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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거망동 막은 DJ, 경거망동 부추긴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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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거망동 막은 DJ, 경거망동 부추긴 MB

[정욱식의 '오, 평화'] MB와 MD, 그리고 한-미-일 삼각동맹<2>

전편 보기: 미국은 왜 한일 군사협정에 집착하나?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최대 분수령은 2009년 4월 북한의 소형 인공위성 광명성 2호 발사였다. 북한의 발사체를 '대포동 2호'로 규정한 오바마 행정부는 강경 대응을 선택했고, 이후 한반도 정세는 부시 행정부 때보다 질적으로 더 나빠지고 말았다.

주목할 점은 당시 이명박 정부의 과잉 대응이 오늘날 한일 군사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미일동맹과 이에 반대하는 국내 여론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를 자초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로켓 발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한미 관계는 물론이고 한-미-일 3자 관계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함의를 내포하고 있었다.

북한이 발사한 것이 위성이라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면 보다 유연한 대응이 가능했었다.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강화되는 상황은 외교적으로 제어가 가능했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북한의 발사체를 탄도미사일로 '해석'하면 대북정책만 강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미사일방어체제(MD)를 비롯한 한-미-일 군사협력의 빌미가 되고 만다.

그런데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가장 강경한 태도를 보인 당사자는 바로 MB 정부였다. 이와 관련해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09년 3월 5일자 주한 미국대사관 외교 전문에는 미국측보다 한국측이 더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3월 2일에 서울에서 열린 21차 안보정책구상회의(SPI) 회의 결과를 정리한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전제국 국방부 정책실장은 한국 정부는 (북한의) 어떤 미사일이나 로켓 발사도 군사 도발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전 실장은 한미동맹이 정보와 감시 태세 강화, 로켓 발사 공동 모니터링, 합동 대응을 준비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전에 미국과 한국 정부는 가능하다면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원태호 합참 전략기획부장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탄도미사일 프로그램과 관련된 기술적 요소 때문에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18호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국측 수석대표 데이비드 세드니 국방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로켓 발사가 (안보리 결의안) 위반이라는 미국의 입장은 결의안 1718호에 대한 미국 정부의 법리 해석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로켓 발사 자체를 안보리 결의안 위반한 것이라고 본 반면에, 오바마 행정부는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데니스 블레어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북한이 발사하려는 것은 우주발사체(space-launch vehicle)"라고 답변했다. 그는 또 "나는 북한이 우주 발사를 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믿으려 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내 판단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당시 미국 정부 내에서 북한의 발사체에 대한 성격 규정이 명확히 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으로, 한국 정부가 차분하고 위기 예방형 대응을 선택했다면, 2009년의 파국은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2009년 광명성 2호 발사 장면. ⓒ연합뉴스

BDA식 제재가 추가 도발 억제?

또 다른 외교 전문에 따르면, MB 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에게 대북 제재 강화를 주문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2009년 3월 초 SPI 회의 참석차 방한한 세드니를 만난 김성환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현 외교통상부 장관)은 "미국 정부가 BDA(방코델타아시아)와 같은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북한이 여긴다면, 북한은 감히 추가적인 대포동 미사일 발사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세드니가 "한국 정부가 대북 제재를 요청하는 것이냐"고 묻자, 김 수석은 "한국 정부에게는 6자회담과 남북관계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런데 BDA식 대북 제재가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는 김 수석의 주장은 사실관계에 대한 몰이해에 따른 것이었다. 미국은 2005년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 채택과 동시에 BDA를 통한 대북 금융제재를 가했는데,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뿌리치고 금융제재를 해제하지 않자 북한은 2006년 7월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행했다. 이에 대한 제재로 유엔 안보리는 규탄 성명을 채택했고 노무현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을 중단했다. 그러자 북한은 2006년 10월 핵실험으로 응수했다. 반면 북한은 2007년 들어 미국이 BDA 제재 해제를 약속하고 이를 이행하자, 영변 핵시설 동결·폐쇄 및 불능화 등 부분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관계마저 곡해한 MB 정부는 북한의 로켓 발사 이후 대북 제재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를 통해 MB 정부는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관계와 6자회담이 급진전될 수 있다는 우려를 덜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남북관계와 6자회담의 동시적 파탄 및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강화였다. .

