됨으로써 부시 행정부의 다음 대상이 누가 될 것인가 하는 데 국제적인 초점이 모아지게 되었다.

일본 자위대의 아프간 파병이 실현되었고 이제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가 한반도에 적용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되었다. 더욱이 월드컵 행사는 한일간의 테러 공조를 필요로 하게 되어 있으며 자칫하면 88 서울 올림픽처럼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낳을 우려가 있었다.

북측이 김일성 주석 탄생일 관련 행사를 아리랑 축제로 명칭과 성격을 바꾸면서 대응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세계적인 행사에서 나름대로 경제적 이익을 내려는 욕구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남측도 나름대로 아리랑 축제가 과거 올림픽과 세계청년학생 축전처럼 서로 대립적이 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월드컵 행사와 아리랑 축제가 상호 보완적인 평화행사로 개최될 수 있다면 전 세계에 남북의 평화의지를 내세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북측으로서도 세계적인 이벤트에 협력하는 자세를 국제적으로 어필함으로써 테러 지원국의 오명을 벗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금강산 육로가 되든 경의선 철도가 되든 관광객을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실어나를 수 있다면 이는 제1차 남북정상회담 못지않은 세계적인 이벤트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이러한 구상이 실현될 수 있다면 그 동안 확산되던 남북관계를 둘러싼 비관적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제2차 정상회담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남측이 금강산 관광 지원 대책을 발표한 것은 일단 제5차 장관급회담 개최 국면으로 남북관계를 되돌리고 나아가서 이를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확대 방향으로 전진시키기 위한 노력이라 볼 수 있다.

그동안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에 빠졌던 원인을 구체적으로 들자면 하나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지닌 불확실성이고 다른 하나는 남측의 대북 지원능력의 한계였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아직 뚜렷이 정리돼 있지 않은 것 같다. 국무부의 아미티지나 국방부의 월포비츠 등 이른바 지일파가 개헌 해석을 해서라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실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대북 정책 등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여전히 불확실성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 첫 번째 원인인 부시 정부의 대북 정책을 움직여 낼 지렛대는 남북대화 밖에 없는 듯하다. 남측의 대북 지원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하지만 북측이 6개월 동안이나 남북대화를 중단시킨 것도 적지 않은 실책이었다. 우선 북미관계를 움직여 낼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다음으로는 남측 사회 내에서 대북 여론을 악화시킴으로써 국내 정치 변수가 남북관계에 개입하게 만든 것이다.

역으로 북측 내부에서도 협상파의 입지가 줄어들고 이를 견제하는 내부적 요인이 작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북미 관계에서 보면 이를 움직여 낼 수 있는 남한 사회의 내적 동력을 상실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남북 관계에서는 그 내적 저해 요인이 서로 맞물림으로써 악순환 관계에 빠지도록 하였다.

뒤늦게나마 남과 북이 각각 남북관계의 촉진 요인을 발동시킴으로써 이를 상호 선순환 관계로 가도록 결단하고 나선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상당한 저항이 따를 것이다.

다만 이는 남북관계에서 가시적 성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극복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6.15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추이를 되돌아보면 어차피 맞을 매라면 빨리 맞는 편이 옳았다.

남북 관계는 국민적 합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주요한 결단의 시점을 놓침으로써 악화를 자초한 측면도 크다. 이제 남북은 서로 인내를 갖고 상호 이해와 양보를 통해 이 상황을 타개해 가야 한다. 이제 더 이상의 주저와 동요는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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