미국, "좋은 기회"가 왔다!

2009년 4월 북한의 로켓 발사와 이에 대한 MB 정부의 강경책은 미일동맹의 오랜 숙원인 한-미-일 3각 동맹 구축의 절호의 기회로 간주됐다. 북한의 로켓 발사 8일 후 주일 미국대사관은 한국과 일본의 관료들과 학자들을 초청해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를 평가한 미국 외교전문은 "최근 북한의 대포동 2호 탄도미사일 발사 전후의 전개 과정에서 일본과 한국 정부가 보여준 긴밀한 협력은 양국 사이의 장벽이 깨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한국 및 일본과 함께 3자 안보 및 국방 대화는 두 정부에 대한 미국의 면밀한 감독과 능동적 개입을 요한다"고 강조했다.

2009년 7월 16-17일 도쿄에서 열린 차관보급 한-미-일 3자 국방회담(U.S.-Japan-ROK Defense Trilateral Talks)에서 미국의 의도는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회담에서 마이클 쉬퍼 국방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는 북한의 로켓 발사 및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 정세가 "변곡점(inflection point, 變曲點)"에 와 있다며, "미국의 대북정책은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데 맞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한 변곡점이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갖춘 핵보유국이 되려고 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3각 동맹 구축을 본격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함께 한 에드워드 라이스(Edward Rice) 주일미군 사령관은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에 대한 대처는 3자 협력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3국 정부는 정보 공유, 합동 기획 및 작전을 포함한 정책 및 작전 협력을 위한 필요한 구조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거망동 막은 DJ, 경거망동 부추긴 MB

주지하다시피, '북한위협론'은 미국의 MD를 비롯한 군사력과 동맹 강화는 물론이고 일본의 군사대국화의 가장 강력한 구실로 활용되어왔다. 한국의 외교 능력이 강조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으로는 한미동맹을 통해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도함으로써 '북한위협론'이 악용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안목과 자질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1990년대 후반 김대중 정부의 외교는 오늘날 MB 정부와 너무나도 비교된다.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광명성 1호를 발사하자, 한반도 위기는 또 다시 고조되는 듯 했다. 북한의 로켓 발사 2주 전에는 금창리 핵의혹 시설 논란까지 터진 상태였다.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선제공격론이 불거졌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금창리 핵의혹 시설 논란과 관련해 미국에게 현장 방문을 요청했고 이를 수락한 미국은 '텅빈 동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 로켓 문제 역시 북미 미사일 대화를 적극 중재해 1999-2000년 북미관계의 황금기를 여는데 기여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DJ 정부는 MD에 참여해달라는 클린턴 행정부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으며 한반도 전장 특성상 MD는 북한 미사일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 방안이 아니라는 국익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동시에 일본의 경거망동에도 강한 견제구를 던졌다. 당시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이유로 미국과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북한 미사일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론까지 들고 나왔다. 이에 대해 천용택 국방장관은 "우리로서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 억제도 중요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한-미-일 3개국의 정책조율 없는 선제공격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도 선제공격 계획이 없다며 꼬리를 내렸다. 대신 김대중 정부는 북일대화를 적극 권유했다.

이에 반해 MB 정부는 DJ 정부와 정반대의 선택을 하고 있다. 사사건건 북미·북일 대화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북한의 핵과 로켓 문제에 가장 강력한 대응을 주문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MD 및 한-미-일 3각 동맹에 한국이 편입되는 길을 열어주고 말았다. 한일 군사협력, 한-미-일 합동군사훈련, 일본 이지스함의 서해 배치 찬성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 군사대국화에 적극 호응해주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DJ의 선택과 오늘날 MB의 선택을 비교해보면 또 한 가지 중요한 결과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DJ의 '전화위복의 외교'를 거치면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은 크게 줄어들었었다. 부시 행정부의 '역선택'이 아니었다면, 북한 미사일 문제도 10년 전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MB 정부 5년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꾸준히 강화되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안보도 그만큼 불안해졌다. 북한의 위협이 커졌다는 이유로 MD 편입과 한-미-일 3각 동맹이라는 금지선마저 넘나들고 있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뚜벅뚜벅' 바로가기
*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책 소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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